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일은 2023년 3월 6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는 2000년대 50위 시절 0표는 제외함
5위 펩 과르디올라

생일: 1월 18일
국적: 스페인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회 (1994)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4년 24위
현세대의 축구팬들에겐 감독으로 더 유명세를 탔지만 선수 시절에는 1990년대 라 리가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꼽혔는데 요한 크루이프에게 넌 내 할머니보다도 느리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스피드가 느렸고 몸싸움에도 약했지만 굉장히 높은 축구 지능과 우수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데 능해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는데 능했으며 창의적인 패스로 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내며 요한 크루이프 체제의 피보테로 활약하며 라리가 4연패를 포함해 총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과 1996-97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개인적으로도 돈 발롱 선정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펩의 이런 활약은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이어지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1994 미국 월드컵과 유로 2000 8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UEFA 유로 올스타 스쿼드에 포함되었다.
4위 헨릭 라르손

생일: 9월 20일
국적: 스웨덴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셀틱 FC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2001, 2003)
발롱도르 최고 성적: 2003년 12위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스웨덴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예술적인 볼 컨트롤과 탄탄한 바디 밸런스, 그리고 영리하게 빈 공간으로 파고들어 냉정하게 득점했다.
페예노르트와 셀틱에서 전성기를 누린 라르손은 특히 셀틱에서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4회 우승과 4번의 컵 대회 우승 및 2002-03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라르손 개인도 리그 득점왕을 5회 차지했고 그중 2000-01 시즌에는 유러피언 골든슈에 올랐으며 1999년과 2001년에는 SFWA 올해의 선수와 SP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기에 FIFA로부터 작은 연못에 사는 큰 물고기라 불렀을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후 FC 바르셀로나에서는 에투의 백업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으며 라리가 2연패 및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일조했으며 고국으로 복귀했다가 잠시 이적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2006-07 시즌에 세 달 동안 활약하며 중요한 순간 골을 넣어주고 경기의 흐름을 바꿔주는 움직임으로 맨유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적잖이 기여하며 임대의 신화를 썼다.
1998년과 2004년에 두 번의 굴드불렌을 수상한 라르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주포로 활약하며 1994 미국 월드컵 3,4위 결정전에서 데뷔해 불가리아를 상대로 득점하며 스웨덴의 3위를 이끌었으며 이후에도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주전으로 활약하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 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죽음의 F조에서 1위로 올라서는데 공을 세웠으며 유로 2004에서는 바이킹 군단을 8강에 올려놓았다. 은퇴한 이후에는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도 유력하다.
3위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생일: 8월 23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AC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해당 사항 없음
199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빛낸 레지스타로 공수 밸런스가 우수했으며 탄탄한 기본기와 우아한 볼 컨트롤은 물론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훌륭한 패싱력과 견고한 수비력을 겸비했으며 특히 경기 조율 능력이 대단해 인간 메트로놈이라고 불렸던 선수였으며 몸싸움과 태클에도 능했다.
AC 밀란의 최전성기에 활약했으며 로쏘네리의 유니폼을 입고 팀의 무게중심을 잡으며 14년 간 400 경기를 넘게 출장하며 세리에 A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를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화려한 활약은 이어졌는데 1994 미국 월드컵 결승 진출과 유로 2000 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도 선정되었으나 아쉽게도 우승이란 방점은 찍지 못했다.
2위 로이 킨

생일: 8월 10일
국적: 아일랜드
포지션: 중앙 미드핃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1999, 2000)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9년 6위
1990년대와 2000년대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미드필더이자 싸움닭의 대명사로 파워풀한 성격과 강한 완력에서 나오는 저돌적인 수비는 물론 기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았으며 전술안도 높아 팀의 경기를 설계할 수 있었던 컴플리트 미드필더였다.
노팅엄 포레스트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름을 날린 로이킨은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프리미어리그 7회 우승과 FA컵 4회 우승, 그리고 1998-99 시즌에는 리그와 FA컵은 물론 챔피언스리그도 우승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로이 킨 개인도 PFA 올해의 팀 5회 선정, 버스비 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 2회 수상, 1999-2000 ESM 올해의 팀 선정 및 2000 PFA 선수들 선정 올해의 선수과 FWA 올해의 선수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했고 2004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21년에는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되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아일랜드 대표팀의 16강을 도왔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의 예선 통과를 도왔을 때까지는 좋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 코치들과 갈등으로 팀을 이탈한 일명 '사이판 사건'을 일으켰다.
1위 야리 리트마넨

생일: 2월 20일
국적: 핀란드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3회 (1993, 1994, 1995)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5년 2위
베르캄프는 아약스에서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내가 본 아약스 최고의 10번은 야리 리트마넨이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개인 기량만 놓고 보면 내가 같이 뛰었던 선수 들 중에서도 최고였다.
-디트마어 하만
헌신적인 선수만 있던 리버풀에 처음으로 번뜩임을 가져왔던 선수. 리트마넨이 경기할 때마다 우리는 모두 경외심에 차서 바라보게 됐다. 특히 아스톤 빌라전에서 그 천재성에 나는 속으로 작게 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제이미 캐러거
북유럽의 지단이라 불리던 선수로 넓은 시야와 정확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싱력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골문을 직접 타격하는 데에도 능해 아약스 구단 역대 득점 10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아약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리트마넨은 1994-95 시즌의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무패 더블 우승을 포함한 에레데비시 5회 우승에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1995-96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나 아약스를 떠난 뒤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아약스에서 이뤄낸 개인 커리어는 대단했는데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1993년에는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에레데비시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1995-9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핀란드 대표팀이 유럽에서 약체라 국제대회에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히피아와 함께 핀란드의 중핵으로 활약했는데 핀란드 올해의 선수상 9회 수상, 2004년 EFA 선정 핀란드 역대 최고의 선수 선정,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자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자타공인 핀란드 축구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로 남아있다.
선외 명단
파비앵 바르테즈
디노 바조
하칸 수쿠르
앤디 콜
드와이트 요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