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나귀 - 조롱을 기적으로 되갚아준 멋있는 팀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동축아썰 칼럼

나는 당나귀 - 조롱을 기적으로 되갚아준 멋있는 팀

토르난테 2020. 5. 24. 01:03
728x90
728x90

"당나귀가 하늘을 날면, 세리에 A에서 더비 매치가 일어날 것"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당나귀는 하늘을 날 수 없는 생물이다. 즉 실현 불가능하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케이스이다. 이런 말을 한 주체는 헬라스 베로나의 팬들이 자신들의 지역 라이벌인 키에보 베로나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키에보 베로나는 강호나 명문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1929년 처음 창단해 오랫동안 하부리그에 머물던 팀이었으며 1986년에 작은 제빵회사 겸 크리스마스 이벤트 회사인 팔루아니의 사장인 루카 캄페델리가 소유하면서 처음 프로팀이 된 팀이었다. 세리에 B에 처음 올라온 시즌도 1994-95 시즌이었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하부리그에서 머물렀다.

1931년 키에보 베로나 축구팀의 첫 킥오프를 앞두고 찍은 사진

반면 지역 라이벌 헬라스 베로나는 소위 세리에 칠공주에 비하면 작은 팀이었지만 세리에 A 원년멤버 출신이며 1984-85 시즌에는 한스 페터 브리겔과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이라는 특급 용병들을 앞세워 세리에 A에서 우승했던 역사도 있다.

1994-95 시즌 키에보 베로나가 승격하면서 세리에 B에서 처음 더비 매치가 이뤄졌으며 이때쯤 헬라스 베로나 팬들은 키에보 베로나의 팬들에게 "당나귀가 하늘을 나는 게 너희들이랑 우리가 세리에 A에서 베로나 더비 하는 게 더 빠르겠다."라는 의미로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2000-01 시즌 키에보 베로나는 세리에 B에서 3위를 차지하며 세리에 A로 승격한다.

 

"당나귀가 하늘을 날면 키에보 베로나가 세리에 A에 잔류할 거라고?"

 

세리에 A로 승격한 키에보 베로나를 향해 이탈리아 언론에서도 헬라스 베로나의 조롱에 빗대어 '당나귀가 하늘을 날면 키에보가 세리에 A에 잔류할 것.' 이라며 조롱했다.

사실 키에보 베로나의 현실이 그랬다. 세리에 B에서 3위로 간신히 세리에 A로 승격한 팀을 향한 언론의 시선은 냉정했다. 강등 유력 후보 1순위로 꼽혔다. 자금력이 약해 수준급의 선수단을 보유하지도 못했으며 세리에 A의 경험도 없었던 팀이다. 사실 고평가 할 여지가 없던 팀이었다.

하지만 이 노래에 대한 키에보 베로나의 대답은 매서웠다. 세리에 A 첫 경기에서 지난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인 피오렌티나를 원정에서 2-0으로 격파했다. 2라운드에는 첫 홈경기에서 볼로냐를 2-0으로 격파했다. 3 라운드 유벤투스 원정에서 3-2로 패했지만 베로나 더비까지 6승 2무 1패를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헬라스 베로나 팬들의 조롱과는 다르게 당나귀가 하늘을 날기 전에 세리에 A에서 벌어진 베로나 더비

당나귀가 날면 일어날 것이라는 세리에 A의 베로나 더비에서는 아쉽게 3-2로 졌지만 이후 키에보 베로나는 강호 인터 밀란과 라치오를 모두 격파하고 17경기 11승 2무 4패를 기록하며 전반기 리그 1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후반기에는 헬라스 베로나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며 베로나 더비에서도 이겼다. 하지만 시즌 후반부에는 얕은 선수층의 한계를 드러내며 잦은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로마 원정에서는 몬텔라에게 헤트트릭을 당하며 5-0으로 패하기도 했다. 마지막 34 라운드에서 아탈란타를 2-1로 제압한다.

34경기 14승 12무 8패 57 득점 52 실점으로 리그 5위를 차지하며 UEFA 컵에 진출하는 이변을 보여주며 자신들을 조롱한 이탈리아 언론을 제대로 비웃었으며 오랜 세월 자신들을 비웃었던 헬라스 베로나가 15위로 강등당한 상황을 제대로 비웃으며 복수할 수 있었다.

 

당나귀가 하늘을 나는 방법

 

그렇다면 키에보 베로나가 어떤 전술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을까? 이제 그 답을 해보려고 한다.

2001-02 시즌 키에보 베로나의 감독인 루이지 델 네리 감독은 4-4-2를 주 포메이션으로 사용했다.

통상적으로 기본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약팀은 강팀을 상대로 수비하는 선수의 숫자를 늘리면서 중원에서의 전개과정을 최대한 생략하고 롱 볼 축구로 변수를 만드는 플레이를 선호한다.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의 주 역할을 많이 뛰면서 수비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기는 걸 선호한다.

2001-02 시즌 키에보 베로나의 라인업, 수비 라인을 낮게 가져갔다.

델 네리의 키에보 베로나도 그랬으며 두 명의 중앙 공격수와 윙어만 공격에 가담하고 나머지 여섯 명은 수비에 치중하며 롱 패스로 공격을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측면에 발 빠른 윙어인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레프트 윙 만프레디니와 브라질 출신의 라이트 윙인 루시아노 시케이라는 빠른 발로 후방에서 레지스타 역할을 맡은 에우제니오 코리니의 롱 패스를 빠르게 받아 측면에서 크로스를 하며 장신 공격수인 베르나르도 코라디의 헤딩을 노리거나 공간 침투에 능한 마시모 마라치나가 향할 공간으로 배달하며 마무리하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롱 패스를 전개하는 코리니의 파트너 시모네 페로타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코리니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며 적극적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중앙 수비진인 로렌초 디아나와 마우리치오 디안젤로는 1994년부터 7년간 호흡을 맞춰 조직력이 좋았다. 측면 수비수들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무게추를 두는 플레이를 지향했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디안젤로와 디아나 조합의 선수카드

하지만 단점도 명확했다. 중앙 수비수들을 비롯한 키에보 베로나의 수비진은 느린 발이 약점을 잡았으며 이를 커버하기 위해 반칙으로 끊을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페널티 킥을 여섯 번이나 내주었다. 유벤투스와 로마가 단 한 번 페널티 킥을 내줬으며 인테르와 밀란은 네 번 내줬으며 6위로 키에보 베로나보다 아래로 순위를 마친 라치오도 고작 두 골만 페널티 킥으로 내줬다. 그리고 백업 선수진과 주전 선수진의 기량 차이가 심했으며 이로 인해 후반기에 체력적인 문제에 노출되며 잦은 무승부로 순위가 내려갔다.

단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키에보 베로나는 승격팀이었으며 모기업이 작은 제빵회사라서 자금력도 약한 팀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한으로 보완하며 강등 유력 후보에서 명문이자 호화로운 선수진을 구성한 강호 AC 밀란과 챔피언스리그 진출 경쟁까지 하다가 막판에 승점 1점 차로 아쉽게 실패하고 UEFA컵 진출로 갈린 케이스였다. 비록 세리에 7 공주가 자금 난으로 해체되면서 선수단 구성이 많이 바뀌면서 전반기에 조직력에서의 문제점을 노출했다지만 강등 후보로 불렸던 키에보 베로나에 비하면 상황이 나쁘진 않았다.

키에보 베로나는 자신들을 과소평가했던 언론과 명문 클럽들에게 자신들의 역량을 확실히 보여줬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당나귀"

 

키에보 베로나의 팬들은 이 시즌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시즌 이후로 헬라스 베로나의 팬들의 조롱에 "우리는 하늘을 나는 당나귀" 라며 당당하게 응수했다.

키에보 베로나 구단 측은 이 동화 같은 시즌을 기념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당나귀를 기념하기 위해 2001년 승격하자마자 구단 앰블럼에 당나귀를 넣었다. 그리고 날개 달린 당나귀를 팀의 마스코트로 삼았으며 이 날개 달린 당나귀 인형을 공식 샵에서 굿즈로 판매한다.

공식 샵에서 파는 하늘을 나는 당나귀 인형

그리고 키에보 베로나는 2005-06 시즌, 칼치오폴리로 승점이 감점된 팀들을 대신해 UEFA 챔피언스리그에도 진출하는 영광의 역사를 경험하기도 했다.

비록 2006-07 시즌 강등당했지만 한 시즌만에 승격해 2007-08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 잔류하며 좋은 시즌을 보냈으나 2018-19 시즌에 고작 2승을 하는 최악의 부진 끝에 강등당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당나귀 군단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하늘을 날며 세리에 A에 돌아올것이고 다시 기적을 이끌며 구단 역사를 새로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구단의 역사를 써내린 영웅들

여러분들도 어려운 조건으로 시작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이 하늘을 나는 당나귀 일화를 기억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노력한다면 여러분들의 앞길에도 동화 같은 현실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포기하는 순간 모든게 끝이다. 여러분도 하늘을 나는 당나귀가 되어보는 것은 어떠한가?

 

박수용의 토르난테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박수용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