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17일 기준입니다.
10위 지노 사니

생년월일: 1932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1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알렸던 전천후 미드필더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타인의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성과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롱패스로 두뇌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아군 수비 진영부터 상대 수비 진영까지 볼 운반을 맡았다.
상 파울루와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사니는 상 파울루에서는 1957 시즌에 벨라 구트만 체제에서 4-2-4 시스템의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도 플레이메이커 맡으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공헌했다. 네레오 로코의 AC 밀란에서는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지안니 리베라에게 양보하고 상 파울루 시절보다 수비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 수비진과 공격진을 이어주며 1961-62 시즌 스쿠테토와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에 공헌했다.
다만 클럽에서의 화려한 영광과는 다르게 셀레상의 활약은 다소 저조한데 이는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지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지의 백업 역할을 맡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과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모두 벤치에서 경험했다.
9위 마우루 시우바

생년월일: 1968년 1월 12일
A매치 기록: 5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90년대 하반기 라리가 3대 미드필더로 꼽혔던 선수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과 거침없는 태클과 드넓은 지역을 커버했으며 특히 상대의 패스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해 상대의 볼 순환을 끊어냈고 적절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영리한 파울로 상대의 흐름을 저지하는 부분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클루비 아틀레치쿠 브라간치누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마우루 시우바는 1991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MVP의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는 본인이 입단하기 전까지 주목받지 못하던 데포르티보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및 수페르코파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99-2000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유일한 우승을 이뤄냈고 2003-04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내며 팬들로부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마우루 시우바는 199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시작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둥가, 마지뉴와 함께 철통 같은 중원을 형성하며 우승에 공헌해 피파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9위에 올랐고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나 1998 프랑스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8위 아미우카르 바르부이

생년월일: 1893년 4월 29일
A매치 기록: 19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10년대와 20년대에 프리덴라이히와 함께 브라질 축구의 태동기를 이끈 스타플레이어로 초창기에는 인사이드 포워드 및 센터 포워드에서 활약했으나 전성기 시절에는 하프백에서 주로 활약하며 경기 흐름을 완전히 꿰는 전술안과 펠레에 버금간다고 평가받는 볼 컨트롤, 그리고 대지를 가르는 우수한 롱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은 물론 강력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으며 정확한 슬라이딩 태클로 수비적인 역할도 잘 수행할 수 있었다.
코린치안스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아미우카르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전신 대회를 포함해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을 이뤄냈고 모종의 사유로 어쩔수 없이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파우리스타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코린치안스에서 활약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파우메이라스 유니폼 안에 코린치안스 유니폼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셀레상에서는 센터 하프와 인사이드 포워드를 오가며 활약하며 프리덴라이히, 네쿠, 마르쿠스 지 멘돈사와 함께 이름을 날린 아미우카르는 4회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며 1919년과 1921년 대회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다.
7위 다닐루 아우빔

생년월일: 1920년 12월 3일
A매치 기록: 2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유럽의 WM 시스템이 브라질에 정착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정교한 태클과 중앙에서 측면으로 보내는 우수한 롱패스를 활용한 빌드업에도 능했다.
바스쿠 다 가마가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며 브라질 최고의 팀으로 활약하던 시절, 팀 내에서 왕자라 불리며 핵심으로 군림한 아우빔은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8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의 전신 대회인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오브 챔피언스에서 우승하는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36회 우승을 이뤄내며 남미 최강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다수의 바스쿠 다 가마의 동료들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한 아우빔은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으나 마라카냥의 비극이라 불리는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게 결과적으로는 패했기에 다소 저평가받기도 한다.
6위 지투

생년월일: 1932년 8월 8일
A매치 기록: 5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 받는 선수로 빠른 발과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고 터프한 태클로 상대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괴롭히는데 능했으며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는데 능했다.
펠레, 페페와 함께 산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1등 공신인 지투는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 9회 우승 및 전국리그 5연패를 이뤄냈고 브라질 밖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1962년에는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한다.
클럽에서의 커리어도 우수했지만 대표팀에서는 더 빛나는 활약을 펼쳤던 지투는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했으며 특히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팀 밸런스를 안정시키며 결승전에선 득점까지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다수의 매체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5위 둥가

생년월일: 1963년 10월 31일
A매치 기록: 91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실한 몸 관리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계산적이면서 거친 태클, 안정적인 패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날카로운 전술안,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훌륭한 통솔력을 겸비한 선수로 기존의 화려한 브라질 선수와는 거리가 있었던 선수였다.
인테르나시오날에서 데뷔해 캄페오나투 가우초 3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둥가는 피오렌티나와 슈투트가르트에서도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팀의 핵심 선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특히 피오렌티나에서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명성을 떨쳤고 J리그에서도 주빌로 이와타에서도 경기를 지고도 웃으며 수다를 떨었을 정도로 해이해진 선수단에게 "웃지 말라고 바보들아!"라고 일갈해 팀의 베테랑으로서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하며 팀을 1997 시즌 J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1990년대 브라질 축구의 부활을 이끈 위대한 주장으로 월드컵 세 번, 코파 아메리카 네 번, 그리고 컨페드 컵에 한 번 참가해 총 다섯 번 결승에 진출해 네 번 우승했다.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대회에 참가해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4 미국 월드컵과 1997년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우승컵을 들었다.
4위 토니뉴 세레주

생년월일: 1955년 4월 21일
A매치 기록: 5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하면서도 기술적인 완성도도 높은 명품 태클과 지능적인 인터셉트와 같은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물론 부드러운 볼 컨트롤과 넓은 시야를 활용한 창의적인 롱패스 실력과 기습적인 공격 가담까지 겸비한 완전체 미드필더로 공의 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보통 고점은 높지만 전성기가 짧다는 이야기가 있는 브라질 국적 선수들과는 다르게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간 정상급 기량을 펼친 세레주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7연패 및 두 번의 브라질 세리 A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세레주 개인도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MVP에 2회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다.
유럽으로 건너간 뒤에는 AS 로마에서는 1983-84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랐으며 삼프도리아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1989-90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이듬해에는 재차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다가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서는 상파울루에서 활약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우승하는 공을 세웠는데 특히 1993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출중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음에도 다소 결과가 아쉬웠는데 지쿠, 파우캉, 소크라치스와 함께 중원 조합을 구성해 황금의 사중주라 불리며 기대를 모았으나 2차 리그에서 이탈리아에 패하며 탈락하는 아쉬움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준결승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3위 지르송

생년월일: 1941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70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남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읽는 드넓은 시야와 예술과도 같은 볼 컨트롤은 물론 짧은 왼발 패스와 롱패스에 모두 능해 적절하게 템포를 조절하거나 골 찬스를 만들어내는 만능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왼발 기술이 좋아 팬들에게 황금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한 지르송은 1961년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우승 및 1963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고 지지의 대체자로 보타포구로 이적한 뒤에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와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에서 각각 2개의 우승컵을 추가했으며 1968년에는 전국 리그인 타사 브라질을 우승했다. 이후 상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을 보낸 플루미넨시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컵을 한 개 더 추가했다.
셀레상에서도 1970 멕시코 월드컵의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로 활동한 지르송은 중앙 미드필더에서 템포를 조절하며 팀의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복수의 매체에서 펠레에 이어 대회에서 두 번쨰로 훌륭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2위 지지

생년월일: 1928년 10월 8일
A매치 기록: 68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축구 지능이 높아 감독이 졸고 있을 때 팀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광활한 시야와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발기술이 좋아 상대 수비수 두 명 정도는 제칠 수 있었고 프리킥에도 능했음은 물론 중앙 미드필더, 하프백, 인사이드 포워드 및 윙어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기에 '미스터 풋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브라질 무대의 플루미넨시와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누린 지지는 특히 보타포구에서는 캄페오네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전국 리그에서도 펠레의 산투스를 견제하는 강팀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디 스테파노와의 불화와 스페인 적응 실패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떠났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참여해 두 번의 월드컵의 우승 주역으로 활약한 지지는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중원을 지휘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1위 파우캉

생년월일: 1953년 10월 16일
A매치 기록: 3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S 로마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파우캉은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인테르나시오나우의 황금기를 이뤄내며 1979년 무패 우승을 포함해 주립리그 5회 우승 및 전국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파우캉 개인도 브라질 전국 리그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고 특히 1978년과 1979년에는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지쿠를 제치고 브라질 세리 A MVP를 수상했다.
우럽으로 건너간 뒤에 AS 로마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간 파우캉은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및 1982-83 시즌에는 스쿠테토를 따냈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았는데 이때 파우캉의 활약이 대단해서 로마 팬들은 그를 두고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고 불렀다. 이때도 파우캉은 1982-83 시즌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1위에 올랐고 옹즈도르 투표에서도 1982년에는 3위, 1983년에는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셀레상에서도 파우캉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로 불리며 그들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2차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은퇴한 뒤에는 AS 로마 명예의 전당과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