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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용의 스타플레이어 열전 5편- '발칸의 지니어스' 데얀 사비체비치

토르난테 2021. 3. 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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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지니어스' 데얀 사비체비치, 그는 누구일까?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이름: 데얀 사비체비치

출생년도: 1966년 9월 15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68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라이트 윙, 레프트 윙

 


1. 유고슬라비아를 넘어 유럽을 제패하다.

 

사비체비치는 1966년에 지금의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인 티토그라드에서 태어났다.

길거리에서 풋살을 즐기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인 15살인 1981년에 OFK 티토그라드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아 1부 리그에서 활약하는 FK 부두치노스트의 유소년 팀으로 이적했다.

부두치노스트 시절 사비체비치

그리고 사비체비치는 1982-83 시즌을 앞두고 1군 무대에 데뷔했다. 그러나 팀은 강등을 간신히 피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1984-85 시즌에는 팀의 레전드 안테 미로체비치와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네 시즌 간 활약했으며 1985-86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10골을 넣으며 생애 최초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으며 1986-87 시즌에는 강등권이던 팀을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7위까지 올려놓았다. 이후 1987-88 시즌이 지나고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했다.

사실 이전에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유소년 계약이 만료되는 사비체비치를 노렸으나 부두치노스트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부두치노스트와 계약했었으며 그에게 돈을 투자하기 부담스러웠던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이 당시에는 영입을 철회했었다.

그 이후 사비체비치는 리그 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오르며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도 소집되는 사비체비치가 필요했던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예전의 기억은 잊고 그를 영입해 유럽 무대 도전을 준비했다.

1988-89 시즌 사비체비치는 군에 입대했는데 문제는 군인들의 팀은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최대 라이벌인 파르티잔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비체비치는 유럽 무대와 국가대표팀으로만 활약할 수 있었다. 그 시즌에 유러피언 컵 결기에서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그림 같은 왼발 로빙 패스로 바레시가 이끄는 수비진을 넘겨 스토이코비치의 득점을 도왔으며 2차전에서는 자신이 직접 득점했으나 짙은 안개로 인해 경기가 중도에 취소되었고 다음날 재경기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축구협회는 계속해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그것이 성공해 1989-90 시즌부터는 축구 선수들이 군 복무를 하면서도 클럽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

사비체비치는 1989-90 시즌 리그와 유고슬라비아 컵을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사비체비치도 리그에서 10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리그에서는 2위 디나모 자그레브와 승점 19점 차이로 압도적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멤버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했다.

1990 월드컵 사비체비치 카드

부푼 꿈을 이끌고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 멤버로 참가했으나 첫 경기 서독전에서 4-1로 대패했으며 공격수로 출전한 사비체비치도 위르겐 콜러와 부흐발트의 철벽 수비에 막히며 부진하다가 55분에 교체되었다. 이후 콜롬비아전과 아랍에미리트전에서는 벤치를 지켰으나 팀이 두 팀을 모두 이기며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도 사비세비치는 교체 출전에 그쳤으며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교체 출전했으나 팀이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1990-91 시즌에도 역시 승점 79점으로 66점의 디나모 자그레브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우승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그라스호퍼와 레인져스, 그리고 디나모 드레스덴을 차례로 꺾으며 유러피언 컵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상대는 독일의 강호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즈베즈다의 홈에서 볼파르트에게 선제골을 먹히며 끌려갔지만 판체프가 동점골을 넣었고 사비체비치 자신은 역전골을 넣으며 1차전에서 귀중한 승리를 거뒀으며 2차전에서도 2-2로 비기며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에선 옛 팀 동료 스토이코비치가 뛰는 마르세유를 만났다. 마르세유와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서로 약점을 공략하지 못하고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리게 되며 승부차기에서 마르세유를 이기고 우승하게 된다.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한 츠르베나 즈베즈다, 하지만 멤버들은 내전으로 해체된다.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은 사비체비치는 199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마테우스, 판체프와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으며 올해의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체육인에 선정되었다.

1991-92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유러피언 컵 4강에 진출한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은 유로 예선도 돌파하여 유로에 진출한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부터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보스니아의 독립 문제로 내전이 벌어졌으며 이 대회에 내전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유고슬라비아를 대신 참가한 덴마크가 우승을 거머쥐면서 사비체비치와 유고슬라비아의 선수들은 갈라져 싸우는 조국에 한탄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들은 해외로 떠나게 된다.

 

FK Buducnost

1983 ~ 1988
130 Apps / 36 Goal

 

FK Crvena Zvezda

1988 ~ 1992
115 Apps / 41 Goal

 


2. 당대 최고의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에 도전하다.

 

사비체비치는 내전으로 황폐화된 조국을 떠났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리그인 세리에에 도전장을 내민다.

사비체비치를 원한 팀은 AC 밀란이었다. 밀란의 구단주 베를루스코니는 그의 열혈팬이었으며 감독인 카펠로의 의사가 아닌 본인의 의사로 그를 영입했다.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하지만 그는 카펠로가 중요시 여기는 압박 축구를 위한 수비력과 활동량이 부족했으며 그런 이유로 공격수 자리에서는 루드 굴리트와 반 바스텐에 밀렸으며 윙어에서도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던 도나도니나 에바니, 그리고 보반에게 밀려나며 리그 10경기 4골과 공식 대회 17경기 7골 만을 기록했다.

루드 굴리트가 밀란을 떠나 삼프도리아로 임대되었으며 마르코 반 바스텐의 부상으로 결장하는 빈도가 심해졌음에도 다니엘레 마사로에게 선발 순위에서 밀리며 리그에서 20경기에 출전했으며 단 한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밀란은 경악할만한 수비력으로 리그에서 36 득점이라는 득점난 속에서도 15 실점이라는 기가 막힌 수비력을 보여주며 우승했다.

리그에서는 중용받지 못했음에도 사비체비치는 카펠로의 비밀병기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카펠로는 그를 챔피언스리그에서 중용했다.

특히 1993-94 시즌 결승전에서는 마사로와 함께 투 톱을 구성해 출전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요한 크루이프가 만든 팀이 완성 단계에 놓이며 라 리가에서 4연패를 기록했으며 챔피언스리그 개편 이전 마지막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했던 당대 최고의 팀 중 하나였으며 결승전을 앞두고 전력 누수도 없었다. 미카엘 라우드롭이 크루이프와의 불화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을 제외하면 결장하는 선수도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 밀란은 반 바스텐이 결장했으며 외국인 공격수들은 부진했고 중앙 수비수인 프랑코 바레시와 코스타쿠르타라는 중앙 수비 조합이 결장해 백업 수비수 갈리와 측면 수비수 말디니가 중앙 수비 라인을 구축하던 상황이었다.

밀란은 수비적인 축구를 한다며 자신들이 호마리우를 영입하는 동안 밀란은 드사이를 영입했다며 얕봤던 크루이프를 상대로 카펠로는 사비체비치라는 공격적인 카드를 냈으며 이 카드는 적중해 사비체비치는 마사로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중원은 드사이와 알베르티니에 의해 꽁꽁 묶이며 효율적인 축구를 하지 못했다.

마사로의 추가골로 2-0으로 앞서 나갔으며 사비체비치는 후반 시작 2분 뒤에 세르지를 압박해 볼을 탈취하고 그림 같은 칩슛으로 수비사레타를 농락하며 득점에 성공해 3-0으로 벌렸으며 크루이프에 의해 언급된 드사이까지 추가골을 넣으며 4-0으로 바르셀로나를 완파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밀란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카펠로는 사비체비치를 중요한 선수로 중용하지는 않았으며 사비체비치는 밀란에서 1997-98 시즌까지 머물며 로테이션 멤버에 머물렀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뒤,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유고슬라비아 대표로 참가했지만 대부분 벤치에 앉아있었으며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미국전과 16강전 네덜란드전에 교체로 출전했지만 팀에 큰 기여를 하지는 못했으며 16강 탈락을 지켜봐야만 했다.

월드컵 이후 밀란과의 계약을 종료했으며 잠시 친정팀인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머물다가 백업 멤버로 전락하자 오스트리아의 라피드 빈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한 많은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AC Milan

1992 ~ 1998
144 Apps / 35 Goal

 

FK Crvena Zvezda

1998 ~ 1999
3 Apps / 0 Goal

 

Yugoslavia National team

1986 ~ 1999
56 Apps / 19 Goal

 

Rapid Wien

1999 ~ 2001
54 Apps / 20 Goal

 


3. 그의 플레이 스타일

 

'고전적인 판타지스타'

 

사비체비치는 훌륭한 볼 컨트롤과 정교한 퍼스트 터치, 그리고 당대 최고의 드리블러라 불리던 환상적인 드리블을 앞세운 환상적인 테크닉과 강력한 왼발 킥력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공격수였다.

뛰어난 테크닉과 페인팅으로 상대 수비수의 압박을 벗겨내는 탈압박 능력에도 뛰어났으며 특유의 빠른 판단력과 날렵한 몸놀림과 가속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수의 예측에서 벗어난 플레이를 자주 했으며 훌륭한 크로스 실력과 왼발만큼은 아니어도 오른발도 잘 썼기에 양 측면 윙어로도 기용되었으며 탁월한 시야를 앞세워 상대 진영을 무너트리는 킬 패스로 아군 스트라이커를 지원하는 능력도 우수했다.

다만 다른 판타지스타들과 유사하게 빠르게 압박하며 수비에 가담하는 능력이나 활동량에는 약점이 있었으며 이 점이 당시 밀란의 감독 카펠로가 사비체비치를 중용하지 않아서 더 높은 커리어를 쌓지는 못했다.

 


4. 수상 이력

 

클럽

 

1989-90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1989-90 시즌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
1990-91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1991년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91-92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1992-93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993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93-94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4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94년 유러피언 슈퍼컵 우승
1995-96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998-99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1부 리그 우승

 

개인 수상

 

1991년 발롱도르 2위
1991년 올해의 유고슬라비아 최우수 체육인
1991년 츠르베나 즈베즈다 최고의 체육인
1995년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상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여섯 번째 별
AC 밀란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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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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