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20

리그의 전설들/이탈리아 세리에 A

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20

토르난테 2023. 10. 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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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대상자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한 공격형 미드필더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 기록일은 2023년 10월 9일 기준입니다.
* 있을 것 같은데 없는 선수들은 중앙 미드필더 또는 처진 공격수 항목에 있습니다.
* 공격형 미드필더는 특히 경기의 영향력을 많이 봤습니다. 그게 비슷하다면 롱런한쪽이 당연하게 유리합니다.

 


20위 주세페 지안니니

 

 

생년월일: 1964년 8월 20일
세리에 A 기록: 336경기 49골 14도움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S 로마

 

토티보다 먼저 로마의 왕자라 불렸던 1980년대 후반 정상급의 트레콰르티스타로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부드러운 패싱력과 유려한 오프 더 볼, 그리고 신속정확한 판단력에 근거한 원터치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AS 로마 통산 출장 5위와 통산 득점 10위에 랭크된 지안니니는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과, 1982-83 시즌 40년 만에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토티조차 경험하지 못한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며 구단의 최전성기의 공격 진영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또 다른 왕자 토티에게 밀려나긴 했지만 최전성기에 로마의 에이스로 헌신한 지안니니는 상술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2013년에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위 리암 브래디

 

 

생년월일: 1956년 2월 13일
세리에 A 기록: 189경기 2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은 물론 상대 수비라인을 붕괴시키는 전진 드리블과 우수한 데드볼 능력도 겸비했다.

아스날에서 이름을 날렸고 이탈리아 무대에도 도전하며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기여했으며 삼프도리아와 인테르 밀란에서도 괜찮은 활약상을 보여줬다.

 

 

18위 미카엘 라우드루프

 

 

생년월일: 1964년 6월 15일
세리에 A 기록: 161경기 2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팬텀 드리블러'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특히 상대 수비의 예측을 비웃는 창의적인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고 팬텀 드리블을 구사해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팬텀 드리블을 유행시켰다.

유로 1984 예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한 라우드루프는 플라티니에 밀려나며 2년간 라치오 임대를 떠났는데 라치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1985년 덴마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플라티니가 전성기에서 내려온 뒤에는 유벤투스에 합류해서 1985-86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17위 지네딘 지단

 


생년월일: 1972년 6월 23일
세리에 A 기록: 151경기 24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마에스트로 지주'

 

1990년대 후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호나우두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신속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장을 지배하는 마에스트로였는데 신체 능력도 우수해 탈압박에도 능했으며 특히 큰 경기에서의 클러치 능력이 빛나던 선수였다.

보르도에서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등극하며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며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2연패와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라는 성적을 이뤄낸 뒤 2001년 당시 역대 최고액 이적료를 안겨주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2회 수상했다.

그러나 지단의 순위가 낮은 이유는 지단의 세리에 A 시절 평점은 지단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굉장히 좋지 못했고 지단 개인도 국가대표팀에서와는 다르게 클럽에서는 다소 기복이 있었다.

 

16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생년월일: 1975년 3월 9일
세리에 A 기록: 189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SS 라치오

 

'작은 마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이름을 날렸던 플레이메이커로 중장거리 패스에 능해 먼 지역에서도 상대 수비를 단번에 허무는 킬패스를 날렸으며 우수한 중거리 슈팅은 물론 탄탄한 체격으로 압박을 무력화시키는 능력에서도 뛰어났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론은 삼프도리아에서 세리에 A 커리어를 시작했고 파르마에서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2관왕을 이뤄냈으며 라치오에서는 개인과 팀의 전성기를 이뤄내며 1999년 UEFA 슈퍼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내며 1999-2000 ESM 올해의 팀에 들었는데 라치오가 재정난에 허덕이자 베론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시켰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등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는 부진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인테르로 임대된 베론은 2005-06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연패를 이뤄냈으나 당시 팀의 주축이던 아드리아누와 사이가 좋지 못해 완전이적에는 실패했다.

 

15위 헬무트 할러

 


생년월일: 1939년 7월 21일
세리에 A 기록: 295경기 68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60년대 독일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었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처진 공격수로 부드러운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독일 무대에서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활약했으며 이탈리아 세리에 A로 이적한 뒤에는 볼로냐에서 1963-6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2연패와 1972-73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14위 후이 코스타

 

 

생년월일: 1972년 3월 29일
세리에 A 기록: 339경기 42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루이스 피구와 함께 포르투갈의 골든 제너레이션 시대를 열었던 트레콰르티스타로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스로 팀의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로 천재적인 플레이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피오렌티나에서 7년간 활약하며 스트라이커 바티스투타와 호흡을 맞춰 1995-9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96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99 시즌에는 리그 3위와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이뤄냈고 바티스투타가 떠난 2000-01 시즌에도 팀에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거대한 이적료를 선물하고 밀란으로 떠났다.

AC 밀란에서도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나 노쇠화를 피하진 못해 2003-04 시즌을 기점으로 카카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13위 지안카를로 안토뇨니

 


생년월일: 1954년 4월 1일
세리에 A 기록: 341경기 6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Mr. 피오렌티나'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리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드넓은 시야, 그리고 정확한 패스를 모두 겸비했으며 트레콰르티스타 자리에 위치하다가도 포백 앞으로 내려가서 빌드업을 주도하기도 하는 바비 찰튼 스타일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피오렌티나에서만 무려 15년간 활약한 안토뇨니는 1974-75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했으며 1981-82 시즌에는 승점 1점 차이로 아쉽게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으며 안토뇨니 개인도 1980년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과 세계 최우수 선수 5위에 올랐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4회 선정되어 1982년에는 최고 성적인 11위에 랭크되었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동시에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된 안토뇨니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2년에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6년에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선정한 구단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2위 지오반니 페라리

 


생년월일: 1907년 12월 6일
세리에 A 기록: 315경기 11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메찰라의 시조'

 

193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빛낸 인사이드 포워드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중앙과 측면을 오가 메짤라라는 단어의 시조조가 되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창조적인 패싱력과 직접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는 능력까지 겸비했다.

유벤투스와 인테르, 볼로냐에서 활약했으며 유벤투스 시절 세리에 A 5연패를 포함해 무려 여덟 번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오리운디 출신인 레나토 체사리니와 조합을 이뤘으며 인테르에서는 대표팀에서도 영혼의 듀오로 이름을 날린 주세페 메아차와 인사이드 포워드 조합을 이뤘다.

 

11위 후안 스키아피노

 

 

생년월일: 1925년 7월 28일
세리에 A 기록: 188경기 5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우루과이 마법사'

 

우루과이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195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력을 보유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불리한 경기를 여러 번 뒤집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에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며 이탈리아의 AC 밀란에서 노르달, 리드홀름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리드홀름과 함께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56년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10위 발렌티노 마촐라

 


생년월일: 1919년 1월 26일
세리에 A 기록: 196경기 9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5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토리노 FC

'토리노 전설의 주인공'

 

아들 산드로 마촐라, 밀란의 전설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우수한 시야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경기를 조립하고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팀 동료 마리오 리가몬티로부터 "마촐라는 팀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남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경기 영향력이 컸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1940년대 토리노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세리에 A 5연패와 1942-43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며 그란데 토리노라 불렸고 토리노는 당대 유럽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았으며 마촐라는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과 1946-47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하며 당대 유럽 최고의 축구선수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수페르가의 비극이라는 비행기 사고로 팀원 전원이 사망하며 이탈리아 축구는 큰 타격을 입었고 발렌티노 마촐라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마감했다.

 

 

9위 카카

 

 

생년월일: 1982년 4월 22일
세리에 A 기록: 223경기 77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3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치달의 제왕'

 

2000년대 하반기 브라질을 대표했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축구 선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킬패스는 물론 일명 치고 달리기를 활용해 역습 상황에서 상대 수비 라인을 순식간에 붕괴시키고 1선으로 침투해 득점하는 데 굉장히 능했으며 그의 스피드가 어찌나 빨랐던지 인테르의 전설적인 수비수 왈테르 사무엘은 카카의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따라가려다가 무릎이 돌아가버려 시즌 아웃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상 파울루에서 영입된 이후 후이 코스타와 히바우두 같은 거물들과의 주전 경쟁을 이기고 로쏘네리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에이스로 활약하며 2003-04 시즌에는 10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6-07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7-08 시즌과 2008-09 시즌에는 연속으로 리그 15골을 돌파했으며 결국 밀란에게 당대 최고 이적료 2위를 안겨주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카카는 밀란에서 수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2004-05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수상,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3회 선정 및 2004년에는 세리에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2007년에는 각종 개인상을 휩쓸었는데 20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세리에 올해의 선수,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 받았으며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하며 당해 세계 최고의 선수로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8위 닐스 리드홀름

 

 

생년월일: 1922년 10월 8일
세리에 A 기록: 359경기 81골
신체조건: 키 192cm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패스의 신'

 

스웨덴의 금메달 신화를 이뤄냈던 그레노리 삼총사의 일원이자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로쏘네리 군단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1958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차지한 리드홀름은 AC 밀란 시절에는 본 포지션인 인사이드 포워드와 공격형 미드필더에서도 우수했지만 라이트 하프 자리에서도 1958-59 시즌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세리에 A 랭킹에서 라이트 하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7위 뤼트 굴리트

 


생년월일: 1962년 9월 1일
세리에 A 기록: 178경기 62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육각형 축구선수의 교과서'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자 피파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실제로도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축구 지능이 모두 뛰어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볼 수 있었다.

국가대표팀 동료 레이카르트, 반 바스텐과 함께 오렌지 삼총사를 구성해 활약하며 사키 체제의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클럽 축구 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을 만들어냈고 삼프도리아 임대 시절에도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이 만능맨은 로쏘네리의 유니폼을 입는 동안 여러 영예를 누렸는데 옹즈 드 옹즈 3회 선정은 물론 1987년에는 발롱도르와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수상했으며 1988년에는 발롱도르 2위를 수상했고 1989년에는 다시 한번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를 수상했다.

 

6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생년월일: 1935년 5월 2일
세리에 A 기록: 319경기 5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설계자'

 

19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한 뒤 은사 엘레니오 에레라를 따라 인테르로 이적한 뒤 전성기를 맞이해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인테르에서 활약하는 동안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년 연속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포디움에만 세 번 들어 1961년 2위, 1964년 2위, 그리고 1965년 3위에 올랐다.

 

5위 산드로 마촐라

 


생년월일: 1942년 11월 8일
세리에 A 기록: 417경기 116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잉글랜드의 찰튼에 대한 이탈리아의 대답'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와 라이벌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훌륭한 슈팅 스킬과 창의적인 패싱력, 탄탄한 볼 컨트롤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필수적인 덕목은 물론 기동력도 탁월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선수 생활을 오직 네라주리 군단에서만 보낸 산드로 마촐라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뤄냈다.

마촐라는 개인적으로도 1963-6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고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네 번 들었으며 197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다.

 

4위 지안니 리베라

 


생년월일: 1943년 8월 18일
세리에 A 기록: 501경기 12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골든 보이'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트레콰르티스타로 신기에 가까운 볼 컨트롤을 가진 것은 물론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창의적인 패싱력과 정교한 드리블로 유명했으며 1972-73 시즌에는 득점왕에 오른 적도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훌륭했다.

AC 밀란에서 19년간 활약하며 스쿠테토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를 이뤄냈으며 유럽에서도 유러피언 컵 2회 우승과 컵 위너스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지안니 리베라는 로쏘네리 군단에서 구단 역대 최다 출전 4위와 역대 최다 득점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에서 총 세 번의 득점왕을 이뤄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아홉 번 선정되었으며 빅이어를 들어낸 1963년에는 레프 야신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 2위를 수상했으며 1969년에는 발롱도르 1위를 차지해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3위 프란체스코 토티

 


생년월일: 1976년 9월 27일
세리에 A 기록: 619경기 250골 145도움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S 로마

'로마제국의 황제'

 

두 말할 필요 없는 AS 로마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최강의 선수로 우수한 원터치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능력과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피지컬과 볼 컨트롤을 겸비한 탈압박 능력과 득점력까지 공격형 미드필더에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2007-08 시즌에는 펄스 나인으로도 활약하기도 했다.

자타공인 AS 로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최강의 선수인 토티는 AS 로마 통산 최다 출전자와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었으며 AS 로마에서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2000-01 시즌 7공주라 불렸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나 유벤투스와 인테르의 기세에 밀려 리그 준우승만 9회 기록했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준우승을 7회 기록하며 무려 16회의 준우승을 기록한 비운의 사나이기도 하다.

비록 준우승이 많지만 토티라는 선수는 굉장히 위대해서 개인적으로는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5회 수상, ESM 올해의 팀 3회 선정,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세리에 A 도움왕, 구에린 도르 2회 수상을 이뤄냈으며 2006-07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 부츠를 차지했으며 2001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랭크되었으며 현역 은퇴 직후인 2017년에는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위 미셸 플라티니

 


생년월일: 1955년 6월 21일
세리에 A 기록: 147경기 68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나폴레옹'

 

1980년대 상반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을 기록하며 남미의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 불렸다.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일품이었으며 경기가 안 풀릴 때에는 3선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전방에서 동료들과 연계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롱 패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에서도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셍테티엔에서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등극하며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며 비안코네리에서 플라티니는 세리에 A 2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그리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을 우승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며 유벤투스 역사상 최초의 빅 이어 달성에 큰 공을 세우며 단 5년만 활약하고도 유벤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플라티니는 유벤투스에서 1983-84 시즌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을 차지하며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당대 최강의 선수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1위 디에고 마라도나

 


생년월일: 1960년 10월 30일
세리에 A 기록: 188경기 81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SSC 나폴리

'마왕'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으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리더십마저 겸비해 동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구단 보드진과 협상하기도 했다.

나폴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내던 마라도나에 전 예산을 투입했으며 마라도나는 이에 보답해 나폴리의 유니폼을 입고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북부의 전통 강호를 제치고 세리에 A 2회 우승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 더블을 달성했으며 1988-89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으며 패배에 익숙하던 나폴리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으며 엄청난 스타성으로 자신의 유니폼을 판매해 번 돈으로 자신의 이적료를 채워내는 위엄을 달성했다.

나폴리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된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1985 세리에 평점왕에게 주는 상인 구에린 도르를 탔으며 1987-8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과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석권했으며 나폴리의 3대 명물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그의 등번호 10번은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처리했고 그가 사망하자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기장 이름을 산 파울로에서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꿨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라파엘 산소네

 


생년월일: 1910년 9월 20일
세리에 A 기록: 282경기 39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30년대 후반 볼로냐의 전성기를 이끈 우루과이 태생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인사이드 라이트에 위치하며 득점을 노리기보다는 빠르고도 정확한 패스와 날카로운 드리블, 그리고 아웃사이드 라이트인 비아바티와의 유려한 연계 플레이로 상대 왼쪽을 위협했던 선수였다.

우루과이의 페냐롤에서 데뷔했으나 데뷔한 지 1년도 안되어 볼로냐가 영입했으며 로쏘블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동안 당대 중유럽의 챔피언스리그였던 미트로파컵 2회 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동향의 안드레올로, 페둘로와 함께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유벤투스에게 옮겨간 이탈리아의 패권을 다시 볼로냐로 가져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에지오 로이크

 

 

생년월일: 1919년 9월 26일
세리에 A 기록: 235경기 6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토리노 FC

그란데 토리노 시대를 이끌었던 미드필더로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을 모두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으며 양발 모두를 활용한 강력한 슈팅과 우수한 볼 컨트롤과 드넓은 시야를 활용한 우수한 볼 배급 능력은 물론 근육질의 몸을 활용한 몸싸움과 수비력을 겸비했다.

토리노에서 발렌티노 마촐라와 조합을 이뤄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으며 1942-43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석권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내며 승승장구했으며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수페르가의 비행기 사고로 인해 향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며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했다.

 

 

에지스토 판돌피니

 


생년월일: 1926년 2월 17일
세리에 A 기록: 316경기 7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50년대 이탈리아 무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였던 판돌피니는 우수한 패싱력을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빠른 가속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해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공이 있는 곳엔 항상 그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소화할 수 있었으며 데드볼 상황에도 능했다.

AS 로마, 피오렌티나.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1944-45 시즌에는 피오렌티나의 전시 임시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전후에도 닐스 리드홀름, 군나르 그렌에 버금가는 플레이메이커였다.

 

 

주세페 도세나

 


생년월일: 1958년 5월 2일
세리에 A 기록: 342경기 36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플레이메이커로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주는 원터치 패스와 세련된 볼 컨트롤은 물론 적절한 전진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허문 뒤 중거리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도 능했으며 중앙과 측면을 모두 막힘없이 소화했다.

토리노의 유스 출신으로 1976-77 시즌 처음 데뷔했을 때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되었지만 여러 팀을 거치며 성장한 뒤 1981-82 시즌에 다시 돌아와 활약하며 1981-8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과 1984-85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내며 리그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명성을 떨쳤다.

토리노에서 전성기를 보내다 삼프도리아에 입단한 도세나는 라 삼프, 엘 도리아의 전성기를 이끌며 1988-8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1990-9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세 시즌 머무는 동안 무관으로 시즌을 보낸 적이 없었을 정도로 활약했으며 반대로 그를 보낸 토리노는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강등당했을 정도로 경기장 내외에서 영향력이 컸다.

 

 

안토니오 디 젠나로

 

 

생년월일: 1958년 10월 5일
세리에 A 기록: 249경기 25골
신체조건:  177cm / 몸무게 7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엘라스 베로나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하며 현대적인 축구 선수라 불렸던 디 젠나로는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을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켰으며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체력은 물론 뛰어난 수비 기술과 빠른 패싱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선수였기에 본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와 레지스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경기장의 다양한 상황에 유려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만능 미드필더였다.

피오렌티나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엘라스 베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팀의 1981-82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을 이뤄냈고 승격한 지 3년 만인 1984-85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아주리 군단에도 소집되어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즈보니미르 보반

 


생년월일: 1968년 10월 8일
세리에 A 기록: 195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를 수놓은 유럽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우수한 템포 조절과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적절한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능했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보반은 밀란제너레이션 하반기를 빛내며 세리에 A 4회 우승 및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보반 개인도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토마스 브롤린

 


생년월일: 1969년 11월 29일
세리에 A 기록: 144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파르마

 

전성기는 다소 짧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스웨덴의 마라도나라 불렸던 선수로 별명에 맞는 뛰어난 센스와 우수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쥐락펴락했다.

스웨덴에서 당대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1990-91 시즌 승격팀 파르마로 이적한 브롤린은 파르마의 에이스이자 플레이메이커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단숨에 리그 6위에 올리며 UEFA컵에 진출시켰으며 1991-92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2-9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에서는 로열 앤트워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UEFA 슈퍼컵에서도 밀란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4-95 시즌 이후로 부진에 빠졌으며 UEFA컵 결승에서도 팀의 우승을 벤치에서 지켜봤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리즈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나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 기간 동안 임대온 파르마에서도 과거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알바로 레코바

 


생년월일: 1976년 3월 17일
세리에 A 기록: 216경기 64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한때나마 호나우두와 지단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연봉 수령자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오른발을 거의 못 썼으며 낮은 수준의 체력과 압박에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화려한 드리블 스킬과 날카로운 왼발 패스, 그리고 강력한 왼발 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데드볼 상황에서 그의 왼발은 빛났다.

남아메리카의 지단이라 불렸던 레코바는 자국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여 1997년 인터 밀란으로 이적해 호나우두, 비에리, 바조 등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1997-98 시즌 UEFA컵을 시작으로 세리에와 코파 이탈리아에서 각각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시모네 페로타

 


생년월일: 1977년 9월 17일
세리에 A 기록: 401경기 43골 26도움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S 로마

 

21세기 로마의 언성 히어로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측면과 중앙을 모두 막힘없이 소화했으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

키에보 베로나 시절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세리에 A 승격을 이끌었고 승격한 2001-02 시즌에는 전반기에 1위를 달리는 기염을 토했으며 최종 순위도 5위로 마치며 UEFA컵에 진출하는 이변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AS 로마로 이적한 뒤에는 팀의 살림꾼을 맡아 잘로로시 군단의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200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2006-07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지만 세리에 A 준우승만 4회를 기록하며 스쿠테토와는 인연이 없었음에도 팬들은 그의 활약을 높게 평가했다.

 

 

마렉 함식

 

 

생년월일: 1987년 7월 27일
세리에 A 기록: 409경기 100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SSC 나폴리

 

2010년대 나폴리 최고의 선수로 나폴리에서 맞은 전성기에는 트레콰르티스타에서 활약했던 선수로 왕성한 활동량과 양질의 패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나오는 1선 침투는 물론 우수한 패싱력을 겸비했으며 이런 다재다능함 덕분에 마짜리 체제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것과는 다르게 사리 체제에서는 레프트 메짤라의 위치에서 뛰었으며 안첼로티 체제에서는 레지스타로 활약했다.

나폴리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통산 득점 3위인 함시크는 파르테노페이의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세리에 A 준우승 3회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나에게 돈은 그저 머리에 왁스 바를 정도만 있으면 된다." 라는 명언을 남기며 나폴리에 대한 충성심으로 여러 빅클럽의 오퍼를 거절한 함식은 나폴리에서도 여러 개인 수상을 타냈는데 2008년 세리에 A 영 플레이어를 시작으로 세리에 A 올해의 팀 2회 선정과 도움왕 2회 수상, 그리고 2014-15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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