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토르난테 2022. 11. 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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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11월 3일 기준입니다.

*라이문도 오르시는 이탈리아 국적으로의 활약이 대단해 이탈리아로 분류했습니다.

*엔리케 구아이타는 이탈리아 국적으로의 활약이 더 많앗지만 병역기피로 인해 이탈리아 국적을 상실했기에 아르헨티나 국적으로 기재합니다.


20위 산티아고 솔라리

 


생년월일: 1976년 10월 7일
A매치 기록: 1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윙어로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드리블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성실한 수비 가담 및 중원 싸움에도 가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레프트윙 자리에서도 토르난테 역할과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역할을 동시에 부여받아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커버 역할과 클로드 마켈렐레의 중원 싸움을 도우며 공수 밸런스 및 중원의 안정성을 위해 필수로 기용되었을 정도로 그의 높은 지능과 성실한 플레이는 높이 평가받았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3회 우승과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팀이 강등당하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는데 마드리드에서는 상술했듯 팀의 공수 밸런스를 맞춰주며 갈락티코 1기의 살림꾼 역할을 맡아 라리가 2회 우승과 2001-0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나 조금 더 창의적인 구티를 주전으로 기용하기 위해 솔라리의 입지를 좁혔으며 솔라리는 2005년에 인테르로 떠났고 이는 솔라리와 레알 마드리드 모두에게 악재로 작용했는데 마드리드는 마켈렐레에 이어 솔라리마저 나가자 공수 연결고리가 붕괴되었으며 솔라리도 인테르에서 잦은 부상으로 백업 멤버로 떨어졌고 결국 남미로 복귀했다.

솔라리 개인도 전술적으로 우수했으나 그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킬리 곤살레스와 클라우디오 로페스라는 걸출한 윙어들이 있었으며 비엘사의 성향과는 극도록 맞지 않아 대표팀의 부름을 거의 받지 못했다.

 

 

19위 막시 로드리게스

 


생년월일: 1981년 1월 2일
A매치 기록: 57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에스파뇰

2000년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다재다능한 재주꾼으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드리블링과 패싱력을 겸비해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는 부분은 물론 우수한 슈팅력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으며 헌신적인 수비 가담과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 그리고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해 좌우측 윙어는 물론 중앙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도 소화할 수 있었다.

에스파뇰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2004-05 시즌에는 에스파뇰 소속으로 37경기 15골을 기록하며 라리가 득점 7위에 올랐으며 리버풀에서는 2011-12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말년에는 데뷔했던 친정팀인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우루과이의 페냐롤 등지에서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전 멤버로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백업 멤버로는 2005 컨페드컵 준우승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18위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

 


생년월일: 1919년 5월 6일
A매치 기록: 11경기 2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40년대에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라 마키나라 불렸던 공격조합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동료들에 비해 이름값은 떨어졌지만 쉴 새 없는 스위칭 플레이와 유기적인 팀워크를 보여줬으며 날카로운 크로스와 롱 패스를 바탕으로 수많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라 마키나의 일원으로 리버 플레이트에서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보예와 경쟁하며 1945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일조했다.

 

 

17위 킬리 곤살레스

 


생년월일: 1974년 8월 4일
A매치 기록: 56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앙헬 디 마리아가 직접 밝힌 우상으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클래식 윙어로 교묘한 드리블 돌파와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는 물론 활동량이 뛰어나 공수 양면에서 높은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레프트백도 소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 동료들과의 친화력이 뛰어나 팀워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킬리 곤살레스는 레알 사라고사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발렌시아로 이적해 전성기를 발휘하며 두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2001년에는 UEFA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2001-02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나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부진하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주로 비엘사 체제에서 중용된 킬리 곤살레스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참가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4 코파 아메리카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본인이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아드리아누에게 극적인 동점골을 허용한 뒤 승부차기에서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16위 페드로 칼로미노

 

 

생년월일: 1892년 3월 13일
A매치 기록: 37경기 5골
신체조건: 불명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윙어로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지션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드리블은 물론 거친 수비에 대한 대비책으로 정지하는 속임수를 무기로 삼았으며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면서 상대 수비수에게 굴욕을 안기는 것도 서슴지 않았기에 미치광이라 불렸는데 바이시클 킥은 물론 헛다리 짚기와 넛 메그 등 다양한 기술에 능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보카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총 9번 우승하며 보카 주니어스의 시대를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19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국의 첫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두 번의 준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15위 루벤 아얄라

 


생년월일: 1950년 1월 8일
A매치 기록: 25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배 로베르토 아얄라 이전에 생쥐라 불렸던 선수로 양측면의 날개는 물론 중앙 공격수도 능숙하게 소화했으며 사이드를 가로지르는 폭발적인 질주와 날카롭게 들어오는 오른발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슈팅력도 우수했다.

아르헨티나 시절에는 산 로렌소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얄라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1972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 레프트윙으로 참가해 조국의 1차 조별 리그 통과에 공헌했다.

 

유럽 무대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는데 1975-76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76-77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크루이프, 네스켄스와 더불어 당대 라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14위 라울 베르나오

 


생년월일: 1941년 11월 5일
A매치 기록: 1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60년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라이트윙으로 오른쪽 측면에서 거칠 것 없이 질주해 미치광이라 불렸으며 이런 저돌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앞세워 우아한 플레이를 펼쳐 우측면의 시인이라고도 불렸다.

인디펜디엔테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르나오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남미 대륙에서도 펠레를 보유한 산투스와 우루과이의 양대 강호 클루브 나시오날과 페냐롤 등 쟁쟁한 상대들을 물리치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인데펜디엔테가 남미 최고의 명문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에는 나가지 못했으나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강력한 경쟁자 오마르 코르바타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을 이뤄냈다.

 

 

13위 클라우디오 카니자

 

 

생년월일: 1967년 1월 9일
A매치 기록: 50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BC 아탈란타

 

축구 역사상 가장 빨랐던 선수 중 한 명으로 육상선수 출신으로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로 이름을 날리며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스피드뿐만이 아니라 굳센 바디밸런스와 현란한 발기술, 그리고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부분에도 능해 윙어는 물론 처진 공격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으며 슈팅력도 제법 괜찮았으나 기복이 심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해 아탈란타에서 전성기를 누린 카니자는 AS 로마로 이적해 도약할했으나 1993년에 코카인을 복용한 죄로 13개월의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고 징계가 풀린 뒤 벤피카로 이적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했으나 1996년 9월에 그의 어머니가 건물 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참극이 벌어져 1996-97 시즌은 출전하지 않았으며 이후 기량이 쇠한 뒤 레인저스와 카타르 SC에서 말년을 보내는 등 클럽 커리어는 악재의 연속이었다.

카니자가 명성을 떨친건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의 공격 파트너로 맹활약했는데 16강 브라질전에서도 수세에 몰렸으나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은 카니자의 결승골로 브라질을 물리쳤으며 준결승 이탈리아전에서도 동점골을 기록해 조국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며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승을 기록하며 1990년과 1991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2위 마리오 보예

 


생년월일: 1922년 7월 30일
A매치 기록: 17경기 7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엄청난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원자인간이라 불렸으며 날카로운 슈팅 능력으로 도살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으며 측면은 물론 중앙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우루과이 출신의 바렐라와 함께 보카 주니어스의 에이스로 군림한 보예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보예 개인도 1946년에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뛰던 라 마키나의 구성원들을 제치고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이후 라싱 클루브에서도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대표팀에서도 라 마키나의 아웃사이드 라이트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치며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3연패에 기여했다.

 

11위 클라우디오 로페스

 

 

생년월일: 1974년 7월 17일
A매치 기록: 54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렸던 레프트윙으로 폭발적인 스피드와 허를 찌르는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의 골머리를 썩게 만든다고 하여 세간으로부터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날카로운 왼발 킥력으로 골문을 직접 타격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레프트윙 이외에도 처진 공격수 역할도 막힘없이 소화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데뷔해 명성을 떨친 뒤 발렌시아로 이적해 1998-99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은 물론 라리가에서도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단일 시즌 공식전 42경기 30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클라우디오 로페스는 1999-200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라치오로 이적한 뒤 2003-0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멕시코의 클럽 아메리카와 미국의 캔자스 시티 위자드와 콜로라도 래피즈에서 뛰기도 했다.

다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공격 파트너 바티스투타와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라치오에서 검증된 조합이었던 크레스포와의 페어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아쉬웠다.

 

 

10위 엔리케 구아이타

 

 

생년월일: 1953년 1월 4일
A매치 기록: 1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30년대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양 무대에서 모두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신체적으로 강인하진 못했지만 스피드가 빨랐고 기술적으로 우수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양발로 중거리 슈팅을 날려대며 원더골을 뽑아냈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로 귀화하면서 AS 로마로 이적하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과 1934-35 시즌 세리에 A 준우승과 리그 득점왕을 수상하며 검은 해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팬들의 신임을 받았으나 1936-37 시즌 세리에 A 개막을 앞두고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의 전쟁에 징병된다는 루머를 듣고 이탈리아에서 도망쳐 아르헨티나로 다시 귀화하며 라싱 클루브로 이적해 193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에서 더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일련의 행동들로 인해 이탈리아 국적을 박탈당했기에 아르헨티나 소속으로 기재한다.

 

 

9위 오스카르 마스

 


생년월일: 1946년 10월 29일
A매치 기록: 37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체구는 작았지만 굉장히 빠른 스피드와 기술적인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농락해 원숭이라고 불렸으며 오른발은 거의 쓰지 못했지만 왼발 킥력이 대단해 15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보낸 마스는 1975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시비온 득점왕 2회와 1970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에 올랐으며 레알 마드리드에 잠시 머물렀을 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마스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처진 공격수를 맡아 8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8위 앙헬 디 마리아

 


생년월일: 1988년 2월 14일
A매치 기록: 123경기 25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1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윙어로 기술적으로 우수했음은 물론 빠른 스피드와 명민한 축구 센스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와 우수한 킬패스를 활용한 찬스 메이킹에도 능했고 왕성한 활동량과 높은 전술 이해도를 활용해 메짤라 자리에서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를 아우르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벤피카에서 성장한 디마리아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첫 전성기를 누리며 2011-12 시즌에는 펩과 메시가 버티는 바르셀로나를 꺾고 라리가에서 우승하는데 일조했고 2013-1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내며 한 시즌만에 파리로 이적해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이후 리그 앙과 쿠프 드 프랑스를 각각 5회 우승했으며 2019-20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그 과정에서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과 리그앙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에 2014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과 2015년과 2016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거뒀지만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절치부심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지만 결승전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7위 레네 오우세만

 

 

생년월일: 1953년 7월 19일
A매치 기록: 5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7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했던 측면 공격수로 민첩한 몸놀림과 우수한 드리블 돌파 실력은 물론 양발 모두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어느 상황에서든 크로스와 슈팅을 날릴 수 있었기에 대표팀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는 그를 두고 "마라도나와 가린샤의 혼합체"라고 평가했다.

우수한 미드필더 미겔 앙헬 브란디시와 함께 우라칸에서 전성기를 보낸 오우세만은 1973년 전기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오우세만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1974년과 1977년에 모두 10위 안에 들었고 특히 1974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8위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3골을 득점해 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체면치례를 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베르토니와 함께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며 우승에 기여했다.

 

6위 다니엘 베르토니

 


생년월일: 1955년 3월 14일
A매치 기록: 30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측면 공격수로 우수한 잔발 테크닉 능력과 기민한 드리블 능력을 겸비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에 빈틈을 냈으며 라이벌 오우세만처럼 양발 능력이 뛰어나 적재적소에서 슈팅과 크로스를 올렸다.

베르토니는 인디펜디엔테에서 1977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후기리그를 우승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내며 1977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9위를 이뤄냈으며 유럽으로 간 뒤에도 세비야와 피오렌티나, 나폴리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큰 활약을 했던 베르토니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전자의 대회에서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5위 후안 라몬 베론

 


생년월일: 1944년 3월 17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

 

그 유명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의 아버지로 레프트윙에서 활약하며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 바이시클킥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수벨디야의 지휘 아래 1967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남미 무대에서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냈고 특히 1968년 대회 결승전에서는 파우메이라스를 상대로 1,2,3차전에 모두 득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해 유럽 무대의 조지 베스트, 드라간 자이치와 함께 1968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에스투디안테스의 황금기를 이끈 화려한 클럽 커리어와는 다르게 대표팀에서의 족적은 미미했다.

 

 

4위 펠릭스 로스타우

 


생년월일: 1922년 12월 25일
A매치 기록: 28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64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40년대 남아메리카 정상급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라 마키나라고 불렸던 리버 플레이트의 공격 조합에서 다른 동료들과의 스위칭 플레이로 유명했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상대 아웃사이드 라이트를 직접 마킹하며 수비에 가담하기도 했던 선구자였다.

로스타우는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리버 플레이트에서 보냈는데 모레노, 라블루나, 페데르네라 등과 함께 라 마키나라 불리던 환상의 공격 편대를 구성해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8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강세를 이끌며 코파 아메리카 3연패를 주전으로 이뤄내며 아르헨티나의 시대를 쓰는데 크게 공헌했다.

 

 

3위 카를로스 페우셀레

 


생년월일: 1908년 9월 13일
A매치 기록: 59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남미를 풍미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테크니컬한 드리블 실력과 대포 같은 중거리 슈팅을 겸비한 우수한 측면 공격수였다.

당대 남미 역대 최고 이적료인 1000만 페소에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며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11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며 돈값을 제대로 했다.

라 알비셀레스테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페우셀레는 1929년과 193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2위 오마르 코르바타

 

 

생년월일: 1936년 3월 11일
A매치 기록: 43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브라질의 가린샤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대답이라 불렸던 코르바타는 상대 수비를 수월하게 따돌리는 드리블 스킬과 폭발적인 가속력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슈팅력과 볼 운반 능력도 겸비한 완성형 윙어였다.

라싱 클루브와 보카 주니오스에서 각각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낸 코르바타는 콜롬비아 리그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는 등 당대 남미 무대를 평정했다.

월드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는데 특히 1957년 대회에서는 시보리, 마스치오, 안젤리요와 함께 더러운 얼굴을 한 천사들이라는 공격 조합을 결성해 상대팀의 수비 진영을 유린했다.

 

 

1위 엔리케 가르시아

 


생년월일: 1912년 11월 20일
A매치 기록: 35경기 9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왼발의 시인이라 불렸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현란한 볼 컨트롤 능력과 테크니컬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벗겨낸 뒤 중거리 슈팅을 날려 득점하던 선수였다. 오른발을 잘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시아는 "만약 내가 두 다리를 모두 사용하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면 왼쪽 다리로 그리 능숙하게 기술을 쓸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함나시아에서 데뷔해 로사리오 센트럴과 라싱 클루브에서 전성기를 보낸 가르시아는 소속팀에서는 우승 트로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실력은 확실하게 인정받아 코파 아메리카에 3회 출전해서 1937년 대회와 1941년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42년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여러 친선 대회에서도 총 12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아르헨티나의 전성시대를 대표했다.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판세리는그를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으며 펠릭스 로스타우가 팀에는 더 나았지만 엔리케 가르시아는 필드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라고 평가했으며 엔리케 가르시아 본인도 자신의 선수 시절에 자부심이 대단해 단골 카페에서 종종 스스로를 역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오스발도 엑토르 크루즈

 


생년월일: 1931년 5월 29일
A매치 기록: 2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라울 벨렌

 


생년월일: 1931년 7월 1일
A매치 기록: 3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아구스틴 발부에나

 


생년월일: 1945년 9월 1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산티아고 산타마리아

 


생년월일: 1952년 8월 22일
A매치 기록: 10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뉴웰스 올드 보이스

 

 

오스카 알베르토 오르티즈

 


생년월일: 1953년 4월 8일
A매치 기록: 2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세르히오 오마르 알미론

 


생년월일: 1958년 11월 18일
A매치 기록: 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뉴웰스 올드 보이스

 

가브리엘 칼데론

 


생년월일: 1960년 2월 7일
A매치 기록: 2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베티스

 

 

세사르 델가도

 


생년월일: 1981년 8월 18일
A매치 기록: 20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리옹

 

 

니콜라스 가이탄

 


생년월일: 1988년 2월 23일
A매치 기록: 19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에릭 라멜라

 


생년월일: 1992년 3월 4일
A매치 기록: 2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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