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60년대생

1964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3. 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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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3월 27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는 2000년대 50위 시절 0표는 제외함


5위 로베르토 만치니

 


생일: 11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회 (1991)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1년 19위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선수로 전형적인 판타지스타로 매혹적인 드리블과 우수한 패스를 활용해 팀의 공격을 이끄는데 능했으며 슈팅도 제법 날카로워서 몇몇 사람들은 그가 디에고 마라도나보다도 낫다는 격찬을 하기도 했다.

삼프도리아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만치니는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9-90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은 물론 1990-91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연장 혈투 끝에 크루이프의 바르샤에게 아쉽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개인적으로도 구에린 도르 2회 수상, 1996-97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와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를 수상했으며 말년에 에릭손 감독을 따라 라치오로 이적한 뒤에도 1999-200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1999년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다.

아주리에서도 1980년대 후반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로 1988에서 조별리그 독일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4강에 올렸으나 1990 월드컵에도 처음엔 주전으로 출전했지만 부진으로 인해 신성 로베르토 바조와 이 대회의 신데렐라 살바토레 스킬라치한테 밀리며 벤치에서 대회 3위를 경험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삼프도리아와 아주리에서 비알리와의 공격 조합이 유명세를 탔으나 비알리가 유벤투스로 이적하고 만치니가 아주리에서 바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해체되었다.

 

4위 베베투

 


생일: 2월 16일
국적: 브라질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엘 문도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89년 1위
엘 파이스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89년 3위

 

1990년대 브라질을 풍미한 정상급 공격수로 피지컬이 우수하진 못했지만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과 재빠른 몸놀림, 그리고 우수한 골 결정력을 앞세워 활약했다.

플라멩구와 바스쿠 다 가마, 그리고 스페인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베투는 플라멩구에서는 브라질 세리 A와 캄파오네투 카리오카를 각각 한 번씩 우승했으며 캄파오네투 카라오카 득점왕을 2회 수상했고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고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는 1992-93 시즌에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으며 팀 역사상 최초로 코파 델 레이를 우승하는데 기여하며 팀의 라리가 상위권 유지에 크게 공헌했다.

셀레상에서는 소속팀에서는 라이벌이었던 호마리우와 함께 파트너를 형성해 명성을 날린 베베투는 1989 코파 아메리카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에 공헌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팀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상술한 업적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위 위르겐 클린스만

 

 

생일: 7월 30일
국적: 서독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7회 (1988, 1989, 1990, 1994, 1995, 1996, 1997)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5년 2위

 

현재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 감독으로 재직중인 클린스만은 199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공격진영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특히 환상적인 발리 슈팅이나 바이시클킥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능력이 뛰어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새겨지기 좋은 스트라이커였다.

클럽을 자주 옮겨 다녔던 선수로 대표적인 클럽을 꼽자면 인테르 밀란에서 마테우스, 브레메와 함께 게르만 삼총사로 이름을 날리며 1990-91 시즌 UEFA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UEFA컵 우승과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슈투트가르트와 토트넘 핫스퍼, AS 모나코에서도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여섯 번이나 들었다.

디 만샤프트에서의 활약은 더 대단해서 유로 1988에서 3위를 이뤄냈으며 서울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따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을 도왔으며 유로 1992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로 1996에서도 우승에 기여했으며 월드컵 통산 11골이나 득점했다.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한 클린스만은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7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9회 선정되었다.

 

2위 미하엘 라우드루프

 


생일: 6월 15일
국적: 덴마크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공격형 미드필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9회 (1985, 1986,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8)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85년 4위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특히 상대 수비의 예측을 비웃는 창의적인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고 팬텀 드리블을 구사해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팬텀 드리블을 유행시킨 부분으로도 유명하다..

유벤투스와 라치오 바르셀로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비안코네리 군단에서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라리가 4연패와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 그리고 1991-92 시즌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자유계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친정팀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본인의 다짐대로 크루이프에게 복수에 성공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84부터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예선을 통과한 모든 대회를 참가했으나 하필이면 딱 UEFA 유로 1992만 감독과의 불화로 참가하지 못했는데 그 대회에서 덴마크가 우승했다. 그래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라우드롭은 노익장을 보여주며 덴마크를 8강에 올리며 올스타 팀에 들었다.

1982년과 1985년에 덴마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4-95 시즌에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된 라우드루프는 2004년에 UEFA 주빌리 어워드에 선정되며 덴마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 올랐다.

 

1위 마르코 반 바스텐

 


생일: 10월 31일
국적: 네덜란드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C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6회 (1986, 1987, 1988, 1989, 1991, 1992)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88, 1989, 1992년 3위

 

반 바스텐은 내가 훈련시킨 선수 중 최고의 센터포워드였다. 그는 백조였다. 호나우두는 절대적으로 월드클래스이지만, 그 역할에서 마르코가 가장 위대했다.
-파비오 카펠로

정말 우아했지. 그는 땀조차 흘리지 않는듯 했는데 견고하기까지 했어. 양발로 골을 넣을 수 있었고 헤딩에도 능했지. 축구사에 있어 그의 족적은 너무나 분명해. 유로 1988 결승전의 골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프랑코 바레시

부상은 그가 커리어 최상의 폼에 있을 때 그를 갉아먹었다. 카펠로의 새롭고 회춘한 밀란의 선봉에 있었을 때 말이다. 그러나 그 때에도 이미 그는 역대 최고의 9번이라 평가될만한 것들을 이루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유로 1988 결승전에서 소련을 상대로 터진 그의 발리를 이야기하지만, 물론 그 골은 엄청난 골이지. 마르코는 아약스와 밀란에서는 더 멋진 골들을 득점했었다.
-로날드 쿠만

80~90년대 밀란은 세계 최강의 팀이였다. 그 곳에는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루드 굴리트 등과 같이 역사에서 손에 꼽힐만한 선수들이 많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르코 반바스텐과는 더.
-카를레스 푸욜

위트레흐트의 백조라 불리던 198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유연한 발리슛과 타점 높은 헤더에서 나오는 득점력은 물론이고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에서 나오는 퍼스트 터치는 가히 일품이었으며 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 불렸다.

아약스에서 데뷔해 약관의 나이인 1983-84 시즌부터 26경기에 출전해 28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은 반 바스텐은 에레데비시와 KNVB컵에서 각각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반 바스텐 개인은 에레데비시 득점왕 4년 연속 수상 및 1985-86 시즌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그리고 1985년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우승을 이뤄냈고 옹즈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클럽팀 중 하나라는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반 바스텐은 그 시대의 슈퍼리그라 불렸던 세리에 A 3회 우승 및 유러피언컵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아올렸고 그 과정에서 세리에 A 득점왕 2회 수상, 1988-89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 수상, 발롱도르 3회 수상 및 옹즈도르 2회 수상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이뤄냈으나 1990년대에는 부상으로 고생하며 결국 31세의 이른 나이로 은퇴했다. 그럼에도 전성기 시절의 임팩트가 대단해 은퇴한 뒤에는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과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반 바스텐은 두 차례의 UEFA 유로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1988에서는 조국의 우승에 가장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득점왕 및 실질적인 MVP로 평가받았고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UEFA 유로 1992에서도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고 은퇴한 뒤인 2016년에는 UEFA 유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다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치긴 했다.

 


선외 명단

올레흐 프로타소프

브랑쿠

지안루카 비알리

조르지뉴

아베디 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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