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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스타플레이어 열전 3편 - '보루센의 푸스발 고트' 위르겐 콜러

토르난테 2021. 2. 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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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센의 푸스발 고트' 위르겐 콜러, 그는 누구인가?

 

출처: 에펨네이션 유저 법정스님의 소유

 

이름: 위르겐 콜러

출생년도: 1965년 10월 6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7kg

포지션: 센터 백, 수비형 미드필더


1. 서독 최강의 스토퍼로 성장하다.

 

1965년 10월 6일에 독일의 람브스하임에서 태어난 위르겐 콜러는 지역의 TB 얀 람브스하임에서 유소년 경력을 시작했다가 만하임 지역에 있는 발트호프 만하임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발프호프 만하임에서 1983년에 데뷔해 1차 저지선에서 대인 마킹을 하며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괴롭히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데뷔 2년 차인 1984-85 시즌부터는 26경기나 뛰며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팀이 분데스리가에서 6위를 기록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86년에는 독일 국가 대표팀에서 은퇴한 칼하인츠 푀르스터와 한스 페터 브리겔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발탁되기 시작했다.

이후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1986-87 시즌까지 활약했으며 이 시즌부터 독일을 대표하는 수비수로 성장하게 되는데 전반기에 키커 랑리스테에서 1986-87 시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리그 정상급으로 성장하며 키커 랑리스테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라는 의미의 "Im weiteren Kreis" 등급의 포지션 랭킹 2위라는 뜻의 K-2를 받았다.

그리고 1986-87 시즌 후반기부터 그는 스토퍼로 기용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기량이 만개해 팀은 14위로 강등을 겨우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콜러의 개인 활약은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인정받아 국제적인 수준이라고 불리는 "Internationale Klasse" 등급과 포지션에서 리그 내 랭킹 1위라는 뜻의 IK-1를 받으며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토퍼로 자리 잡는다.

 

만하임의 콜러와 위어딩겐의 디트마어 클링거


이후 분데스리가의 강호 쾰른으로 이적했다. 쾰른은 팀의 고참 수비수이자 레전드 파울 스타일너가 스토퍼에서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꾸자 그의 파트너로 콜러를 낙점했으며 결국 영입에 성공한다.

쾰른에서도 위르겐 콜러는 분데스리가 정상급 수비수로 군림했으며 1987-88 시즌 쾰른을 분데스리가 3위로 올려놓았으며 랑리스테에서도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IK-1을 받는 데 성공하며 리그 최정상급 스토퍼로 군림했으며 이는 디 만샤프트의 감독 프란츠 베켄바우어에 눈에 들었고 그는 UEFA 유로 88에 독일 대표팀 주전 멤버로 참가하게 된다.

유로 88은 서독에서 개최되었으며 16년 전에 서독에서 개최된 유로를 선수로써 제패한 베켄바우어는 이 대회를 감독으로도 제패하기를 원했다.

베켄바우어는 3-5-2 시스템을 채택하였으며 시야가 넓고 빌드업에 능한 마티아스 헤어게트를 리베로로 뒀으며 훌륭한 대인 수비 능력을 가진 위르겐 콜러와 귀도 부흐발트를 스토퍼로 뒀으며 오른쪽 윙백인 토마스 베르톨트도 공격적인 재능은 돋보이진 않지만 대인 수비 능력에서만큼은 훌륭했으며 왼쪽 윙백 브레메는 왼쪽 측면에서의 공격의 활로를 푸는 역할로 참가했다.

 

유로 88 서독의 원래 계획. 하지만 축구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첫 상대는 서독의 강력한 천적 이탈리아였다. 역시 이탈리아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콜러는 2선에서 침투하는 만치니를 놓쳤으며 파트너 부흐발트는 스탭이 꼬여 넘어지며 만치니에게 실점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다행히 브레메가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득점하며 경기는 비겼다.

두 번째 상대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서독을 이긴 적 있었던 덴마크였다. 콜러의 파트너 부흐발트가 부상을 당하면서 브레멘의 주전 수비수 울리 보로브카와 교체됐지만 콜러는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엘카에르와 포블센을 쉽게 제어하며 팀의 2-0 무실점 승리에 공헌했으며 스페인 전에서도 콜러는 부트라게뇨를 완전히 제어하며 무실점 승리에 공헌하며 2승 1무, 조 1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준결승 상대는 마르코 반 바스텐, 프랑크 레이카르트, 루드 굴리트의 오렌지 삼총사가 이끄는 네덜란드였다.

베켄바우어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3-5-2 시스템을 버리고 포백 시스템인 4-4-2를 채택하며 맞불을 놨지만 이 작전은 실패했다. 마테우스가 페널티 킥 골을 넣으며 선제골을 넣었지만 시종일관 네덜란드에게 밀렸다.

특히 콜러는 이 경기에서 반 바스텐에게 완벽하게 농락당했는데 네덜란드 진영에서 날아온 롱 패스를 받은 반 바스텐을 막는 과정에서 페널티 킥을 내줘 동점골을 내줬으며 경기 종료 2분을 앞두고 반 바스텐과의 경합에서 패하며 결승골을 헌납하는 실수를 범했다.

 

유로 88에서의 위르겐 콜러와 마르코 반 바스텐

 

유로에서는 다소 아쉽게 떨어졌지만 1988-89 시즌에는 쾰른을 이끌로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본인도 한층 더 성장하며 스토퍼 부분에서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키커 랑리스테 Weltklasse 등급에다가 포지션 1위를 뜻하는 WK-1 등급을 받으며 세계적인 수비수로 성장했다.

이후 리그 우승을 원하던 위르겐 콜러는 쾰른을 떠나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다.

 

Waldhof Mannheim

1983 ~ 1987
101 Apps / 8 Goal

 

1. FC Koln

1987 ~ 1989
67 Apps / 2 Goal


2. 독일의 챔피언을 넘어 세계 챔피언의 일원이 되다.

 

바이에른으로 이적한 첫 시즌 전반기에는 부진한 활약을 펼쳤지만 후반기에는 쾰른 시절의 폼을 회복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도 월드컵 예선에 꾸준히 선발됐으며 1990 월드컵 예선에서 서독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서독을 본선에 올려놓는데 공헌했었다. 그리고 예선에서는 네덜란드와 만났으나 두 번 다 비겼으며 네덜란드에 이어 2위로 유럽 예선을 통과했다.

서독은 월드컵 우승을 꿈을 꾸고 이탈리아로 입성했다. 서독은 빌드업과 공격적인 재능은 부족하지만 수비라인 지휘와 커버 플레이에 능한 아우겐탈러를 리베로로 삼았으며 콜러와 부흐발트를 스토퍼로, 오른쪽의 베르톨트를 수비적인 윙백으로 배치했으며 왼쪽에 브레메는 공격적인 롤을 배치했다.

서독은 콜러와 아우겐탈러의 넓은 커버 범위 덕분에 스토퍼인 부흐발트까지 공격에 가담해 크로스를 올릴 정도로 화려한 공격 축구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각각 4-1과 5-1로 대파하고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 지었으며 결국 2승 1무로 진출했다.

조 1위로 16강에 올라가면 보통은 수월한 상대를 만나지만 서독은 아니었다. 운명처럼 네덜란드와 조우했다. 네덜란드가 F조에서 부진한 탓이다.

베켄바우어는 조별예선에서 부진한 네덜란드가 두렵지 않다는 인터뷰를 하며 네덜란드를 심리적으로 들어놨다.

이 심리전에 네덜란드는 동요했으며 레이카르트는 푈러와 다투다 그에게 침을 뱉어 동반 퇴장을 당했으며 피보테를 잃은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은 급속도로 붕괴했으며 반 바스텐도 이번엔 위르겐 콜러에게 호되게 막히면서 서독은 2-1 승리에 공헌했다.

 

콜러 vs 반 바스텐 2차전


8강에서 만난 체코슬로바키아도 서독의 상대는 되지 않았으며 4강 잉글랜드와의 혈투에서는 콜러는 다소 아쉬웠다. 경기 내내 리네커를 잘 마킹했지만 80분에 폴 파커의 롱 패스를 놓쳤으며 이 과정에서 게리 리네커에게 틈을 보여 동점골을 허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독은 승부차기까지 가서 잉글랜드를 꺾었다.

정작 결승전에서 4년만에 다시 만난 아르헨티나는 1986년에 그 팀과는 전혀 딴판인 팀이었으며 몬존은 교체 출장한 지 20분도 안돼서 퇴장당했으며 마라도나마저도 콜러의 파트너 부흐발트에게 지워졌고 다른 공격수 구스타보 데소티도 콜러를 뚫지 못했다. 그저 아르헨티나는 골키퍼 고이코에체아만 열심히 막고 있었다.

결국 85분에 센시니는 클린스만에게 페널티 라인에서 파울을 범했고 브레메는 페널티 킥을 성공하며 0-0의 상황을 깼다. 그러고 2분 후 데소티는 콜러의 심리전에 말려 폭력적인 대응을 하다가 퇴장당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서독은 월드컵을 우승하며 대관의 자리에 올랐다. 리그 후반기에서의 훌륭한 활약과 월드컵에서 상대 공격수를 압도하는 맹활약을 보인 콜러는 키커 랑리스테에서 WK-1을 받았다.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위르겐 콜러


하지만 1990-91 시즌 독일 통일의 여파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은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우승에 실패하며 준우승에 머물자 노장 클라우스 아우겐탈러는 은퇴했으며 주축 선수들인 위르겐 콜러와 슈테판 로이터를 세리에 A의 유벤투스에 매각했으며 세대교체에 실패하자 암흑기에 빠진다.

콜러는 이 때 유벤투스로 이적을 결정하며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 A 무대에 도전한다.

 

Bayern Munich

1989 ~ 1991
73 Apps / 7 Goal


3. 당대 최고의 리그에서 활약한 당대 최고의 스토퍼

 

1991년 팀 동료 로이터와 함께 세리에 무대에 도전한 콜러는 세리에 A에서도 브라질 출신 줄리우 세자르와 수비 라인을 구성하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비에르코보드, 치로 페라라,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리카르도 페리 등 훌륭한 스토퍼들이 즐비한 세리에에서도 단연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세리에에서 콜러의 활약은 세리에 A 시절을 술회하며 힘든 리그였다고 밝히는 마르코 반 바스텐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위르겐 콜러나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와 같은 수비수들이 한 경기에 열 번에서 열다섯 번씩 내 앞길을 가로막곤 했다."

 

세리에 A에서도 재회하는 위르겐 콜러와 마르코 반 바스텐


1991-92 시즌 AC 밀란의 무패 우승을 막지는 못했지만 유벤투스는 리그 2위를 차지하며 부진의 터널을 탈출했다. 그리고 콜러는 유로 92에 참가했다.

유로 92에서는 마테우스의 부상과 올라프 톤, 토마스 베르톨트가 선발되지 않았으며 서독은 전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으며 오른쪽 측면 수비수 로이터가 소련의 후신인 독립 국가 연합과의 경기에서 부상당하는 바람에 조별 예선은 다소 험난했으며 네덜란드에게 3-1로 패하기도 했다.

간신히 조 2위로 진출했으나 로이터가 돌아오자 개최국 스웨덴을 상대로 3-2로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으며 결승에서는 데니쉬 다이너마이트의 동화를 막지는 못했지만 콜러는 대회 내내 준수한 모습을 보이며 유로 92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유로 92 콜러


1992-93 시즌에는 그의 수비 파트너 중 한 명인 로이터가 분데스리가로 돌아갔으며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로이터를 영입한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묄러, 로베르트와 디노 바조, 세자르, 비알리, 페루치 등과 함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는 3-1로, 홈에서는 3-0으로 압승을 거두었으며 콜러와 세자르의 수비라인은 미하엘 루메니게와 사퓌자를 철통같이 틀어막으며 우승에 기여했다.

콜러는 1993-94 시즌에도 세리에 A 우승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으며 1994-95 시즌이 개막한 이후에는 파트너 세자르와 공격형 미드필더 안디 묄러가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해당 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이 겹치며 고생하며 19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리피 감독은 그의 라이벌 비에르코보드를 삼프도리아에서 유벤투스로 데려오며 페라라-비에르코보드 라인을 구축했으며 콜러는 이탈리아 무대를 떠나 독일로 복귀했다.

콜러는 친정 팀 바이에른 뮌헨이나 쾰른이 아닌 자신의 팀 동료였던 로이터, 안디 묄러, 줄리우 세자르 등이 있었으며 독일 최고의 명장 히츠펠트가 지휘하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복귀한다.

위르겐 콜러는 유벤투스 시절 키커 랑리스테 해외파 스토퍼 부분에서 한 번의 WK-1과 일곱 번의 IK-1을 받으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아 세리에 무대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Juventus

1991 ~ 1995
145 Apps / 13 Goal


4. 도르트문트의 축구의 신

 

1995-96 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합류한 콜러는 새로운 파트너를 만난다. 중앙 미드필더에서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당대 최고의 폼을 보여줬던 마티아스 잠머를 만나며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잠머와 콜러는 고정적으로 들어갔으며 줄리우 세자르와 마틴 크리가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라이트 백 자리에는 로이터가 자리 잡았으며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안디 묄러가 있었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당대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던 중앙 수비수인 잠머와 콜러


콜러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대인 수비 능력으로 분데스리가 우승에 공헌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잠머, 묄러, 로이터 등 동료들과 함께 UEFA 유로 96에 참가했다.

콜러는 클린스만이 결장한 첫 경기 체코전에서 디 만샤프트의 주장을 차며 팀을 이끌었지만 14분 만에 부상당하며 그의 유로 96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독일이 이 대회에서 마티아스 잠머의 우월한 퍼포먼스로 우승하는 것을 콜러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쉬운 대회였다.

하지만 콜러는 주저앉지 않았다. 1996-97 시즌에는 잠머 이상으로 맹활약했으며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젊은 공격수들을 압도적인 힘과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찍어 눌렀다. 분데스리가에서는 3위를 기록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순항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이어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며 돌풍의 팀 옥세르를 꺾고 4강에서 퍼거슨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1-0으로 잡아냈다. 두 경기 모두 마티아스 잠머가 결장했으며 위르겐 콜러도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만 참여했으나 솔샤르와 앤디 콜을 압도적인 기량으로 찍어 눌렀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자신의 친정팀이며 지네딘 지단까지 영입한 리피의 유벤투스를 상대로 3-1 대승에 공헌한다. 델 피에로와 비에리는 훌륭한 공격수이자 유망주였지만 아직 위르겐 콜러의 상대는 아니었다.

챔피언스리그와 분데스리가에서의 퍼포먼스로 위르겐 콜러는 키커 랑리스테에서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스토퍼로 WK-1을 받았으며 1997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1위를 차지했다.

 

빅이어를 차지한 위르겐 콜러


그러나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이 보드진과의 갈등으로 바이에른으로 떠나고 마티아스 잠머는 부상으로 은퇴하며 도르트문트는 다시 하락세가 왔으며 독일 국가대표팀도 세대교체에 실패하여 1998 월드컵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으로 패하자 위르겐 콜러는 국가대표팀에서 다소 초라하게 은퇴했다.

1998년 이후로는 바이에른 뮌헨이 새로 분데스리가를 호령했으며 이후 위르겐 콜러도 세월을 피하지는 못하며 기량이 떨어져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1-02 시즌, 콜러의 동료였던 잠머는 감독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돌아왔으며 안디 묄러는 라이벌 샬케로 이적한 상태였다. 하지만 콜러는 주장으로써 이제는 감독이 된 잠머를 도와 로이터, 뵈른스 등과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는 레버쿠젠을 꺾고 도르트문트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선물하고 은퇴했다.

이런 위르겐 콜러의 모습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팬들은 그를 두고 푸스발 고트, 즉 축구의 신이라 부르며 찬양했다.

콜러는 마지막 순간에도 주장으로서 마이스터 샬레를 구단과 팬들에게 선물하며 화려한 은퇴를 했다.

 

마지막 시즌을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장식하고 물러나는 콜러

 

Germany National team

1986 ~ 1998
105 Apps / 2 Goal

Borussia Dortmund

1995 ~ 2002
250 Apps / 18 Goal


5. 그의 플레이 스타일

 

'강철의 스토퍼'

 

콜러는 도르트문트의 팬들에게 푸스발 고트라는 별칭을 받기 이전에 강철의 스토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터프하면서도 영리함을 겸비한 수비 능력과 상대를 절대 놓치지 않는 집중력, 그리고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한 몸싸움과 공중전에 모두 능했으며 선수 시절 초기에 봤던 수비형 미드필더의 경험은 그가 발 밑을 활용하는 능력마저 겸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본인이 스스로 인터뷰에서 "나를 곤란하게 한 공격수는 내 경력을 통틀어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가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상대한 공격수가 마르코 반 바스텐, 게리 리네커, 지안루카 비알리, 위르겐 클린스만,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그리고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인 점을 생각하면 이 인터뷰는 그의 대단함을 알 수 있는 인터뷰라고 할 만하다.

반 바스텐은 세리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그와 비에르코보드를 꼽았으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전설적인 공격수 황선홍도 가장 인상 깊었던 상대 수비수로 위르겐 콜러와 마르셀 드사이를 꼽은 적이 있었다.

공격수 마르코 반 바스텐과의 라이벌리로 유명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메이저 대회에서 세 번 연속 마주쳤으며 월드컵 예선에서도 만난 데다가 콜러가 세리에로 옮겼을 때에는 반 바스텐이 건강하게 유벤투스 전에 출전하면 만날 수 있었다. 이 대결은 축구팬들에게 축구의 매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대결이었다.

 

1989-9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바이에른 vs 밀란 2차전에서 또 만났다.

 


6. 수상 이력

 

클럽

 

1989-90 분데스리가 우승 (바이에른 뮌헨)

1990 DFL-슈퍼 컵 우승 (바이에른 뮌헨)

1992-93 UEFA컵 우승 (유벤투스)

1994-95 세리에 A 우승 (유벤투스)

1994-95 코파 이탈리아 우승 (유벤투스)

1995 DFL-슈퍼 컵 우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5-96 분데스리가 우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6 DFL-슈퍼 컵 우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6-97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7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1-02 분데스리가 우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국가대표팀

 

1988 UEFA 유로 4강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

1992 UEFA 유로 준우승

1996 UEFA 유로 우승

개인 수상

 

1986-87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87-88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88-89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90-91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92 UEFA 유로 팀 오브 토너먼트 (올스타 팀)

1997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

1997 발롱도르 11위

1998-99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2000-01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통산 6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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