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1~20

토르난테 2025. 3. 2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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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23일 기준입니다.

 


20위 알렉스

 


생년월일: 1977년 9월 14일
A매치 기록: 48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페네르바흐체

1990년대와 2000년대 브라질과 터키 무대에서 활약한 플레이메이커로 감각적인 볼 컨트롤과 전방으로 길게 찔러주는 롱패스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가 막힌 왼발 킥력으로 오픈 플레이 상황과 데드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많은 득점을 터트리며 커리어 통산 421골을 득점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코리티바에서 1996 시즌 캄페오나투 파라나엔세 MVP를 수상하며 세상에 이름을 날린 알렉스는 1990년대 말에는 파우메이라스의 에이스로 1999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비록 파르마에서는 적응에 실패해 브라질의 여러 팀으로 임대를 다녔다가 크루제이루로 복귀해 크루제이루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회 우승과 2003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공로로 브라질 전국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후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해서는 터키 수페르리가 3회 우승을 이뤄내고 리그 MVP에 2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7-08 시즌에는 페네르바흐체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큰 공을 새워 대회 도움왕에 오르면서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올라섰다.

셀레상에서도 종종 소집된 알렉스는 1999년에 백업 멤버로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4년에는 아드리아누, 파비아누와 호흡을 맞춰 조국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나 월드컵 무대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19위 마리우 세르지우

 


생년월일: 1950년 9월 7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70~80년대 브라질 무대를 풍미했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브라질 축구 역사상 가장 기술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는데 상대방을 완벽하게 기만하는 슛 페인팅과 다리의 여러 부위를 사용하는 볼 컨트롤, 그리고 부드러우면서 날카로운 패싱력으로 유명했는테 특히 노룩패스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이 때문에 세간 사람들로부터 Vesgo, 즉 '사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해 브라질의 여러 클럽을 떠돌았던 저니맨 세르지우는 비토리아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며 1972년 캄페오나투 바이아 우승을 이뤄냈고 플루미넨시에서는 백업으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는 전성기를 누렸는데 파우캉과 함께 팀의 무패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1년에는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을 이뤄냈다. 세르지우 개인도 플라카르가 선정한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에 통산 4회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느 황금의 사중주에 밀려 이시도루, 바티스타 등과 함께 백업으로 대기한 세르지우는 결국 백업 자리에서도 이시도루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며 메이저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8위 파울루 이시도루

 


생년월일: 1953년 8월 3일
A매치 기록: 4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1970년대와 80년대 브라질 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현 미드필더로 뛰어난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넓은 지역에 영향력을 끼쳤으며 공격은 물론 수비 상황에서는 수비에 헌신적으로 가담했으며 상대 수비수를 속이는 페인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중앙 미드필더, 윙어, 그리고 측면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와 그레미우, 그리고 산투스에서 활약한 이시도루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레미우에서는 1980 시즌 캄페오나투 가우초 우승과 1981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1981 시즌 브라질 전국리그 MVP를 수상했고 산투스에서는 1984 시즌 캄페오네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내며 3개의 주립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괴력을 뽐냈고 브라질 세리 A에서도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황금의 사중주의 아성에 밀려 마리뉴 세르지우와 그들의 백업 역할을 두고 경쟁했는데 뛰어난 수비 가담이라는 메리트를 바탕으로 황금의 사중주의 백업으로 더 자주 기용되며 월드컵 50주년 기념 대회로 열린 1980 문디알리토와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셀레상에 소집되었다.

 

17위 지뉴

 


생년월일: 1967년 6월 17일
A매치 기록: 5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90년대 브라질 무대를 풍미했던 왼발잡이 플레이메이커로 교묘한 드리블 돌파와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레프트윙을 겸할 수 있었다.

플라멩구와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지뉴는 플라멩구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과 1992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고 파우메이라스에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 그리고 1999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말년에는 그레미우에서 캄페오나투 가우초를 우승하며 3개의 주립 리그에서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2003년에는 크루제이루에서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며 3개의 구단에서 모두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는 기록을 세웠음은 물론 지뉴 개인도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클럽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지뉴는 1993 코파 아메리카에 처음 메이저 대회에 데뷔했고 1994 미국 월드컵 우승 및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특히 월드컵 우승으로 1994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16위 루이지뉴

 


생년월일: 1930년 3월 7일
A매치 기록: 1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64cm / 몸무게 55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50년대 브라질 무대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체구는 작았지만 매우 빠르고 공격수 입장에서 교활하다고 느껴질 수준의 드리블 실력을 보유했는데 1952년에 코린치안스가 유럽을 순회할 때 유럽 사람들은 그의 활약을 보고 어린이 우화에 나오는 한 소년이 사악한 괴물을 "드리블"하는 등장인물과 같다며 "작은 엄지손가락"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코린치안스에서 보내며 606경기에 출전해 175골을 기록한 루이지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 및 히우 상파울루 3회 우승 및 1953년 스몰 클럽 월드컵에서는 AS 로마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카라카스 연합팀을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산투스와 파우메이라스의 대약진으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1996년, 66세의 루이지뉴는 파카엠부 경기장에서 코리치바와의 친선 경기에서 5분 동안 뛰며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에게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기도 했다.

 

15위 바우두 필류

 


생년월일: 1964년 1월 12일
A매치 기록: 4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브라질과 프랑스 무대에서 활약했던 플레이메이커로 화려한 볼 컨트롤과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창의성에서 나오는 기가 막히는 쓰루패스는 상대가 발만 대도 득점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정확해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레미우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바우두는 캄페오나투 가우초 4연패를 이뤄내며 브라질 리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의 반열에 올랐고 유럽 무대에 도전해 벤피카에서는 프리메이라리가 2회 우승과 1989-9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1993-94 시즌 리그앙 우승과 1994-9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브라질로 돌아와서는 1998년 크루제이루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을 이끌면서 브라질 세리 A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도 중용받은 바우두 필류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 메이저 무대에 데뷔해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하며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고 대표팀 주전자리를 하이에게 완전히 내주게 된다.



14위 치네시뉴

 


생년월일: 1935년 9월 15일
A매치 기록: 1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브라질과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플레이메이커로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와 유려한 드리블, 그리고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공격진을 지휘했으며 뛰어난 아웃사이드 프런트로 득점하기도 했다.

SC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1955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을 이끌어 주목받았고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치네시뉴는 줄리뉴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펠레가 이끄는 산투스와 상 파울루 주 및 브라질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합을 펼치며 1959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1960년 브라질 전국리그 우승 및 1961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고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도 1959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서 4승 2무로 대회 준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방구에서 이적한 아데미르 다 기아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이탈리아로 떠난 치네시뉴는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모데나와 카타니아를 거쳐 유벤투스에 입단해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1966-67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는 라이벌 인테르의 트레블을 좌절시키는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13위 지르세우 로페스

 


생년월일: 1946년 9월 3일
A매치 기록: 14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62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크루제이루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플레이메이커로 키는 작았지만 그의 명성은 커서 당대 브라질 무대를 호령했는데 작은 키였지만 한혈마와 같은 스피드와 지구력을 겸비했으며 미꾸라지와 같은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현란한 볼 테크닉 능력과 우수한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공간 침투에서 나오는 득점력도 우수한 완벽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토스탕과 함께 크루제이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지르세우 로페스는 크루제이루에서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9회 우승과 1966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그리고 197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지르세우 로페스 개인도 크루제이루의 선전을 이끈 활약을 토대로 1971년 브라질 전국 리그 MVP 수상 및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3회 선정되었다.

 

그러나 클럽에서의 활약에 비해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다소 초라한데 이는 그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호베르투 히벨리누, 파울루 세자르 카주, 아데미르 다 기아 등 여러 뛰어난 선수들에 의해 거의 소집조차 되지 못하는 비운을 경험했다.

 

12위 주니뉴 파울리스타

 


생년월일: 1973년 2월 22일
A매치 기록: 49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미들즈브러

잉글랜드 무대에서 처음으로 명성을 떨친 브라질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작은 녀석으로 불렸을 정도로 체구가 왜소했지만 한혈마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지구력은 물론 경이로운 민첩성과 폭발적인 드리블, 그리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에도 능했으며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드문 유형의 선수라 많은 잉글랜드 팬들이 주니뉴 파울리스타에 환호했다.

상 파울루에서 데뷔해 로테이션 멤버로 199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경험한 주니뉴 파울리스타는 이후 잉글랜드의 미들즈브러로 이적해 두 시즌 활약했는데 1996-97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및 미들즈브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잠시 이적했다가 다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바스쿠 다 가마에서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낸 뒤 다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활약해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감독 마틴 오닐과의 갈등으로 고생한 뒤에 브라질로 떠났다.

셀레상에서도 지뉴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한 주니뉴 파룰리스타는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997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부진이 이어지며 셀레상에서도 멀어졌다가 2001년에 다시 합류해 2002 한일 월드컵 우승을 백업 멤버로 경험했다.

 

11위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생년월일: 1975년 1월 30일
A매치 기록: 40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리옹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데드볼 상황에서 다채로운 슈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무회전 슈팅을 연구하고 완성시킨 것으로 유명했는데 우수한 킥력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고 화려한 볼 컨트롤과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찔러주며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부분에서도 당대 정상급 실력을 자랑했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커리어의 첫 전성기를 누린 주니뉴는 1998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더블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이를 바탕으로 2001-02 시즌을 앞두고 올림피크 리옹으로 이적한 주니뉴는 2001-02 시즌부터 2007-08 시즌까지 리그앙 7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이뤄내며 리옹의 리그앙 우승은 모두 주니뉴가 있을 때 이뤄냈을 정도로 구단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선수였다. 주니뉴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으며 리그앙 올해의 팀에 3회 선정, 그리고 2005-06 시즌에는 리그앙 MVP를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2001 코파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발탁된 주니뉴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5 컨페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우승컵을 차지했고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무회전 프리킥 골로 일본의 대역전패의 서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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