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60년대생

1969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3. 16. 17:54
728x90
728x90

선정일은 2023년 3월 16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는 2000년대 50위 시절 0표는 제외함


5위 빅상트 리자라쥐

 


생일: 12월 9일
국적: 프랑스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1998, 2001)
발롱도르 최고 성적: 2001년 11위

 

 

바스크계 프랑스인 수비수로 파올로 말디니,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함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군림했다. 루이스 피구의 말을 빌리면 그는 말디니의 수비력과 카를루스의 공격력을 갖췄다고 언급되었으며 실제로 터프한 수비로 상대 라이트윙을 무력화시켰다.

지롱댕 보르도와 빌바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는데 보르도에서는 UEFA컵 준우승을 거두었으며 빌바오에서는 최초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으며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분데스리가 우승 6회, 포칼 우승 5회, 그리고 1998-99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2000-01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1998-99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2000-01 시즌에는 바이에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에 올랐다.

레 블뢰에서도 아트사커 시대의 황금기를 이끌며 철의 포백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유로 1996을 시작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우승했다. 수많은 오른쪽 공격수들이 그를 공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4위 페르난도 레돈도

 


생일: 6월 6일
국적: 아르헨티나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회 (2000)
발롱도르 최고 성적: 2000년 18위

 

화려함과 견고함을 겸비한 9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부드러운 볼 트래핑과 비단결 같은 패싱력을 겸했으며 몸을 사리지 않는 거친 슬라이딩 태클과 집요한 몸싸움과 지능적인 인터셉트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기습적인 전진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능력마저 갖춘 만능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테네리페에서 구단 올해의 선수에 2회 연속 선정되며 이름을 알렷으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전성기를 보내며 라리가 2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레알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97-98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8위에 올랐다.

국가대항전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던 레돈도는 라 알비셀레스테의 유니폼을 입고 1992년에 컨페드컵의 전신인 킹스 컵 우승을 이끌며 골든 볼을 받았으며 1993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다니엘 파사레야 감독의 단발령에 거부하여 대표팀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은 길지 않았다.

 

 

3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생일: 2월 1일
국적: 아르헨티나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엘 문도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 TOP 10: 2회 (Y)
엘 문도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91년 1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6회 (1995~2000)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8년 4위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골게터로 화려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천둥 같은 슈팅력과 강력한 헤딩을 앞세워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줘 바티스투타라는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득점을 해낸다 하여 바티골이라 불렀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데뷔해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보낸 바티스투타는 피오렌티나에 입단한 뒤 두 시즌 후에 자신은 16골이나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강등되었는데도 팀에 남아서 팀을 세리에 A로 다시 올렸으며 1995-96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는 재정난 때문에 그를 AS 로마에 팔았고 바티스투타는 AS 로마에서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낸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맹활약한 바티스투타는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조국의 2회 우승 및 바티스투타 개인의 득점왕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이뤄냈고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총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월드컵 통산 10골을 득점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국적 선수 중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이었고 특히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국가의 경제가 어렵자 자신의 사비를 보태며 월드컵에 참가할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통산 여섯번의 득점왕에 오른 바티스투타는 1998년에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98-99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2위 데니스 베르캄프

 


생일: 5월 10일
국적: 네덜란드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4회 (1992, 1993, 1997, 1998)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3년 2위

 

1990년대 네덜란드 대표팀의 에이스로 부드러운 볼 터치와 날카로운 슈팅을 바탕으로 초년에는 포처로 이름을 날렸으며 아스날에서는 한층 더 성장하며 탄탄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연계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상술했던 능력을 바탕으로 베르캄프는 아약스 시절에 KNVB컵 2회 우승과 1989-90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1986-8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과 1991-92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인테르 밀란에서 부진한 활약을 펼쳐 비판을 받은 이후 아스날로 이적했으며 아스날에서 다시 전성기를 보내며 2003-04 시즌 무패 우승과 1997-9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4회를 이뤄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에 진출했다. 

이뤄낸 팀 커리어 뿐만이 아니라 개인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린 베르캄프는 아약스에서는 1990년 네덜란드 올해의 신인상을 시작으로 에레데비시 득점왕 3회,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2회에 올랐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92년에 3위, 1993년에 2위를 기록하며 포디움에만 두 번 오르는 위용을 뽐냈고 부진했다는 인테르 밀란 시절에도 UEFA컵 득점왕에 올랐고 아스날에서는 1997년 피파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으며 1997-98 시즌 PFA 올해의 팀과 FWA 올해의 선수를 동시에 석권했다.

오렌지 군단의 에이스로 UEFA 유로 1992를 포함해 세 번의 유로와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한 베르캄프는 첫 대회인 UEFA 유로 1992에서 준결승 진출 및 대회 올스타 팀에 올랐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준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그리고 UEFA 유로 2000에서도 재차 준결승에 올랐다.

 

1위 올리버 칸

 


생일: 6월 15일
국적: 독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3회 (1999, 2000, 2001)
발롱도르 최고 성적: 2000년, 2001년 3위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경이로운 선방 능력과 뛰어난 수비 라인 통솔,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상대 공격수와의 기싸움에 능한 골키퍼였다.

카를스루헤에서 잠재력을 만개하기 시작해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3M의 시대를 이끌며 분데스리가 8회 우승과 DFB포칼 6회 우승과 1995-96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0-01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맹활약해 팀의 우승에 마침표를 찍으며 맨 오브 더 매치를 수상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포디움에 들었다.

디 먄샤프트에서도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쾨프케가 은퇴하면서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다수의 멤버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는 팀을 이끌며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 결승에 진출했으며 그 공로로 골키퍼로는 최초로 월드컵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2002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3위에 들며 골키퍼로서는 유일하게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든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올리버 칸은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8회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5회에 선정되었다.

 


선외 명단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브리안 라우드루프

스테판 샤퓌자

옌스 레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