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5

국가의 영웅들/우루과이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5

토르난테 2023. 2. 1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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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우루과이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3년 2월 6일 기준입니다.

 


15위 로드리고 벤탄쿠르

 


생년월일: 1997년 6월 25일
A매치 기록: 5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발베르데와 함께 현 세대의 우루과이 중원을 이끄는 선수로 공격력에서 약점을 보이고 카드를 자주 수집하지만 중원에서 공을 간수하고 지키는 부분에 능하며 상대의 볼을 탈취한 뒤 볼을 끌지 않고 간결하게 공을 배급하고 운반하는 부분에 능한 수비형 미드필더다.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 활약하며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가능성을 보였고 이에 이탈리아의 강호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며 유벤투스에서도 첫 시즌을 제외하고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세리에 A 3연패를 이뤄냈으나 2020-21 시즌과 2021-22 시즌 전반기에 부진하며 팀 내에서 입지를 잃어가자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해 활약 중이다.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도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14위 호르헤 바리오스

 

 

생년월일: 1961년 1월 24일
A매치 기록: 60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1cm
주 소속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무려 40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나간 수비형 미드필더로 적토마에 필적하는 엄청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녔으며 시야도 넓어 팀원들에게 적절한 패스를 공급했으며 특히 강력한 카리스마로 라커룸을 아우르는 리더십으로 팀원들을 하나로 묶었다.

우루과이의 중견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데뷔해 10대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혔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으며 중간에 그리스 무대의 올림피아코스와 레바디아코스 FC에서도 활약했고 자국 무대로 돌아와서는 페냐롤에 머물며 1993년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가 다시 몬테비데오 원더러스로 돌아가 7년을 더 활약하다 은퇴하며 선수생활의 시작과 끝을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장식했다.

루벤 파스, 넬손 구티에레스 등과 함께 1979년 청소년 월드컵에서 3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이름을 날렸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며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1980 문디알리토와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장을 맡았다.

 

13위 호세 오스카르 에레라

 


생년월일: 1965년 6월 17일
A매치 기록: 57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칼리아리 칼초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활약한 수비형 미드필더이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쉴 새 없이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공수 양면에 크게 기여했으며 대지를 가르는 롱패스로 팀의 빌드업 시작점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특히 전술안이 우수하고 수비력에 강점을 보이며 센터백과 라이트백도 곧잘 소화했다.

페냐롤에서 데뷔해 리그 2연패와 1987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고 유럽 무대에서도 당대 압도적인 세계 최강의 리그 세리에 A에서도 칼리아리 소속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1993-94 시즌에는 팀의 UEFA컵 4강 진출을 이뤄냈다.

에레라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축 멤버로 활약했는데 198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및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199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다. 여담으로 디에고 고딘의 장인이다.

 

12위 오마르 카예타노

 


생년월일: 1938년 11월 8일
A매치 기록: 2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7cm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대 우루과이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팀의 살림꾼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레프트맥에서 주로 출전했으며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의 광범위한 범위를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며 투지 넘치는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를 제압했다.

1960년대 페냐롤의 황금기를 이끈 카예타노는 정규리그 9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6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데뷔 시즌인 1961 시즌에는 자국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우승을 경험했고 1966년에는 비록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레프트백으로 선발 출전해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하며 남미 대륙과 세계 무대를 평정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종종 레프트백으로 나왔던 카예타노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주전 레프트백으로 참가해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로테이션 멤버로도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승을 이뤄냈고 1970 멕시코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을 냈다.

 

11위 페데리코 발베르데

 


생년월일: 1998년 7월 22일
A매치 기록: 47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2kg
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현시대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중 하나로 강력한 체력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과 긴 다리를 활용한 태클로 상대의 볼을 빼앗는 능력은 물론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과 오프 더 볼 움직임까지 겸비한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인데 자국의 레전드 루이스 수아레즈에 의하면 스티븐 제라드를 떠올리게 하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페냐롤에서 데뷔해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를 거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임대를 다녀온 뒤 레알 마드리드 1군에 정착하며 라리가 3회 우승 및 수페르코파 에스파냐에서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한 발베르데는 유럽 무대에서도 2021-22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2023-24 시즌에도 맨체스터 시티와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2017 U-20 월드컵에서 조국의 4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실버볼을 수상했으며 성인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다.

아직 주전으로 활약한 지 5년 남짓한 정도라 기량에 비해 순위가 낮지만 추후에 많은 순위상승을 이뤄낼 가능성이 높은 선수다.

 

 

10위 알프레도 지베치

 

 

생년월일: 1894년 10월 30일
A매치 기록: 38경기 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10년대 후반부터 20년대 중반까지 활약했던 하프백으로 광활한 시야와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상대와의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하프백치고는 득점력도 제법 뛰어났음은 물론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주장으로서 라커룸을 장악하는 임무도 훌륭하게 수행했으며 팬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아이돌이라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15개의 공식전 트로피를 들었으며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16년 초대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우승한 것을 포함해 코파 아메리카 3회 우승 및 1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24 파리 올림픽에서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와 함께 중원을 이끌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9위 훌리오 몬테로 카스티요

 


생년월일: 1944년 4월 25일
A매치 기록: 4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유벤투스에서 활약한 센터백 파울로 몬테로의 아버지로 아들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을 정도로 저돌적이고 강인한 플레이에 능했으며 엄청난 지구력과 강력한 대인 마킹으로 상대를 지워냈으며 이런 거친 플레이스타일에 더해 과묵하고 딱딱한 성격으로 인해 벙어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보낸 카스티요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1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팀의 세계무대 제패를 도왔으며 1972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훌리오 몬테로 카스티요는 196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4강 진출을 이뤄냈다.

 

8위 일도 마네이로

 


생년월일: 1947년 8월 4일
A매치 기록: 3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60년대와 70년대 우루과이 무대를 풍미했던 미드필더로 명민한 원터치플레이와 양발을 고루 활용한 빠른 패스를 통해 중원을 지휘하는 중원사령관이었으며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민첩한 몸놀림을 바탕으로 한 탈압박에도 능했다.

우루과이의 두 명문에서 선수 생활의 시작 및 전성기, 그리고 끝을 누렸던 마네이로는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우루과이 프레미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1년에는 자국리그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마저 석권하며 소속팀이 남미 및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데 공헌했으며 이후 프랑스 무대의 리옹에서 잠깐 뛰다가 말년을 페냐롤에서 보내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우루과이 정규리그 7회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에서도 중요한 자원이었던 마네이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팀의 에이스 페드로 로차의 자리를 잘 메워내며 조국의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7위 훌리오 세사르 코르테스

 


생년월일: 1941년 3월 29일
A매치 기록: 30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린 남미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강철같은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흑인 특유의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의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간혹 전방으로 기습적인 킬패스를 찔러주며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린 코르테스는 1966년에 곤칼베스와 함께 중원을 이끌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도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끄는데 공헌했다.

로스 차루아스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한 코르테스는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지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도약해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6위 파블로 벵고에체아

 


생년월일: 1965년 6월 27일
A매치 기록: 4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9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를 대표하던 중원사령관으로 엘 프로페서, 즉 교수라 불렸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가진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관통하는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 그리고 정밀도 높은 중장거리 패스로 팀의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이끌었으며 킥력도 우수해 양발 중장거리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리그 중견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출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라리가의 세비야로 이적해 활약하며 5년간 라리가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 군림했다가 우루과이로 돌아왔으며 페냐롤 소속으로도 10년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은퇴한 시점에서는 페냐롤 통산 출전 2위에 올랐을 정도로 롱런했다.

벵고에체아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87 코파 아메리카와 1995 코파 아메리카에서 프란체스콜리와 함께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5위 알바로 헤스티도

 


생년월일: 1907년 5월 17일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30년대 남아메리카에서 레프트 하프로 중원에서의 센스 있는 플레이로 팀의 볼 소유를 도왔으며 기술적인 태클로 파울 없이 공만 빼내는 플레이와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 지능적인 플레이로 이름이 높았으며 리더십이 뛰어나고 착실해 페냐롤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밀리터리 스쿨에서 공부했던 이력 때문에 엘 테니엔티, 즉 중위라고 불렸지만 페어플레이를 중시했던 헤스티도는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페냐롤에서만 보냈으며 팀의 주장을 맡아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과 토르네오 콤펜텐시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총 9회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에서도 안드라데, 로렌소 페르난데스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렸던 견고한 하프백 라인을 형성해 활약했는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우승을 이뤄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해당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4위 로렌소 페르난데스

 


생년월일: 1900년 5월 20일
A매치 기록: 3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30년대 남미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센터 하프로 알바로 마사지사였던 후안 키르슈버그의 말에 따르면 마치 가로등 기둥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을 정도로 단단한 다리 근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수비력과 우수한 발기술과 패스 센스는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멘탈을 겸비했고 공격수로도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1929년 코파 아메리카 페루전에서는 페드로 세아 대신 인사이드 레프트로 출전해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의 황금기 후반에 활약했던 페르난데스는 로스 차루아스의 유니폼을 입고 코파 아메리카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소속팀 페냐롤에서는 팀의 주축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적한 첫 시즌에 주장 완장을 찼지만 이후 헤스티도에게 넘어갔음에도 아무런 불만 없이 묵묵히 부주장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헤스티도, 안드라데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렸던 견고한 하프백 라인을 형성해 활약했던 로렌소 페르난데스는 평소에 유머 감각이 전혀 없었으며 축구에만 미친 수도자 같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는 로렌소 페르난데스는 그의 사후인 2002년에 우루과이 우정사업본부에서 그를 모델로 한 우표를 제작하기도 했다.

 

 

3위 네스토르 곤칼베스

 

 

생년월일: 1936년 4월 27일
A매치 기록: 5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뛰어난 예측력을 바탕으로 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을 보였으며 우수한 태클 능력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과 정확한 패싱력을 앞세워 빌드업에도 크게 관여했으며 리베로로 플레이했을 때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페냐롤 왕조를 재창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팀의 공수 밸런스를 탄탄하게 잡았던 곤칼베스의 활약으로 인해 그가 활약하는 동안 페냐롤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에서 16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고 우루과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중 1961년과 1966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벤피카와 레알 마드리드를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CA 페냐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곤칼베스는 1966년에는 남미 무대와 세계 무대를 평가한 공을 바탕으로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들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가 선정한 남미 베스트 일레븐과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동시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곤칼베스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1957년과 1959년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1957년에 3위에 올랐으며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해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2위 옵둘리오 바렐라

 


생년월일: 1917년 9월 20일
A매치 기록: 45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당대 최고의 센터하프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강건한 피지컬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 그리고 대포알과도 같은 중거리 슈팅을 모두 갖춘 선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신력을 지녔으며 검은 우두머리라 불렸을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나 동료들을 잘 지휘했음은 물론 수비수로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군소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첫 전성기를 보내다가 1942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며 명문팀들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1943년에 페냐롤에 합류한 바렐라는 아우리네그로스에서 1949 시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20개의 트로피를 들며 맹활약했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동료들은 물론 감독도 브라질의 전력과 관중들의 기세에 눌려 수비축구를 지시하는 상황이었으며 브라질의 신문들은 모두 브라질의 우승을 점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렐라는 그 신문들에 소변을 누는 퍼포먼스를 보여줘 팀을 진정시켰으며 수비 축구를 지시하는 감독을 진정시키며 본래의 페이스대로 경기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결국 용기를 얻은 동료들에 의해 우루과이는 브라질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했고 바렐라는 대회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 이외에도 그는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한 번 우승했으며 우승한 1942년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이후에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8강 잉글랜드전에서 부상당해 준결승전에 뛰지 못했고 결국 우루과이는 매직 마자르와 접전을 펼쳤지만 바렐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장전에서 코치슈 산도르에게 멀티골을 주며 패했다. 바렐라는 사후 1999년에 IFFHS 선정 20세기 남아메리카 최고의 축구선수 13위에 올랐다.

 

1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생년월일: 1901년 11월 22일
A매치 기록: 3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당대 최고의 하프백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엄청난 운동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이를 활용해 중원과 오른쪽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라이트 하프였다.

오늘날 다니 아우베스나 마르셀루, 주앙 칸셀루가 보여주는 플레이와 유사한 플레이를 이미 100년 전에 보여줬던 안드라데는 소속팀에서는 벨라 비스타에서 데뷔해 우루과이의 양대 클럽인 나시오날과 페냐롤을 거쳤으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활약은 대표팀에서 더 빛났는데 나사치, 스카로네와 함께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고 그중 1926년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 2-2 동점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측의 완벽한 골 찬스를 몸을 던져 블로킹해 무산시키며 4-2 역전승에 공헌하며 대회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는 1954년에 템포지에서 선정한 축구사 역대 베스트 일레븐 라이트 하프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사후인 1988년에는 이탈리아 축구연맹 선정 축구사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9년에는  IFFHS 선정 20세기 남미 최고의 축구선수 8위 및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29위에 선정되었으며 2017년에는 독일의 베를린브리츠 선정 1920년대 최고의 선수 1위에 선정되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존 할리

 


생년월일: 1886년 5월 5일
A매치 기록: 17경기 0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CA 페냐롤

 

스코틀랜드 태생이나 우루과이로 귀화해 활약한 축구선수로 센터 하프로 활약하며 팀의 공수조율을 맡았으며 뛰어난 전술안과 광활한 시야, 그리고 빠르고 정확한 숏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했으며 선수 겸 감독 역할을 맡아 팀원들에게 스코틀랜드식 축구를 전파하며 우루과이 축구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CA 페냐롤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했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후배들은 코파 아메리카, 하계 올림픽, 월드컵을 가리지 않고 우승을 이뤄내며 자국 축구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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