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공격수 Top 21~30

국가의 영웅들/북유럽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공격수 Top 21~30

토르난테 2025. 3. 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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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2일 기준입니다.

*북유럽에 해당하는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6개 국가입니다.

 


30위 토레 안드레 플로

 


생년월일: 1973년 6월 15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76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첼시 FC

199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를 이끈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로 큰 키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들과의 공중볼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몸이 상당히 유연한 편이라 좋지 않은 자세에서도 곧잘 슈팅으로 득점을 터트리곤 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발기술과 볼 컨트롤도 겸비해 드리블로 풀어나가는 부분과 연계 플레이 역시 준수했다.

노르웨이의 여러 클럽을 떠돌다가 첼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플로는 1997-98 시즌 리그컵과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1998년 UEFA 슈퍼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격침시키고 우승을 차지했고 1999-2000 시즌은 FA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1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로 이적한 뒤에도 2001-02 시즌 스코티시 컵과 리그컵 더블을 이뤄냈으나 선덜랜드로 이적한 뒤에는 폼이 급락하며 몰락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중용된 플로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브라질전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역전골이 되는 페널티킥을 유도하여 16강 진출에 기여했고 UEFA 유로 2000에서도 주전으로 나섰다.

 

29위 올레 군나르 솔샤르

 


생년월일: 1973년 2월 26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67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슈퍼 서브의 대명사급인 선수로 우수한 위치 선정과 자연스러운 공간 침투 능력은 물론 예리한 슈팅 능력까지 겸비해 교체로 출전해서도 경기를 뒤집는 능력에 능했으며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 가운데 가장 완력이 강한 선수 중 하나로 회자되었을 정도로 파워도 강력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오랜 기간 슈퍼 서브 역할을 수행한 솔샤르는 프리미어리그 6회 우승 및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98-99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토르스텐 핑크를 따돌리고 천금 같은 득점골을 넣어 트레블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는 주축으로 활약했던 솔샤르는 비록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득점을 하지 못했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커로, UEFA 유로 2000에서는 주전 윙포워드로 활약했다.

 

28위 올레 마드센

 


생년월일: 1934년 12월 21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50경기 42골
신체조건: 키 171cm
주 소속팀: 스파르타 로테르담

1950~60년대 덴마크 축구를 이끌었던 스트라이커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많은 득점을 선보였는데 특히 높은 수준의 슈팅 스킬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골을 넣었는데 1965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는 힐킥으로 득점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파이널 서드 지역에서 패스를 거의 하지 않아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BK 스테판에서 데뷔해 3부 리그 클럽의 헬레루프 IK로 이적한 마트센은 1961년에는 이 팀을 2부 리그로 올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량이 우수해 덴마크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멤버로 활약했다. 특히 UEFA 유로 1964에서는 예선에서 11골을 기록해 덴마크를 본선 4강에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워 그해 연말에 덴마크 올해의 선수상 수상은 물론 덴마크인으로서 최초로 발롱도르 유효표를 받았다.

아탈란타, FC 바르셀로나 등 여러 프로 팀들이 그를 노렸는데 1965-66 시즌에는 네덜란드의 스파르타 로테르담으로 이적해 활약했는데 그해 KNVB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는 등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27위 에베 산

 


생년월일: 1972년 7월 19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66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샬케 06

2000년대 초중반 분데스리가를 폭격한 덴마크산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바이킹의 후예다운 투지와 성실함은 물론 강인한 피지컬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와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헤더 득점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빠르게 침투해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력화시키는 부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브뢴뷔 IF에서 데뷔한 에베 산은 덴마크 수페르리가 3연패 및 1997-98 시즌에는 데니쉬 컵도 우승하며 덴마크 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했고 독일의 샬케 04로 이적한 뒤에는 DFB 포칼 2연패에 공헌했는데 특히 2001-02 시즌에는 득점도 기록했다. 그리고 2000-01 시즌에는 바이에른 뮌헨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으나 막판 4분에 선두자리가 뒤바뀌며 아쉽게 준우승으로 떨어졌음에도 에베 산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3년에 열린 인터토토컵과 2005-06 시즌을 앞두고 열린 리가포칼에서 우승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욘 달 톰마손과 함께 중용받은 에베 산은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전 경기에 출장했고 나이지리아와의 16강전에서는 첫 골을 기록했는데,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수비진의 맹점을 파고들었고, 미카엘 라우드루프의 패스를 받아, 타리보 웨스트를 넘어 골네트 왼쪽 코너를 강타하여 득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98년 덴마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지역예선 득점왕에 올랐으며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국의 8강행을 경험했다.

 

26위 욘 달 토마손

 


생년월일: 1976년 8월 29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112경기 5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중반 덴마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지능적인 공간 침투와 효과적인 양발 슈팅,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를 볼 수 있었을 정도로 탄탄한 볼 터치로 주목받았으며 특히 올레 군나르 솔샤르처럼 서브로 나왔을 때 활약이 돋보였다. 이에 모르텐 올센 전 덴마크 국가대표팀 감독은 톰마손을 두고 "그는 최고의 공격수이자 궁극의 팀 플레이어였다."라고 칭찬했다.

자곡의 코이에 BK에서 데뷔했지만 네덜란드의 헤렌벤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톰마손은 헤벤벤 소속인 1996년에 네덜란드 올해의 재능에 선정된 톰마손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페예노르트로 돌아와서는 첫 전성기를 누리며 1998-99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 과정에서 38경기에 출전해 16골을 기록했고 1999년 요한 크루이프 실드에서도 아약스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2001-02 시즌 UEFA컵 우승 과정에서도 4강과 결승에서 모두 득점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AC 밀란으로 이적해서는 셰우첸코와 인자기의 슈퍼서브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2002-0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2003-04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중용되며 A매치 통산 공동 최다 득점을 기록한 토마손은 UEFA 유로 2000 예선에서 탈락 위기에 몰린 덴마크를 본선으로 올렸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 1위를 두고 경쟁하던 체코를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했고 본선에서도 4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16강행에 기여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04에서도 스웨덴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2-2 무승부를 이끌어 조국의 8강행에 공헌했다.

 

25위 플레밍 포블센

 


생년월일: 1966년 12월 3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62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쾰른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중반 덴마크와 독일에서 명성을 떨친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화려한 테크닉과 명민한 움직임, 탄탄한 볼 컨트롤,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명성을 날렸다.

오르후스에서 데뷔해 초년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포블센은 레알 마드리드 B팀인 카스티야에 입단했으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독일 무대의 FC 쾰른으로 이적했는데 그곳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토마스 헤슬러, 피에르 리트바르스키와 함께 팀 공격을 이끌며 분데스리가 2년 연속 준우승을 이뤄냈고 PSV 에인트호번을 거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도 사퓌자의 서브 역할을 맡아 1994-95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92-93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의 후계자로 데니쉬 다이너마이트라 불리던 덴마크 대표팀의 전성기를 함께한 포블센은 UEFA 유로 1988과 UEFA 유로 1992에서 주전으로 나섰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그해 연말에 열린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4위 톰 룬드

 


생년월일: 1973년 2월 26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47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0cm
주 소속팀: 릴레스트룀 SK

노르웨이 현지 기자들이 선정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르웨이 최고의 선수로 상대 수비수 두세 명은 간단하게 돌파하는 순간적인 드리블 돌파와 화려한 발밑 기술로 팬심을 사로잡았고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정확한 패스와 슈팅력도 뛰어났다.

선수 생활을 전부 릴레스트룀에서 보낸 룬드는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노르웨이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8년에는 득점왕에 올랐고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중용되었음은 물론 현역 은퇴 이후 클럽의 홈구장인 오로센 스타디온 외곽에 그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진 실력에 비해 세계적으로 덜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극심한 비행기 공포증으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아약스의 이적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자국에서만 활약했기 때문이다.

 

23위 외르겐 유베

 



생년월일: 1906년 11월 22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45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81cm
주 소속팀: 린 오슬로

1930년대 노르웨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주 포지션은 센터포워드지만 특유의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라이트 풀백과 센터 하프를 소화할 수 있었는데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패싱력과 타점 높은 헤더와 골 결정력으로 유명했지만 특히 경기 흐름을 읽는 전술안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린 오슬로에서 장기간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리며 오슬로 챔피언십 4회 우승을 이뤄낸 유베는 특히 노르웨이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전설적이었는데 1929-32 노르딕 챔피언십에서 6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우승을 견인했고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동메달을 획득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축구선수 이외에도 법학 학사 및 작가로도 활동했던 유베는 2006년, 유베의 탄생 100주년엔 유베가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급의 선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2위 토르비에르 닐손

 


생년월일: 1954년 7월 9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28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IFK 예테보리

스웨덴 축구의 암흑기인 1980년대에 에테보리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공격수로 190cm의 큰 키와 준수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는 물론이고 큰 키에도 발이 매우 빨랐고 볼 컨트롤 역시 우수해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흔드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예테보리의 전성기를 이끌며 팬들로부터 신이라 불렸던 사나이 닐손은 세 차례의 예테보리 생활 동안 240경기에 출전해 137골을 득점했는데 알스베스칸 2회 우승 및 1981년 득점왕과 스벤스카 쿠펜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1-82 시즌에는 UEFA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9골을 득점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1984-85 시즌과 1985-8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도 득점왕에 올랐다.

1982년 굴드불렌 수상자인 닐손은 약한 멘탈로 인해 해외 구단에서는 연달아 실패하기도 했고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따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21위 아이두르 구드욘센

 


생년월일: 1978년 9월 15일
국적: 아이슬란드
A매치 기록: 88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첼시 FC

아이슬란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첼시 영입 초창기에는 처진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우수한 볼터치와 강력한 피지컬을 겸비했으며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를 두 번이나 득점왕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뛰어난 찬스 메이킹 능력이 뛰어났고 무리뉴 부임 이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선에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맡기도 했다.

발뤼르에서 데뷔해 가능성을 보여 PSV 에인트호번으로 떠났다가 적응에 실패해 다시 아이슬란드로 돌아온 구드욘센은 볼턴 원더러스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에 첼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무리뉴 체제에서는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유의 다재다능함과 높은 축구 지능으로 로만 이후 스타 선수들의 러시에도 자기 자리를 포지션까지 바꿔가며 지켜냈다. 그러나 미하엘 발락, 마이클 에시앙의 영입으로 입지가 좁아져 이적을 택했고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백업으로 2008-09 시즌 트레블을 경험했다.

아이슬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7회 수상한 구드욘센은 조국의 전력이 약해 메이저 대회에 늘 나서지 못했는데 특히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유럽 플레이오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밀려나며 눈물을 삼키며 은퇴했으나 UEFA 유로 2016의 참가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나고 지역예선에서 아이슬란드가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며 본선 진출이 유력해지자 코칭스태프의 설득으로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 대회의 출전을 위해 은퇴를 번복하고 국가대표팀에 복귀했다. 그리고 F조에서 조별리그를 2위로 통과했고 16강에서도 잉글랜드를 격침시키며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여담으로 구드욘센은 만 17세에 국가대표팀에 데뷔해 아버지 아르노르 구드욘센과 교체되어 들어오면서 세계 최초 국가대표 부자 출전 경기를 치렀는데, 이는 축구 역사상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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