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1992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다양한 주제의 베스트 일레븐

1983~1992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2023. 7. 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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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작성자의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2.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 법정스님의 소유님 사진, 없는 경우엔 작성자가 따로 제작합니다.

3. 1980년대 대한민국은 전두환 정권 시절이고 이때는 대표팀 레귤러 멤버들은 K리그를 거르고 대표팀 합숙 훈련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4. 그렇기에 기준을 리그 50경기로 잡았습니다. 물론 이 기준치를 통과하지 못한 허정무 선수와 조광래 선수는 대단한 기량에도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골키퍼

 


이름: 최인영
출생년도: 1962년 3월 5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현대 호랑이 (現 울산 현대)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55경기 156실점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줬던 골키퍼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라 불렸다.

1984년 현대 호랑이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음에도 1988년과 1991년 준우승에 머물며 우승을 이뤄내지 못했으며 최인영 본인도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해당 기간 동안 가장 꾸준하게 잘했던 골키퍼였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공신력을 자랑하는 축구 기록 기관인 IFFHS에서는 최인영을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 3위로 선정했으며 동시에 20세기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선정했다.

 

센터백

 


이름: 정용환
출생년도: 1960년 2월 10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34경기 6골 4도움

홍명보 이전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던 선수로 꾸준하고 성실한 몸관리로 만든 신체능력이 특히 우수했는데 키가 178cm에 불과했으나 꾸준히 연구하며 성실하게 연습한 결과 키가 197cm에 달하는 외국인 선수와의 공중경합에서 밀리지 않는 경악스러운 점프력을 지녔으며 대한민구에서는 대인 방어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프로 생활 11년 동안 단 한차례의 레드카드와 자책골도 기록하지 않았던 안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K리그에서는 대우 로얄즈의 원 클럽맨으로 활약하며 해당 기간 동안 K리그 3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우승한 해인 1984년, 1987년, 1991년 모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특히 1988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91년에는 대회 MVP를 수상하는 등 프로팀에서도 대단한 족적을 남겼다.



센터백

 


이름: 박성화
출생년도: 1955년 5월 7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할렐루야 독수리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82경기 9골 4도움

이정수, 곽태휘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사를 대표하는 골 넣는 수비수로 리베로와 스토퍼는 물론 스트라이커도 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수비적으로도 그의 태클은 당대 이름을 날렸다.

실업리그 시절에는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활약하다가 1983년 K리그 개막 이후에는 할렐루야 독수리에서 활약하며 리그 초대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K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이듬해에도 리그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할렐루야가 선교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아마추어로 전환하자 포항제철 아톰즈로 돌아와 1987년 K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다른 대안인 조영증, 윤덕여와 고민했지만 조영증은 50경기에 출전했으며 그중 스트라이커로도 뛴 경기가 많기도 해서 다소 누적이 아쉬웠으며 윤덕여는 박성화만큼의 임팩트를 보이진 못했다.



라이트백

 


이름: 박경훈
출생년도: 1961년 1월 19일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스 (現 포항 스틸러스)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34경기 4골 8도움

대한민국 축구에서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선구자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오버래핑이 발군이었고 센터백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기본적인 수비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포항제철에 머무는 동안 K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1988년에는 리그 MVP에 뽑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두 번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구단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1988년까지 수상하던 KFA 베스트 일레븐에 여섯 번이나 들었으며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박경훈은 K리그를 대표하는 측면 수비수로 명성이 높았다.

 


레프트백

 


이름: 최강희
출생년도: 1959년 4월 12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현대 호랑이 (現 울산 현대)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205경기 10골 22도움

198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측면 수비수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스테미너의 화신이라 불렸으며 더불어 뛰어난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영리한 경기 운영 능력이 돋보였으며 좌우 사이드백은 물론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다.

소속팀에서도 실업 리그 시절부터 활약했던 선수로 K리그 원년에는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하고 다음 해 현대 호랑이 창단 멤버로 활약했는데 비록 준우승 2회에 그치며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지만 최강희 개인은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1987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최강희는 1998년 피파에서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오세아니아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미드필더

 


이름: 이흥실
출생년도: 1961년 5월 28일
신체조건: 키 168cm
주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스 (現 포항 스틸러스)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82경기 48골 35도움

1980년대 K리그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나로 스피드와 발재간을 동시에 지닌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슈팅과 패스를 자유자재로 넣어줄 수 있는 선수였으며 빠르고 강한 킥력을 바탕으로 좌우로 넓게 벌려주는 패스의 정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로 인해 탱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대표팀에는 잘 선발되지 못했지만 도리어 이런 부분이 소속팀에 헌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는데 이흥실의 활약 덕분에 포항제철은 리그 우승 3회를 기록했고 이흥실 개인은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는데 특히 1985년에는 신인왕, 1986년에는 리그 MVP를 석권했으며 1989년에는 도움왕을 타냈다.

포항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활약을 펼친 이흥실은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미드필더

 


이름: 정해원
출생년도: 1959년 7월 1일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54경기 34골 11도움

19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멀티플레이어로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는 물론 좌우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었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신체 밸런스를 지녀 상대의 압박을 튕겨냈으며 비단결 같은 패싱력과 원샷원킬의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선수 생활을 전부 대우 로얄즈에서 보낸 부산의 반디에라로 K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년에는 K리그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치며 득점왕에 올랐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이뤄냈다. 정해원은 개인적으로도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87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드필더

 


이름: 박창선
출생년도: 1954년 2월 2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73경기 11골 17도움

20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양발을 모두 활용한 정확한 패스와 가공할만한 슈팅력, 그리고 간결한 탈압박 스킬을 모두 겸비한 마에스트로라 평가받았다.

실업리그인 포항 제철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에서 활약한 박창선은 K리그에서는 1983년에는 포항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리그 도움왕과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84년에는 대우로 이적해서 리그 우승에 공헌하고 MVP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유공 코끼리에서 선수경력을 마무리했다.

K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한국의 저명한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포워드

 


이름: 최순호
출생년도: 1962년 1월 10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00경기 23골 19도움

이탈리아 축구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한국의 판타지스타형 공격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슈팅과 동료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날카로운 킬러 패스를 찔러주는 플레이메이킹에 모두 능했으며 큰 키와 강한 피지컬까지 겸비했다.

1983년 K리그가 개막하자 포항제철 아톰스에 입단해 1984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1986년 K리그 우승에 공헌했으며 1985년과 1987년에는 준우승을 거두며 팀을 상위권에 올리며 큰 공을 세웠고 럭키금성 황소에서도 1990년 K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말년에 포항제철 아톰즈로 다시 돌아가 활약했다.

최순호는 A매치 경기수와 프로팀 경기수가 비슷한데 이 이유는 최순호의 선수 생활은 전두환-노태우 재임시기였고, 소속팀 포철의 구단주는 여당 국회의원 박태준이었다. 독재정권인 전두환 정권에서 대표팀을 위해 소속팀의 희생을 강요해도 거부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1988 서울 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은 출장을 못한다고 해서 대학 졸업한 국대선수들이 프로로 올라가는 것을 막아버렸을 정도로 대표팀을 위해 프로팀이 희생하는 구조가 심했고 이 일화는 대표팀 레귤러 멤버들 전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포워드

 


이름: 이태호
출생년도: 1961년 1월 29일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81경기 57골 27도움

1980년대 한국 축구 최고의 공격수로 1987년 포항제철과의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의 발에 오른쪽 눈을 강타당해 실명했지만 본인의 끝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우수한 골 감각으로 언론으로부터 한국의 게르트 뮐러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득점은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창의적인 패싱력과 왕성한 활동량도 겸비해 스트라이커 이외에도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자원이었다.

K리그에서는 대우 로얄즈의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대우에서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가며 K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개인적으로도 1984년과 1990년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포워드

 


이름: 김주성
출생년도: 1966년 1월 17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해당 기간 K리그 기록: 101경기 31골 11도움

20세기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뛰어난 기술은 물론이고 높은 축구 지능을 앞세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K리그에서는 부산 대우에서 활약했으며 1987년에 데뷔해 데뷔 시즌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1991년에도 다시 우승했으며 해당 기간 동안에는 1987년과 1991년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는데 1987년에는 신인상, 1991년에는 리그 MVP는 팀동료 정용환에게 내줬지만 KFA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김주성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연속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음은 물론 2002년 한국 최고의 여론조사업체인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2010년에는 베스트 일레븐지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그리고 013년에 선정한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감독

 


이름: 김정남
출생년도: 1943년 1월 28일
해당 기간 주 소속팀: 유공 코끼리

K리그 명예의 전당 감독부문 최초로 헌액된 한국 축구사 최고의 명장으로 수비적인 축구를 선호해 재미없는 축구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냉철하게 경기를 분석해 적재적소에 선수를 배치해 임무를 부여했기에 전적은 우수했기에  "그래도 김정남은 재미없어도 결과를 보면 이겨있잖아."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음은 물론 통솔력도 뛰어난 덕장이었다.

K리그에서도 많은 족적을 남겼는데 1989년에는 유공 코끼리의 K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K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3~199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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