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예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

클럽 올스타 짜보기/UEFA

페예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2024. 11. 1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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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컨텐츠 제작 시간에 대한 부담으로 우선 베스트 일레븐부터 올리고 서브 멤버는 추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할 예정입니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기록은 주로 트렌스퍼마켓을 참조합니다. 잘못될 경우 다른 기록을 참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으면 공식 홈페이지 우선

*스텟기준은 2024년 11월 14일 기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Feyenoord Rotterdam)

 

창단: 1908년 7월 19일

소속리그: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연고지: 네덜란드 자위트홀란트주 로테르담

홈구장: 더 카위프 → 스타디온 페예노르트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16회 우승

KNVB 베이커: 14회 우승

요한 크루이프 스할: 5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1969-70)

UEFA 컵: 2회 우승 (1973-74, 2001-02)

UEFA 인터토토컵: 그룹 A2 2회 우승 (1967, 1968)

인터콘티넨탈컵: 1회 우승 (1970)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에디 피터스 그라플란트
출생년도: 1934년 1월 5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58~1970
통산 기록: 356경기

 

1960년대 네덜란드 축구계를 평정했던 골키퍼로 공중볼 처리가 아쉽고 캐칭보다는 펀칭으로 쳐내는 걸 선호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용감하고 도전적이었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선정 능력과 순발력으로 이름을 날렸고 페널티킥 선방에 능했다.

아약스에서 데뷔했으나 아약스의 최대 라이벌 페예노르트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던 그라플란트는 디 스타디온클럽의 골문을 지키며 에레데비시 4회 우승 및 KNVB컵 2회 우승, 그리고 1969-70 시즌에는 네덜란드 구단 최초로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셀틱을 상대로 연장혈투 끝에 승리하며 우승을 이뤄내고 화려하게 은퇴한다.

 

 

리베로

 

 

이름: 리누스 이스라엘
출생년도: 1942년 3월 19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7kg

활약 기간: 1966~1974
통산 기록: 271경기 28골 17도움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 네덜란드 무대 최고의 수비수로 철의 리누스라 불렸을 정도로 강력한 대인 방어 능력은 물론 우수한 롱패스와 적극적인 공격 가담, 그리고 적절한 수비 커버로 당대 유럽 최고의 리베로로 이름을 날렸다. 

DWS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에 페예노르트에 합류해 전성기를 누린 이스라엘은 디 스타디온클럽의 일원으로 에레데비시 3회 우승, 1968-69 시즌에는 정규리그 및 KNVB컵 더블을 이뤄냈으며 1970년에는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와 같은 팀의 빌렘 반 하네험을 제치고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69-70 시즌에는 유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 셀틱을 무찌르고 유러피언 컵 우승에 올랐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낸 에스투디안테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으며 1973-74 시즌에는 주장으로서 토트넘 핫스퍼를 상대로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다.

 

 

센터백

 

 

이름: 빔 라이스베르헨
출생년도: 1952년 1월 18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71~1978
통산 기록: 216경기 2골 14도움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에레데비시에서 이름을 날린 센터백으로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는 몸싸움과 강력한 태클로 이름을 날렸던 전형적인 스토퍼였다.

즈볼레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며 주목받은 라이스베르헌은 페예노르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1973-74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과 UEFA컵 우승을 동시에 이뤄냈다.

 

 

라이트백

 

 

이름: 벤 바인스테커스
출생년도: 1955년 8월 31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5~1988
통산 기록: 416경기 17골 24도움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네덜란드 무대를 수놓은 정상급 라이트백으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공수가담을 보여줬는데 수비 상황에서는 집요한 대인 마킹을, 공격 상황에서는 자로 잰듯한 오른발 크로스로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페예노르트에서 13년간 머물며 전성기를 보낸 바인스테커스는 비록 아약스와 PSV의 강세에 밀려 많은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1979-80 시즌 KNVB컵 우승과 1983-84 시즌 에레데비시 및 KNVB컵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공헌도를 선보이며 미스터 페예노르트라 불렸다.

 

 

레프트백

 

 

이름: 코어 벨트호엔
출생년도: 1939년 4월 6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56~1970
통산 기록: 380경기 2골

 

자타공인 1960년대 네덜란드 무대 최고의 수비수로 공격력은 평범했지만 빠른 스피드와 특유의 강력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파워풀한 몸싸움을 겸비했고 기술적인 슬라이딩 태클 및 적재적소의 위치에서 상대의 패스를 차단해 고격흐름을 끊는 능력과 같은 수비적인 부분에서 강점을 보였다.

선수생활을 페예노르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벨트호엔은 디 스타디온클럽에 머무는 동안 에레데비시 4회 우승을 포함해 1964-65 시즌 에레데비시와 KNVB컵 더블 크라운을 기록했고 1969-70 시즌에는 백업 멤버로 유러피언 컵 우승을 경험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빔 얀센
출생년도: 1946년 10월 28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리베로,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65~1980
통산 기록: 515경기 53골 116도움

 

1970년대의 부스케츠의 프로토타입과 같은 선수로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포백 보호와 빌드업의 연결점 역할을 우수하게 소화했기에 팀의 밸런스를 잡는 일을 묵묵히 다 해내며 사람들로부터 첩보원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부스케츠와 다르게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체력이 우수했으며 주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뿐만이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및 리베로와 라이트백까지 우수하게 소화했다.

페예노르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구가한 얀센은 빌렘 반 하네험과 포백라인을 잘 보호하며 디 스타디온클럽 소속으로 에레데비시 4회 우승, 1968-69 시즌 KNVB컵 우승, 1969-70 유러피언 컵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73-74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빌렘 반 하네험
출생년도: 1944년 2월 20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68~1976
통산 기록: 372경기 107골 97도움

 

1970년대 에레데비시 무대를 풍미했던 미드필더로 스피드가 느린 편인 것을 제외하면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미드필더였는데 특히 팀을 조율하는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스,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과 적재적소의 인터셉트, 영리한 탈압박, 그리고 통산 200골 이상을 득점한 득점력을 모두 갖췄다.

페예노르트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에른스트 하펠의 페르소나로 명성이 높은 반 하네험은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 에인트호벤의 반 데르 카일런과 치열한 라이벌리를 형성하며 1970년대 에레데비시를 빛냈는데 디 스타디온 클럽의 일원으로 팀을 리드하며 에레디비시 3회 우승과 1969-70 유러피언 컵 우승, 그리고 1973-74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구가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퍼크 반 힐
출생년도: 1904년 1월 2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1cm

활약 기간: 1932~1940
통산 기록: 322경기 43골

 

1920년대~30년대에 걸쳐 네덜란드 축구계의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했던 선수로 2-3-5 시스템의 하프백과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주로 활약했는데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드넓은 시야와 정밀도 높은 롱패스를 바탕으로 한 절륜한 플레이메이킹과 탄탄한 볼 컨트롤과 상황 판단력을 앞세운 볼 간수 능력과 견고한 수비력을 겸비한 완성형 미드필더였다.

네덜란드 축구계가 아마추어리그를 운영하던 시절에 선수 생활 전부를 페예노르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퍼크 반 힐은 페예노르트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정규리그 5회 우승 및 4회 준우승, 그리고 KNVB컵 2회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수훈갑을 세우며 아마추어 시절 네덜란드 리그의 얼굴마담으로 명성을 날렸다.

 

 

라이트윙

 

 

이름: 마누스 브라우브도인트
출생년도: 1915년 4월 29일
포지션: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59cm / 몸무게 60kg

활약 기간: 1931~1947
통산 기록: 253경기 123골

 

아마추어 시절 네덜란드 최고의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키가 작고 240mm의 작은 발의 소유자였지만 우수한 테크닉과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 공격수를 따돌렸으며 작은 발과는 다르게 강력한 중거리 슈팅 능력도 지닌 선수였다.

페예노르트 구단 통산 득점 6위에 랭크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브라우더윈트는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며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1934-35 시즌 KNVB 베이커 우승을 이뤄냈으며 현재는 페예노르트 스타디움으로 이름이 바뀐 더 카위프의 개장 경기에도 참가한 페예노르트의 스타플레이어였다.

 

 

레프트윙

 

 

이름: 코엔 물레인
출생년도: 1937년 2월 15일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2kg

활약 기간: 1955~1972
통산 기록: 491경기 84골

 

1960년대 정상급 레프트 윙포워드로 전광석화 같은 순간 스피드와 민첩한 움직임과 교묘한 트릭을 활용해 수비수의 맨 마팅을 쉽게 벗겨내는 것은 물론 반 박자 빠르면서도 칼같이 정확하게 들어가는 왼발 크로스를 자랑해 네덜란드의 가린샤라고 불렸다.

에레데비지 출범 이전에 페예노르트에서 데뷔해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자타공인 미스터 페예노르트인 물레인은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에레데비시 5회 우승과 KNVB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9-70 시즌에 셀틱을 결승전에서 이기고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페예노르트를 네덜란드 최초로 빅이어를 들어낸 팀으로 만들었다.

페예노르트 팬들 사이에서는 구단 역대 최고의 레전드로 손꼽히는 물레인은 페예노르트 구단은 홈구장인 더 카워프 앞에 그의 동상을 세워놓으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스트라이커

 

 

이름: 오베 킨드발
출생년도: 1943년 5월 1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66~1971
통산 기록: 179경기 142골 40도움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체격은 작았지만 민첩한 몸놀림과 따라잡기 어려운 순간스피드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빈 공간으로 침투해 예측을 불허하는 오른발 슈팅으로 유명했고 유려한 볼 컨트롤과 패스센스를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에서도 훌륭한 역량을 발휘했다.

페예노르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이자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킨드발은 물레인, 반 하네험과의 절륜한 콤비 플레이로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며 에레데비시 2회 우승 및 1968-69 시즌에는 KNVB컵까지 우승해 더블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시작으로 1969-70 시즌에는 하펠 체제에서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었다.

킨드발 개인도 무려 크루이프와 경쟁하며  에레데비시 득점왕을 3회 수상했고 196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는데 비록 가족들의 향수병으로 인해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킨드발이 보여줬던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페예노르트 팬들에게 추억으로 남았다.

 

 

감독

 

 

이름: 에른스트 하펠

출생년도: 1925년 11월 29일

부임기간: 1969~1973

 

현대 축구의 기조인 토털 풋볼을 집대성하며 축구 전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두 거장 중 한 명으로 말수는 적었지만 행동으로 보였던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용병술은 물론 4개 국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정도로 다른 나라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으며 파격적이면서도 구단의 상황에 적합한 전술 운용 능력을 토대로 언더독 팀 위주로 맡았음에도 커리어 통산 17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무리뉴, 카펠로 이전의 축구계 승부사의 대명사였다.

1950년대 축구계의 유행을 선도한 중유럽에서 수석코치로 배웠던 하펠은 ADO 덴하흐라는 약체 팀에서 1967-68 시즌 KNVB 베이커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바탕으로 페예노르트의 지휘봉을 잡았고 페예노르트에서도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1969-70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과 1970-71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때 아약스의 리누스 미헬스와 치열한 라이벌리로 유명했음은 물론 미헬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미헬스보다도 오히려 현대의 토털 풋볼과 더 유사한 면을 보였는데 미헬스의 팀은 과도한 스위칭으로 인해 팀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비했고 불필요한 스위칭을 한데 비해 하펠의 팀은 현대의 기준에서 선수의 포지션을 과하게 벗어나지 않고 적절한 토탈 플레이를 구사했음은 물론 각 포지션의 선수들이 수행하는 역할이나, 3명의 미드필더로 수월하게 진행하는 빌드업, 양 풀백의 오버래핑과 윙어의 컷인 플레이는 물론 전방에서부터 시작되는 압박과 같은 플레이는 당대에는 엄청나게 선진적인 축구였고 현대의 전술 트렌드와 놀랍도록 유사했다.

 

페예노르트 시절의 하펠과 아약스 시절의 미헬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박스 참고

 

 

토탈풋볼의 두 거장 - 上

0. 토탈풋볼의 주인은 누구인가 토탈풋볼은 무엇인가. 많은 축구팬들에게 토탈풋볼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 토탈풋볼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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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풋볼의 두 거장 - 中

3. 에른스트 하펠의 마법 에른스트 하펠은 당대 유럽 축구계에서 가장 유망한 감독 중 한 명이었다. 선수 시절 월드클래스의 중앙 수비수였던 하펠은 뛰어난 수비력 못지 않게 공격 가담에 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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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풋볼의 두 거장 - 下

4. 리뉘스 미헬스와 12사도, 영광의 아약스 하펠의 대성공, 그것도 부임하자마자 이뤄낸 업적에 크게 자극받은 미헬스는 큰 결단을 내린다. 바로 페예노르트의 4-3-3 포메이션을 아약스에 도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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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사진

 

페예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

 

 


서브 및 리저브 멤버는 다음에 보강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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