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50위~4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골키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50위~41위

토르난테 2023. 12. 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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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50위 한스 틸코프스키

 


생년월일: 1935년 7월 12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60년대 독일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안정적인 볼 캐칭 능력과 동물적인 반사신경, 그리고 강인하면서도 신중했기에 냉철한 판단력으로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했다.

오베리가 웨스트에 있는 베스트팔리아 헤르네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으며 분데스리가 창단 1년 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으며 이후 1964-65 시즌에 도르트문트의 포칼 우승을 이끌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다음 시즌인 1965-66 시즌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었는데 이는 독일 클럽 최초의 유럽대항전 우승이다.

헤어베어거 체제에서는 소속팀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주전으로 중요되지 않았는데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자신을 제치고 젊고 검증되지 않았던 볼프강 파리안이 중용되자 그토록 냉정했던 틸코프스키는 분노에 차 호텔 방 내부를 부쉈기에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지만 헬무트 쇤의 체제에서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렸다.



49위 루디 하이덴

 


생년월일: 1909년 3월 19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라싱 파리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이자 1930년대 초반을 풍미한 골키퍼로 기복 없는 선방 능력을 보여줬으며 빠르고 용맹해 상대 공격수에게 다소 호전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어서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잘생긴 외모와 훌륭한 팬 서비스로 다른 축구 선수들과 다르게 여성팬층이 매우 두터웠다고 전해진다.

오스트리아의 빈 AC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OFB컵 1회 우승 및 2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미트로파컵에서도 결승에 올랐음은 물론 분더 팀이라 불리던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1931-32 시즌 중유럽 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1933년에 라싱 파리로 이적하며 대표팀에서 뛰지 못하기도 했다. 물론 라싱 파리에서도 1935-36 시즌에  라싱 파리의 1부 리그와 쿠프 드 프랑스의 더블 우승을 이끌었다.

프랑스로 이적한 이유 때문에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음에도 1999년 IFFHS 선정 오스트리아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된 하이덴은 실제로 채프먼이 이끌던 아스날이 1930년에 그를 노렸으나 잉글랜드의 다른 구단들이 거세게 항의하여 이적이 취소된 일은 유명하다.

 


48위 카스틸류

 


생년월일: 1927년 11월 2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골키퍼로 탄력적인 점프와 적절한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안정적으로 막아냈으며 특히 결단력이 대단해 자신의 어느 한 손가락이 다섯 번째 부상을 당하자 아예 그 손가락을 절단해버리기도 했으며 그가 골문을 지킬 때면 유독 상대 공격수들이 골 포스트를 때리는 경우가 많아서 운 좋은 녀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며 우스갯소리로 카스틸류는 염력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플루미넨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로 699경기의 공식전에 출전해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과 토르네오 리우-상파울루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 소속으로도 무려 네 번의 월드컵에 나왔는데 조국에서 열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바르보사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으나 호사다마로 바르보사가 결승전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밀려나자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주전을 차지했으나 헝가리에게 밀려 8강에서 탈락했으며 이후 지우마르에 밀려 벤치에 앉았으나 백업 멤버로 두 번의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카스틸류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3번 출전해 모두 준우승을 거뒀다.

 


47위 안토니 라마예츠

 


생년월일: 1924년 7월 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50년대 스페인 정상급 골키퍼로 굉장히 유연해 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민첩하며 반응 속도가 빠르고 무엇보다 축구 지능이 높아 상황 판단을 잘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6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 그리고 라틴 컵과 인터시티 페어스 컵 각각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라리가 최소 실점자에게 수여하는 사모라상을 5회 수상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팀이 잉글랜드를 제치고 결승 리그에 진출해 4위에 오르는 공을 새우며 마라카냥의 고양이라 불렸다.

 


46위 네빌 사우스올

 


생년월일: 1958년 9월 16일
국적: 웨일스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에버튼 FC

198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를 대표하는 골키퍼 중 한 명이자 웨일스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날렵한 반사신경과 고무와도 같은 유연성을 겸비한 골키퍼다.

에버튼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두 번의 잉글랜드 풋볼 리그 우승과 1984-85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며 피터 쉴튼과 치열한 라이벌리를 구성했던 사우스올은 P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1984-85 시즌에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은퇴한 뒤에는 풋볼 리그 레전드 100인에도 선정되었다.

대표팀이 약체인 웨일스라 국제대회에서 보기 어려운 선수였던 데다가 헤이젤 참사로 인해 잉글랜드 풋볼 리그가 유럽 대항전 출전 정지를 당하지 않았으면 유러피언 컵에서도 활약이 기대되던 선수였기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 있다.



45위 루이스 아르코나다

 


생년월일: 1954년 6월 26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소시에다드

이케르 카시야스의 우상이자 1980년대 초반 라리가 최고의 골키퍼로 아르마다 군단의 주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과 일대일 상황에서의 우수한 방어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선수 생활을 레알 소시에다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으로 추리 우르딘 군단에서 라리가 2연패를 이끌어내며 사모라상을 세 시즌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2회 선정되어 1980년에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11위에 올랐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1982 스페인 월드컵과 유로 1984에 참가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아르마다 군단의 결승행을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아쉬운 모습도 보였다.



44위 호세 앙헬 이리바르

 


생년월일: 1943년 3월 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아틀레틱 빌바오

1960년대와 70년대 스페인을 대표하던 골키퍼로 커다란 손을 가져 포플러 나무라 불렸으며 동시대에 잘 나갔던 골키퍼 디노 조프와 비슷한 외모로 조프의 쌍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빌바오에서만 18년동안 활약하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이리바르는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과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70-71 시즌 홈에서 1018분 무실점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약관의 나이에 유로 1964에 주전으로 출전해 결승전에서 소련의 야신과 선방 대결을 펼치며 아르마다 군단의 우승을 이끌었으나 월드컵에서는 활약이 다소 아쉬웠다.



43위 레이 클레멘스

 


생년월일: 1948년 8월 5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70년대 후반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화려한 스타일보다는 실수 없는 안정감이 돋보였으며 뛰어난 반사신경과 정확한 판단에서 나오는 전진수비는 물론 우수한 점프력을 통한 공중볼 세이브 능력도 보여줬다.

당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리버풀의 붉은 제국 시대에 골문을 지키며 리그 5회 우승, 유러피언 컵 3회 우승, 그리고 UEFA컵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한 뒤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1981-82 시즌 FA컵과 1983-84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낸 우승청부사였다.

클럽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피터 쉴튼과의 주전 경쟁을 펼쳤는데 클레멘스가 주전이던 시절에는 삼사자 군단이 다소 아쉬운 실적을 내며 결국 쉴턴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유로 1980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풋볼 리그와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의 활약이 너무나도 대단해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2위 클라우지우 타파레우

 


생년월일: 1966년 5월 8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날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작은 키 때문에 공중볼 처리에서는 약점을 보였지만 엄청난 반사신경과 안정적인 핸들링은 물론 발밑도 준수하고 스피드도 빨라 스루패스를 미리 걷어내는 드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했으며 페널티킥 선방에도 장기를 보였음은 물론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 강심장이다.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날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1988년 브라질 전국 리그 MVP를 수상한 타파레우는 유럽 무대에서도 파르마와 갈라타사라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파르마에서는 1992-9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을 우승했고 갈라타사라이에서는 1999-2000 시즌 UEFA컵에서 뱅거의 아스날을 무찌르고 우승했으며 2000년에 열린 UEFA 슈퍼컵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무찌르고 우승했다.

타파레우는 셀레상에서도 그 훌륭한 명성을 이어갔는데 1988년에 서울 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코파 아메리카 우승 2회와 1994 미국 월드컵 우승,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며 맹활약했다.



41위 미셸 프뢰돔

 


생년월일: 1959년 1월 24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포지션: 골키퍼

1990년대 붉은 악마라 불렸던 벨기에의 골문을 지켰던 골키퍼로 빠른 민첩성과 반사신경은 물론 일대 일 상황에서의 빠른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한 선방 능력으로 유명했다.

스탕다르 리에주와 메헬렌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두 구단에서 통산 3회의 주필러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양 구단에서 각각 한 번씩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도 벨기에 골든슈 2회, 벨기에 올해의 골키퍼에 4회 선정되었으며 1989년에는 컵 위너스컵 우승의 주역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대표팀에서는 자국 리그에서는 장마리 파프의 아성에 밀려 오랜 기간 벤치에 앉았다가 1980년대 후반에 주전 자리를 차지해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야신상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1994년 IFFHS 선정 월드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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