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토르난테 2022. 10. 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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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10월 31일 기준입니다.

 


20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생년월일: 1972년 3월 2일
A매치 기록: 20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에스파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로 발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신체 밸런스와 점프력을 겸비해 제공권 경합에 능했으며 뛰어난 리더십에서 나오는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라커룸의 리더로 팀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우수한 주장이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과 1992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았으며 이후 에스파뇰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잠시 머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오웬의 헐리웃 액션의 피해자로 베컴에게 페널티킥을 헌납했는데 오심으로 판명 났음에도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대표팀에서 물러난 비운의 선수였다.

 

19위 가브리엘 밀리토

 


생년월일: 1980년 9월 7일
A매치 기록: 4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사라고사

 

2000년대 중반에 활약한 아르헨티나 국적의 수비수로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과 패싱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해 엘 마리스칼, 즉 총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으나 바르셀로나 이적 이후 부상이 심해 커리어를 이어나가는데 차질을 빚었다.

인데펜디엔테의 2002 시즌 아페르투라 우승을 이끌며 그 해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와 남미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레알 사라고사에서 전성기를 맞아 2003-04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2004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6-07 시즌에는 사라고사의 라리가 6위를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바르셀로나 입단 이후 부상이 심해지며 2008-09 시즌을 통째로 날렸으며 이후에는 백업 선수로 라리가 2회 우승과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인데펜디엔테로 돌아가서 말년을 보내고 은퇴했다.

대표팀에서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백업이었으며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사무엘의 부상을 틈타 주장으로 나서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으나 결승전에서 브라질에게 3-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8위 마르틴 데미첼리스

 

 

생년월일: 1980년 12월 20일
A매치 기록: 51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00년대 분데스리가와 2010년대 라리가 및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수비수로 파워풀한 태클이나 우수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몸을 직접 부딪히는 수비에 강점이 있었으며 패싱력도 좋았지만 반사신경이 둔하고 유소년 시절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스피드가 느렸으며 다소 기복이 심해 안정성에선 떨어졌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클라우수라 2회 우승을 달성해 주목받아 바이에른 뮌헨으로 입단했으며 바이에른에서도 분데스리가와 DFB 포칼 더블 우승을 네 번이나 했으며 2007-08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09-1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루니를 완벽하게 막아내며 결승 진출에도 공헌했으며 말라가에서는 수비라인의 리더로 2011-12 시즌 라리가 4위와 20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2013-14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나 이후 폼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최악의 부진을 경험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 수비라인을 이끌며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달성했으며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오타멘디와 함께 준우승을 이뤄냈다.

 

17위 루이스 갈반

 


생년월일: 1948년 2월 24일
A매치 기록: 3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타예레스

 

197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를 빛낸 단신의 스토퍼로 키는 작았지만 점프력이 뛰어나 제공권에 약점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했다.

중위권 수준의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에서 전성기를 보낸 갈반은 대표팀에서는 파사레야와 찰떡궁합을 구사하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함께 수비라인을 조합해 활약했다.

 

16위 니콜라스 오타멘디

 

 

생년월일: 1988년 2월 12일
A매치 기록: 92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하반기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핵심 수비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큰 머리와 탄력적인 점프력을 활용한 제공권 경합에 강점을 드러냈으며 한 박자 빠른 예측력과 타고난 운동능력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데 능했으나 기복이 심하고 카드를 많이 받아 안정감에서는 비판을 받았다.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2009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클라우수라 우승을 이끌며 남미 올해의 팀에 들어 주먹을 받았으며 포르투에서 프리메이라 리가 3연패를 이끌었고 발렌시아에서는 무스타피와 함께 뛰어난 수비를 보여주며 2014-15 시즌 라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과 리그컵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7-18 시즌 PFA 올해의 팀에 들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쭉 백업으로 나서다가 사무엘의 부상과 구티에레스의 부진으로 주전 라이트백으로 도약했으나 8강 독일전에서 부진하며 많은 비판을 받으며 대표팀에서 멀어졌지만 2015 코파 아메리카부터 다시 주전으로 도약하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승에 기여했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부진하며 월드컵 징크스는 깨지 못했다.

 

15위 호세 루이스 브라운

 


생년월일: 1956년 1월 10일
A매치 기록: 3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


198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를 대표하는 리베로로 공격력이 뛰어나진 못했지만 안정적인 커버 능력과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실속파 수비수였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라운은 강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982 시즌 전기 리그와 1983 시즌 후기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식중독과 부상으로 벤치를 지킨 다니엘 파사레야를 대신해 수비라인을 지휘하며 조국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이탈리아 언론 라 스템파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3개 대회에 출전했다.

 

14위 엔소 트로세로

 


생년월일: 1953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2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활약한 수비수로 경기장에서 항상 강인한 정신력을 잃지 않아 바이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공격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어 수비수임에도 커리어 통산 70골을 넘게 득점했다.

인데펜디엔테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4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1년에는 마라도나를 제치고 엘 그라피코 선정 아르헨티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79-80 시즌에는 프랑스의 낭트로 임대가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동년배의 파사레야와 그의 최고의 파트너 갈반에게 밀려서 중용받지 못했다.

 

13위 라파엘 알브레히트

 


생년월일: 1941년 8월 23일
A매치 기록: 39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산 로렌조

 

196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정상급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실수 없기로 정평난 맨마킹과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우수한 리더십은 물론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높은 차원의 전술안을 겸비해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막힘없이 소화했으며 페널티킥을 굉장히 잘 차 아직까지도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 페널티킥 잘 차는 사람의 대명사로 평가받는다.

에스투디안테스와 산 로렌조에서 전성기를 맞아 후자의 클럽에서는 1968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를 우승했으며 이후 멕시코로 건너가서는 클루브 레온의 코파 멕시코 2연패를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데뷔한 이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63 코파 아메리카 3위와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거뒀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페르푸모, 페레이로, 마르솔리니와 함께 견고한 수비라인을 구성하며 조국의 8강 진출에 공헌했다.

 

12위 호르헤 그리파

 


생년월일: 1935년 5월 7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60년대 라리가 정상급 수비수 중 하나로 스피드가 빠르고 위치 선정도 우수해 영리하면서도 용감한 수비로 이름을 날렸으며 수비적인 부분 이외에도 발밑 능력도 우수해 패스로 빌드업을 하는 것은 물론 직접 드리블로 공격에 가담하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 부분에서도 능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끌며 10년간 활약했으며 그 기간 동안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과 1961-6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은 물론 1965-66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3-64 시즌과 1964-65 시즌에는 마르카 선정 라 리가 최우수 센터백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스페인에서 오래 활약했기에 당시 시대 상황상 아르헨티나 대표팀에는 거의 소집되지 못했지만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활약하던 시절인 1959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펠레의 브라질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을 세웠다.

 

11위 호세 라모스 델가도

 

 

생년월일: 1935년 8월 25일
A매치 기록: 2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1960년대 남미 무대 정상급 수비수로 까무잡잡한 피부로 검은 녀석이란 불명으로 불렸으며 엄격한 자기 관리 능력과 훌륭한 정신력에서 나오는 강인한 육체와 집중력을 겸비했다.

리버 플레이트와 반필드에서 아르헨티나 정상급 수비수로 올랐으며 1967년에는 브라질 무대의 산투스로 이적해 활약하며 펠레,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클로두아우두와 함께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8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와 인터콘티넨탈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다.

델가도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는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브라질 축구 연맹 창립 50주년 기념 대회인 타사 데 나소에스에서 브라질, 포르투갈, 잉글랜드를 상대로 3전 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이뤄냈다.

 

 

10위 오스발도 피아차

 


생년월일: 1947년 4월 6일
A매치 기록: 1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생테티엔

1970년대 프랑스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아르헨티나의 월드클래스 리베로로 준수한 발밑 기술과 기습적인 공격 가담은 물론 터프한 몸싸움과 정력적인 활동량까지 겸비하며 스토퍼로서도 우수한 면모를 보이며 기관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생테티엔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리그앙 3연패와 쿠프 드 프랑스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1979년에는 자국 무대인 벨레스 사르스필드로 돌아와 활약했다.

다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약해 대표팀 소집이 어려워 메이저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9위 루도비코 비도글리오

 


생년월일: 1900년 2월 5일
A매치 기록: 34경기 0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2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초년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였던 수비수로 빠른 스피드와 높은 수준의 기술을 앞세운 화려한 수비 스타일로 이름을 날렸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0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2회 우승과 3회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이뤄냈으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재경기 끝에 우루과이를 넘지 못하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8위 로베르토 센시니

 

 

생년월일: 1966년 10월 12일
A매치 기록: 6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파르마

 

1990년대에 이름을 날린 다재다능한 수비자원으로 뛰어난 태클 기술과 적절한 위치선정, 그리고 부상을 견디는 강력한 정신력을 겸비했으며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주 포지션인 센터백 이외에도 측면 수비수와 3선 미드필더는 물론 측면 미드필더도 막힘없이 소화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1987-88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끌어 주목을 받아 당대 최고의 리그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했으며 파르마로 이적한 뒤에 전성기를 누리며 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를 각각 2회 우승했으며 잠시 머문 라치오에서도 백업이지만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경험했고 다시 우디네세로 돌아가 불혹의 나이에도 주축으로 활약한 뒤 은퇴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89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해서 3위에 오르는데 기여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으나 결승전에서 클린스만한테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헌납했고 그 페널티킥을 브레메가 성공시키며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이력이 있으며 이후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7위 호세 살로몬

 


생년월일: 1916년 7월 9일
A매치 기록: 4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40년대 상반기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수비수로 날카로운 태클과 강력한 정신력을 통한 뛰어난 대인 마킹 능력은 물론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능력에도 능했던 수비라인의 리더였다. 

라싱 클루브에서 이름을 날린 살로몬은 대표팀에서도 주장이자 핵심 수비수로서 라 마키나라 불렸던 공격진의 뒤를 잘 받쳐주며 코파 아메리카 3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946년에 절정의 기량을 누리던 살로몬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자이르 다 호사의 살인태클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살로몬은 오랜 기간 재활해야 하는 부상을 당해 대표팀을 떠났으며 그렇지 않아도 월드컵 개최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관계는 살로몬의 부상을 기점으로 더욱 심해지기에 이른다.

 

6위 왈테르 사무엘

 

 

생년월일: 1978년 3월 23일
A매치 기록: 5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한 센터백으로 강건한 어깨와 용수철이 연상되는 점프력을 지녔으며 벽이라 불렸을 정도로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1999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냈으며 AS 로마로 이적해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1-02 시즌과 2003-04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활약을 펼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마드리드에서는 부진한 활약을 펼쳐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해 세리에 A 5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9-1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2010년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기본적으로는 주전이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5위 페드로 델라차

 


생년월일: 1926년 7월 9일
A매치 기록: 3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50년대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센터백으로 강인한 정신력과 견고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으며 센터백은 물론 라이트백도 막힘없이 소화했고 리더십이 뛰어나 주장으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킬메스 AC와 라싱 클루브에서 활약하며 후자의 클럽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58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으며 말년에는 멕시코의 클루브 네칵사에서 보내며 1959-60 시즌 코파 멕시코 우승에 기여했다.

대표팀에서도 주전 센터백이자 주장으로 활약하며 1955 코파 아메리카와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은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후세에도 회자되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4위 로베르토 아얄라

 


생년월일: 1973년 4월 14일
A매치 기록: 115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2000년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키는 작았지만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교활한 수비 지능과 태클로 악명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생쥐라 불렸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인 아페르투라를 우승해 남미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나폴리와 AC 밀란을 거쳐 발렌시아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등극하며 박쥐군단의 황금기를 지휘한 아얄라는 라리가 2회 우승과 2003-04 시즌에는 라리가에 이어 UEFA컵까지 우승했으며 2000-01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해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2000-01 시즌에는 라리가 올해의 수비수상을 받았으며 2003-04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그의 시대에 라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대표팀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수비의 핵으로 활약한 아얄라는 코파 아메리카 4회 출전해서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세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올림픽에서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금메달의 영예를 누렸다.

 

3위 오스카 루제리

 


생년월일: 1962년 1월 26일
A매치 기록: 9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의 양대 명문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양 팀에서 모두 활약한 파이터형 수비수로 특히 공중볼 경합에 능해 큰 머리라 불렸다.

보카 주니어스의 성골 유스였으나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 보카 주니어스 팬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적한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1986년에 리그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우승했고 스페인 무대로 옮겨 로그로네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1988-89 시즌 돈 발롱 선정 라리가 MVP를 수상했으며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대표팀에서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수바의 핵으로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1년과 1993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철벽과도 같은 수비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91년에는 우수한 활약을 펼쳐 남미 올해의 선수상과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위 로베르토 페르푸모

 


생년월일: 1942년 10월 3일
A매치 기록: 3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60년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사령관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수비 라인 지휘 능력과 적절한 커버플레이, 그리고 수많은 공격수를 좌절시킨 대인 수비 능력을 모두 겸비했다.

라싱 클루브와 크루제이루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1966 시즌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1967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크루제이루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3연패에 공헌했으며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파사레야와 발을 맞추며 1975 시즌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더블 우승과 1977 시즌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과 1974년 서독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선 8강에서 잉글랜드에게 석연치 않았던 판정으로 주장 라틴이 퇴장당하며 아쉽게 석패하기도 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8강 2차 조별리그에 진출했다.

 

1위 다니엘 파사레야

 


생년월일: 1953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70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완벽한 수비 능력과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그리고 강력한 킥력을 활용해 득점과 찬스 메이킹마저 담당했으며 173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제공권 장악 능력이 오히려 강점에 속하는 만능 디펜더로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리버 플레이트와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파사레야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 시즌과 1979 시즌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고 1976년에는 35경기 24골이라는 공격수라 해도 믿을 득점력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피오렌티나에서는 마지막 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수비수임에도 무려 11골이나 득점하며 마테라치가 갱신하기 전까지 세리에 A 수비수 시즌 최다골을 기록했으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2위에 2회 올랐다.

파사레야는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도 위대한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는데 다소 논란이 많은 대회지만 주장으로써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우승을 차지했고 개인적으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었지만 대회 직전 식중독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벤치로 내려가는 비극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월드컵 2회 우승이라는 영예를 누렸으며 은퇴 이후 2015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페르난도 파테르노스터

 


생년월일: 1903년 5월 24일
A매치 기록: 1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페데리코 사키

 


생년월일: 1936년 9월 4일
A매치 기록: 1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후안 시몬

 


생년월일: 1960년 3월 2일
A매치 기록: 1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에세키엘 가라이

 


생년월일: 1986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3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크리스티안 로메로

 


생년월일: 1998년 4월 27일
A매치 기록: 1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현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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