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1. 작성자의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2.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 법정스님의 소유님 사진, 없는 경우엔 작성자가 따로 제작합니다.
3. 1990년대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대표팀과 클럽팀의 관계는 여전히 수직적이라 대표팀 레귤러 선수들은 리그 기록에서 많은 피해를 봤습니다.
4. 하지만 리그 경기수가 80년대에 비해 많아졌기에 100경기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5. 성남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리그 3연패를 이뤄냈으나 기준이 2002년까지라 2002년까지의 성과만 이야기했습니다.
골키퍼

이름: 신의손
출생년도: 1960년 1월 12일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일화 천마 (現 성남 FC)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255경기 287실점
본명은 발레리 사리체프이며 타지키스탄 출신이며 K리그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이며 포항의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K리그 득점왕 이력까지 있었던 차상해의 말에 따르면 "느낌상 분명 '골이다' 싶어 세리머니를 펼치려는 순간 손을 뻗어 막아냈다. '이번에는 정말 들어갔다' 싶어 동료들에게 뛰어가려는 순간 발을 뻗어 막아냈다. 정말 밉더라"라고 했을 정도로 막기 힘든 슈팅마저도 막아냈다.
소련 탑 리그의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리그 정상급 골키퍼로 군림했으나 소련이 해체되는 혼란기에서 소련을 떠나 일화에 입단했으며 일화에서 1992년 리그컵 우승을 시작으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95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듬해에는 아시안 슈퍼컵과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모두 우승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일화에서만 K리그 베스트 일레븐 4회 선정되었다.
신의손의 압도적인 활약에 의해 K리그 구단 사이에서는 외국인 골키퍼를 기용하는 게 유행이 되어버리자 한국인 골키퍼 육상을 명분으로 외국인 골키퍼 기용을 금지하며 1998년 이후로 팀을 떠나야 했지만 2년 뒤에 귀화자격을 갖춰 대한민국으로 귀화해 활약하며 이름을 자신의 별명인 신의손으로 짓고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해 2000년 K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신의손은 안양 LG 치타스에서 2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개인 통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김현수
출생년도: 1973년 3월 13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257경기 20골 4도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K리그 정상급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포지션이 센터백임에도 퇴장을 한 차례도 당하지 않을 만큼 파울을 거의 범하지 않는 깔끔한 수비수였으며 정확한 예측력과 깔끔한 커버 능력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왼발 킥력을 활용해 프리킥과 페널티킥을 전담했는데 특히 커리어 내내 페널티킥은 단 한 번도 실축하지 않았을 정도로 훌륭한 페널티 키커였다.
부산 대우 로얄즈와 성남 일화에서 전성기를 보낸 김현수는 부산에서는 1997년 리그와 두 번의 리그컵인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국내무대 3관왕을 이뤄냈고 성남에서는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하며 리그 2연패 및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비록 대표팀에서는 선배 홍명보와 역할이 겹치며 대성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K리그의 부산 대우 로얄즈와 성남 일화에는 확실하게 족적을 남긴 거물이었다.
센터백

이름: 마시엘
출생년도: 1972년 3월 15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74경기 9골 3도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K리그 정상급 수비수 중 하나로 센터백 치고는 키가 작았지만 단단한 근육질이면서도 유연한 몸을 가졌는데 이로 인해 자신보다 큰 공격수를 상대로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음은 물론 공을 지능적으로 빼내는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음은 물론 브라질리언 특유의 발밑을 바탕으로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하다가 김태영 등 핵심 수비진의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 전력공백이 생긴 전남 드래곤즈가 1997 시즌 도중에 영입했는데 이때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전남의 K리그 준우승 및 FA컵 우승을 이끌며 반 시즌만 뛰었음에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이후에도 1997년을 포함해 4년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지만 2003년 큰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센터백

이름: 김태영
출생년도: 1970년 11월 8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207경기 5골 10도움
아파치라고 불렸던 거친 수비수로 한일 월드컵 당시 코뼈 부상으로 착용한 타이거 마스크로도 유명했다. 거친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현역 내내 퇴장 기록이 없을 정도로 지능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축구화에 일부러 쇠로 된 징을 박아, 경기장 입장할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쇳소리를 들려줘 겁을 주는 등 심리전에도 능했다. 양발을 모두 잘 썼고 발이 빨라 측면 수비수로도 뛰었다.
K리그 드래프트에 대한 반감으로 실업 리그에서 뛰었으나 고향인 전라남도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창단하자 창단 멤버로 활약했는데 전남의 원 클럽맨으로 커리어를 보내며 1997년에 FA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 그리고 아디다스 컵 준우승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으며 1999년에는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으며 2002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남 드래곤즈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김태영은 은퇴한 뒤인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홍명보
출생년도: 1969년 2월 12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스 (現 포항 스틸러스)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09경기 13골 8도움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대인 수비 능력은 부각되지 않았지만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두 스토퍼들을 커버하며 볼을 차단하고, 중앙에서 수비 라인을 리딩 하는 리베로로 활약했으며 뛰어난 판단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뛰어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앞세워 아시아의 베켄바우어라고 불렸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상무에서 뛰었다가 입단 첫해인 1992년에 포항에게 K리그 우승을 선물하고 자신은 리그 MVP를 석권했던 홍명보는 대표팀에 자주 소집되느라 리그 경기를 많이 소화할 수 없었음에도 해당 기간 동안 K리그 베스트에 4회 선정되었으며 1995년에는 AFC 선정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선정되었으나 2002 시즌이 끝난 뒤 포항의 동의 없이 LA 갤럭시와 접촉했으며 결국 팀을 떠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대단해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은퇴 이후 2004년에는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아시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 본 포지션은 리베로였지만 해당 기간 동안 리그에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었으며 포항에서도 시즌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된 적도 꽤 있었기에 홍명보를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선발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신태용
출생년도: 1970년 10월 11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309경기 76골 52도움
선수생활 대부분을 일화 천마에서만 보낸 천마의 왕으로 뛰어난 테크닉과 영리한 판단력을 활용한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플레이메이커로 전방에 볼 배급하는 능력도 뛰어났고,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득점력 또한 훌륭하였던 선수로 세트피스에도 굉장히 능했다.
일화에서의 업적은 K리그 역사상 최고로 평가받는데 두 번의 왕조 시절을 모두 주전으로 경험했으며 박종환 체제에서는 리그 3연패와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과 준우승 각 1회 경험했으며 차경복 체제에서도 해당 기간 동안 리그 2연패를 이뤄냈다.
당연하게도 일화 천마의 통산 최다 출전, 최다 득점, 최다 도움에 랭크된 신태용은 개인적으로도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선정에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회 연속으로 선정된 것을 포함해 해당 기간에만 7회 선정되었으며 1992년에는 신인상, 1996년에는 리그 득점왕, 1995년과 2001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고종수
출생년도: 1978년 10월 30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18경기 29골 32도움
1990년대 하반기 대한민국 축구계를 뒤흔들던 앙팡 테리블로 윤정환, 최문식과 함께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테크니션으로 활약했으며 번뜩이는 창의성과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는 교묘한 패스는 물론이고 특히 왼발 킥력이 대단해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통했다. 그리고 비슷한 스타일로 평가받는 최문식, 윤정환하고는 다르게 경합 능력도 나쁘진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6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창단 멤버로 합류했으며 1998년과 1999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1998년에는 리그 MVP와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고 1999년에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99년에는 리그와 두 개의 리그컵, 그리고 슈퍼컵을 우승하며 4관왕에 올랐으며 특히 아디다스컵 3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2000년과 2001년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라이트윙

이름: 서정원
출생년도: 1970년 12월 17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72경기 46골 15도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손꼽히는 스피드 스타로 100m를 11초 6에 끊는 엄청난 스피드를 지녔으며 지구력도 좋아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 가담도 적극적으로 했으며 양발 사용에 능해 왼발과 오른발로 모두 득점할 수 있었다.
LG 치타스에 입단해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는 리그앙의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해서 활약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는 안양 치타스의 지역 라이벌인 수원 삼성으로 복귀해 큰 논란을 빚었는데 수원 삼성 소속으로 K리그 우승 2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리그 베스트 일레븐 3회에 선정되었고, 2001 아시안 슈퍼컵 최우수 선수, 그리고 2002 FA컵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리그 정상급 퍼포먼스로 블루윙즈의 황금기를 이끈 서정원의 활약은 수원 팬들의 응원과 안양과 그 후신 구단인 FC서울 팬들의 증오를 동시에 받아 이 두 구단의 라이벌 의식이 더 불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레프트윙

이름: 하석주
출생년도: 1968년 2월 20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65경기 29골 15도움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왼쪽 자원으로 윙백은 물론 레프트 윙과 왼쪽 메짤라까지도 능숙하게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뛰어난 왼발 킥력을 활용한 크로스와 프리킥, 코너킥으로 공격 포인트를 양산하는데 능해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대우 로얄즈에 입단해 활약하며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96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K리그 정상급 왼쪽 자원으로 평가받았던 하석주는 특히 1997년에는 K리그 우승은 물론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을 모두 우승하는 전관왕의 영광을 누렸고 잠시 일본으로 건너가 세레소 오사카와 비셀 고베에서 활약하다가 포항으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 고정운도 고려했지만 고정운의 전성기 일부가 해당 기간에서 벗어난 탓에 하석주를 선정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라데
출생년도: 1970년 5월 21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즈 (現 포항 스틸러스)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30경기 52골 32도움
유고슬라비아계 후배인 샤샤, 데얀과 함께 K리그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기량을 보여준 용병으로 득점과 도움에 모두 능한 완성형 공격수로 1996년에는 11골 14도움으로 리그 최초로 득점과 도움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해당 기간동안 리그컵 우승 및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낸 라데는 개인 커리어는 더 대단해 1994년에는 리그 득점왕을, 1996년에는 리그 도움왕을 기록했으며 그 두 시즌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고 특히 황선홍과의 콤비 플레이는 당대 K리그 최고의 조합으로 평가받았고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여담으로 김치를 즐겨 먹었는데 이에 대해 다른 음식도 많은데 왜 굳이 먹냐는 질문에 "돈을 벌기위해 왔지만 그 나라에 대해 이해를 해야 제대로 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쉬운 식문화 적응부터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남다른 프로 의식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스트라이커

이름: 샤샤
출생년도: 1972년 11월 5일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232경기 96골 28도움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 K리그를 폭격한 장신 공격수로 190cm에 이르는 큰 키와 압도적인 완력에서 나오는 몸싸움 능력을 활용한 헤더가 특히 우수했던 타겟터였으며 평소에는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만 머물렀으나 클러치 능력이 대단했으나 스피드가 느려 히딩크 감독에게 "내가 너보다는 빨리 뛸 수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스피드는 느렸다.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K리그에 최초로 입단한 샤샤는 1997년 안정환, 마니치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1997년 리그와 두 번의 리그컵인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국내무대 3관왕을 이뤄냈고 수원 삼성에서도 입단 첫 해에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9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을 포함해 리그컵 2회 우승에 이어 슈퍼컵까지 제패하며 쿼트러블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득점왕을 수상했지만 그러나 부산과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기록한 결승골이 손에 맞고 들어간 골이라 크게 논란이 되었으며 이때문에 MVP급 활약을 보였음에도 MVP를 부산의 안정환에게 내주게 되었으며 2000년에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무대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황선홍이 입단하자 입지를 완전히 상실하며 K리그의 성남으로 돌아왔는데 성남 일화에서는 해당 기간동안 K리그 2연패를 이뤄냈는데 특히 김도훈과의 투톱 조합은 당대 K리그 최고의 공격조합으로 이름을 날렸다. K리그의 세 구단에서 모두 우승을 이뤄내며 우승 청부사로 명성을 떨쳤다.
감독

이름: 박종환
출생년도: 1943년 1월 28일
해당 기간 주 소속팀: 유공 코끼리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이끈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불 같은 성격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심판과 갈등을 자주 빚었으며 신태용, 이상윤, 박남열의 말에 따르면 선수들에게는 맨 마킹 위주의 수비를 지시해 자신의 마킹 대상을 놓치면 불호령을 냈으며 전반전에 지고 있으면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모두 걷어차 빠르게 물통부터 치웠다고 회고했다.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으로 활약하며 신인 위주의 신생팀을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지도하며 창단 4년 만인 1993년에 K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1995년까지 우승하며 K리그 3연패를 이뤄내며 K리그 역사상 첫 3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95년에는 한국 챔피언에 이어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고 1996년에는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올렌도 파이러츠를 2차전에서 5-0으로 대파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통합 챔피언 자리에 올랐으나 구단이 박종환 감독과 상의하지 않고 수비의 핵심 안익수를 포항으로 이적시키는 일이 일어나자 사임했다.
1993~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선외 명단
감독
차경복
김호
고재욱
GK
김병지
DF
공문배
안익수
김주성
김판근
최영일
이영상
신홍기
이민성
이영표
MF
고정운
박남열
유상철 (출전시간은 부족했지만 임팩트는 강력해서 선외명단에 기재)
김기동
윤정환
김진우
이을용
김남일
FW
윤상철
김현석
황선홍
이상윤
김도훈
안정환
데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