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40위~3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골키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40위~31위

토르난테 2023. 12. 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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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40위 로니 헬스트룀

 


생년월일: 1949년 2월 21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70년대 정상급 골키퍼이자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으며 안정적인 수비 조율 능력과 뛰어난 선방 능력을 바탕으로 당대 유럽 정상급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전성기를 누린 헬스트룀은 1975-76 시즌과 1980-81 시즌에는 붉은 악마 군단의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팀을 리그 4위 안에 들며 팀 성적을 상위권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고 헬스트룀 개인도 1977-78 시즌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팀원들 다수가 부진했음에도 군계일학의 활약을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오직 리그에서의 활약으로만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6위에 올랐다.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313분 무실점 행진을 달성하며 팀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에 공을 세웠으며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격인 스웨덴 굴드볼렌을 2회 수상했음은 물론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9위 예우헨 루다코프

 


생년월일: 1942년 1월 2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레프 야신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반사 신경과 긴 팔다리를 앞세운 선방 능력과 큰 키를 활용한 공중볼 처리에 능했다.

디나모 키이우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루다코프는 키이우의 골문을 지키며  소련 탑 리그 7회 우승과 소비에트 컵 3회 우승, 그리고 1974-75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과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루다코프 개인도 소련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 3회 선정과 1971년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와 소련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소련 대표팀에서도 야신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치며 유로 1972에 선발로 나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1972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8위에 랭크되었다.

 


38위 프랭크 스위프트

 


생년월일: 1913년 12월 2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194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큰 키와 엄청나게 큰 손을 바탕으로 뛰어난 선방을 보여 프라이팬 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블루문 군단에서 1933-34 시즌 FA컵 우승과 1936-37 시즌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이뤄내며 맨체스터 시티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스위프트는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대표팀의 상승세에 기여했다.

스위프트는 은퇴한 뒤 저널리스트로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보냈으나 취재를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따라 나섰다가 뮌헨 비행기 참사에 휘말려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는데 그의 사후 그는 잉글랜드 풋볼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되었으며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7위 베르트 트라우트만

 


생년월일: 1923년 10월 22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나치 독일군 공수부대 출신으로 잉글랜드에서 포로로 갇힌 이후에 재사회화되며 석방되어 잉글랜드에 머물며 축구 선수가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특히 페널티킥 방어에 능했다.

1950년대 블루문 군단의 골문을 지키며 당대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성장한 트라우트만은 1955-56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FA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특히 결승전에서는 목뼈가 부러졌음에도 풀타임을 소화해 팀의 우승을 도왔고 이 공로로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맨체스터 시티 구단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되었으며 레프 야신에게까지 실력을 인정받은 베르트 트라우트만은 맨체스터 시티와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독일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전무한데 그를 소집하기 위해 디 만샤프트의 감독 헤어베어거와 만났지만 잉글랜드 무대에서 계속 뛰기 위해 디 만샤프트 소집을 포기했다.

 


36위 안드레아스 쾨프케

 


생년월일: 1962년 3월 12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FC 뉘른베르크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뛰어난 판단력과 괴물같은 반사신경을 앞세워 일대 일 방어에 강점을 보였는데 심지어는 1990년대 상반기에 주전으로 활약했던 보도 일그너보다도 낫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을 정도로 잘 막았다.

분데스리가의 뉘른베르크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트와 마르세유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쾨프케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으며 1993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디 만샤프트에서 쾨프케는 초년에는 후배 일그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지만 이후 1994년에 일그너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유로 1996 우승에 공헌하며 당해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는데 유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6년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 IFFHS 선정 월드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1996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랭크되었다.



35위 로케 마스폴리

 


생년월일: 1917년 10월 12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40년대와 50년대 페냐롤과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큰 키임에도 민첩하며 반사신경까지 겸비했으며 때때로 공격에 가담해 득점포까지 터트렸던 공격형 골키퍼였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난항을 겪고 리버풀 몬테비데오를 거쳐 페냐롤에 입단한 마스폴리는 팀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하며 1949 시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토르네오 콤펜텐시아와 토르네오 데 아너를 각각 7회 우승하는데 기여하며 페냐롤 소속으로 20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골키퍼였음에도 페냐롤 소속으로 무려 20골이나 득점했다.

1945년에는 우루과이 대표팀으로도 소집된 마스폴리는 라 셀레스테 군단 소속으로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고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결승 리그 브라질전 이전까진 실수가 많았지만 사실상 결승전인 브라질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에 일조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다음 대회인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34위 안도니 수비사레타

 


생년월일: 1961년 10월 23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80년대와 1990년대 스페인 최고의 골키퍼이자 바스크인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크루이프의 팀에서 뛴 골키퍼로서는 의외로 발밑은 평범했으나 매우 뛰어난 선방 능력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라리가 통산 최다 출전자에 오른 수비사레타는 빌바오에서 라리가 2연패와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크루이프의 드림팀 시절 바르셀로나의 골문을 지키며 라리가 4연패는 물론 1988-8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에 이어 1991-92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빅이어를 따냈고 개인적으로도 1986-87 시즌 사모라상을 타냈으며 1987년에는 돈 발롱 어워드에서 올해의 스페인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90-91 시즌에는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 리가 최우수 선수상을 타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수비사레타는 세 번의 유럽선수권대회와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아르마다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했다.



33위 하인리히 슈툴파우트

 


생년월일: 1896년 1월 1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4cm
주 소속팀: FC 뉘른베르크

1920년대 최고의 골키퍼인 사모라의 라이벌로 평가받았으며 세계 최초로 경기에 관여하는 스위퍼 키퍼의 역할을 성립했다는 설이 있는 골키퍼이며 오늘날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유사한 하프백 자리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을 정도로 발밑이 우수했다.

1920년대 뉘른베르크의 황금기를 이끌며 독일 챔피언쉽 5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특히 1918년부터 1922년까지 104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는데 크게 공헌했는데 480경기에서 47골만 실점하며 독일 축구 무대를 지배했다.

슈툴파우트는 뉘른베르크가 친선 경기에서 지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여겼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으며 뉘른베르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이 도시, 이 클럽에서 플레이하는 것 그리고 뉘른베르크에서 사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은 길이 남고 위대한 뉘른베르크는 절대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어록을 남기며 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32위 팻 제닝스

 


생년월일: 1945년 6월 12일
국적: 북아일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북런던의 왕이라 불렸던 골키퍼로 토트넘과 아스날에서 모두 대단한 활약을 펼쳐 양 팀이 합동 은퇴식을 치른 유일한 선수였는데 실제로 판단력이 뛰어나 자신이 볼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파악해 완벽한 각도에서 막아 반사신경을 거의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을 정도로 위치선정이 대단했고 강인한 정신력까지 겸비했다.

토트넘 핫스퍼에서는 1966-67 시즌에 FA컵을 우승했으며 이후 1971-72 시즌 UEFA컵과 두 번의 리그 컵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런 활약을 토대로 1972-73 시즌에는 골키퍼로서는 최초로 FW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으며 아스날에서도 리그 정상급 활약을 펼쳤으며 1978-79 시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북아일랜드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만 41세임에도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동갑내기인 베켄바우어가 이 대회에서 서독 대표팀 감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기록이었다.



31위 엔리코 알베르토시

 


생년월일: 1939년 11월 2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6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로 빠른 반응속도와 고무 같은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압도적인 선방 능력을 보여줬으며 수비 조율 능력도 뛰어나 일부 현지 팬들은 부폰이나 조프보다도 낫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프의 라이벌로 평가받는 알베르토시는 그 평가를 괜히 받는 게 아닐 정도로 여러 업적을 새웠는데 피오렌티나에서는 1960-61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과 1965-66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미트로파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9-70 시즌에는 칼리아리의 세리에 A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냈는데 알베르토시는 그 과정에서 30경기에서 11실점만 내준 엄청난 활약으로 구단의 유일한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으며 AC 밀란에서도 1976-7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78-7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아주리에서도 조프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는데 1962 칠레 월드컵때부터 소집되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나 북한에게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당했으며 유로 1968에서는 부상으로 조프에게 자리를 내줬는데 그래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주리를 결승에 진출시키며 명예회복을 하는 듯했으나 준결승전에서 서독에게 3실점, 결승전에서 브라질에게 4실점을 하며 우승에 실패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조프와의 경쟁에서 밀려 벤치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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