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국가의 영웅들/우루과이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토르난테 2023. 2. 6. 14:24
728x90
728x9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우루과이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3년 2월 6일 기준입니다.

 


20위 세바스티안 코아테스

 


생년월일: 1990년 10월 7일
A매치 기록: 4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2010년대 포르투갈 리그 정상급 센터백으로 크고 육중한 피지컬을 활용한 공중볼 경합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더로 득점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강인한 신체 능력과 회복력을 바탕으로 부상이 생겨도 금방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큰 몸과는 별개로 깔끔한 수비 스킬과 우수한 수비라인 조율 능력을 보여주지만 발이 느리고 순발력이 둔한 편이라 빠른 공격수에게는 약점을 보였다.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실패했지만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2018-19 시즌 타사 데 리가와 타사 데 포르투갈 더블을 포함해 타사 데 리가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20-21 시즌에는 스포르팅 리스본의 19년 만에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수비라인의 리더로 큰 역할을 하며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LPFP 선정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마우루시오 빅토리노, 디에고 고딘을 모두 밀어내고 루가노의 파트너로 나서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2013년부터 디에고 고딘, 호세 히메네스에게 밀려나며 백업 수비수 역할을 맡아 컨페드컵 4강 및 세 번의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다.

 

19위 왈테르 올리베라

 

 

생년월일: 1952년 8월 16일
A매치 기록: 30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센터백으로 우수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대인 수비와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코너킥 상황에서 날카로운 헤더로 득점을 터트리는 능력도 뛰어났으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팀의 수비라인을 지휘했다.

자국 명문 페냐롤에서 10년간 활약하며 리그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2년에는 자국리그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연속으로 우승하며 팀의 주장으로써 트레블을 이뤄냈고 이후 브라질 무대의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활약하다가 허리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암흑기에 활약했기에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1980년에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문디알리토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팀의 우승을 경험했다.

 

18위 디에고 루가노

 

 

생년월일: 1980년 11월 2일
A매치 기록: 95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SK 페네르바체

 

악바리 정신으로 유명했으며 21세기 우루과이 축구의 약진을 이끈 센터백으로 우수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그라운드와 공중을 가리지 않고 우수한 경합 능력을 자랑했으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수비라인 지휘는 물론 우수한 라커룸 장악 능력까지 겸비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발까지 빨라 광범위한 수비라을 커버하기도 했다.

유망주 시절에 클루브 나시오날의 리그 2연패를 이끌며 주목받았던 루가노는 상 파울루로 이적해 2005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클럽 월드컵에서도 유럽 챔피언 리버풀을 상대로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해 세계 최정상에 올랐으며 2006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인 캄페오나투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남미 올해의 팀에 각각 2회 선정되었으며 터키의 페네르바체로 이적한 뒤에도 슈퍼리그 2회 우승 및 2007-08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이뤄내는 활약을 보여줬다.

루가노의 이러한 능력은 우루과이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이어졌는데 2007 코파 아메리카 4위를 시작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조국의 40년 만에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수비라인 리더로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7위 호라시오 트로체

 

 

생년월일: 1935년 2월 4일
A매치 기록: 2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60년대 우루과이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으며 센터백치고는 단신이었으나 불타오르는 투지와 강력한 집중력을 바탕으로 한 대인 마킹으로 상대 공격수를 효과적으로 괴롭혔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누리며 전성기를 맞이한 트로체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전 수비수로 맹활약하며 1959 코파 아메리카 에콰도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다,

그러나 저런 불타오루는 투지가 때로는 과하게 분출되어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는 팀의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해 서독의 주장 우베 젤러의 따귀를 때리며 퇴장당하며 팀을 수적 열세에 빠지게 했다.

 

16위 호세 히메네스

 


생년월일: 1995년 1월 20일
A매치 기록: 8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0년대 하반기와 2020년대 초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주전 수비수로 엄청난 점프력을 이용한 제공권 경합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능했으며 과감하고도 적극적인 태클과 대인마크를 보여주는 파이터형 수비수였으며 발밑 능력도 괜찮고 공격수와의 심리전에도 능했다.

시메오네 체제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같은 국적의 디에고 고딘과 함께 두줄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히메네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라는 강팀들의 틈바구니 속에도 라리가 2회 우승과 2017-18 시즌 유로파 리그 우승, 그리고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한 번도 뛰지 못했으며 라리가에서도 결장도 잦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상 이력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항전만 다가오면 귀신같이 회복했던 히메네스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월드컵 3회 출전 및 코파 아메리카 4회 출전으로 2014년 이후로 메이저 대회에서 단골로 나섰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기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활약은 뛰어나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5위 넬손 구티에레스

 


생년월일: 1962년 4월 13일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8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초년에는 빠른 스피드와 강건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대인수비로 주목받던 스토퍼였으나 원래부터 발기술이 괜찮고 경험이 쌓이면서 경기 흐름을 읽는 전술안이 한 차원 높아지며 리베로로도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그가 리베로를 맡았을 때에는 스토퍼 시절의 장점에 더해 후방에서 우수한 패싱력으로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으며 능숙한 수비라인 조율로 팀의 수비진의 리더로 활약했다.

페냐롤에서 두 차례 선수생활을 하며 전성기를 누린 구티에레스는 리그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2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이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남미를 넘어 세계 무대를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도 1986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북중미 챔피언과의 코파 인테르아메리카나에서 승리하며 우승했고 유럽 챔피언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의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무실점 승리를 이뤄내며 리버 플레이트가 유럽, 북중미, 남미 3개 대륙 통합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청소년 시절부터 주축으로 활약한 구티에레스는 1979년과 1981년 U-20 월드컵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코파 아메리카에 3회 출전해 1983년과 1987년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1986년과 1987년에 남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14위 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

 

 

생년월일: 1907년 11월 21일
A매치 기록: 1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전설적인 수비수 호세 나사치와 함께 193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의 수비진을 책임졌던 왼발잡이 수비수로 2-3-5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우수한 바디밸런스로 상대 공격수와의 경합을 즐겼으며 특히 터프하면서도 날카로운 태클로 상대를 저지하는데 능숙했다.

올림피아 몬테비데오와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린 마스체로니는 후자의 구단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중간에 유럽의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해서도 잠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나사치와 함께 수비라인을 맞춰 활약하며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3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다.

 

13위 페드로 아리스페

 


생년월일: 1900년 9월 30일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람플라 주니오르스

 

호세 나사치와 함께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의 황금기를 이끈 수비수로 2-3-5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으로 주로 활약했으며 다부진 체격과 황소와 같은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일대일 수비에 능했으며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점프력을 바탕으로 제공권 경합에도 능했다.

황금기 우루과이 대표팀의 왼쪽 지역을 수비하며 19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같은해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올림픽 2연패를 이뤄내며 우루과이의 네 개의 별 중 두 개를 따내는데 기여했으며 소속팀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도 1921년 디비시온 인터미디어 우승과 1927년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을 우승하며 중견팀의 유쾌한 반란을 주도하기도 했다.

 

12위 로베르토 마토사스

 


생년월일: 1940년 5월 11일
A매치 기록: 2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대 남미 무대 정상급 센터백으로 센터백 치고는 키가 작았지만 용수철 같은 점프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집요하게 몰아세웠으며 특히 면도날 같은 슬라이딩 태클을 활용해 상대 공격수를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페냐롤에서 데뷔한 마토사스는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61년에는 리그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1964년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최고의 스포츠지 엘 그라피코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명성을 누렸고 다시 페냐롤로 돌아와서는 인터콘티넨탈 슈퍼컵 우승에 공헌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중핵을 맡았던 마토사스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틸리오 안체타, 루이스 우비냐, 후안 무히카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하며 공격진에 부진에도 대회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이 공로로 다른 포백라인 멤버들과 함께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1970 멕시코 월드컵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되었다.

 

11위 파올로 몬테로

 


생년월일: 1971년 9월 3일
A매치 기록: 6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우루과이의 레전드 수비형 미드필더 훌리오 몬테로 카스티요의 아들이자 1990년대와 200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로 저돌적이며 불같은 성격에서 나오는 터프한 태클과 강인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에 보탬이 되었지만 승부욕이 과해 불필요한 파울을 범하며 세리에 A 통산 최다 퇴장을 기록하며 상대 선수와 서포터의 비난을 받았으며 팀을 수적 열세에 빠트리기도 했다.

세리에 A의 아탈란타와 유벤투스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후자의 소속으로 구단의 전성기를 함께하며 1996년 UEFA 슈퍼컵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시작으로 세리에 A 4회 우승,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3회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준우승을 이뤄내는 등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이뤄내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헌하며 비안코네리의 언성히어로로 불렸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몬테로는 1997년 컨페드컵 4위와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 및 2004 코파 아메리카 3위에 올랐다.

 

 

10위 에우세비오 테헤라

 


생년월일: 1922년 1월 6일
A매치 기록: 3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40년대와 50년대 남미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해 불굴의 전사라 불렸으며 강인한 투지와 용감한 수비력, 그리고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은 물론 우수한 위치선정 및 수비라인 조율 능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수비라인의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었으며 패싱력이 우수해 남미 무대 최초의 스위퍼롤 수비수로 활약했다고도 전해지며 심지어는 팔 힘도 좋아 스로인 상황에서 전방으로 멀리 던지며 아군의 공격을 돕기도 했다.

베야 비스타에서 데뷔했으며 리버 플레이트 몬테네그로를 거쳐 클루브 나시오날에 머물며 전성기를 맞이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정규리그와 아르헨티나 우승팀과 겨루는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를 포함해 총 10개의 우승컵을 들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코파 아메리카에 3회 출전해 모두 4위 안에 들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의 스위퍼로 활약하며 조국의 월드컵 우승에 기여해 ESPN 선정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54 스위스 월드컵에도 백업 멤버로 참가하며 준결승 진출을 경험했다.

 

9위 마티아스 곤살레스

 


생년월일: 1925년 8월 6일
A매치 기록: 3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CA 세로

우루과이 무대의 중소 구단이었던 CA 세로의 전설적인 수비수로 중소구단 소속의 수비수였지만 대표팀에 뽑혔을 정도로 유능한 수비수였는데 특히 흑인 특유의 탄력과 강력한 힘, 그리고 우수한 센스를 겸비한 뛰어난 일대일 대인 수비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고 월드컵 결승전과 같은 큰 무대에서 골과 다름없을 정도로 결정적인 기회를 막아내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해 철통 같은 수비력으로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마라카낭의 사자라 불렸으며 키커, 문도 에스포르티보, 그리고 ESPN 3개의 매체의 평가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활약을 인정받았고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1953년에는 3위, 1955년에는 4위에 올렸다.

 

8위 알프레도 포글리노

 


생년월일: 1892년 2월 1일
A매치 기록: 51경기 0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우루과이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2-3-5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 또는 레프트 하프로 주로 활약했으며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아울렀다고 전해지며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10여 년간 대표팀 주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14년간 활약하며 416경기에 출전한 포글리노는 정규리그 9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24회 우승했으며 특히 1915년과 1919년에는 3관왕을 이뤄내며 클루브 나시오날이 우루과이의 명문으로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포글리노는 1916년 초대 코파 아메리카를 감독 겸 주장으로 참가해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도 주장직을 역임하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추가하며 로마노, 피엔디베네, 그라딘 등과 함께 192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의 황금기에 기틀을 다졌다.

 

 

7위 다리오 페레이라

 

 

생년월일: 1956년 10월 19일
A매치 기록: 32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돈 다리오, 즉 다리오 경이라 불렸던 1980년대 브라질 전국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민첩한 순발력과 재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반 박자 빠른 슬라이딩 태클과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경합 및 헤딩 클리어링에 능했으며 잠시 공격형 미드필더 및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었기에 발밑 기술과 패싱력도 매우 뛰어난 완벽한 수비수였다.

우루과이 무대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는 기회를 잡지 못했으나 브라질의 상 파울루로 이적한 뒤 오스카르와 센터백 라인을 구성해 11년간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맹활약했으며 플라카르 선정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1975년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나 브라질 무대에서 뛰는 이유로 오랫동안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복귀해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브라질의 명감독 텔레 산타나는 그를 두고 "만약 다리오가 브라질리언이었다면 도밍구스 다 기아 바로 다음가는 브라질 축구 사상 두 번째로 뛰어난 센터백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6위 윌리암 마르티네스

 


생년월일: 1928년 1월 13일
A매치 기록: 54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50년대와 60년대 우루과이 무대에서 롱런한 센터백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192cm라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이용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20년 넘게 롱런하며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 그리고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윌리엄 마르티네스는 나시오날에서는 정규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7개의 트로피를 들었으며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도 2개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이 시점에 대표팀에도 선발되며 1950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백업 멤버로 경험했으며 이후 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꿰차며 1953 코파 아메리카 3위, 1954 스위스 월드컵 4위, 1955 코파 아메리카 4위, 그리고 1956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1955년에 입단한 페냐롤에서는 전성기를 맞이하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5연패를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12개의 트로피를 들었고 1960년에는 최초로 열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컵을 든 최초의 주장으로 이름을 남긴 마르티네스는 최초의 인터콘티넨탈컵을 든 주장 자리도 노렸으나 레알 마드리드에 밀려 아쉽게 실패했다. 1961년에도 펠레의 산투스를 꺾고 브라질 전국 무대를 평정한 파우메이라스와의 결승에서 1승 1무를 거두며 우승컵을 들며 2연패를 이뤄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우루과이, 남아메리카, 그리고 세계 무대를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어냈고 마르티네스 개인은 정상의 자리에서 팀을 떠나 중소 규모의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5위 아틸리오 안체타

 


생년월일: 1948년 7월 19일
A매치 기록: 20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상반기 남미 최고의 스토퍼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악착같은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막아냈으며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통한 제공권 경합에서도 항상 우위를 점했으며 발밑마저 우수했던 완벽한 수비수였다.

자국의 명문 클루브 나시오날과 브라질의 그레미우에서 전성기를 누린 안체타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과 197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는데 이바지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캄페오나투 가우슈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3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 올해의 선수 및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며 승승장구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브라질 무대 진출로 인해 대표팀 생활을 고작 2년밖에 하지 못했지만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로베르토 마토사스, 루이스 우비냐, 후안 무히카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해 활약하며 로차의 공백으로 빈공에 시달리던 팀의 약점을 완벽에 가깝게 극복하며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안체타 본인도 동료들과 함께 캐스트롤 인덱스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4위 디에고 고딘

 

 

생년월일: 1986년 2월 16일
A매치 기록: 16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0년대를 풍미한 대인 수비의 달인으로 굉장히 지능적인 수비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훌륭한 상황 판단 및 심판이 보지 못하게 반칙을 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제공권 능력도 수준급의 선수다.

비야레알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인테르 밀란에서 활약한 고딘은 특히 후자의 구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시메오네 체제의 두줄 수비의 핵심과도 같은 선수로 짠물 수비를 보여주며 유로파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 체제를 깨고 2013-14 시즌 로히 블랑코의 라리가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세웠으며 해당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기적같은 역전패에 희생양이 되었고 2015-16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고딘은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의 4강 진충을 이끌었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단두대 매치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16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8강에서 탈락했지만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고딘 개인은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3위 우고 데 레온

 


생년월일: 1958년 2월 27일
A매치 기록: 4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80년대 하반기 남미 최고의 리베로로 큰 키와 강건한 어깨를 활용한 몸싸움과 거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를 직접 저지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적절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공격 진영으로 볼을 운반하며 빌드업에도 크게 기여했던 공수 만능의 리베로였다.

자국 최고의 명문 클루브 나시오날과 브라질의 그레미우에서 전성기를 보낸 우고 데 레온은 전자의 클럽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브라질 전국 리그 1회 우승과 198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며 양 팀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으로 추앙받았으며 1988년에는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정복한 활약을 인정받아 1988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다.

198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중핵으로 활약한 우고 데 레온은 1980년에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문디알리토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1989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진출에도 공을 세웠다.

 

 

2위 호세 산타마리아

 


생년월일: 1929년 7월 31일
A매치 기록: 2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수비수이자 1950년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헤딩 클리어링을 자랑했으며 특히 머리로 멀리 쳐낸 공이 전방의 동료에게 오차 없이 떨어지는 묘기를 보였다.

남미에 머물던 산타마리아는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짧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을 4강에 올려놓는데 공헌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레얼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군단에서 수비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라리가 6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 마르카 평점에서 수비수 최고 평점을 받았으며 1960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위 호세 나사치

 


생년월일: 1901년 5월 24일
A매치 기록: 4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베야 비스타

 

우루과이를 넘어 축구 역사에서도 최고의 수비수 반열에 있는 선수로 당시로서는 굉장한 거구로 압도적인 힘과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었다. 그의 튼튼한 수비력에 우루과이의 유명한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X선조차 그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위대한 사령관이라 불렸다.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네 번이나 우승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공격수들을 제치고 MVP를 수상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네 번 우승했으며 1923년과 1935년, 두 번이나 MVP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소속팀이 상대적으로 약체였던 베야 비스타였으나 나사치의 맹활약으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좋은 지표를 보여줬다. 특히 1932시즌에 베야 비스타는 리그에서 35실점을 기록하던 베야 비스타가 호세 나사치가 떠난 1933 시즌엔 무려 61실점과 리그 꼴지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반면 클루브 나시오날은 1932년에 리그 3위와 34실점을 기록했지만 나사치가 이적한 1933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 27경기에서 고작 10실점만 기록하는 탄탄한 팀으로 변모한다. 이후 나사치는 나시오날에서 리그 4연패를 기록허며 화려한 커리어를 추가한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도밍고 테헤라

 


생년월일: 1899년 7월 22일
A매치 기록: 2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9cm
주 소속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아게노어 무니스

 


생년월일: 1910년 2월 2일
A매치 기록: 30경기 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후안 카를로스 곤살레스

 


생년월일: 1924년 8월 22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에두아르도 아세베도

 


생년월일: 1959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4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3m
주 소속팀: 데펜소르 스포르팅

 

 

로날드 아라우호

 

 

생년월일: 1999년 3월 7일
A매치 기록: 1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1kg
현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