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5편- 바르샤 DNA의 시초가 되었던 친코 코파스의 축구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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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5편- 바르샤 DNA의 시초가 되었던 친코 코파스의 축구왕조

토르난테 2023. 8. 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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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3

『친코 코파스』 바르셀로나

(Cinco Copas Barcelona)

스위칭 플레이라는 바르셀로나 DNA를 처음으로 심었던 축구왕조

 


성적

라리가: 4회 우승 (1951–52, 1952–53, 1958–59, 1959–60)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6회 우승 (1950-51, 1951-52, 1952–53, 1956-57, 1958–59, 1962–63

코파 에바 두아르테: 3회 우승 (1948, 1952, 1953)

라틴 컵: 1회 우승 (1952)

인터시티 페어스컵: 2회 우승 (1955–58, 1958–60)

코파 마르티니&로시: 2회 우승 (1951-52, 1952-53)

 


소개

저승사자 군단이라 불렸던 레알 마드리드의 성공신화 이전부터 성공을 거뒀던 팀으로 중유럽에서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혼란으로 넘어온 라슬로 쿠발라와 페르디난트 다우치크 감독의 개혁으로 다뉴브 학파의 스위칭 플레이를 익히며 라리가 무대를 평정했다.

다우치크는 첫 시즌부터 1950-51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1-52 시즌에는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라틴컵을 포함해 다섯 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친코 코파스 바르셀로나라 불리는 시대를 이뤄냈고 이듬해에도 라리가, 코파 델 레이, 코파 에바 두아르테 3관왕을 이뤄내며 바르셀로나의 첫 전성기를 열었다.

다우치크가 떠난 뒤에 바르셀로나는 다우치크를 사령탑으로 임명한 빌바오와 디 스테파노, 레이몽 코파 등을 앞세운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에게 밀려나며 위기를 겪었으나 엘레니오 에레라의 부임으로 그들을 모두 꺾고 1958년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1958-59 시즌 라리가, 코파 델 레이 2관왕을 이뤄냈으며 이듬해에는 라리가와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 우승하며 2관왕을 이뤄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는 용병들이 많았는데 에레라는 이들을 로테이션을 돌리며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했으며 라리가에서는 남미 용병인 에바리스투나 에르메스 곤살레스, 그리고 라몬 알베르토 비야베르데 등 남미 선수들을 중용했고 유럽 무대와 컵 대회에서는 헝가리 망명자였던 졸탄 치보르와 산도르 코츠시슈를 중용하며 출전시간을 배분했고 이는 먼 훗날 비슷한 상황의 AC 밀란을 지휘하며 전관왕을 노렸던 카펠로 감독으로부터 로테이션이란 이름으로 재발굴되었다.

그러나 에레라 감독 마저도 암페타민을 넣은 차를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핵심 선수였던 라슬로 쿠발라, 그리고 보너스 지급 문제로 에레라가 회장의 이름을 팔아서 거짓말을 하자 자금난에 시달리던 회장과 불화가 생겼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패했다는 명분으로 경질되었다. 이후 라슬로 쿠발라가 노쇠화로 팀을 떠났으며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도 은사 엘레니오 에레라를 따라 인테르로 떠나면서 바르셀로나의 1차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주요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

요한 크루이프 등장 이전 FC 바르셀로나 최고의 감독으로 친코 코파스의 시대를 뒤로 하고 레알 마드리드에게 라리가의 패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바르셀로나는 라리가와 유럽의 패권 탈환을 위해 이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성공한 전력이 있는 엘레니오 에레라를 선임했다.

엘레니오 에레라는 1950년대 초반에 친코 코파스를 이끌었던 다우치크가 입혀놓은 다뉴브 학파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에 보여준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추가하며 1958년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1958-59 시즌 라리가, 코파 델 레이 2관왕을 이뤄냈으며 이듬해에는 라리가와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 우승하며 2관왕을 이뤄냈으며 두 시즌간 60경기에서 46승 5무 9패를 기록, 76.67%라는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FC 바르셀로나에서의 그의 감독생활은 순탄치 못했는데 보너스 지급 문제로 에레라가 회장의 이름을 팔아서 거짓말을 하자 자금난에 시달리던 회장과 불화가 생겼으며 경기 하루 전 팀원들과 티 타임을 가졌는데 그 차에서 암페타민이 검출되었는데 암페타민은 중추신경계를 흥분시키며, 기민성을 증가시키고, 말하는 능력과 전반적인 육체활동을 증가시키는 약물군으로 오늘날로 치면 금지 약물에 해당하는 약물이고 이를 알게 된 팀의 핵심 선수인 라슬로 쿠발라는 이에 반발했고 결국 에레라는 쿠발라를 배제하며 이사진에게 경고를 들었으며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패했다는 명분으로 경질되었다.


ACE Card

 

 

이름: 라슬로 쿠발라
출생년도: 1927년 06월 10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아웃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2kg


팬들이 선정한 20세기 바르셀로나 최고의 선수로 아이돌이라는 별명에 맞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플레이로 명성을 날렸는데 힐 패스나 드래그 백 후 패스 같은 고난도 기술도 서슴없이 구사했으며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능가하는 발재간 능력과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를 활용해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고 득점력도 준수했다.

헝가리 공산정부의 정책에 거부해 탈출한 쿠발라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1951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1951-52 시즌 친코 코파스를 포함해 라리가 4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포함해 총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비록 잦은 부상으로 꾸준하게 출전하진 못했지만 나올 때마다 푸스카스와 디 스테파노가 부럽지 않았을 정도로 퍼포먼스가 뛰어났다.

 

 

이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년도: 1935년 5월 2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1950년대 하반기와 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최전성기를 누린 인테르에서 뿐만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는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에 대항하여 라리가 2연패와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유럽대항전에서도 팀의 공격을 지휘하며 16강전 AC 밀란전 홈과 원정 도합 7-1 대승을 거두었으며 8강전에서는 잉글랜드의 강자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상대로 두 경기 도합 9-2 대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펼치며 1960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이름: 주안 세가라
출생년도: 1927년 11월 15일
포지션: 라이트 풀백, 레프트 풀백, 센터하프, 윙하프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1950년대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상징하던 라이트백으로 레프트백과 센터백,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도 막힘없이 소화했으며 지능적인 수비와 헌신적인 수비를 겸비한 바르셀로나 수비진의 리더였다. 

믿음직한 캡틴 세가라는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4회 우승과 인터시티 페어스 컵 2회 우승, 라틴 컵 1회 우승, 코파 델 레이 6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마르카지 평점 기준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 2회, 1959 발롱도르 20위에 들며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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