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용의 토르난테-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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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마다 성공을 거둔 푸스발 카이저의 도전 정신

카이저의 새로운 도전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축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프란츠 베켄바우어라고 말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하프백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약관의 나이에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과 월드컵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이후 리베로로 전업한 이후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두고 요한 크루이프와 라이벌리를 형성했으며 결국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유로와 월드컵을 모두 우승하고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은퇴했다. 베켄바우어가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난 1983년에는 서독 대표팀은 데어발 체제에서 유럽 챔피언과 월드컵 준우승을 이뤘다. 하지만 유프 데어발과 서독 국가대표팀의 동행은 유로 84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밀려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끝이 났다..

SSC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가 꾸는 꿈

산타 루치아 나폴리의 민요 산타 루치아를 아는가? 해안에서 황혼의 바다로 배를 저어 가는 광경을 노래한 곡으로 한국에서도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기도 했어서 일부 독자분들은 친숙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산타 루치아는 무슨 뜻일까? 산타는 성녀라는 뜻이며 루치아라는 여성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문당해 스스로 눈을 뽑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럽 전역에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고 나서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 지역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나폴리 지역을 연고로 하는 SSC 나폴리에도 수많은 수호성인이 있었다. 가난한 구단인 나폴리를 위해 무급으로 뛰었던 파라과이 출신의 아틸리오 살루스트로, 전성기의 대부분을 나폴리에 헌신했던 안토니오 줄리아노와 주세페 부르스콜..

발롱도르 후보에 들어간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

1965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17위 1966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3위 1967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게르트 뮐러- 7위 1968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게르트 뮐러- 20위 1969년 게르트 뮐러- 3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7위 1970년 게르트 뮐러- 1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1971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5위 게르트 뮐러- 6위 1972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1위 게르트 뮐러- 2위 파울 브라이트너- 18위 1973년 게르트 뮐러- 3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울리 회네스- 11위 1974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2위 파울 브라이트너- 4위 게르트 뮐러- 7위 울리 회네스- 19위 1975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2위 제프 마이어- 5위 게르트 뮐러- 17위 1976년 프란츠 베켄바우..

마라도나가 나폴리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

나폴리의 세 가지 보물 호사가들은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나폴리라는 도시에는 세 가지 보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세계적인 미향으로 꼽히는 항구가 있으며, 둘째는 유럽 대륙의 유일한 활화산인 베수비오 화산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세계적인 축구영웅이자 나폴리의 신으로 불렸던 사나이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다. 다른 두 가지는 수 백, 수 천년 동안 존재했다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7년 만을 머물렀다. 마라도나가 머문 7년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축구선수인 마라도나가 천혜의 자연환경과 맞먹는 보물이 되었을까? 마라도나가 나폴리에게 준 선물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패권은 항상 북부 이탈리아가 쥐고 있었다. 유벤투스, 인터 밀란, AC 밀란, 볼로냐, 토리노, 제노아 등 자신의 시대를 가졌던 팀들..

구인광고로 축구 감독을 뽑았던 이탈리아의 한 클럽

구인광고로 축구 감독을 뽑는다고? 성인인 독자분들은 잡코리아, 인크루트, 알바몬, 알바천국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알 것이다.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저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축구 감독은 저런 방식으로 공개채용하지 않고 능력 있는 감독을 구단에서 미리 선임해 직접 영입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1920년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볼로냐 FC의 구단주 체사레 메디카는 당시 축구 전술에 대한 문화가 발전한 오스트리아의 빈이라는 도시에 볼로냐의 감독 직을 맡을 사람을 구하는 구인 광고를 낸다. 그리고 한 안경을 쓴 사나이가 볼로냐의 감독직에 지원하여 합격한다. 그는 전직 축구 선수였으며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둔 뒤에는 법학 학사를 따..

유벤투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구단이 된 이유

국민 구단 보통 유럽의 축구 구단들은 지역 주민들이 만든 클럽이며 이런 지역 주민들의 서포팅으로 구단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며 지역을 대표해 다른 지역의 팀들을 꺾으며 같은 지역의 다른 팀들과 라이벌리를 구성하며 더비 매치를 벌여 지역 내에서의 구단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넘어 한 나라를 대표하며 전국에 팬덤을 지닌 전국 규모의 구단들도 있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네덜란드의 아약스가 유명하다. 그럼 이탈리아의 전국구 규모의 구단은 어디일까?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AC 밀란이 생각 날 것이다. 하지만 인터 밀란이나 AC 밀란은 해외 팬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이탈리아 내에서 가장 지지받는 구단은 유벤..

축구 역사상 가장 브라질리언스러웠던 감독 이야기

이상주의자 모두가 현실에 순응했다면 사회의 발전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이 현실과 다르면 이를 거스르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간다. 축구계에도 이런 이상주의자들이 있다. 요한 크루이프, 마르셀로 비엘사, 아르센 벵거가 대표적인 예다. "지저분한 경기나 부당한 골을 얻어 이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패배를 택할 것이다." 이 말을 남긴 브라질의 명장 텔레 산타나 역시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축구계의 이상주의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세간의 평가는 황금의 사중주를 데리고도 월드컵 2차 리그에서 탈락한 감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부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감독이다. 오늘은 브라질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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