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 Top 10

국가의 영웅들/우루과이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 Top 10

토르난테 2023. 2. 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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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우루과이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우루과이 축구협회입니다.
*기록일은 2023년 2월 9일 기준입니다.

 


10위 마르틴 카세레스

 


생년월일: 1987년 4월 7일
A매치 기록: 11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1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의 수비라인을 구성했던 유틸리티 수비자원으로 좌우 측면 수비수와 센터백을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었으며 수비수치고는 발이 빨랐으며 대표팀 선배 파울로 몬테로에 비견되는 강력한 대인마킹 능력을 겸비했으나 제공권 경합에서는 다소 약점을 보였기에 센터백보다는 라이트백을 더 선호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받아 당대 최강의 클럽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기회 자체를 적게 받았고 그나마 받은 기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총 네 번 이적하며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해 팀의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클럽에서는 로테이션 자원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주전 선수로 15년간 활약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었으며 실제로도 월드컵 4회, 코파 아메리카 3회에 참가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4위,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3 컨페드컵 4위와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이라는 성적을 이뤄내는데 이바지했다.

 

9위 막시 페레이라

 


생년월일: 1984년 6월 8일
A매치 기록: 12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2010년대 포르투갈 무대에서 주로 활약했던 우루과이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준수한 스피드와 탄탄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대인 방어 능력과 강력한 오버래핑과 오른발 크로스 능력을 겸비했다.

2010년대 벤피카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페레이라는 팀의 프리메이라 리가 3회 우승과 2013-14 시즌 타사 데 포르투갈 우승 및 유로파리그 결승에 2회 진출하는 등 벤피카의 핵심 선수로 맹활약했으며 2012년에는 구단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되었지만 포르투로 이적하며 팬들의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포르투에서도 2017-18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라이트백과 중앙 미드필더를 번갈아가면서 활약했던 페레이라는 월드컵 3회, 코파 아메리카 4회 출전해 2007 코파 아메리카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4위에 올랐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국의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남미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3 컨페드레이션스컵에서도 4위에 올랐다.

 

8위 알폰소 도밍게스

 


생년월일: 1965년 9월 24일
A매치 기록: 3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도마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980년대 후반 남아메리카 프로축구 무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공수 양면을 아우르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측면에서 활로를 뚫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기에 측면에 머물면서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거나 중앙으로 침투해 오른발로 직접 강력한 슈팅을 날려 득점을 노릴 수도 있었다.

자국리그의 양대산맥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알폰소 도밍게스는 특히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뤄냈고 1987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다섯 번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컵을 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사도 주전으로 활약한 도밍게스는 1987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8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며 엘 파이스가 뽑은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3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6강 진출에 공을 세웠다.

 

7위 파블로 포를란

 


생년월일: 1945년 7월 14일
A매치 기록: 1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디에고 포를란의 아버지이자 1960년대 남미 무대를 호령하던 수비수로 험상궂은 외모와는 다르게 세련되고 깔끔하며 매너 있는 수비 스타일을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좋은 해골바가지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 이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으로 출전해도 제 몫을 다했다.

자국리그의 페냐롤과 브라질의 상 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보낸 포를란은 전자의 구단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시작으로 196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9년에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을 이뤄내며 황금기의 피날레를 장식했으며 1970년 상 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이뤄냈다.

페냐롤과 상 파울루에서의 탄탄한 입지와는 반대로 대표팀에서는 또 다른 뛰어난 라이트백 루이스 우비냐와의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주전에서 밀렸지만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비냐 대신 주전으로 나와 조국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명단에 탈락하는 시련을 겪었으나 브라질 무대에서의 우수한 활약으로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참가했다.

 

6위 후안 무히카

 


생년월일: 1943년 12월 22일
A매치 기록: 2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60년대와 70년대 남미 무대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한혈마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지구력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왼쪽 측면 전 지역을 아우르며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는데 특히 공격적인 부분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창의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공격 찬스를 만들었으며 가끔은 중앙으로 침투해 직접 슈팅을 날리기도 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보낸 무히카는 동료 루이스 우비냐와 함께 정상급 측면 수비 라인을 구축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1년에는 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까지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나시오날을 떠난 이후에는 프랑스 리그의 릴 OSC와 RC 랑스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무히카는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파블로 포를란과 합을 맞춰 대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공격진의 에이스 로차의 부상이라는 큰 악재가 있었음에도 무히카를 비롯해 우비냐, 안체타, 마토사스가 구성한 철의 포백의 수비력을 바탕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은 무히카는 통계업체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1970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5위 빅토르 디오고

 


생년월일: 1958년 4월 9일
A매치 기록: 3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80년대 중반 남미 무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양발잡이였으며 이를 이용해 측면에서 중앙으로 볼을 전달하는데 능했으며 정력적인 오버래핑으로 팀의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테크닉이 뛰어나 오버래핑 상황에서는 현란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를 뚫어내며 공간을 만들었다.

자국리그의 명문 페냐롤과 브라질의 파우메이라스에서 활약한 빅토르 디오고는 전자의 구단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2년에는 자국 리그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까지 제패하며 팀이 남미와 세계 무대를 정복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파우메이라스에서는 비록 우승컵을 들진 못했지만 뛰어난 활약으로 브라질 리그 정상급 라이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디오고는 1980년에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 대회인 문디알리토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4위 리카르도 파보니

 


생년월일: 1943년 7월 8일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4cm
주 소속팀: CA 인디펜디엔테

 

남미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프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출중한 대인 수비 능력과 공격 상황에서 우수한 킥력으로 정확한 크로스와 세트피스를 담당했으며 활동량과 투지도 대단했다.

우루과이 국적의 선수지만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5회 우승과 코파 인터 아메리카나 3회 우승, 그리고 1973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거뒀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69년 엘 그라피코 선정 1960년대 남미 최고의 레프트백 3위에 선정되었으며 2020년 아르헨티나 무대의 저명한 기자 호르헤 바라시 선정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했던 이력으로 대표팀 활약은 미미하지만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드디어 발탁되어서 활약했는데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파보니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3위 루이스 우비냐

 


생년월일: 1940년 6월 7일
A매치 기록: 3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6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라이트백으로 뛰어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해 괴롭혔으며 반 박자 빠른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견제하는데 능한 수비적인 풀백이었으나 적절한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력도 겸비했으며 주장으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자국리그의 람플라 주니오르스와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활약했던 우비냐는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71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리그는 물론 코파 아메리카와 인터컨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지 선정 남미 베스트 일레븐 및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공격진의 에이스이자 주장이었던 페드로 로차가 이탈하자 대리 주장 역할을 수행한 우비냐는 훌륭한 리더십으로 팀을 독려했으며 특히 우비냐를 비롯해 무히카, 안체타, 마토사스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해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1970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위 슈베르트 감베타

 


생년월일: 1920년 4월 14일,
A매치 기록: 3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40년대와 50년대에 이름을 날린 라이트 풀백 겸 라이트 하프로 우수한 대인 방어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마킹맨을 놓치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인해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오늘날의 포백 시스템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 역할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CA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던 감베타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10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28회의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감베타는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모두 4위 안에 들었으며 특히 1942년 대회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의 플레이메이커 지지뉴를 묶어내는 데 성공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다.

 

1위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생년월일: 1927년 5월 2일
A매치 기록: 4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우루과이 대표팀이 세 개의 별을 다는데 공헌했든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의 조카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이름을 날린 정상급 수비수로 레프트백으로 우루과이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체력과 대인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였으며 레프트 풀백과 레프트 하프에서 모두 우수한 기량을 보여줬다.

중견팀 센트랄 에스파뇰에서 활약하다가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린 안드라데는 구단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8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47 코파 아메리카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선 탄탄한 수비력으로 팀의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팀을 4강에 올려놨다. 이후 1956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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