현대의 리베로, 스위퍼 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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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리베로, 스위퍼 키퍼

토르난테 2020. 8. 3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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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링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한국에서 엄청나게 유행했었다.

이 시절 스타플레이어 임요환은 발상의 전환을 보였는데 테란 종족의 기지방어 유닛엔 벙커가 있었다. 벙커에 기본 공격 유닛인 마린이 들어가면 벙커는 공격 기능이 생겼다.

이걸 활용한 임요환은 벙커를 상대 기지에 지었으며 마린을 생산하는 건물인 배럭을 자신의 진영이 아닌 자신의 진영과 상대의 진영의 중간 지점에 지어서 마린이 상대 진영 앞에 지어진 벙커에 빠르게 도달하게 했다.

임요환은 벙커링의 선구자이며 이 전략으로 가장 재미를 본 게이머이다.

기지 방어 유닛인 벙커를 공격적으로 활용한 이 전략은 벙커링이라 불렸으며 임요환은 이러한 발상의 전환으로 두 번의 스타리그에서 우승했으며 훗날에는 라이벌 홍진호를 상대로 3세트 연속으로 벙커링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이 벙커링 전략은 아직도 테란이 저그를 상대할 때 하나의 전략으로 유행하고 있다.

축구에도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골문을 방어하는 최후방의 포지션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슛 스토퍼의 역할이 아닌 수비라인 커버와 롱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스위퍼 키퍼라 불리는 혁명은 현재 마누엘 노이어로부터 정석화가 되었다. 하지만 창시자는 노이어가 아니고 예전부터 꾸준히 시도되었던 플레이가 노이어 시절에 완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은 현대의 리베로라 불리는 스위퍼 키퍼의 완성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스위퍼 키퍼의 시조

 

스위퍼 키퍼의 시조는 여러 가설이 있다.

골키퍼가 단지 슈팅을 막는 역할로만 남기에는 아쉽다는 의견은 당대에도 있었으며 이런 생각을 가진 골키퍼들은 롱 패스를 활용해 적극적인 빌드업을 하기도 했다.

첫 번째로는 매직 마자르의 수문장인 그로시치 줄라가 꼽힌다.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이 매직 마자르가 현대 축구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으며 그로시치는 넓은 시야와 훌륭한 발밑 능력을 앞세운 정확한 롱 패스로 공격의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며 초기의 스위퍼 키퍼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두 번째로는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한 남미의 아마데오 카리조이다.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45년에 데뷔해서 1968년까지 리버 플레이트에서 선수생활을 한 그는 정교한 롱 패스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진하며 수비 범위를 넓히는 플레이의 시조로 리베로와 유사한 진정한 의미의 스위퍼 키퍼의 창시자는 카리조가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그 외에 레프 야신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로시치에 비해 늦게 두각을 나타낸 선수라 이 이론은 신빙성이 적다.

확실한 건 리베로가 유행하기 이전부터 스위퍼 키퍼는 시도되고 있었으며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골키퍼의 롱 패스조차도 이 당시에는 혁명이라 불릴만하며 새로운 공격 옵션이었다.

아쉽게도 이 시대에는 이질적인 플레이라 아직 이러한 플레이가 정석화되지는 못했다.

 

토털 풋볼을 거치면서 노이어를 정점으로 정석화된 스위퍼 키퍼

 

스위퍼 키퍼는 정석화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이 계보는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1860 뮌헨의 전설적인 골키퍼 페타르 라덴코비치는 이런 스위퍼 키퍼의 계통을 이어 상대 공격수를 전진하여 수비했으며 매우 높은 라인까지 올라가 빌드업 과정에 참여하며 스위퍼 키퍼의 계보를 이어갔다.

그리고 스위퍼 키퍼는 아약스에서 시작된 토털 풋볼을 만나면서 점점 정석화에 가까워진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슬로건을 내건 토털 풋볼에서 골키퍼는 제1의 공격수였으며 수비 라인이 공격적인 상황에서 더 전진하는 만큼 넓은 범위를 커버해야 했으며 상대의 공격을 선방한 뒤에는 골키퍼가 첫 패스를 하기 때문에 스위퍼 키퍼는 토털 풋볼에 꼭 필요했으며 선방 능력에서 특별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능력들을 보유하던 얀 용블루트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자리 잡는다.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그리고 1992년에는 같은 팀 수비수가 패스를 한 공을 받는 경우, 그 공을 손으로 잡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신설되면서 골키퍼의 발 밑 능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스위퍼 키퍼의 능력은 옵션이었으며 토털 풋볼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크루이프조차도 빌드업 능력은 평범했지만 선방 능력이 훌륭했던 수비사레타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등 아직은 빅 클럽들도 선방 능력이 1순위로 보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천재적인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등장하면서 이 시선에서는 변화가 생겼다.

베켄바우어 등장 이후로 독일 축구의 상징은 리베로였다. 리베로를 유지하면서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스리 백 시스템이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스리 백 시스템의 단점이 부각되면서 사라졌다.

마지막 월드 클래스 리베로 마티아스 잠머

하지만 노이어가 등장한 이후로 현대 축구에는 새로운 형식의 리베로가 부활했다. 바로 이 스위퍼 키퍼이다.

노이어의 발 밑은 일류 필드 플레이어들 못지않게 훌륭했으며 추가로 엄청난 범위의 수비 커버 능력이 있었다. 덕분에 중앙 수비수들은 더 전진할 수 있었으며 노이어의 수비 범위는 마치 예전 이탈리안 리베로들만큼 넓었다. 필드에서 한 명이 더 출전한 효과였다.

마누엘 노이어의 히트맵

노이어가 소속된 팀은 승승장구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두 번의 트레블을 달성했으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이 월드컵 우승의 중심에는 노이어가 있었으며 이러한 공로로 노이어는 호날두와 메시에 이어 201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다.

노이어는 새로운 리베로로서 독일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노이어가 쏘아올린 큰 공

 

노이어의 등장 이후로는 이젠 빅 클럽들은 더 이상 선방 능력만을 보지 않는다. 선방 능력 못지않게 빌드업 능력을 계산해서 선수 영입을 하며 중소 클럽들도 빌드업 능력을 계산 범위에 둔다.

노이어의 등장으로 인해 골키퍼의 기준이 높아졌으며 이는 야신의 등장으로 골키퍼의 위상이 필드 플레이어만큼 격상했던 1차 혁명에 이은 2차 혁명의 완성이었다.

이 혁명을 노이어가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멀리 봤던 선배들과 명장들이 이어온 계보를 노이어가 완성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 혁명을 완성시킨 건 엄연히 마누엘 노이어이며 노이어의 이러한 플레이가 팀에게 큰 성공을 선물했기에 다른 팀들도 이 패러다임을 따랐다고 생각한다.

출처: xinhuanet.com

애초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유행하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패러다임을 채택한 팀이 얼마나 많이 이기느냐이다. 독창적이어도 많이 이기지 못하면 다른 빅클럽들은 그를 벤치마킹하지 않는다.

마누엘 노이어가 소속된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국가대표팀은 굉장히 많이 이기며 그 중심에 노이어의 비중이 컸다고 판단했기에 다른 팀에서 벤치마킹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노이어를 보고 자란 기대주들은 노이어를 본보기로 훈련할 것이며 미래에는 선방 능력만을 잘하는 골키퍼가 더 귀한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드에서 10 대 11로 싸우는 것은 굉장히 불리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미래의 골키퍼는 이제는 손과 발을 다 써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포지션으로 변하고 있다. 마치 80년대의 리베로처럼 말이다.

동네 아저씨의 축구 썰 - 박수용의 토르난테 관리자
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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