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5

국가의 영웅들/헝가리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5

토르난테 2024. 12. 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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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헝가리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2월 8일 기준입니다.

 


15위 두나이 언털

 


생년월일: 1943년 3월 21일
A매치 기록: 31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유럽 축구계 톱클래스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라인을 유린했으며 일대일 상황에서의 정확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부분에도 능했다.

페치 도사에서 데뷔해 우이페슈트 도사에서 전성기를 누린 두나이는 베네, 파제커시 등과 함께 우이페슈티의 황금기를 이뤄내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7연패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 및 1968-69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과 1973-74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진출을 이뤄낸 주역으로 활약했고 두나이 개인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을 3회 수상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주목받았던 두나이는 1960 UEFA U-19 토너먼트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끈 것을 시작으로 백업 멤버로 1964 도쿄 올림픽 우승을 경험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알베르트 플로리안이 기량이 떨어진 이후에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결승전 불가리아전에서 기록한 멀티골을 포함해 총 6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워 금메달을 재차 목에 걸었으며 UEFA 유로 1972에서도 조국의 4강행에 큰 공을 세웠다.

 


14위 파제커시 라슬로

 


생년월일: 1947년 10월 15일
A매치 기록: 92경기 24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70년대 헝가리 무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처진 공격수 겸 레프트윙으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테크니컬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쉽게 따돌렸으며 강력한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우이페슈트 도사에서 전성기를 보낸 파제커시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9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과 1968-69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과 1973-74 시즌 유러피언 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파제커시 개인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3회 수상 및 1970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나름대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펼친 파제커시는 1968 도쿄 올림픽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UEFA 유로 1972는 부상으로 불참했음에도 대단히 롱런한 선수여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 헝가리 대표팀 멤버로 참가했다.

 


13위 빈체 예뇌

 


생년월일: 1908년 11월 20일
A매치 기록: 25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3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활약했던 인사이드 포워드 겸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체구는 작았지만 기술적으로 우수했음은 물론 시대를 앞서나간 현대적인 플레이로 주목받았는데 넓은 지역을 뛰어다니며 다양한 방식의 플레이로 공수 양면에서 팀에 큰 도움이 되었고 적재적시의 타이밍에 상대 하프스페이스로 침투해 득점하는 플레이에도 능숙했다.

데브레첸 바슈타시에서 데뷔해 데브레첸 보슈카이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1930년 마자르 쿠파 우승 및 1933-34 시즌 넴제티 버이녹샤그 3위에 올랐고 빈체 개인도 1930-31 시즌에 리그 득점왕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934년에는 우이페슈트 FC로 이적해 젱겔러 줄러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1938-39 시즌 미트로파컵 우승에도 공을 세웠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여러 차례 소집되어 활약한 빈체는 1934년 이후에 대표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는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하여 이집트전에서 팀의 3번째 골을 만들어냈으며 나치 독일로 인해 취소된 1936-38년에서는 취소 직전까지 1위를 달리는데 공헌했음은 물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8강 스위스전과 결승전에 출전해 조국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12위 보드나르 샨도르

 


생년월일: 1890년 6월 16일
A매치 기록: 25경기 8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마자르 AC


1910년대 헝가리 축구계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볼 컨트롤, 드리블, 슈팅 등 기술적으로도 우수했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와의 볼 경합을 즐겼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결국 공을 따내 득점에 성공하기로 유명했다.

쉬로서 임레, 토스포티야 이스트반과 함께 헝가리 3대 포워드로 평가받았으며 중견 클럽인 마자르 AC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보드나르는 클럽 무대에서는 페렌츠바로시와 MTK 헝가리아라는 강력한 벽으로 인해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권 두 팀의 대부분의 선수들을 제치고 헝가리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조국을 8강에 올렸다.

 


11위 토스포티야 이스트반

 


생년월일: 1891년 7월 28일
A매치 기록: 19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6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10년대 헝가리 축구계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우수한 운동능력과 준수한 체력, 그리고 훌륭한 테크닉을 앞세운 절묘한 드리블을 선보이는 피지컬과 테크닉이 모두 우수했던 공격수였으며 거기에 킥력과 점프력도 우수해 양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했다. 거기다 그의 주특기는 코너킥이었는데 코너킥으로 득점을 노릴 수 있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코너킥 스페셜리스트였다.

내셔널 스포츠 클럽에서 데뷔해 당대 최고의 팀인 페렌츠바로시로 이적해 1912-13 시즌 우승을 이뤄냈으나 쉬로서의 이적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교체로 인해 페렌츠바로시는 몰락하고 지미 호건 체제의 MTK가 독주하자 리그 우승을 이뤄내지 못하다가 선수 겸 감독이었던 1925-26 시즌에야 우승을 이뤄냈을 정도로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백업을 맡았고 1910년대 후반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10위 체흐 라슬로

 


생년월일: 1910년 4월 4일
A매치 기록: 34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0cm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3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활약했던 인사이드 포워드 겸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헝가리 축구의 예술가로 불렸을 만큼 당대 중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드리블러로 평가받았으며 드리블 실력 이외에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유려한 연계 플레이 및 배후 침투로 득점력과 플레이메이킹마저 뛰어났던 우수한 공격수였다.

초년에는 중소 구단을 떠돌다가 MTK 헝가리아에 입단한 이후 전성기를 누린 체흐는 셰베시 구스타브, 사보 언털, 서시 페렌츠 등과 함께 MTK 헝가리아에서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1931-32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으며 체흐 개인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2회 수상 및 1936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체흐는 1932년 체코슬로바키아전에서 데뷔한 이래 주로 친선경기와 중유럽컵에서 참가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백업에 머물렀다.

 


9위 팔로타스 페테르

 


생년월일: 1929년 6월 27일
A매치 기록: 24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50년대 헝가리 축구 최전성기에 활약했던 당대 톱클래스 인사이드 포워드로 우수한 패싱력과 절륜한 스위칭 플레잉으로 상대 수비의 균열을 이끌어냈고 우수한 포스트플레이를 바탕으로 헤딩으로 볼을 내주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슈팅이 강하진 않았지만 기술적이며 정확해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선수 생활을 MTK 헝가리아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팔로타스는 히데구티, 카로이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1955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며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쌍벽을 이뤘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푸스카시와 히데구티의 백업으로 대기해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및 1953년 중유럽컵 우승과 1954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1951년 헝가리 인민공화국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된 팔로타스는 1959년 심장 문제로 만 30세의 나이에 은퇴했으며 이 지병으로 인해 1967년에 만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8위 히르제르 페렌츠

 


생년월일: 1902년 11월 21일
A매치 기록: 33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 헝가리 무대 톱클래스 포워드로 주 포지션은 인사이드 포워드였지만 아웃사이드 포워드 및 센터 포워드 역시 수행할 수 있던 만능 포워드였으며 엄청난 가속력과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재빠른 드리블로 유명했으며 강력한 슈팅력과 준수한 원터치 플레이 및 패싱력 역시 겸비했다.

초년에는 중소 규모의 팀을 떠돌다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기량이 만개해 1925-26 시즌 프리마 디비전에서 24경기 35골을 기록해 팀의 우승과 개인의 득점왕을 모두 석권한 히르제르는 유벤투스에서 43경기 50골을 기록한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MTK로 이적했는데 MTK에서도 1928-29 시즌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뤄내며 오르트 죄르지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19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히르제르는 1927-30 중유럽컵에 참가해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7위 톨디 게저

 


생년월일: 1909년 2월 11일
A매치 기록: 46경기 25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하반기 헝가리 무대를 이끈 인사이드 포워드 겸 센터 포워드로 비록 볼 컨트롤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큰 키와 다부진 체구는 물론 좌중을 압도하는 기세까지 겸비해 공중볼 경합에서는 백전백승을 자랑했으며 강력한 슈팅과 침착한 마무리까지 겸비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샤로시 죄르지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끈 톨디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마자르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31-32 시즌에는 전승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뤄냈고 1937년에는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다. 톨디 개인도 1933-34 시즌 리그 득점왕 및 1938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샤로시와 함께 주축으로 활약한 게저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 8강 및 1938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6위 젱겔러 줄라

 


생년월일: 1915년 12월 27일
A매치 기록: 39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던 공격수로 기술적인 드리블 실력과 정확한 패스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연계 능력도 뛰어났음은 물론 시즌 50골을 두 번이나 넘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득점력을 자랑했다.

설고터르이아니에서 데뷔해 우이페슈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젱겔러는 구단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냈고 젱겔러 개인도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5회 및 1939년과 1945년에는 헝가리를 넘어 유럽 리그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린 젱겔러는 특히 1938-39 시즌에는 정규리그와 미트로파컵 우승은 물론 젱겔러 개인도 32경기에 나와 65골을 기록하는 경악스러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넴제티 버이녹샤그와 미트로파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랐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샤로시, 톨디와 함께 공격의 주축으로 팀을 이끈 젱겔러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36-38 중유럽컵과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이뤄냈지만 1947년에 공산주의에 반대해 헝가리를 떠나 이탈리아의 AS 로마로 떠나며 대표팀 생활이 끊겼다.

 


5위 알베르트 플로리안

 


생년월일: 1941년 9월 15일
A매치 기록: 75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처진 공격수로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민첩한 몸놀림과 탁월한 센스를 활용해 팀 공격을 이끌었으며 드리블과 패스, 슈팅에 모두 능한 완벽한 공격수였다.

선수 생활 전부를 페렌츠바로시에서 보낸 원 클럽맨인 알베르트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그리고 1972년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67년에는 리그에서 27경기 28골을 기록했으며 인터시티 페어스 컵 득점왕에 오르는 활약을 보여주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헝가리 대표팁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한 알베르트는 1960 로마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내며 개인적으로도 공동 득점왕과 신인상을 수상했고 UEFA 유로 1964 3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 UEFA 유로 1972 4위 등 마자르 군단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뤄냈는데 특히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펠레의 브라질을 탈락시키기도 했다.

 


4위 쿠발라 라슬로

 


생년월일: 1927년 6월 10일
A매치 기록: 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5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아이돌이라는 별명에 맞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플레이로 명성을 날렸는데 힐 패스나 드래그백 후 패스 같은 고난도 기술도 서슴없이 구사했으며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능가하는 발재간 능력과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를 활용해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고 득점력도 준수했다.

초년에는 페렌츠바로시에서 활약하다가 헝가리 공산정부의 박해를 피해 탈출하여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1951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한 쿠발라는 라리가 4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포함해 총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며 레알 마드리드의 디 스테파노와의 라이벌리는 라리가를 세계적인 리그로 성장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같이 활약했으나 성과는 적었다.

쿠발라 개인도 마르카 평점 기반 라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57년에는 발롱도르 5위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클럽 창단 100주년 선성 바르셀로나 팬들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바르셀로나 선수로 선정되었다.

 


3위 쉬로서 임레

 


생년월일: 1889년 10월 11일
A매치 기록: 68경기 59골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10년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평가받으며 국내외에서 각종 기록을 보유한 뛰어난 인사이드 포워드로 각종 기록을 보유했던 엄청난 득점력은 물론이고 공격 전반을 지휘하는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던 선수였다.

넴제티 버이녹샤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쉬로서는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했는데 데뷔 시즌에는 팀의 주포로 활약하며 리그에서만 155경기에 출전해 258골을 기록하는 엽기적인 득점력을 선보였고 이 기간 동안 페렌츠바로시에서만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09년부터 1914년까지 6회 연속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1911년부터 1914년까지 4년 연속 유럽 최다 득점자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페렌츠바로시와의 수뇌부와 계약을 두고 갈등이 심해졌고 결국 지미 호건 체제의 MTK 헝가리아로 이적한 쉬로서는 득점력은 페렌츠바로시 시절보다 줄며 125경기에서 141골을 기록했지만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때의 활약으로 넴제티 버이녹샤그 6연패 및 1916-17 시즌 득점왕에 올랐고 말년에는 페렌츠바로시에 돌아와 리그 우승을 한 개 더 추가하며 총 12회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뤄냈는데 당연하게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최다 우승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년 동안 헝가리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한 쉬로서는 다섯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음은 물론 세계 최초로 A매치 50경기를 달성했고 A매치 50골도 세계 최초로 달성했으며 푸스카스가 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30년 넘게 세계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위 히데구티 난도르

 


생년월일: 1922년 3월 3일
A매치 기록: 69경기 39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펄스 나인의 한 계보로 평가받았고 공격형 미드필더의 중시조로 평가받기도 했던 인물로 상대 수비를 유인한 뒤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찬스메이킹을 바탕으로 푸스카스와 코치슈와 연계해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는 팀 전술의 핵심으로 활약했음은 물론 득점력 자체도 우수해서 유인에 실패하더라도 직접 득점을 노릴 수 있었다.

MTK 헝가리의 에이스로 넴제티 버이녹샤그에서는 혼베드의 푸스카스와 라이벌리를 이뤘던 히데구티는 소속팀 MTK 헝가리아에서 300경기에 넘게 출전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5 미트로파 컵에서는 9골을 넣으며 팀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푸스카스, 코츠시스와 함께 매직 마자르의 전술적 핵심으로 활약한 히데구티는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중유럽컵 우승, 그리고 1954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을 이뤘지만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기는 1953년 웸블리에서 잉글랜드와의 세기의 매치였는데 이 경기에서 히데구티는 삼사자 군단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홈 무패의 삼사자 군단을 6-3으로 무너트리는데 크게 기여한다.

 


1위 푸스카스 페렌츠

 


생년월일: 1927년 4월 1일
A매치 기록: 85경기 84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른발과 헤딩을 하지 못했음에도 오직 왼발로만 축구계를 평정했으며 뚱뚱한 체구와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테크닉, 그리고 공격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드래그 백을 실전에서 처음 상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매직 마자르 시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헝가리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린 푸스카스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5년간 진행된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은 물론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1954 서독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서독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고생했고 이 여파로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ESPN이 선정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헝가리 혁명을 외세인 소련군을 불러 진압한 헝가리 정부에게 실망해 스페인에 망명하면서 매직 마자르 시대를 끝내기도 했다.

클럽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의 혼베드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위대한 족적을 남긴 푸스카스는 헝가리 리그 득점왕 4회와 라리가 득점왕 4회, 그리고 유러피언 컵 득점왕 2회에 올랐으며 넴제티 비어녹샤그 5회 우승, 라리가 5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회 우승을 기록했으며 1960년에는 남미의 왕 페냐롤마저 물리치고 인터콘티넨탈컵을 우승했다. 심지어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만 4골을 기록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남미의 왕 페냐롤을 이긴 2차전에서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5-1 대승에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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