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왜 마라도나와 메시 중 마라도나를 더 고평가하는이유 - (시대의 배경을 파악하고 축구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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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왜 마라도나와 메시 중 마라도나를 더 고평가하는이유 - (시대의 배경을 파악하고 축구보는 방식)

토르난테 2020. 5. 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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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다. (Comparar)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두고 비교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각자 다른 시대의 최강자들을 두고 누가 더 강한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표적으로 중국 후한 말기의 혼란기에 용장 여포와 초한쟁패기의 명장 항우를 두고 비교하기도 하며 촉의 명재상 제갈량과 전한을 세운 공신인 소하나 장량을 비교하기도 한다.

축구계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아르헨티나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즐기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메시와 마라도나, 누가 더 나은가?" 라는 주제다.

 

마라도나와 메시의 합성사진

 

1980년대를 주름잡은 마라도나와 2010년대를 주름잡은 메시는 역대 최고의 선수들 중 하나로 거론되는 선수들이다.

전 세계 사람들은 나폴리와 아르헨티나 국대에서의 고독한 에이스 마라도나와 FC 바르셀로나의 빛나는 별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빛난 별 메시를 두고 서로 더 잘한다고 갑론을박을 펼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 문제에서 만큼은 대부분 마라도나라고 답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마라도나를 굉장히 사랑하고 신으로 추앙하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2018 월드컵 아이슬란드전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메시

 

그리고 유독 메시에게는 평가가 가혹하며 국가대항전이 끝날때마다 욕하는 것도 알 것이다.

그리고 다들 마라도나를 그리워하며 메시가 마라도나보다 낫다는 주장에는 서슴없이 욕을 한다.

마라도나는 조국에 월드컵을 선물하는 데 성공했고 메시는 못해서인가? 큰 맥락으로는 맞지만 더 상세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월드컵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월드컵 우승을 하는 과정에서 잉글랜드를 꺾는 과정에서 마라도나가 맹활약한 이유가 크다.

 

잉글랜드를 상대로 골 세레머니를 하는 마라도나.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전설적인 골을 두 골이나 넣었다.

하나는 심판을 속이고 쉴턴을 농락한 신의 손이고 두 번째는 천재적인 드리블로 잉글랜드의 11명의 축구선수들을 완전히 농락한 끝에 다시 골을 넣었다.

잉글랜드의 리네커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승부를 뒤집을 수 없었고 결국 2-1로 이긴 다음에 벨기에와 서독을 연파하고 우승까지 성공하며 화룡점정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왜 그럼 아르헨티나인들은 잉글랜드에 대해 증오섞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까? 일단 4년 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보자.

 

포클랜드 전쟁 (La Guerra de las Malvinas)

 

1982년 3월에 아르헨티나 고철상들이 아르헨티나 해군 함대를 빌려 타고 영국령인 포클랜드 제도의 일부였던 사우스조지아 섬에 무단으로 상륙했다.

그리고 영국은 이에 반발했으며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 정부 측의 선제공격으로 포클랜드 전쟁이 시작했다.

 

전쟁을 준비중인 아르헨티나 군대

 

처음엔 선제공격한 아르헨티나가 우위를 점했지만 강대국인 영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은 역부족이었고 결국 6월 14일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국에게 패배한다.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도 갈티에리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언론을 통제해 자국의 승리를 발표했지만 문제는 월드컵에 참가하려 스페인으로 갔었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귀국하면서 발생한다.

이들은 정부의 말이 진실인 줄 알았으나 스페인 현지에서는 영국의 군대에게 아르헨티나의 군대가 참패하는 뉴스가 생생하게 방송되었으며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이에 우느라 경기조차 제정신으로 치르지 못하며 2차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던 사정이 있었다.

 

젠틸레는 멘탈 상황이 정상이 아닌 마라도나를 괴롭히며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갔다.

 

이들은 돌아와서 본국의 패전을 알렸으며 갈티에리는 국민들의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났으며 1983년엔 결국 군사정권 자체가 몰락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어쨌든 이들은 자신들에게 승전한 영국에게 깊은 원한을 가졌으나 정치, 경제, 군사 그 어느 면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영국의 상대가 되지 못하자 속만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20년 전인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는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간의 악연이 있었다.

 

앙굴랜드vs아르헨티나는 불합리한 판정이 많이 나온 경기였다.

 

그 악연은 서독 국적의 심판의 농간으로 전반 35분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장이자 중원의 핵인 안토니오 라틴을 언어폭력으로 퇴장시켰던 일이 있었다.

이 서독인 주심은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으나 스페인어 외에는 할 줄 몰랐던 라틴을 언어폭력이라는 되지도 않는 이유로 퇴장시킨 것이다.

격분한 라틴은 스페인어를 통역할 사람을 불러달라면서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농성했다. 그리고 영국 여왕의 이동경로인 레드카펫 위에 드러누우면서 항의했다.

이에 잉글랜드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항의하는 라틴을 경기장 밖으로 강제로 끌고 나갔으며 주장이자 중원의 핵심을 잃은 아르헨티나는 제프 허스트에게 결승골을 먹히면서 8강에서 탈락했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의 보상이라는 듯이 서독 대표팀은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인 주심의 도움을 받아 수비수 슈넬링어의 핸드볼이 퇴장은커녕 페널티 킥도 주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우루과이 측은 너무나도 쉽게 두 명이 퇴장당하면서 서독에게 4-0으로 패한 악연이 있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우승 과정에는 논란이 많았다.

 

이렇게 유럽 국가들에 농간에 의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남미가 유럽에게 사기를 당한 월드컵으로 평가받았으며 결승전에서 만난 잉글랜드와 서독의 경기마저도 오심으로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나는 막장 대회였던 것이다.

그렇게 속만 끙끙 앓던 중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폴란드를 제압한 잉글랜드와 우루과이를 제압한 아르헨티나가 본선에서 만난 것이다.

이처럼 아르헨티나인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고 있었던 일들이 포클랜드 전쟁과 함께 다시 상기되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축구에서만이라도 잉글랜드를 이겨주길 바라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도 이 경기를 바랐는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폴란드를 제압한 잉글랜드와 우루과이를 제압한 아르헨티나가 8강전에서 만난 것이다.

 

신의 손 (la mano de Dios)

 

그리고 마라도나는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조국의 패배를 축구를 통해 복수한다.

그리고 서독인 주심의 오심에 의해 패한 아픈 기억도 결승전에서도 마라도나와 부루차가의 활약으로 서독을 3-2로 격파하며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

 

1986 월드컵 우승팀 아르헨티나

 

이 1986 멕시코 월드컵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월드컵 우승이 아닌 그 이상이었던 것이었다.

축구 종가이자 축구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원수인 잉글랜드를 완전히 꺾고 우승한 특별한 월드컵이기 때문이며 그래도 축구에서 만큼은 아르헨티나가 축구 종가인 잉글랜드보다도 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영웅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상술했듯이 잉글랜드전은 득점하는 과정에서도 첫 번째 골은 잉글랜드인들을 완전히 농락하는 골이었으며 두 번째 골은 첫 번째 골을 폄하할 기회마저도 빼았아버리는 완벽한 골이었다.

 

그 유명한 신의 손의 한 장면

 

즉 득점 과정마저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원하는 최상의 과정이었던 것이며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겐 최상의 골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마 메시는 월드컵 우승에 성공한다고 해도 적어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마라도나를 절대로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저런 상징성은 단순히 축구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기 때문이다. 시기와 상대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상태에서 최상의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다. 

메시에겐 너무나 가혹한 조건이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메시도 21세기 최고의 선수가 아니겠는가?

박수용의 토르난테 -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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