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60년대생

1966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3. 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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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3월 20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는 2000년대 50위 시절 0표는 제외함


5위 데얀 사비세비치

 


생일: 9월 15일
국적: 몬테네그로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3회 (1991, 1994, 1995)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1년 2위

 

 

유고슬라비아 축구계가 낳은 천재적인 판타지스타로 환상적인 드리블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킬패스, 그리고 우수한 왼발 슈팅 스킬로 이름을 날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연패를 이뤘고 1990-9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낸 활약을 인정받아 1991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선정 및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스포츠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위를 차지했으며 밀란으로 이적해서도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5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로 교체 멤버로 나왔으며 유로 1992에서는 핵심 선수로 예선을 통과했으나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유로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내전으로 인해 전성기 기간 동안 대표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전성기가 지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명예의 전당 격인 여섯 별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조지 웨아

 


생일: 10월 1일
국적: 라이베리아
포지션: 스트라이커,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85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C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1995, 1996)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5년 1위

 

자타공인 20세기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로 치타와 같은 스피드와 화려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린 뒤 동물적인 골 감각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팬들을 놀라게 했고 세간에서는 그를 아프리카의 호나우두라고 부르기도 했다.

파리 생제르맹과 AC 밀란에서 커리어 하이를 보낸 웨아는 파리에서는 1992-93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993-94 시즌에는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1994-95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와 리그컵 더블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내며 맹활약했는데 그 과정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수상하며 1995년에 비유럽인에게 문호를 연 이후 최초의 비유럽인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도 석권했다.

AC 밀란에서도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낸 웨아는 1996년 옹즈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2위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로 선정되었고 은퇴한 뒤인 2021년에는 IFFHS 선정 아프리카 축구 올 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3위 토마스 헤슬러

 

 

생일: 5월 30일
국적: 독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어
신체조건: 키 166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FC 쾰른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1989, 1992)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2년 4위

 

안디 묄러와 함께 1990년대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테너로 166cm의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중앙과 측면, 최전방과 후방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과 물 찬 제비와 같은 민첩한 움직임과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뛰어난 스루패스와 크로스를 활용해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쾰른, 유벤투스, 로마, 카를스루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러 구단을 돌았으나 쾰른에서는 분데스리가 2회 준우승과 UEFA컵 1회 준우승을, 유벤투스에서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준우승을, 로마에서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와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카를스루헤에서는 포칼 준우승을 이루며 개인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클럽 단위 우승컵을 한 번도 들지 못하고 준우승에만 머무른 비운의 선수였지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고 옹즈 몽디알에서 뽑으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다만 디 만샤프트에서는 클럽에서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냈으며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성인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가 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1992 유로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MVP를 수상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1992 발롱도르 4위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 3위에 올랐으며 1994 미국 월드컵 도움왕, 1996 유로 우승이라는 화려한 활약상을 보여줬으며 2000년에는 독일 대표팀에서 다섯 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토마스 헤슬러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4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3회 선정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이뤄냈다.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생일: 2월 8일
국적: 불가리아
포지션: 포워드, 라이트윙,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4회 (1992, 1993, 1994, 1995)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4년 1위

불가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뛰어난 왼발 슈팅력은 물론 우수한 공간 활용 능력을 통해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던 공격수였다.

CSKA 소피아와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낸 스토이치코프는 CSKA 소피아에서는 불가리아 리그 3회 우승과 불가리안 컵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리그 득점왕에 2회 올랐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드림팀 1기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라리가 4연패를 포함해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1-92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1996-97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과 코파 델 레이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면 불가리아 축구에서는 아예 역사를 새로 쓰는 활약을 보여줬던 스토이치코프는 항상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던 불가리아를 데리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는 활약을 했다. 스토이치코프 개인은 득점왕에 올랐으며 준결승에 오르는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멕시코, 독일을 모조리 이기고 올라왔는데 특히 아르헨티나와 독일은 각각 지난 월드컵 준우승팀과 우승팀이었다. 이 대화에서의 활약으로 스토이치코프는 대회 골든슈와 브론즈볼, 그리고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연말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발롱도르 수상 이외에도 스토이치코프는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 5회 수상, 1992년 옹즈도르 1위 수상을 이뤄냈으며 은퇴 뒤인 2004년에는 UEFA 주빌리 어워드에 선정되며 불가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 올랐다.

 

1위 호마리우

 


생일: 1월 29일
국적: 브라질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먕예 발롱도르: 1994년 1위 재평가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호마리우는 1986년 월드컵의 마라도나와 같은 영향력을 가졌다. 두 선수 모두 거의 혼자의 힘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제 마라도나가 은퇴했으니 그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마리우 자갈루

내가 지도한 최고의 선수? 바로 호마리우가 되어야 한다. 당신은 그에게서 무엇이든지 기대할 수 있었다. 그의 테크닉은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골을 터뜨렸다. 흥미롭게도 그가 넣은 대부분의 골들은 발가락 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호마리우가 하는 짓은 꼭 어린아이 같다. 이 놈은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
-요한 크루이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 그는 종종 경기 중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골 기록을 보면 도저히 논쟁이 불가능했지. 그는 무에서 골을 창조해내는 선수야. 그의 피니쉬는 비범했고 나는 종종 그가 탁월한 수비수들을 시체를 지나는 것 같이 통과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 오늘날 그와 같은 선수는 없어.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이 바로 그를 TV에서 보던 1994년이었다.
-호나우지뉴


골의 왕이라 불렸던 19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동물적인 감각을 앞세워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려 득점했으며 신체 밸런스와 양발 사용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볼 컨트롤과 뛰어난 드리블 실력까지 자랑했다.

여러 클럽을 돌아다녔지만 PSV 에인트호번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득점왕 3회 수상을, 후자의 클럽에서는 1993-94 시즌에 30골을 터트리며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브라질 리그의 바스쿠 다 가마에서도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활약했다.

셀레상에서도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우승해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을 모두 석권했다. 그리고 1997년 컨페드컵에서는 호나우두와 투 톱을 이뤄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감독들과의 불화로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소집되지는 못했지만 30대 후반인 2005년에도 소집된 이력이 있을 정도로 롱런했다.

호마리우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및 브라질 세리 A,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스페인 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서 클럽 통산 16회의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4년에는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풋볼로부터 1994년 이전 발롱도르 수상자를 재평가할 때 기존 수상자인 스토이치코프를 제치고 1994년 명예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선외 명단

엔조 시포

파울루 푸트레

 

에릭 칸토나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루벤 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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