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5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5

토르난테 2022. 11. 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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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11월 2일 기준입니다.

 


15위 리카르도 비야

 

 

생년월일: 1952년 8월 18일
A매치 기록: 2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린 플레이메이커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정교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균열을 내며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짓기도 했으며 강건한 신체를 활용한 탈압박에도 능했다.

아르헨티나의 라싱 클루브와 잉글랜드의 토트넘 핫스퍼에서 활약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아르딜레스와 함께 아르헨티나 듀오로 이름을 날리며 1980-81 시즌 FA컵 결승전 2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3-2 승리를 이끌며 우승에 공헌해 구단 명에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대표팀에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로테이션 멤버로 참가했다.

 

14위 호세 다니엘 발렌시아

 


생년월일: 1955년 10월 3일
A매치 기록: 4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타예레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2선 미드필더로 빠른 스피드에서 나오는 높은 기동력과 정교한 볼 컨트롤은 물론 물론 강인한 부상 인내력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저런 실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화려한 스타일에 노르베르트 알론소를 제치고 마리오 켐페스의 파트너로 발탁되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소속팀 타예레스에서도 13년간 머물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13위 아리엘 오르테가

 


생년월일: 1974년 3월 4일
A매치 기록: 87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마라도나가 노쇠한 이후에 새롭게 떠오른 축구스타로 체구는 작았지만 정력적이고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드리블 돌파와 우수한 볼 컨트롤과 번뜩이는 센스를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갖춰 작은 당나귀라고 불렸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아페르투라 4회 우승과 클라우수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도 2004년 아페르투라 우승을 이뤄내며 남미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지만 유럽 무대에서의 활약은 좋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94 미국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주축 멤버로 참가했으며 1995 컨페드컵 준우승과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12위 파블로 아이마르

 


생년월일: 1979년 11월 3일
A매치 기록: 52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2000년대 초반에 두각을 나타냈던 천재적인 유망주로 한때 리오넬 메시의 우상으로 추앙받았으며 상대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날렵한 몸놀림과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예측을 불허하는 킬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통해 어릿광대, 마술사라 불렸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어린 나이에도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우승 3회를 이뤄내며 두각을 나타내 당대 라리가의 강호 발렌시아로 이적해 200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라 리가 2회 우승과 2003-04 시즌 UEFA컵 우승, 그리고 2004 UEFA 슈퍼컵에서 포르투를 꺾고 우승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2002-03 시즌에는 지단, 피구, 라울 등 전설적인 선수들을 제치고 라리가 도움왕을 수상했으며 이후에는 레알 사라고사를 거쳐 벤피카로 이적해 2009-10 시즌 프레미에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 소속으로도 베론, 리켈메와 경쟁하며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백업 멤버로도 2005 컨페드컵과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경험했다.

 

11위 호세 오마르 파스토리사

 


생년월일: 1942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1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60년대 하반기와 7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렸던 트레콰르티스타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유려한 테크닉과 패싱력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플레이메이킹뿐만이 아니라 간혹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을 정도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우수했다.

인디펜디엔테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에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2회 우승과 후기리그 1회 우승을 이뤄내며 1971년에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고 1972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어내며 인데펜디엔테를 남미 최고의 클럽으로 올려놨으며 이후에는 AS모나코로 이적해 세 시즌 연속 리그앙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파스토리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10위 에르민도 오네가

 

 

생년월일: 1940년 4월 30일
A매치 기록: 30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6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처진 공격수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팀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리버 플레이트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보카 주니어스, 라싱 클루브에 밀려 암흑기를 겪는 리버 플레이트에 남으며 구단의 암흑기를 지탱했으며 페냐롤로 이적한 뒤에는 1969년에 인터콘티넨탈컵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 브라질 축구 협회 창립 50주년 대회인 1964 타사 데 나코에스에서 조국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참여해 8강 진출을 이뤄냈다.

 

 

9위 에르네스토 그리요

 


생년월일: 1929년 10월 1일
A매치 기록: 20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형 미드필더로 양발을 모두 잘 써 정확한 슈팅과 뛰어난 전진드리블을 활용했으며 단신이었지만 신체 밸런스가 좋아 몸싸움을 잘해 상대방의 대인 마킹도 잘 떨어트렸다.

초년에는 인데펜디엔테에서 활약했는데 1956 시즌에는 득점왕에 오르는 등 뛰어난 활약에도 우승을 거두지 못해 AC 밀란으로 이적해 1958-5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서는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55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5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으나 1957 코파 아메리카 및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했다.



 

8위 움베르토 마스치오

 


생년월일: 1933년 2월 20일
A매치 기록: 18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이름을 날렸던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 명민한 드리블과 양발 모두를 사용하는 기습적인 슈팅은 물론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양발 패스에서 나오는 절륜한 플레이메이킹까지 겸비하며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라싱 클루브에서 활약하며 1957 코파 아메리카에서 오마르 시보리와 함께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렸던 선수단의 공격을 이끌며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9골을 득점하며 공동 득점왕에 올랐는데 우승의 분수령인 브라질전에서는 두 번째 골을 득점하며 3-0 대승을 이끌었고 우루과이전에서는 선제골을 포함한 멀티골을 득점하며 4-0 대승을 이끌었다.

이 대회 직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볼로냐, 아탈란타에서 활약하며 이탈리아 국적으로 잠시 활약하다가 인테르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1962-63 시즌 세리에 A 우승에 일조했고 피오렌티나를 거쳐 다시 라싱 클루브로 돌아온 뒤에는 1966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1967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었다.

 

7위 호르헤 부루차가

 


생년월일: 1962년 10월 9일
A매치 기록: 57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80년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우수한 공격 자원으로 간결한 원터치 플레이와 번뜩이는 센스와 우수한 드리블 돌파력은 물론 오프 더 볼에서의 판단력과 움직임이 대단해 조력자로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공격형 미드필더 이외에도 윙어와 처진 공격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부루차가는 인데펜디엔테와 낭트에서 활약했는데 인디펜디엔테에서는 1983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1984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우승했고 낭트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85-86 시즌 리그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득점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 발다노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루며 결승전에서 득점해 조국의 우승에 기여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6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생년월일: 1975년 3월 9일
A매치 기록: 72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이름을 날렸던 플레이메이커로 중장거리 패스에 능해 먼 지역에서도 상대 수비를 단번에 허무는 킬패스를 날렸으며 우수한 중거리 슈팅은 물론 탄탄한 체격으로 압박을 무력화시키는 능력에서도 뛰어났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론은 파르마에서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2관왕을 이뤄냈으며 라치오에서는 전성기를 이끌며 1999년 UEFA 슈퍼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내며 1999-2000 ESM 올해의 팀에 들었는데 라치오가 재정난에 허덕이자 베론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시켰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등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는 부진하다가 인테르 밀란으로 임대로 합류한 뒤에는 2005-06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연패를 이루고 고향팀 에스투디안테스로 돌아가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2회 우승과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었다.

베론은 대표팀에서도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섰으나 포지션 경쟁자 리켈메의 대두와 페케르만의 비선호로 인해 한때 대표팀에서 밀려났으나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복귀하며 리켈메와 공존에 성공해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첫 경기에서 부상당하며 아르헨티나 대표팀과의 인연을 다소 허무하게 끝냈다.

 

 

5위 후안 로만 리켈메

 

 

생년월일: 1978년 6월 24일
A매치 기록: 51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남미의 지단이라 불렸던 2000년대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드넓은 시야와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은 물론 창의적인 킬러 패스로 정확한 골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빠른 템포의 플레이가 요구되는 현대축구에서 느린 플레이를 추구해 현대 축구의 반역자, 느림의 미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커리어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리켈메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리그 1회 우승을 이뤄내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4회 수상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을 이뤄내며 그중 2001년과 2007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MVP를 수상했고 리켈메 개인도 남미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유럽 무대에서는 바르셀로나에선 실패했지만 비야레알에서는 구단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2005 컨페드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컨페드컵 실버볼을 수상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도움왕에 올랐다. 그리고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메시와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5골로 득점 2위에 오르며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로 발탁되어 금메달을 타냈으나 대표팀 감독 마라도나와의 불화로 다소 아쉽게 은퇴했다.

 

 

4위 리카르도 보치니

 


생년월일: 1954년 1월 25일
A매치 기록: 2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마라도나가 직접 밝힌 우상으로 1970~80년대 남미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뒤에도 눈이 달렸다고 평가받았을 정도로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패스 센스에서 나오는 킬패스로 인해 팬들은 그의 날카로운 킬패스를 '보치니풍의 패스'라고 불렀으며 패스뿐만이 아니라 드리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현역 은퇴 이후에 이벤트로 한 경기 뛴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 전부를 인데펜디엔테에서만 보냈으며 19년간 활약하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의 자리에 이름을 올린 보치니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포함한 4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73년 대회에서는 아약스 대신 참가한 유벤투스의 골키퍼 디노 조프를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79 코파 아메리카와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자신을 우상으로 삼았던 마라도나의 백업 선수로 활약하며 우승을 경험했다.

보치니는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10위 안에 5회 선정되었으며 1983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 3위를 기록했고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3위 노르베르토 알론소

 

 

생년월일: 1953년 1월 4일
A매치 기록: 1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70년대와 8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의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창의적인 왼발 패스와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높은 수준의 드리블은 물론 절륜한 왼발 슈팅까지 겸비했으며 오픈 플레이 상황은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우수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선수생활 대부분을 보내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5년과 1979년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석권했으며 198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연속 우승을 이끌기도 했으며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7등 안에 세 번 들어 197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와 카를로스 빌라르도는 서로 다른 축구를 추구했음에도 둘 다 알론소를 배제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교체 출전으로 3경기에 출전한 게 메이저 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전부였다.

 

 

2위 안토니오 사스트레

 

 

생년월일: 1911년 4월 27일
A매치 기록: 3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3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드리블과 패스에 능하며 이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후대의 많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지며 하프백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사스트레는 자국 리그의 인데펜디엔테와 브라질 리그인 상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아르네시오 에리코, 비센테 데 라 마타와 함께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2연패는 물론 코파 이바라구렌, 코파 알다오에서 2연패라는 성과를 냈으며 상파울루에서는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던 사스트레는 라 알비셀레스테가 참가한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모두 주전으로 나와서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1930년대 하반기와 4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1위 디에고 마라도나

 


생년월일: 1960년 10월 30일
A매치 기록: 91경기 34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넘어 스포츠 스타이며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을 정도로 자국에서 사랑을 받았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리더십마저 겸비해 동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구단 보드진과 협상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 이미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으며 보카 주니오스의 1981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세리에 A 중하위권 나폴리에 가서는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북부의 전통 강호를 제치고 세리에 A 2회 우승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 더블을 달성했으며 1988-89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으며 패배에 익숙하던 나폴리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다.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는 클럽 활약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네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 유니폼을 입었으며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5골 5도움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단일 대회 역대 최고의 활약으로 평가받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무뎌진 대표팀을 이끌고도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여섯번 수상했으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득점왕을 5회 수상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고 1986년과 1987년에는 옹즈도르를 수상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카를로스 바빙톤

 


생년월일: 1949년 9월 20일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엔리케 차사레타

 


생년월일: 1947년 7월 29일
A매치 기록: 1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산 로렌조

 

마르셀로 트로비아니

 


생년월일: 1955년 2월 17일
A매치 기록: 1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마르셀로 가야르도

 


생년월일: 1976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44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로드리고 데 파울

 

 

생년월일: 1994년 5월 24일
A매치 기록: 4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우디네세 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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