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20위~1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골키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20위~11위

토르난테 2023. 12. 27. 16:50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20위 페트르 체흐

 


생년월일: 1982년 5월 20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첼시 FC


200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큰 키에서 나오는 긴 팔다리와 빼어난 운동신경과 대담한 정신력까지 겸비한 완벽한 골키퍼로 뛰어난 반사신경을 앞세우는 선방은 물론 큰 키를 활용한 공중볼 처리에도 능숙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첼시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리그 4회 우승을 기록했으며 특히 2004-05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의 파상 공세를 막고 첼시의 기적적인 우승에 공헌한 체흐는 첼시에서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와 프리미어리그 골든 글러브 4회 수상을 이뤄냈고 아스날에서의 기록까지 더해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긴 체흐는 2006 독일 월드컵과 네 번의 유럽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는데 유로 2004와 유로 2012에서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19위 이보 빅토르

 


생년월일: 1942년 5월 21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적인 골키퍼 중 하나로 엄청난 반사신경과 우수한 수비조율을 겸비했으며 특히 일대일 방어에 강점을 보였다. 

두클라 프라하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였던 빅토르는 팀의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3회 우승에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빅토르 개인도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에 5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당대 체코슬로바키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과 유로 1976에 참가했다. 특히 유로 1976에서는 발군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결승에서 서독의 제프 마이어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그해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3위에 올랐다.

 


18위 블라디미르 베아라

 


생년월일: 1928년 8월 26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하이두크 스플리트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유연한 몸과 강력한 펀칭을 겸해 철주먹의 발레리나라 불렸는데 그 기량이 어찌나 뛰어났던지 야신이 1963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는 내가 아니라 블라디미르 베아라다."라고 말했고 본인도 스스로 야구공정도의 작은 공을 막는 훈련을 했기에 축구공을 잡는 것은 무지 쉬웠다고 회고했다.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1950 시즌에는 무패 우승을 달성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도 구단에 5년간 머물면서 리그 4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6-57 시즌에는 구단의 유러피언 컵 준결승 진출을 이끌어냈으며 1957-58 시즌 8강전에서는 버스비가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명승부를 펼쳤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한 베아라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모두 8강에 올랐으며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했다. 그리고 하이버리에서는 잉글랜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무승부에 기여하며 조국 유고슬라비아를 잉글랜드 원정에서 지지 않았던 국가로 역사에 남는데 큰 공을 세웠다.

 


17위 프란티섹 플라니츠카

 


생년월일: 1904년 6월 2일
국적: 체코슬로바키아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슬라비아 프라하

슬라비아 프라하의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체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172cm의 단신이었지만 뛰어난 반사신경과 경탄스러운 유연성으로 이를 커버했다.

선수 생활 전체를 슬라비아 프라하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플라니츠카는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8회 우승 및 보헤미안 컵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8년에는 미트로파 컵에서 우승하며 슬라비아 프라하를 중유럽 최고의 구단으로 올렸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으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팀은 8강에 머물렀음에도 플라니츠카 개인은 대회 최우수 골키퍼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플라니츠카는 베를린브리츠가 선정한 1930년대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16위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생년월일: 1965년 7월 27일
국적: 파라과이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벨레스 사르스필드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특히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했는데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전담했으며 클럽 통산 59골과 대표팀 통산 8골, 프로 통산 67골을 기록하며 호제리우 세니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물론 득점력에 가려졌을 뿐 선방 능력도 당대 골키퍼 중 단연 으뜸이었다.

벨레스 사르스필드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모두 16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6강에서도 연장 혈투 끝에 골든 골로 아쉽게 패했다.

칠라베르트는 IFFHS 월드 베스트 골키퍼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96년에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선수 및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99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골키퍼 6위에 오르기도 했다.



15위 그로시치 줄러

 


생년월일: 1926년 2월 4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84년, 프랑스 풋볼지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골키퍼 3위에 오른 선수이자 축구 역사상 최초의 스위퍼 키퍼 중 한 명으로 골키퍼의 기본인 선방에서는 당연하게도 훌륭했으며 우수한 발밑과 정확한 골킥을 바탕으로 매직 마자르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기도 했다.

푸스카스, 코츠시스, 보직 등과 함께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매직 마자르 군단의 황금기를 이끈 그로시치는 매직 마자르 군단의 골문을 지키며 발칸 컵과 1952 헬싱키 올림픽, 중유럽컵에서 모두 우승했고 1953년에는 세기의 매치라 불리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홈과 원정 모두 승리를 기록했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에 공헌하며 ESPN이 선정한 대회 올스타팀에 들었고 이후에도 두 번의 월드컵에 더 참가한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도 대표팀 동료 푸스카스, 코츠시스, 보직 등과 함께 활약하면서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그로시치 개인도 1949년과 1950년에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4위 피터 쉴튼

 


생년월일: 1949년 9월 18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노팅엄 포레스트

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완벽한 선방과 뛰어난 카리스마로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능력 역시 뛰어났으며 공식전에만 1390경기에 출전하며 프로 축구 종목 개인 통산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롱런했다.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쉴턴은 노팅엄 포레스트에서는 구단의 유일한 1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노팅엄 포레스트를 포함한 다섯 개 구단에서 정규리그 100경기 이상 출전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레이 클레멘스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PFA 올해의 팀에 10회 선정되는 괴력을 발휘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5회 선정되어 198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올랐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쉴턴은 1980을 시작으로 세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유로에 나왔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 마라도나의 신의 손에 당하는 비극을 겪었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삼사자 군단을 준결승에 올렸으며  바르테즈와 함께 FIFA 월드컵 역대 최다 클린시트 기록 공동 보유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상술한 활약들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3위 제프 마이어

 


생년월일: 1944년 2월 28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세기 독일 최고의 골키퍼이자 바이에른 뮌헨 통산 출전 1위에 랭크된 마이어는 안칭의 고양이라는 별명답게 날렵한 반사신경과 유연성을 자랑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원 클럽 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다 출전자로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13회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세 번 수상했고 특히 1975년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 과정에서 크게 기여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UEFA 유로 1972 우승, 1974 서독 월드컵 우승, 그리고 유로 1976 준우승을 달성하며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마이어 본인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12위 리카르도 사모라

 


생년월일: 1901년 1월 2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RCD 에스파뇰

야신 등장 이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의 대명사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세간으로부터 "크고 대담하지만 조용하다. 전설적인 기술과 용감함도 겸비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속팀에서는 에스파뇰과 바르셀로나와 같은 카탈루냐 연고 클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개인 통산 카탈루냐 주립리그 5회 우승 및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을 기록했다. 그러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1931-32 시즌 라리가 무패 우승을 이끌어낸 것을 포함해 라리가 2회 우승 및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추가해 개인 통산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기록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는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결승에 진출한 콤비와 플라니츠카를 제치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은퇴 이후인 1954년에는 템포지가 선정한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사후에 베를린브리치는 사모라를 1920년대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했다.



11위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생년월일: 1945년 2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레프 야신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에도 멀리 튕겨내는 펀칭력과 괴물 같은 반사신경과 탄력적인 점프, 그리고 1대 1 상황에서의 침착한 전진 수비와 볼 컨트롤 능력까지 우수했던 완성형 골키퍼였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66 시즌에는 비록 자국 리그 우승컵을 나시오날에게 내줬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제패하며 남미와 세계 무대를 평정했고 1968 시즌에는 리그 18경기에서 단 5실점만을 기록했음은 물론 987분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틀레티쿠 미네이루로 이적해 브라질 무대에 도전장을 냈는데 1971 시즌에는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스페인 무대와 콜롬비아 무대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훌륭한 활약은 이어졌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으며 8강에 진출했으나 오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독전에서 대패했다. 이후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팀을 4강에 올렸으며 마주르키에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마수르키에비치는 1969년에 아르헨티나의 스포츠 언론지 엘 그라피코로부터 1960년대 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1971년 최초의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7위에 랭크되었고 은퇴한 뒤인 1984년에는 프랑스 풋볼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6위에 랭크되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30위~2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