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5

국가의 영웅들/북유럽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5

토르난테 2025. 2. 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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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2월 14일 기준입니다.

*북유럽에 해당하는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6개 국가입니다.

 


15위 유시 야스켈라이넨

 


생년월일: 1975년 4월 19일
국적: 핀란드
A매치 기록: 56경기 59실점 / 2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볼턴 원더러스

핀란드 축구사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큰 키에도 뛰어난 반응속도를 앞세워 무수히 많은 슈팅을 선방했으며 자기관리에 능해 오랜 기간 꾸준하게 활약했음은 물론 페널티킥 방어에도 장점을 보였기에 아스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블랙번 로버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무려 500경기 이상 출전한 야스켈라이넨은 프리미어리그 승격시즌인 2000-01 시즌에 십자인대 부상을 입어 반시즌을 나서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을 입증하고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기에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볼턴에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해 2006-07 시즌에는 클럽 역사상 지금까지 단 두 번밖에 진출한 적 없는 UEFA컵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운 공로가 인정되어 팬 선정 올해의 선수와 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석권했음은 물론 2007년 핀란드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수상했다.

볼턴 원더러스가 강등당하고 재계약에 실패하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도 활약했던 야스켈라이넨은 핀란드 대표팀에서도 핵심 멤버로 활약했는데 초기에는 핀란드의 주전 골키퍼였던 안티 니에미의 백업으로 활약하다가 2005년부터 주전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아쉽게도 핀란드 대표팀 전력의 한계로 메이저 대회에서 아스켈라이넨을 보는 일은 없었다.

 

14위 벵트 니홀름

 


생년월일: 1930년 1월 30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30경기 28실점 / 1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에 북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골키퍼로 뛰어난 선방 실력을 가졌으며 종종 경기에 햇빛 차단용 천모자를 쓰고 나와 전설적인 골키퍼 '리카르도 사모라'에 비견되었는데 특히 날아오는 공을 더욱 잘 잡기 위해서 양손에 벌레잡이 끈끈이를 붙이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IFK 노르셰핑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니홀름은 초년에는 토르스텐 린드베리의 백업으로 대기하다가 그가 감독으로 영전하자 주전으로 도약해 알스베스칸 6회 우승을 이뤄냈다. 1961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축구선수에게 수상하는 굴드불렌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메이저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13위 토르스텐 린드베리

 


생년월일: 1917년 4월 14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19경기 34실점 / 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40년대 스웨덴 정상급 골키퍼로 큰 키에서 나오는 긴 팔다리와 우수한 바디밸런스를 겸비한 육체적으로 우수한 골키퍼였으며 킥력도 준수했다고 전해진다.

데뷔는 외리튀레에서 했지만 다음 시즌에 이적한 IFK 노르셰핑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린드베리는 그곳에서 알스베스칸 6회 우승을 이뤄냈고 1943년과 1945년에는 리그에 이어 스벤스카 쿠펜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더블을 이뤄냈고 그곳에서 은퇴해 지도자 생활까지 이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린드베리는 1948 런던 올림픽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에 공헌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칼레 스벤손의 백업으로 3위를 경험하는데 그쳤다.

 

12위 망누스 헤드만

 


생년월일: 1973년 3월 19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58경기 35실점 / 3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4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코번트리 시티 FC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스웨덴 최고의 골키퍼로 육체파 스타일이었는데 북유럽인 특유의 거대한 체구와 긴 팔다리를 활용해 넓은 범위를 선방했다.

AIK에서 데뷔해 빠르게 주전자리를 차지한 헤드만은 1992년 알스베스칸 우승 및 스벤스카 쿠펜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을 받았고 잉글랜드의 코번트리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9년 스웨덴 스포츠 영예상과 2000년 굴드불렌을 수상했지만 셀틱에서는 백업에 그쳤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라벨리의 후계자로 활약한 헤드만은 1998년 9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A매치에서 843분 무실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UEFA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나이지리아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음에도 조국을 조별리그 1위로 올리는데 수훈갑을 세웠다.

 

11위 토마스 쇠렌센

 


생년월일: 1976년 6월 12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102경기 98실점 / 3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선덜랜드 AFC

2000년대 잉글랜드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골키퍼로 큰 키와 긴 팔다리, 그리고 준수한 예측력을 이용한 안정적인 선방으로 이름을 날렸고 페널티킥 선방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초년에는 덴마크의 여러 클럽을 떠돌다가 챔피언십에 머물던 선덜랜드로 이적해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도약한 쇠렌센은 이적 첫 시즌에 무려 29 클린시트라는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클린시트 기록을 세우며 팀을 승격시켰고 1999-2000 시즌과 2000-01 시즌에는 팀이 7위에 올라서는데 공헌했는데 그 과정에서 2000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타인-위어 더비전에서 상대팀의 레전드 앨런 시어러의 페널티 킥을 선방하며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그가 부상으로 빠진 틈에 강등당했다. 이후 아스톤 빌라와 스토크 시티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며 중용받았고 쇠렌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총 364경기에 출전해 107회의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슈마이켈의 후계자로 활약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롱런한 쇠렌센은 2002 한일 월드컵 16강 및 UEFA 유로 2004 8강에 진출하는데 힘을 보탰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다가 자신의 전임자 페테르 슈마이켈의 아들 카스퍼 슈마이켈에게 대표팀 주전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10위 안드레아스 이삭손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133경기 131실점 / 5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200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21세기 스웨덴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는 이삭손은 2m의 큰 키에서 나오는 공중볼 경합 능력이 우수했으며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키는데 능했다.

트렐레보리에서 데뷔해 가능성을 인정받아 세리에 A의 강호 유벤투스에서 반데사르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으나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자 자국리그의 유르고르덴으로 돌아와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내며 두각을 나타낸 이삭손은 스타드 렌과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전성기를 누리며 스웨덴 올해의 골키퍼에 10회 선정되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장기간 중용되며 A매치 통산 최다 출전 3위에 오른 이삭손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망누스 헤드만의 백업으로 데뷔했고 UEFA 유로 2004에서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UEFA 유로 2004부터 네 대회 연속으로 주전으로 나섰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16강행을 이뤄냈다.

 

9위 비거 옌센

 


생년월일: 1951년 3월 1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20경기 26실점 / 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클뤼프 브뤼허

1970~80년대에 유럽 무대에 명성을 떨친 골키퍼로 날렵한 반사신경과 긴 팔다리를 이용한 선방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판단력과 예측력도 정확해 적시에 치고 나오는 일대일 선방과 페널티킥 선방에도 강점을 보였음은 물론 종종 페널티킥으로 득점하기도 했다.

볼드클럽 1903에서 데뷔했으나 클뤼프 브뤼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외국인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옌센은 주필러리가 5회 우승 및 벨기에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1975-76 시즌 UEFA컵 준우승과 1977-78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977-78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의 퍼포먼스는 너무나도 대단해 세간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기도 했으며 프랑스 언론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최우수 골키퍼 순위에서 5위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브뤼허에 머무는 것을 택했기에 덴마크 대표팀 커리어는 조기에 끊겼다.

 

8위 헨리 프롬

 


생년월일: 1926년 6월 1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31경기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오르후스 짐나스티크포레닝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덴마트를 대표하던 골키퍼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재빠른 민첩성, 그리고 우수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선방을 선보였고 수비라인 지휘 능력 역시 준수했다.

오르후스에서 데뷔해 선수생활의 전부를 보낸 프롬은 덴마크 수페르리카 4회 우승 및 데니쉬 컵 4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54-55 시즌에는 동시에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나서지 못했지만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아르헨티나, 폴란드, 헝가리 등 강적들을 제치고 은메달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헝가리와의 준결승전에서는 페널티킥 상황에서 상대가 페널티킥을 차기 전에 자신이  씹고 있던 껌을 골 포스트에다 붙여 놓았고 이후 그는 헝가리 키커 바르히디 팔의 킥을 펀칭한 직후에 골 포스트에 붙여놓은 껌을 자신의 입으로 다시 집어넣는 기행을 보여줬다.

 

7위 루카시 흐라데키

 


생년월일: 1989년 11월 24일
국적: 핀란드
A매치 기록: 97경기 116실점 / 3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2010년대 후반~20년대 초중반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큰 키와 동물적인 반사신경 그리고 공에 대한 예측력이 모두 우수했으며 나이가 듦에 따라, 경기 운영 측면에서도 상당히 노련해졌지만 후방 빌드업 상황에서 골 킥의 정확도는 다소 아쉬운 편이다.

투룬 팔로세우라에서 데뷔했으나 곧바로 덴마크의 에스비에르 fB로 이적해 활약한 흐라데키는 2012-13 시즌 데니쉬 컵 우승을 이뤄냈고 브륀비를 거쳐 독일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는 2017-18 시즌 DFB포칼 우승 및 2018-19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4강에 올랐으며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는 2023-24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무패 더블 및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핀란드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핀란드 올해의 선수에 6회 선정된 흐라데키 개인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2013년 덴마크 수페르리가 올해의 골키퍼 및 올해의 선수를 동시에 석권했고 2017-18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2020년에는 핀란드 올해의 스포츠 선수로 선정되었다.

 

6위 에릭 토르스트베트

 


생년월일: 1962년 10월 28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97경기 81실점 / 4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4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자타공인 노르웨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큰 키와 긴 팔다리를 활용해 넓은 범위를 철옹성과도 같이 지켜내기로 유명했다.

노르웨이의 바이킹에서 데뷔해 아이크 톤스버그로 떠나서 성장한 뒤에 다시 바이킹으로 돌아와 주전으로 활약하며 초년을 보낸 토르스트베트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터줏대감 우베 캄프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려났지만 토트넘 핫스퍼에서는 부활에 성공해 1989년 토트넘 핫스퍼 올해의 선수 수상 및 1990-91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해당 구단에서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전성기를 누린 토르스트베트는 1984 LA 올림픽에서 대표팀으로 참가한 이후에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출전했는데 본인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단 1골만 내주는 우수한 퍼포먼스로 팀이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도 모든 국가가 1승1무1패를 기록하며 다득점으로 승부를 가리며 탈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5위 칼레 스벤손

 


생년월일: 1925년 11월 11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73경기 116실점 / 1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헬싱보리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바이킹 군단의 영광을 이끌었던 골키퍼로 강렬한 카리스마로 수비라인을 지휘했으며 적절한 위치를 선점했으며 재빠른 반사신경에서 나오는 슈퍼세이브를 보여줬다.

헬싱보리에서 데뷔해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낸 스벤손은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고 리그 준우승 2회에 머물렀음에도 리그에서 가장 우수한 골키퍼로 평가받았고 축구경기가 없는 날에는 소방관으로 일하면서도 훌륭한 기량을 유지하며 팬들의 추앙을 받아 1999년에 헬싱보리의 홈구장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스벤손은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고 그레놀리 삼총사가 이탈리아로 떠나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국가대표팀 자격을 상실했을때 린드베리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도약해 1950 브라질 월드컵 3위, 1952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 및 1958 스웨덴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인 덕에 브라질의 도시 히우지자네이루와 그의 이름 칼레를 합성한 히우칼레로 불리기도 했다.

1952년에 스웨덴 올림픽 대표팀의 동메달을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받았던 칼레 스벤손은 상술한 활약들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카스페르 슈마이켈

 


생년월일: 1986년 11월 5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111경기 91실점 / 5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레스터 시티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의 아들로 키가 큰 편이 아니며 발밑도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굉장한 반사신경과 우수한 순발력 및 우수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슈퍼세이브를 보여줬으며 큰 경기에 강한 강심장이라 PK선방이나 승부차기 같은 팀이 위험한 순간에 슈퍼세이브로 막아내던 대단한 클러치 역시 보유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유스팀에서 데뷔했으나 자리잡지 못하고 여러 팀을 떠돌던 카스퍼 슈마이켈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적한 레스터 시티로 이적해서 본인과 구단의 전성기를 누리며 500경기 이상 출전해 2015-16 시즌 기적적인 프리미어 리그 우승 및 2020-21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여기에서의 활약상을 토대로 덴마크 올해의 축구상을 4회 수상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오래 중용된 슈마이켈은 UEFA 유로 2012에서 서드 골키퍼 역할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91.3%의 선방률을 기록해 조국을 16강에 올렸고 UEFA 유로 2020과 2022 카타르 월드컵 및 UEFA 유로 2024에서도 주전으로 골문을 지켰다.
 

 

3위 토마스 라벨리

 


생년월일: 1959년 8월 13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143경기 133실점 / 5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IFK 예테보리

1980년대와 90년대에 활약했던 당대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우수한 위치선정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으로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켰으며 특히 예측력이 뛰어나 페널티킥 선방에 능했다.

외스테르스와 예테보리에서 전성기를 누린 라벨리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알스베스칸 3회 우승, 후자의 구단에서는 6회 우승을 이뤄내며 개인 통산 알스베스칸 9회 우승을 기록했고 1981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격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받았으며 스웨덴 올해의 골키퍼에도 2회 선정되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라벨리는 조국에서 열린 UEFA 유로 1992에서 조국을 준결승에 올렸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루마니아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단 페트레스쿠와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의 킥을 막아내며 조국을 준결승에 올린 활약은 백미였다. 이 대회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에는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서 2위에 올랐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7위에 올랐다.

 

2위 로니 헬스트룀

 


생년월일: 1949년 2월 21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77경기 81실점 / 2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70년대 정상급 골키퍼이자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으며 안정적인 수비 조율 능력과 뛰어난 선방 능력을 바탕으로 당대 유럽 정상급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전성기를 누린 헬스트룀은 1975-76 시즌과 1980-81 시즌에는 붉은 악마 군단의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팀을 리그 4위 안에 들며 팀 성적을 상위권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헬스트룀 개인도 1977-78 시즌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팀원들 다수가 부진했음에도 군계일학의 활약을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오직 리그에서의 활약으로만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6위에 올랐다.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313분 무실점 행진을 달성하며 팀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에 공을 세웠으며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격인 스웨덴 굴드볼렌을 2회 수상했음은 물론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위 페테르 슈마이켈

 


생년월일: 1963년 11월 18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129경기 1골 112실점 / 5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8kg
주 소속팀: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이자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기복 없는 플레이와 뛰어난 선방, 카리스마 넘치는 수비 조율 능력을 보여줬으며 삼단 방어와 같은 고난도의 선방도 종종 보여줬으며 룰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동료 수비수에게 백패스를 주문한 뒤 그 패스를 손으로 잡으며 시간을 끄는 플레이에도 능했기에 룰 개정에도 영향을 줬다.

글라드삭스 히어로에서 데뷔해 흐비도우레를 거쳐 브뢴뷔에서 전성기를 누린 슈마이켈은 브륀비에서 덴마크 수페르리가 4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한 이후에는 첫 시즌부터 22회의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8-99 시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을 이뤄낸 걸 포함해 PL 우승 5회, FA컵 우승 3회,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를 이뤄냈다.

브뢴비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슈마이켈 개인도 많은 영예를 누렸는데 덴마크 올해의 축구선수 3회 수상을 포함해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 3회 수상 및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골키퍼에 3회 선정되었고 덴마크 올해의 골키퍼에는 4회 선정되었으며 1992-93 시즌 PFA 올해의 팀, 1995-96 시즌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그리고 1997-98 시즌 UEFA 올해의 골키퍼에 선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은퇴한 뒤에는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슈마이켈은 UEFA 유로 1992에서 유고슬라비아 대신 참가했음에도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며 데니시 다이너마이트의 신화를 써내려가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도 덴마크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데니쉬 다이너마이트의 시대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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