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1~20

토르난테 2025. 3. 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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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17일 기준입니다.

 


20위 카르피지아니

 


생년월일: 1949년 2월 7일
A매치 기록: 30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7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중원 사령관으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으로 경기의 흐름을 탁월하게 읽어냈으며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사용했으며 위협적인 양발 슈팅 능력과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 스피드도 빠른데다가 수비력도 뛰어나 신속정확한 예측력과 특유의 센스로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고 경기의 주도권을 아군 쪽으로 가져오는 지능적인 수비가 돋보이는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카르피지아니는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합을 맞춰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플라멩구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1회 우승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은퇴했다. 은퇴 직후에 감독으로 임명되어 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 명단에 발탁되었는데 원래는 피아짜의 백업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피아짜가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자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을 4위로 올렸다.

 

19위 두두

 


생년월일: 1939년 11월 7일
A매치 기록: 1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파우메이라스의 홈구장인 알리안츠 파르키 외곽에 흉상이 조각되어 있는 전설적인 선수로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일반적인 브라질 축구선수와 다르게 기술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으나 적극적인 수비와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궂은일을 맡으며 중원의 넓은 지역에서 볼을 소유하는데 도움을 줬기에 공의 노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펠레의 산투스가 이름을 날리던 시절 파우메이라스에서 산투스와 치열한 라이벌리를 구성한 두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 및 브라질 전국리그 5회 우승이라는 대업적을 남겼는데 이때 팀의 플레이메이커 아데미르 다 기아는 그를 두고 "Carregador de Piano" 즉 피아노 운반자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가진 연주자라도 공연장에 피아노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분명 대단한 선수였고 훌륭한 살림꾼이었음에도 기술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부분에서 발목을 잡혀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개인의 실력에 비해 미미했다.

 

18위 제 호베르투

 


생년월일: 1974년 7월 6일
A매치 기록: 8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부터 2010년대에 걸쳐 유럽 무대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브라질리언 윙어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경탄할만한 자기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타고난 운동능력은 물론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과 헌신적인 수비력은 물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축구 지능을 앞세워 활약했으며 엄청난 자기관리의 화신으로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탄산 음료와 패스트푸드를 일절 먹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포르투게사에서 데뷔해 레알 마드리드에 도전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던 제 호베르투는 레버쿠젠에서 부활에 성공하며 2001-02 시즌 팀의 트리플 러너업을 이뤄냈고 이때의 활약을 높게 평가받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바이에른에서는 측면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하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4회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 수훈갑을 새웠고 제 호베르투 개인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는 1997 코파 아메리카와 1997 컨페드컵에서도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제 호베르투는 1998 프랑스 월으컵에서는 벤치에 앉았다. 절치부심한 제호베르투는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도약해 셀레상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스콜라리의 비선호로 인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소속팀에서 출중한 폼을 보여줬음에도 선발되지 못했고 스콜라리가 떠난 이후에 다시 소집되어 2005 컨페드컵 우승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했는데 팀은 8강에서 탈락했지만 제 호베르투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며 활약을 인정받았다.

 


17위 알레망

 


생년월일: 1961년 11월 22일
A매치 기록: 39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본명은 히카르두 호제리우 지 브리투로 외모가 독일계와 닮아 독일인을 뜻하는 알레망이라 불렸던 선수로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초반 브라질을 대표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강력한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넓은 지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안정적인 패스와 헌신적인 태클로 팀을 도왔다.

보타포구에서 이름을 날리며 1985년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알레망은 유럽 무대에 도전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1987-88 시즌 한 시즌 머물렀지만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나폴리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바니의 뒤를 이어 페르테노페이의 중원을 책임지며 1988-89 시즌 UEFA컵 우승과 1989-9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셀레상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알레망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데뷔해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나섰으나 여러 불운이 겹치며 16강에 그쳤다.

 

16위 이메르송

 


생년월일: 1976년 4월 4일
A매치 기록: 7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S 로마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정상급 앵커맨이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경기장 넓은 지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는 훌륭한 인터셉트와 볼 탈취 후 빠르게 역습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마치 퓨마와 같다고 해서 퓨마라고 불렸다.

그레미우에서 데뷔해 어린 나이부터 주전으로 도약한 이메르송은 팀의 1995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1996년 세리  A 우승을 이끈 뒤 유럽에 진출했고 레버쿠젠 시절에는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전성기인 AS 로마 시절에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시즌이라 불리는 2000-01 시즌에 로마의 세리에 A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후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활약했다.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해 셀레상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운 이메르송은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선 둥가와 삼파이우 조합을 넘지 못해 벤치에 앉았으며 2002 한일 월드컵은 부상으로 결장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나와 셀레상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15위 클로두아우두

 


생년월일: 1949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3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1970년대 브라질을 빛낸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역할은 물론 당대 정상급 윙어들에도 견줄 수 있는 뛰어난 드리블 기술을 활용한 적극적인 공격 가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산투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로 나오며 500경기가 넘는 공식 경기에 출전한 클로드아우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과 1968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펠레를 이용한 마케팅을 위해 잦은 친선 경기로 리그마저 소홀하게 했던 산투스의 혹사에 가까운 일정에 의해 개인의 기량이 정체되는 비극을 맞았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대표팀이라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클로두아우두는 중앙 미드필더 제르송과 중원 조합을 이뤄서 활약했는데 이들의 압도적인 중원 장악 능력은 예선과 본선에서 전승으로 우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4위 윌송 피아차

 


생년월일: 1943년 2월 25일
A매치 기록: 5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크루제이루

1970년대 브라질 축구계를 풍미한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리베로이며 강철 같은 스테미너와 뛰어난 전술안과 빠른 상황 판단력을 앞세워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데 능했으며 빌드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비라인과 공격라인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맡았다.

크루제이루에 15년간 머물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피아차는 캄페오네투 미네이루 10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6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명성을 날렸다.

셀레상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던 피아짜는 센터백으로 나온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우베르투, 브리투, 에베라우두와 함께 후방을 튼튼히 지키며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공헌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왔지만 첫 경기에서 부상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13위 카제미루

 


생년월일: 1992년 2월 23일
A매치 기록: 75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010년대 하반기 세계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밀한 플레이에서는 약점을 보였지만 대신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포백 커버 능력과 터프한 태클을 겸비한 진공청소기 유형의 선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룰 누린 카제미루는 같은 팀의 중앙 미드필더 크로스, 모드리치와 조합을 이뤄 일명 크카모 라인으로 불렸는데 이들의 활약으로 라리가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포함해 5회 우승을 이뤄내며 클럽 월드컵에서도 3연패를 기록했으며 개인적으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2회 포함되었다.

그동안 화려했던 클럽 커리어에 비해 셀레상의 활약은 비교적 아쉬운 모습을 보인 카제미루지만 그래도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과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및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에 기여했고 특히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12위 호베르투 벨랑게루

 


생년월일: 1928년 6월 28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50년대 브라질 무대를 호령했던 후방 플레이메이커 스타일의 하프백으로 날카로운 패싱력과 견고하면서도 지능적인 대인 수비, 그리고 명민한 두뇌를 활용해 팀의 빌드업의 키로 활약하며 공수 양면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코린치안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호베르투 벨랑게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 및 히우상파울루 토너먼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4년에 열린 미니 클럽 월드컵에서는 AS 로마와 FC 바르셀로나, 그리고 카라카스 올스타팀을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해 6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벨랑게루는 1956년과 1957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출전이 유력했으나 부상으로 낙마하며 지투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브라질의 전설적인 레프트백 니우통 산투스는 그를 두고 "볼을 보다 우아하게 다룰 줄 아는 선수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11위 바우어

 


생년월일: 1925년 11월 21일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FC

마라카냥의 괴물이라 불렸던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상반기 브라질 무대 절상급 하프백으로 거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했으며 유려한 패스로 팀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하는 등 강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했다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상 파울루 FC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센터하프 역할을 맡았던 바우어는 노로냐, 후이 캄포스와 함께 룰러라고 불렸던 하프백 라인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중원에서 유기적인 플레이로 공격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며 트리컬러 파울리스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50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두 대회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1950년의 마라카냥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해 우승이 좌절되자 오랫동안 저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대의 축구 전문가 카타 프레타는 바우어를 두고 "지난 40년 동안 그에 비견될만한 하프백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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