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토르난테 2025. 3. 1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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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14일 기준입니다.

 


10위 마리뉴 샤가스

 



생년월일: 1952년 2월 8일
A매치 기록: 28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70년대를 주름잡은 레프트백으로 200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은 라이트백 마이콩과 같이 짧게나마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에 거론되었던 선수로 동료들과의 원투패스를 통해 간결하게 중앙으로 침투했으며 훌륭한 드리블 돌파와 노르지스치의 대포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오른발 킥력을 자랑했다.

저니맨으로 여러 구단을 돌았지만 그 중에서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보낸 사가스는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셀레상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해 팀의 4위를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남미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다.

 

9위 마이콩

 



생년월일: 1981년 7월 26일
A매치 기록: 76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후반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강한 지구력과 수비력은 물론 훌륭한 볼 컨트롤과 오른쪽에서 적절한 타이밍의 오버래핑 이후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리며 오른쪽을 지배해 마른쪽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 2년 동안은 사이드백이 보여준 축구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테르에서 짧은 시간 보여줬던 마이콩의 고점은 축구 역사상 모든 라이트백 중 최고급으로 평가받는데 인테르에서 세리에 4연패를 기록하며 세리에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날렸음은 물론 2009-10 시즌에는 리그와 코파 이탈리아는 물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드로그바, 메시, 로번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죄다 집어삼킨 뒤에 트레블을 이뤄냈다. 인테르에 머무는 동안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과 2009-10 시즌 UEFA 올해의 수비수 2회 선정 및 2010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7위를 차지했다.

클럽에서 화려했던 마이콩은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2007 코파 아메리카와 2009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셀레상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8강에서 탈락했음에도 팬 투표인 드림팀에 들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토너먼트에서는 주전으로 기용되었으나 준결승 독일전에서 수비진들이 부진했음에도 홀로 분투했으나 1-7 대패를 막지 못하며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안타까운 일을 경험하며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8위 마르셀루

 



생년월일: 1988년 5월 12일
A매치 기록: 58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010년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약점이 명확했지만 정상급 미드필더들 이상으로 기술적으로 우수했으며 우수한 드리블 돌파와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통해 소속팀 동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득점력을 극대화했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마르셀루는 라리가 우승 6회,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포함해 5회 우승을 달성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크고 작은 트로피를 25개나 들어 올려 클럽 역사상 최다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4회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으며 2016-17 시즌에는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끌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6위에 올랐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전자의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네이랑에서 독일에게 대패한 원인이 되는 등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운 면이 있지만 팬 투표인 월드컵 드림팀 일레븐에는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

 

7위 주니오르

 



생년월일: 1954년 6월 29일
A매치 기록: 7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1980년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화려하면서도 빠른 드리블 돌파와 웬만한 공격형 미드필더 수준의 볼 컨트롤 능력과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킬 패스를 뿌리며 팀 공격을 주도하면서도 비슷한 유형의 후배 마르셀루와는 다르게 수비적으로 빈틈이 없었다고 평가받았다.

플라멩구와 토리노에서 활약한 주니오르는 플라멩구의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주니오르는 브라질 전국리그 4회 우승과 198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붉은 제국 리버풀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었는데 이 경기에서 주니오르는 유럽 정상급 라이트백 필 닐을 농락하며 경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활약을 보여줘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다.

 

토리노 이적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해서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할 정도로 우수한 실력을 보여줬고 브라질로 돌아간 뒤인 1992년에는 38세의 나이에도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며 롱런했다.

셀레상에서는 1982년에 이름을 날렸던 황금의 사중주를 보좌하며 활약한 주니오르는 세계 최고의 팀으로 수식되었던 브라질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나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두 준결승 진출에도 실패하며 부진한 성적을 낸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주니오르 개인은1982 스페인 월드컵 올스타 팀과 1982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5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6위 다니 아우베스

 



생년월일: 1983년 5월 6일
A매치 기록: 126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앙헬 로마노, 리오넬 메시와 함께 압도적인 우승 트로피를 휩쓴 트로피 헌터로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공격력을 더해 오른쪽을 지배했으며 측면에서 엄청난 커버 능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중원과 연계하며 우측 공격수를 지원하는데 능했다.

세비야의 UEFA컵 2연패를 이뤄내며 200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4위에 오르며 라모스와 함께 당대 라리가 최고의 라이트백에 오른 다니 아우베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라리가 6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 및 2009년 6관왕과 2014-15 시즌 트레블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했다.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1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파리에서는 리그앙 2회 우승을 기록하며 화려한 클럽 커리어를 보여줬는데 다니 아우베스 개인도 개인적으로도 UE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각각 5회 선정되었으며 2008-09 시즌에는 라리가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공을 세웠는데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결승전에 득점을 기록했으며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대회 MVP를 수상하는 활약을 펼쳤으나 월드컵 무대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마이콩과 로테이션으로 나섰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때는 주전으로 나설 예정이었으나 부상으로 나서지 못했다.

 

5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생년월일: 1944년 7월 17일
A매치 기록: 53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특히 현지 팬들은 그를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꼽는다. 최초의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로 알려져 있으며 날카로운 오버래핑은 물론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뛰어난 패싱력으로 골 찬스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이런 공격적인 부분에서의 강점들과는 다르게 수비수로서의 기본기도 뛰어나 중앙 수비수로 뛸 수도 있었다.

플루미넨시에서는 캄페오나투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어린 시절부터 자우마 산투스에 버금가는 브라질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았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은 물론 1968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펠레의 세계구적인 인기와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한 산투스의 수뇌부와 브라질 정계에 의한 친선경기를 다른 브라질 클럽의 2배 이상을 뛰는 산투스였기에 혹사로 인해 전성기가 다소 빨리 지나갔는데 전성기가 지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북미 챔피언십 4회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아우베르투가 빛났던 부분은 역시 셀레상에서의 활약인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해 팀의 본선과 예선 전승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는데 특히 그의 결승전에서의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산투스의 비정상적인 혹사만 아니었더라도 그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의 자리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4위 카푸

 


생년월일: 1970년 6월 7일
A매치 기록: 142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AS 로마

같은 국적의 자우마 산투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함께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버래핑 상황과 수비 상황에서 모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의 교과서로 불렸다.

텔레 산타나가 이끄는 상 파울루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카푸는 트리컬러 파울리스타에서 오른쪽의 지배자로 명성을 떨치며 1991년 브라질 세리 A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더블 우승,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연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 및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특히 1993년에는 1992년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챔피언인 크루제이루와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격돌해 승리하며 우승을 이뤄냈고 역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클럽끼리 열리는 왕중왕전인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카푸 개인도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남미 올해의 팀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94년에는 엘 파이스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

레알 사라고사로 건너갔다가 적응에 실패해 파우메이라스로 돌아와 1996년 브라질 세리A 우승을 이끈 카푸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유럽에 재도전했는데 AS 로마에서는 세리에 A 역사상 가장 치열하다는 2000-01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말년에는 AC 밀란에 합류해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으며 UE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출전 및 세 번의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한 대기록을 세운 카푸는 1994년에는 교체 출전으로, 2002년에는 주장으로 선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15위에 올랐으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도 경험했다. 다만 월드컵 올스타 팀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3위 자우마 산투스

 


생년월일: 1929년 2월 27일
A매치 기록: 9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파우메리아스

아우베르투와 함께 브라질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손꼽히며 실제로 브라질 대표팀 활약은 카푸나 아우베르투, 다니 아우베스보다도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로 바위 또는 벽이라 불렸을 정도로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과 깔끔한 패싱력으로 앞선 공격수를 지원하는 훌륭한 빌드업을 겸비했다.

포르투게자에서 월드클래스 라이트백의 반열에 오른 자우마 산투스는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줄리뉴와 함께 오른쪽에서 황금라인을 구축하며 이름을 날렸는데 라이벌이었던 펠레의 산투스와 치열하게 경합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포함해 1965년 토르네오 리우상파울루 우승을 이뤄냈고 1967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인 토르네오 호베르투 고메스와 타사 브라질 더블을 이뤄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2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더욱 빛났던 자우마 산투스는 무려 네 번의 월드컵에 출전해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이 8강에 탈락했음에도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세 개의 매체 중 두 개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주전 자리를 니우통 데 소르디에게 내줬지만 결승전에서는 선발 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펼쳐 스웨덴의 레프트윙 스코그룬트를 지워버려 7개의 매체 중 4개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ESPN 데포르테스가 선정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커리어는 카푸가 가장 뛰어났고 고점에서의 기량은 아우베르투가 가장 좋았지만 자우마 산투스의 고점에서의 기량도 이들 못지 않았음은 물론 15년 가까이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며 가장 기복없는 활약을 보였고 국제대회에서도 꾸준하게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2위 니우통 산투스

 


생년월일: 1925년 5월 16일
A매치 기록: 7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20세기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선수로 축구사에서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처음으로 정립한 선수로 알려졌다. 공격 기술부터 수비 기술까지 다재다능해서 백과사전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보타포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인 니우통 산투스는 영광의 팀이라 불리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 및 1962년 6관왕과 같은 성과를 냈지만 펠레의 산투스에게 밀려 전국리그 우승은 아쉽게 달성하지 못했다.

셀레상에서도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1950 브라질 월드컵의 마라카냥의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새옹지마라고 주전 멤버가 아닌 덕분에 이후에도 자주 기용되었던 니우통 산투스는 펠레, 가린샤 등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의 최전성기를 누리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니우통 산투스 개인도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위 호베르투 카를루스

 


생년월일: 1973년 4월 10일
A매치 기록: 125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1세기를 대표하는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탄환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엄청난 지구력과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거침없는 오버래핑과 단단한 몸을 이용한 대인 수비, 그리고 악마의 왼발로 불리는 강력한 왼발 킥력도 가지고 있었다.

파우메이라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파우메이라스에서는 브라질 세리 A 2연패를 이뤄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라리가 4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끌어냈음은 물론 카를루스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7회나 선정되었을 정도로 꾸준하게 활약했고 UEFA 올해의 수비수에도 2회 선정,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2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높은 고점도 동시에 보여줬다.

셀레상에서도 월드컵 3회 출전, 코파 아메리카 4회, 그리고 컨페드컵 1회에 출전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며 1997년 컨페드컵에서는 귀신같은 궤적의 프리킥을 날려 득점했는데 그 슈팅의 궤적이 너무나도 경이로워 UFO 슛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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