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2월 26일 기준입니다.
*북유럽에 해당하는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6개 국가입니다.
15위 토르비에른 욘손

생년월일: 1936년 5월 6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33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C 만토바
1960년대 스웨덴 및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패스와 환상적인 드리블 및 준수한 신체능력과 스코어링을 겸비했던 다재다능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노르셰핑에서 데뷔해 알스베스칸 3회 우승을 이뤄내며 1960년 굴드불렌을 수상한 욘손은 스페인의 레알 베티스로 떠났다가 부진에 빠졌는데 피오렌티나를 거쳐 AS 로마에서 부활에 성공했고 AC 만토바에서는 다시 전성기를 누렸다가 1967년에 노르셰핑으로 다시 돌아가서 1969년 스벤스카 쿠펜 우승에 공헌했다.
14위 미카엘 크론델리

생년월일: 1983년 6월 6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62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셀타 비고
2010년대 중반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자원으로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를 포함해 레프트윙과 중앙 미드필더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으며 날카로운 패싱력을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부분에 능했다.
네덜란드 무대에서 데뷔했으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자국리그의 브뢴비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2012-13 시즌에는 셀타 비고로 이적해 라리가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로 성장하며 전성기를 누렸고 세비야에서는 주전 경쟁에서는 밀렸지만 그래도 이적 첫 시즌인 2015-17 시즌에는 준주전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2012와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한 크론델리는 UEFA 유로 2012에서는 네덜란드와 독일을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의 조별리그 탈락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준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3위 욘 라우리드센

생년월일: 1959년 4월 2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2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RCD 에스파뇰
1980년대 덴마크와 스페인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플레이메이커로 경기장을 관통하는 광활한 시야와 양발을 모두 잘 써 날카로운 패스와 상대 골문을 위협하는 슈팅을 적재적시에 활용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에스비에르그에서 데뷔해 1979-80 시즌 덴마크 수페르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라우드리센은 에스파뇰에서 이적해 토마스 은코노와 함께 팀의 중핵으로 활약하며 1986-87 시즌 라리가 3위 및 1987-88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는 후배 미카엘 라우드루프에 밀려 백업으로 주로 대기한 라우리드센은 UEFA 유로 1984에 백업 멤버로 참가해 준우승을 경험했으나 1986 멕시코 월드컵 명단에서는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12위 아울리스 리트코넨

생년월일: 1929년 1월 5일
국적: 핀란드
A매치 기록: 3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舊 툴루즈 FC
야리 리트마넨 등장 이전 핀란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신체능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드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스피드와 정교함을 겸비한 드리블로 경기장 전역을 쥐락펴락했기에 세간으로부터 Monsieur Magic, 즉 마술사 씨라고 불렸다.
쿠오피온 팔로세우라에서 데뷔해 단숨에 핀란드 축구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리트코넨은 핀란드 올해의 축구선수에 3회 선정되었으며 국가대표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프랑스 2부 리그의 舊 툴루즈 FC의 소속으로 활약하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음은 물론 1956-57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끌었다. 1957-58 시즌은 최악의 시즌을 보냈음에도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한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두 골을 득점하며 4-4 무승부를 거두었고 1959-60 시즌에는 리그 5위까지 올렸다.
프랑스로 떠났다가 핀란드로 돌아온 과정에서 리트코넨은 환영받지 못했는데 자국 리그의 HJK 헬싱키로 우여곡절 끝에 복귀에 성공했는데 1963-64 시즌에 HJK 헬싱키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구단의 전설로 떠올랐다. 은퇴한 뒤에는 1993년에 핀란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2년에는 핀란드 정부가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해 주는 프로스포츠 상을 수상했고 2007년과 2008년에는 각각 핀란드 축구 협회가 수상한 캡틴스 볼을 수상했고 글레디에이터스에 헌액되었다.
11위 페르 브레데센

생년월일: 1930년 12월 22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18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특유의 눈부신 금발에 착안해 햇살이라 불렸던 195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인사이드 라이트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활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쉽게 제쳤으며 신속한 원터치플레이로 패스와 슈팅을 적절한 타이밍에 구사했다.
FK 외른 호르텐에서 데뷔해 노르웨이 대표팀에도 소집되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나 이탈리아의 라치오로 이적해 활약하며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 칼 아게 한센과 함께 세리에 A에 북유럽 전성시대를 재창했고 AC 밀란에서는 백업으로 활약하며 1956-57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FK 외른 호르텐으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가진 실력에 비해 노르웨이 대표팀 경력이 짧은데 이는 1952년 라치오로 이적한 탓에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제도상 국가대표팀 스쿼드를 아마추어 팀으로만 구성할 수 있었던 탓에 소집될 수 없었던 탓이 컸다.
10위 마르틴 외데고르

생년월일: 1998년 12월 17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6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유망주 시절에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재능으로도 평가받았으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음에도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에 오른 선수로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과 드리블 및 슈팅력을 겸비한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아스날에서 왕성한 활동량 및 간결한 볼 처리로 플레이스타일을 바꾸며 한층 더 현대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유형으로 성장했다.
노르웨이의 스트룀스고세 IF에서 만 15세에 데뷔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던 외데고르는 라리가 최연소 출장기록을 세웠음에도 토니 크로스와 루카 모드리치가 자리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해 임대 신세를 전전했지만 비테세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2018-19 시즌 에레데비시 올해의 팀 및 2019-20 UEFA 라리가 올해의 레볼루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아스날로 이적해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팀을 프리미어리그 상위권으로 복귀시켰고 외데고르 개인도 PFA 올해의 팀과 아스날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특히 2022-23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만 15세 253일에 데뷔전을 치르며 최연소 데뷔를 기록한 외데고르는 2021년 3월 12일, 만 22살의 나이에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비록 노르웨이 대표팀 전력상 한계로 메이저 대회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예선전에는 핵심 선수로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9위 할바르 토레센

생년월일: 1957년 4월 12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50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198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를 대표하던 판타지스타로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온 더 볼 상황에서 강점을 보였는데 양발을 사용한 적절한 중장거리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상대 수비수 두세 명쯤은 가볍게 제치는 우수한 드리블이 돋보였고 특히 정확한 골 결정력에서 나오는 득점력이 유명했다.
쇠렌 레르비, 예스퍼 올센 등과 함께 1980년대 네덜란드 무대를 이끈 북구의 선수였던 토레센은 자국 리그가 아닌 네덜란드의 트벤테에서 데뷔해 활약했고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에레데비시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 과정에서 에레데비시 역대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인 1987-88 시즌에는 부상으로 거의 나오지 못하면서 유러피언 컵 우승 메달을 받지 못하고 팀을 떠난 비운의 사나이기도 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는 본격적인 황금기가 오던 1990년대가 아닌 1980년대에 활약하던 선수였기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8위 아스게이르 시구르빈손

생년월일: 1955년 5월 8일
국적: 아이슬란드
A매치 기록: 45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아이슬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1980년대 벨기에와 독일 무대를 빛낸 아이슬란드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와 레프트윙에서 주로 활약하며 세련된 드리블과 대지를 가르는 왼발 중장거리 패스를 바탕으로 볼을 운반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았는데 그 기량이 대단해 프란츠 베켄바우어조차도 경탄을 금치 못했으며 독일 언론으로부터 '얼음바다의 지쿠'라 불리며 브라질의 지쿠와 비견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국의 ÍBV 베스트만나에이야에서 데뷔해 곧바로 대표팀에 선발되며 활약한 시구르빈손은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안더레흐트와 클뤼프 브뤼허라는 양대 강호의 틈바구니 속에서 1980-81 시즌 벨기에 컵 우승을 이뤄냈고 이를 바탕으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으나 브라이트니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서브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적한 슈투트가르트에서 쿠트 니더마이어, 헤어만 올리치, 카를 알괴버와 함께 중원을 구성해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1983-84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괴 1985-86 시즌 DFB포칼 준우승, 그리고 1988-89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바이에른의 백업 멤버에서 당대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한 시구르빈손 개인도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1983-84 시즌 후반기에는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리고 은퇴한 뒤에는 2004년 UEFA와 아이슬란드 축구협회에 의해 UEFA 주빌리 어워드를 수상하며 아이슬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공인받았다.
7위 프랑크 아르네센

생년월일: 1956년 9월 30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52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70년대 하반기와 8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 겸 측면 미드필더로 주로 측면보다는 중앙으로 침투해서 창의적인 킬패스를 날리거나 강력한 슈팅으로 직접 골문을 타격하는 컷인 플레이를 선호했다.
덴마크 출신임에도 AFC 아약스에서 데뷔한 아르네센은 같은 국적의 쇠렌 레르비와 함께 중원을 이끌며 아약스에서 에레데비시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8-79 시즌 KNVB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때문에 레르비와 아르네센의 활약을 토대로 아약스는 덴마크인 유망주들을 신뢰하며 자주 영입했다. 그리고 스페인의 발렌시아를 거쳐 벨기에의 안더레흐트에서도 1983-84 시즌 UEFA컵 준우승 및 1984-85 시즌 주필러라가 우승을 차지했으며 말년에는 PSV 에인트호번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에레데비시 3연패 및 1987-88 시즌 트레블을 함께했다.
'데니시 다이너마이트'라 불리던 1980년대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4 4강 및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를 전승으로 통과하는데 일조했고 은퇴한 이후에는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6위 크리스티안 에릭센

생년월일: 1992년 2월 14일
국적: 덴미크
A매치 기록: 140경기 43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제2의 미카엘 라우드루프로 불린 2010년대 프리미어리그 톱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로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넓은 시야와 경이로운 창의성에서 나오는 킬러 패스로 상대의 허를 찔러 아군의 득점을 도왔으며 우수한 킥력으로 데드볼 상황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네덜란드의 AFC 아약스 유스팀에서 데뷔해 에레데비시 3연패를 이뤄냈고 덴마크 올해의 재능에 2회 선정된 에릭센은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2016-17 시즌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및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2017-18 시즌 PFA 올해의 팀과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미드필더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인테르 밀란에서는 2020-2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나 심장 질환으로 인해 세리에 A에서 뛸 수 없게 되자 프리미어리그의 브래드포트르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복귀해 활약하며 2022-23 시즌 EFL컵 우승 및 2023-24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을 기록한 에릭센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참가를 시작으로 UEFA 유로 2012, 2018 러시아 월드컵, UEFA 유로 2020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2020 조별리그에서는 심정지 사태로 중도이탈해 4강 진출의 기쁨을 함께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대표팀에 금방 복귀해 2022 카타르 월드컵과 UEFA 유로 2024까지 참가했다. 여담으로 에릭센은 덴마크 올해의 축구선수에 5회 선정되었다.
5위 토마스 브롤린

생년월일: 1969년 11월 29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47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파르마
전성기는 다소 짧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스웨덴의 마라도나라 불렸던 선수로 별명에 맞는 뛰어난 센스와 우수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쥐락펴락했다.
1984년 스웨덴의 네스비켄 IK에서 데뷔했고 이후 GIF 순스발, IFK 노르셰핑 등을 거치면서 명성을 쌓은 브롤린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세리에 A의 신흥강호 파르마 AC로 이적했는데 승격팀인 파르마를 단숨에 리그 6위에 올리며 UEFA컵에 진출시켰으며 1991-92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92-9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에서는 로열 앤트워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UEFA 슈퍼컵에서도 밀란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4-05 시즌 이후로는 부진에 빠졌고 이후에는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활약한 브롤린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UEFA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는데 공헌했는데 브롤린 개인은 유로에서는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미국 월드컵에서는 대회 올스타팀에 들었음은 물론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4위에 올랐다. 그리고 1990년과 1994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한 브롤린은 비록 전성기는 짧지만 굵은 활약을 바탕으로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칼 아게 한센

생년월일: 1921년 7월 4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22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활약한 덴마크의 뤼트 굴리트로 대포알과 같이 강력한 슈팅을 활용한 준수한 득점력과 정확한 패싱력 및 창의적인 플레이메이킹을 바탕으로 하는 인사이드 포워드였는데 축구 지능과 신체 능력이 모두 우수해 하프백으로도 자주 활약했음은 물론 WM 시스템의 최후방 수비수인 센터 하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덴마크의 아카데미스크 BK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끈 칼 아게 한센은 덴마크 대표팀 소속으로도 욘 한센, 칼 아게 프라에스트와 함께 데니쉬 삼총사로 유명세를 떨치며 스웨덴의 그레노리 삼총사와 라이벌리를 구축했는데 칼 아게 한센의 멀티골로 이집트를 격파하고 이후 이탈리아도 격파하며 4강에 진출했으나 스웨덴에게 패하며 동메달 결정전으로 내려가 영국 연합팀과의 경기에서 5-3으로 승리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마추어 리그였던 덴마크를 떠나 프로였던 잉글랜드의 허더슨필드 타운에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의 아탈란타를 거쳐 다른 데니쉬 삼총사들이 머물던 유벤투스로 이적한 칼 아게 한센은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1951-52 시즌에 그레노리 삼총사를 앞세운 디펜딩 챔피언 AC 밀란을 밀어내고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시기에 칼 아게 한센은 토리노의 전설적인 플레이메이커 발렌티노 마촐라에 비견되기도 했다.
3위 야리 리트마넨

생년월일: 1971년 2월 20일
국적: 핀란드
A매치 기록: 137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북유럽의 지단이라 불렸던 핀란드 국적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1990년대 반 할 체제의 아약스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넓은 시야와 정확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싱력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음은 물론 골문을 직접 타격하는 데에도 능해 1993-94 시즌 에레데비시 득점왕에 올랐을 정도로 뛰어났기에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그를 두고 베르캄프와 비교하며 "베르캄프는 아약스에서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내가 본 아약스 최고의 10번은 야리 리트마넨이다.."라고 술회했다.
아약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리트마넨은 1994-95 시즌의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무패 더블 우승을 포함한 에레데비시 5회 우승에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1995-96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나 아약스를 떠난 뒤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아약스에서 이뤄낸 개인 커리어는 대단했는데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1993년에는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에레데비시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1995-9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핀란드 대표팀이 유럽에서 약체라 국제대회에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히피아와 함께 핀란드의 중핵으로 활약했는데 핀란드 올해의 선수상 9회 수상, 2004년 EFA 선정 핀란드 역대 최고의 선수 선정,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자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자타공인 핀란드 축구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로 남아있다.
2위 닐스 리드홀름

생년월일: 1922년 10월 8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24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C 밀란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자국 리그의 IFK 노르셰핑에서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낸 리드홀름은 바이킹 군단의 일원으로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으나 이후 프로리그인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만 대표팀에 뽑는다는 스웨덴 축구 협회의 방침으로 오랫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이 룰이 해제되자 다시 복귀해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AC 밀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던 리드홀름은 1958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음은 물론 본 포지션이 아닌 라이트 하프 자리에서도 1958-59 시즌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세리에 A 랭킹에서 라이트 하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과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1위 미카엘 라우드루프

생년월일: 1964년 6월 15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104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특히 상대 수비의 예측을 비웃는 창의적인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고 팬텀 드리블을 구사해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팬텀 드리블을 유행시킨 부분으로도 유명했다.
유벤투스와 라치오 바르셀로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비안코네리 군단에서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라리가 4연패와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 그리고 1991-92 시즌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자유계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친정팀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본인의 다짐대로 크루이프에게 복수에 성공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84부터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예선을 통과한 모든 대회를 참가했으나 하필이면 딱 UEFA 유로 1992만 감독과의 불화로 참가하지 못했는데 그 대회에서 덴마크가 우승했다. 그래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라우드롭은 노익장을 보여주며 덴마크를 8강에 올리며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982년과 1985년에 덴마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4-95 시즌에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된 라우드루프는 2004년에 UEFA 주빌리 어워드에 선정되며 덴마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