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0

국가의 영웅들/우루과이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0

토르난테 2023. 2. 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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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우루과이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3년 2월 4일 기준입니다.

 


10위 로베르토 소사

 


생년월일: 1935년 6월 14일
A매치 기록: 22경기 35실점
신체조건: 키 179cm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50년대 하반기와 60년대 상반기에 우루과이 대표팀의 골문을 지켰던 수문장으로 우수한 위치선정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수비라인 조율,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골문을 수호했다.

라이벌 페냐롤의 황금기에도 그들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전성기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낸 소사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19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특히 1965-66 시즌에는 18경기에서 6실점만을 기록하는 철벽 수비를 보여주며 우승에 공헌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와 칠레의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서 보내기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59 에콰도르 코파 아메리카와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자의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으며 백업으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마수르키에비치의 백업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9위 왈테르 타이보

 


생년월일: 1931년 3월 7일
A매치 기록: 31경기 46실점
신체조건: 키 177cm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50년대 중후반에 우루과이 대표팀에의 골문을 지켰던 골키퍼로 우수한 운동신경과 높은 차원의 지능을 겸비했는데 재빠른 반사신경과 믿음직한 펀칭 능력은 물론 적절한 위치선정과 점성술사를 연상하게 하는 예측력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55년부터 1957년까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낸 것을 포함해 총 다섯 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아르헨티나의 우라칸과 우루과이의 중견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1966년에는 페냐롤에서 백업 선수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로케 마스폴리의 뒤를 이어 1955 코파 아메리카 4위와 1957 코파 아메리카 3위를 이뤄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소사와 함께 마수르키에비치의 백업 골키퍼로 참가했다.

 

8위 페르난도 알베스

 


생년월일: 1959년 9월 4일
A매치 기록: 40경기 48실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골키퍼로 빠른 반응속도를 앞세운 탄탄한 선방 능력과 우수한 발밑 기술을 바탕으로 팀의 안정적인 빌드업을 돕는 현대형 골키퍼였다.

남미 5개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알베스는 특히 페냐롤에서만 네 번이나 선수 생활을 했는데 특히 1기 시절의 활약이 발군으로 6년간 아우리네그로스에 머물면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2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 통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루돌포 로드리게스의 백업 역할을 맡았으나 1986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그가 부상으로 낙마하자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나 덴마크전 6-1 패배의 원흉이 되며 최악의 골키퍼라는 비난을 받으며 대표팀에서 입지를 상실할뻔했으나 오뚝이와 같이 일어나며 주전 자리 탈환에 성공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과 1995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7위 엔리케 바예스테로스

 


생년월일: 1905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19경기 24실점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람플라 주니오르스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후반까지 활약했던 골키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골문을 수비하는 법을 알았다고 평가받는다.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바예스테로스는 1927년 람플라 주니오르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주목받았으며 말년에는 페냐롤에서 3년간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다.

람플라 주니오르스의 우승을 이끈 덕에 주목받았던 바예스테로스는 초대 월드컵을 앞두고 주전 골키퍼 마살리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대표팀에서 낙마하자 그를 대신해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 및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35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뤄냈다.

 

6위 페르난도 무슬레라

 


생년월일: 1986년 6월 16일
A매치 기록: 133경기 135실점/ 5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갈라타사라이 SK

 

21세기 우루과이 최고의 골키퍼라 평가받는 선수로 긴 팔다리와 대단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슈퍼 세이브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페널티킥 선방에 능숙했으며 페널티킥 상황 자체에 이해도도 높아 소속팀에서는 직접 페널티킥으로 득점한 적도 있었다.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데뷔해 라치오로 이적해 활약하며 2008-0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2009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으며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한 뒤에도 쉬페르리그 5회 우승과 튀르키예 쿠파스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2011-12 시즌 쉬페르리그 올해의 골키퍼와 2016년 튀르키예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대표팀에서도 10년 넘게 주전으로 활약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 4위와 2011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각각 16강 진출과 8강 진출을 이뤄내며 디에고 포를란, 루이스 수아레스, 디에고 고딘, 에딘손 카바니 등과 함께 한없이 추락하던 우루과이 축구의 부흥을 이끌었다.

잘생긴 외모로 인해 갈라타사라이에서 심심찮게 남자 축구팀 대표 모델로 뽑혀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광고 모델로 섭외되기도 하며 갈라타사라이 여자 배구 팀에서 뛰고 있는 기무라 사오리와 같이 CF 촬영을 한 적도 있다.

 

5위 아니발 파스

 


생년월일: 1917년 5월 21일
A매치 기록: 22경기 31실점
신체조건: 키 176cm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40년대와 50년대 초반 우루과이 무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날렵한 반사신경은 물론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공중볼 경합에서 장점을 보여줬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15년간 머물며 리그 9회 우승과 아르헨티나 챔피언과 경기하는 코파 알디오에서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안드레아 마살리, 루돌포 로드리게스와 함께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다.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도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1942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 골키퍼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과거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자신의 백업이었던 로케 마스폴리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4위 루돌포 로드리게스

 


생년월일: 1956년 1월 20일
A매치 기록: 78경기 68실점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70년대 후방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남미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큰 키와 긴 팔다리, 그리고 높은 점프력을 잘 활용했으며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전진하며 거리를 좁히는 능력도 훌륭했으며 이런 능력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표범이라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과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루돌포 로드리게스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0년에는 자국리그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다. 이후 산투스로 이적해서도 뛰어난 기량을 분출하며 1984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는 산투스의 20세기 마지막 주립 리그 우승이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나갔던 로드리게스는 1980 문디알리토 우승과 1983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엘 문도가 선정하는 남미 올해의 선수 10위 안에 5회 선정되었고 1984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4위에 올랐다.

 

3위 안드레스 마샬리

 


생년월일: 1902년 7월 22일
A매치 기록: 21경기 20실점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슛 스토퍼로 키가 매우 작았으나 번뜩이는 다이빙 능력으로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훌륭하게 보완했으며 이런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팬들로부터 다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이어나갔던 마샬리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챔피언이 격돌하는 슈퍼컵 코파 알다오에서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아니발 파스, 루돌포 로드리게스와 함께 클루브 나시오날 3대 골키퍼로 칭송받았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1924 파리 올림픽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모두 우승하며 두 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뤄냈으나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이 예상되었으나 알베르토 수피치 감독이 정해놓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대표팀에서 축출되는 수모를 맛보며 월드컵 우승의 영예와 함께하지 못했다.

 

2위 로케 마스폴리

 


생년월일: 1917년 10월 12일
A매치 기록: 38경기 1골 62실점/ 9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40년대와 50년대 페냐롤과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큰 키임에도 민첩하며 반사신경까지 겸비했으며 때때로 공격에 가담해 득점포까지 터트렸던 공격형 골키퍼였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난항을 겪고 리버풀 몬테비데오를 거쳐 페냐롤에 입단한 마스폴리는 팀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하며 1949 시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토르네오 콤펜텐시아와 토르네오 데 아너를 각각 7회 우승하는데 기여하며 페냐롤 소속으로 20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골키퍼였음에도 페냐롤 소속으로 무려 20골이나 득점했다.

1945년에는 우루과이 대표팀으로도 소집된 마스폴리는 라 셀레스테 군단 소속으로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고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결승 리그 브라질전 이전까진 실수가 많았지만 사실상 결승전인 브라질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에 일조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다음 대회인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지만 매직 마자르와의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쉽게 탈락했으며 그 경기에서 힘을 다 썼는지 3.4위전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4위에 머물렀다.

 

1위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생년월일: 1945년 2월 14일
A매치 기록: 36경기 35실점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레프 야신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에도 멀리 튕겨내는 펀칭력과 괴물 같은 반사신경과 탄력적인 점프, 그리고 1대 1 상황에서의 침착한 전진 수비와 볼 컨트롤 능력까지 우수했던 완성형 골키퍼였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66 시즌에는 비록 자국 리그 우승컵을 나시오날에게 내줬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제패하며 남미와 유럽 대륙을 평정했으며 1968 시즌에는 리그 18경기에서 단 5실점만을 기록했음은 물론 987분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틀레티쿠 미네이루로 이적해 브라질 무대에 도전장을 냈으며 1971 시즌에는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스페인 무대와 콜롬비아 무대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훌륭한 활약은 이어졌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으며 8강에 진출했으나 오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독전에서 대패했다. 이후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팀을 4강에 올렸으며 마주르키에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마수르키에비치는 1969년에 아르헨티나의 스포츠 언론지 엘 그라피코로부터 1960년대 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1971년 최초의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7위에 랭크되었고 은퇴한 뒤인 1984년에는 프랑스 풋볼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6위에 랭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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