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60년대생

1961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4. 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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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4월 3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는 2000년대 50위 시절 0표는 제외함


5위 안도니 수비사레타

 


생일: 10월 23일
국적: 스페인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해당 사항 없음

 

 

1980년대와 1990년대 스페인 최고의 골키퍼이자 바스크인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크루이프의 팀에서 뛴 골키퍼로서는 의외로 발밑은 평범했으나 매우 뛰어난 선방 능력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라리가 통산 최다 출전자에 오른 수비사레타는 빌바오에서 라리가 2연패와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크루이프의 드림팀 시절 바르셀로나의 골문을 지키며 라리가 4연패는 물론 1988-8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에 이어 1991-92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빅이어를 따냈고 개인적으로도 1986-87 시즌 사모라상을 타냈으며 1987년에는 돈 발롱 어워드에서 올해의 스페인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90-91 시즌에는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 리가 최우수 선수상을 타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수비사레타는 세 번의 유럽선수권대회와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아르마다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했다.

 

4위 올렉산드르 자바로프

 


생일: 4월 26일
국적: 우크라이나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4회 (1986, 1987, 1988, 1989)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86년 6위

 

1980년대 동구권 정상급 미드필더로 우수한 동료 활용 능력과 신속 정확한 판단력과 같은 지능적인 플레이는 물론, 스피드가 빠르고 창조적이며 우수한 드리블 실력과 강인한 체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를 압박해 찬스를 만드는 방식에도 능했다.

디나모 키이우에서 전성기를 보낸 자바로프는 소련 탑 리그 2연패와 소비에트 컵 3회 우승, 그리고 1985-86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컵 위너스컵에서는 팀 동료 벨라노프, 블로힌과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유벤투스에서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크라운에 공헌했음은 물론 자바로프 개인도 소련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팀 동료 벨라노프, 블로힌과  함께 1985-86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그 해에 소련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자바로프의 훌륭한 활약은 소련 대표팀에서도 이어졌으며 붉은 군단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두 번의 월드컵에 나갔으며 1988 유로에서는 소련의 마지막 결승을 이끌었다.

 

 

3위 이안 러시

 

 

생일: 10월 20일
국적: 웨일스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5회 (1983, 1984, 1985, 1986, 1987)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84년 4위

 

1980년대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수비수를 귀신처럼 따돌리며 정교한 슈팅으로 득점하며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리버풀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붉은 제국 시절부터 활약하며 리그 우승 5회와 유러피언 컵 우승 2회를 포함해 총 18회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은 물론 풋볼 리그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모두 싹쓸이했다.

리버풀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인 이안 러시는 개인적으로도 1982-83 시즌에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올랐으며 PFA 올해의 팀에 5회 선정되었으며 1983-84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석권하며 PFA와 FWA에서 모두 올해의 선수로 뽑히는 영예를 누렸으나 대표팀에서는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2위 엔조 프란체스콜리

 


생일: 11월 12일
국적: 우루괴이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리버 플레이트

남미 올해의 선수 Top 10: 5회 (1984, 1985, 1986, 1995, 1996)
엘 문도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84년 1위
엘 파이스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95년 1위

1980년대와 90년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트레콰르티스타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깔끔한 볼 터치와 상대의 예측을 비웃는 킬 패스가 일품이었고 득점력 또한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득점왕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의 활약을 본 지네딘 지단은 그를 우상으로 생각했으며 프란체스콜리의 이름을 따 아들의 이름을 엔조로 지었다.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맞아 1985-86 시즌 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석권했으며 이후 유럽으로 진출해서 라싱 파리와 마르세유, 칼리아리에서 활약했으며 1989-90 시즌에는 마르세유에서 리그 앙 우승을 이뤄냈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서는 전기리그 3회 우승과 후기리그 1회 우승은 물론 1996년에는 팀의 주장으로서 주전의 다수를 차지하는 신인 선수들을 잘 통솔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수로 출전해 소크라치스가 이끄는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에 크게 공헌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으며 198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우승했다. 그리고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으며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을 거두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이토록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마라도나나 지쿠를 능가하는 화려한 모습을 보였지만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프란체스콜리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3회 수상했으며 리그 MVP에 2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1985년에는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세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1위 로타어 마테우스

 


생일: 3월 21일
국적: 독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8회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4, 1999)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0년 1위 수상

 

그가 최고의 폼을 유지할 때면, 뭐 그는 늘 그랬지만, 그보다 나은 선수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완벽한 선수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그동안 같이 뛰어본 선수 중 제일 두렵고 강한 라이벌이었다. 이것으로 그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나의 완벽한 우상은 로타어 마테우스다. 그는 스스로 골을 넣는 동시에 나머지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No. 10이다. 나에게 있어 그보다 나은 선수란 없었다. 비아레조에서 처음 만나 그의 사인을 받았던 날은 아주 오랫동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최고의 날이었다.
-안드레아 피를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로 철인이라 불리는 신체 능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물론 대인 수비에서도 당대 수비형 미드필더들보다 한 차원 위에 있었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결정적인 순간에 한건하는 클러치 능력과 반 바스텐, 비알리, 클린스만, 카레카 같은 세리에 A 정상급 스트라이커들과 득점왕 경쟁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까지 겸비하며 넓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게임도 끝낼 수 있는 완벽한 선수였으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과장 좀 해서 마테우스 이전에 언급한 미드필더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해 1979-80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컴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컴 결승 진출을, 인테르에서는 1988-89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90-91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다시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와서는 리베로로 활동하며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추가했고 1998-99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유로 1980에 처음 뽑혔으나 유로 1984 때부터 1994 미국 월드컵 때까지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1988 유로 3위를 이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코어이자 주 득점원으로 팀을 우승시키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그러나 클린스만과의 불화와 리베로에서 마티아스 잠머가 대두하면서 대표팀에서 소외되었으나 잠머의 부상으로 다시 소집되어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까지 출전했으나 이미 독일은 노쇠화되었으며 세대교체 실패의 영향으로 부진한 활약을 보여줬다.

마테우스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옹즈 몽디알에서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연속 선정되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음은 물론 1990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1991년에는 초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선외 명단

피터 비어슬리

기도 부흐발트

예스퍼 올센

다니엘레 마사로

카를로스 발데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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