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60년대생

1960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4. 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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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4월 5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는 2000년대 50위 시절 0표는 제외함


5위 호메리투

 


생일: 8월 28일
국적: 파라과이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남미 올해의 선수상 Top 10: 4회 (1979, 1980, 1985, 1986)
남미 올해의 선수상 최고성적: 1985년 1위 수상

 

 

본명은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로 한때 마라도나만큼이나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1980년대 남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창의적이면서 정교한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능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을 앞세워 상대의 압박을 피했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초년에는 뉴욕 코스모스에서 두 번의 북미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남미로 돌아와서는 플루미넨시의 주립 리그 2연패와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1985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잠깐 활약한 바르셀로나에서는 1989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고 파라과이로 돌아와서는 스포르티보 루케뇨에 머물며 1990 시즌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7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마라도나 다음으로 2위에 올랐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다.

 

4위 게리 리네커

 


생일: 11월 30일
국적: 잉글랜드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레스터 시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5회 (1986, 1987, 1989, 1990, 1991)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86년 2위 수상

 

잉글랜드의 게르트 뮐러라고 불릴만한 선수로 기막힌 위치 선정 능력과 반응속도를 겸비했으며 양발과 머리 모두를 이용해 득점할 수 있었다.

커리어 통산 리그 우승은 없지만 잉글랜드 풋볼 리그 득점왕을 3회 수상했으며 FWA 올해의 선수에도 2회 선정되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코파 델 레이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토트넘에서도 1990-91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91년 피파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맹활약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비록 8강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한테 탈락했지만 6골이나 득점하며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4골을 득점하며 팀의 준결승행을 도왔다. 월드컵에서만 10골을 집어넣은 선수로 이는 잉글랜드 국적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이다.

 

 

3위 안드레아스 브레메

 

 

생일: 11월 9일
국적: 독일
포지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1989, 1990)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0년 3위 수상

 

198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세트피스 키커이자 양발잡이로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해 대표팀의 빌드업 시작점 역할을 했던 미래형 윙백이었으며 프리킥과 코너킥에 능해 팀의 공격을 지원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과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바이에른과 인테르,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에서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인테르에서는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디 만샤프트 소속으로는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 결승골을 넣고 월드컵 우승을 이루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유로 1984와 1992에서도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브레메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분데스리가에 머문 기간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 1988-89 시즌에는 인테르 올해의 선수와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2위 프랑코 바레시

 


생일: 5월 8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C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7회 (1988, 1989, 1990, 1992, 1993, 1994, 1995)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89년 2위 수상

AC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수비라인 통솔 능력과 빠른 스피드, 정확한 롱패스,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을 모두 겸비한 완벽한 수비수였다.

AC 밀란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프랑코 바레시는 암흑기 시절 세리에 B 우승을 두 번 이뤄내며 팀을 승격시켰으며 이후 베를루스코니에게 인수된 이후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 기간에는 무패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6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수비수임에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년 연속 선정되었다.

바레시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가에타노 시레아라는 큰 벽에 의해 아주리에서는 다소 늦게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주전 멤버로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지 못해 대표팀 활약이 시레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결승전에서 말디니와 함께 호마리우, 베베투 라인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대표팀에서도 시레아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충분히 보여줬다.

 

1위 디에고 마라도나

 


생일: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엘 문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 Top 10: 8회 (1979, 1980, 1981, 1982, 1986, 1989, 1990, 1992)
엘 문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 최고성적: 1위 6회 수상 (1979, 1980, 1986, 1989, 1990, 1992)
명예 발롱도르: 1986년, 1990년 2회 수상

 

내가 펠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르다. 내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미셸 플라티니

저에게는 과거에나 현재에도 모두 최고입니다. 당신이 메시와 호날두에 대해 이야기하면 난 이렇게 대답합니다. 메시와 호날두는 드리블을 할 수 있지만 마라도나는 드리블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상대 수비수들을 이겨내기 위해 점프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마라도나의 다리를 부러뜨렸죠. 실제로 빌바오의 도살자, 안도니 고이코에체아는 마라도나의 발목을 부러뜨렸습니다. 그때 공격수들은 규칙으로 보호받지 못했고, 심판은 저같은 선수들이 완전히 박살나야만 파울을 불었습니다. 운좋게도 오늘날은 다릅니다. 메시와 호날두는 이들을 위해 뛰어줄 팀이 있고, 메시와 호날두는 이 조립 라인에 놀라운 마지막 퍼즐입니다. 반면 마라도나는 혼자였고, 그는 상대 수비수들의 먹잇감이었죠. 만약 당신이 마라도나를 쓰러뜨렸다면 그 자체로 영광스러운 뱃지를 단 것입니다.
-루드 굴리트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지 못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내가 백만년을 플레이 해도 마라도나에게 근접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도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
-리오넬 메시

나는 항상 나 스스로를 준수한 수비수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탈리아 세리에A 명예의 전당 시상식에서 마라도나와 내가 나오는 영상을 보고 부끄러웠다. 내가 마라도나에게 끔찍한 파울을 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라도나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내 움직임을 다 읽고 있었고, 나는 매번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마라도나는 정말 빨리 공을 컨트롤하고 방향을 바꿨고, 내 경력을 산산조각 냈다. 반칙을 쓰지 않고는 마라도나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영상을 보니 그런 장면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에게 사과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는 정말 대단했다.
-파올로 말디니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인물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넘어 스포츠 스타이며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을 정도로 자국에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를 증명하듯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리더십마저 겸비해 동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구단 보드진과 협상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선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오스의 1981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세리에 A 중하위권 나폴리에 가서는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북부의 전통 강호를 제치고 세리에 A 2회 우승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 더블을 달성했고 1988-89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으며 패배에 익숙하던 나폴리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다. 물론 마라도나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여섯번 수상했으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득점왕을 5회 수상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고 1986년과 1987년에는 옹즈도르를 수상했다.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는 클럽 활약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네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 유니폼을 입었으며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5골 5도움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단일 대회 역대 최고의 활약으로 평가받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무뎌진 대표팀을 이끌고도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선외 명단

루디 푈러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발테르 젱가

이고르 벨라노프

카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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