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5

국가의 영웅들/헝가리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5

토르난테 2024. 11. 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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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헝가리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1월 4일 기준입니다.

 


15위 오르반 빌리

 


생년월일: 1992년 11월 3일
A매치 기록: 52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RB 라이프치히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태생의 헝가리, 독일, 폴란드 삼중국적의 수비수로 신속정확한 상황 판단력을 앞세운 깔끔한 볼 커팅과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을 앞세운 헤딩 클리어링과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위협적인 헤더,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이 돋보이는 다재다능한 수비수로 평가가 높았다.

고향팀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유스 시절을 보낸 뒤에 1군 팀에 데뷔해 활약하다가 2009년에 창단한 RB 라이프치히로 이적해 활약했던 오르반은 2015-16 시즌 구단 역사상 첫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분데스리가 정착 이후에도 2016-17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 2019-2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및 2021-22 시즌과 2022-23 시즌 DFB포칼 2연패 및 2023 시즌 DFL슈퍼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오르반 개인도 2018-19 시즌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일 대표팀에 소집되었지만 2018년 10월 1일, 성인 국가대표로는 헝가리를 선택한 오르반은 헝가리 대표팀 수비라인의 핵심으로 UEFA 유로 2020과 UEFA 유로 2024 본선에 나섰다.

 


14위 가라바 임레

 


생년월일: 1958년 7월 29일
A매치 기록: 8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8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우수한 피지컬과 상대에게 쉽사리 뚫리지 않은 강력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헌신적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으며 제공권 경합 능력에서 나오는 헤더 클리어링과 중요한 순간에 공격에 가담해 클러치를 보여주는 부분에도 능했던 승부사였다.

바치 FC에서 데뷔해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가라바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1984-85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헝가리가 개방을 한 뒤에는 프랑스의 스타드 렌과 벨기에의 샤를루아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82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가라바는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참가했다.

 


13위 판치스 미클로시

 


생년월일: 1944년 2월 4일
A매치 기록: 3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린 크로아티아계 수비수로 항상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학구파 선수로서 우수한 전술안과 침착한 판단력을 보유해 적절한 커버링을 선보였고 제공권 경합에서도 우수해 헤딩 클리어링에 강점을 보였음은 물론 가끔 프리킥을 찼을 정도로 킥력도 대단했다.

페렌치바로시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미클로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1971-72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부다페스트 혼베드 이적 이후로 하락세가 겹쳤고 말년에는 하부리그에서 주로 보였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미클로시는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금메달 및 1972 뮌헨 올림픽 은메달과 UEFA 유로 1972 준결승 오르는데 공을 세웠다. 은퇴한 이후에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하기도 했다.

 


12위 발린트 라슬로

 


생년월일: 1948년 2월 1일
A매치 기록: 7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7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수려한 용모와 우아한 플레이스타일 덕에 남작이라 불렸는데 부다페스트 경제대학 출신으로 경기의 흐름을 읽는 우수한 전술안과 적절한 커버링 및 수비라인 지휘능력을 바탕으로 리베로 역할을 우수하게 수행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발린트는 구단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4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67-68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 및 1971-72 시즌 UEFA컵 4강, 그리고 1974-7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고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에서도 1979-80 시즌 주필러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툴루즈에서는 프랑스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1970년대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발린트는 1972 뮌헨 올림픽 은메달 및 UEFA 유로 1972 준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조극의 12년 만의 본선 진출을 이뤄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1975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11위 솔리모시 에르뇌

 


생년월일: 1940년 6월 21일
A매치 기록: 38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60년대 상반기 유럽 정상급 센터백 중 한 명으로 현역 은퇴 이후에 헝가리 노동당 총서기 카다르 야노시의 개인 경호원으로 일했을 만큼 힘이 장사였는데 이런 압도적인 스트랭스와 강건한 어깨를 활용해 상대 공격수를 찍어 누르는 대인 수비의 달인이었다.

디오슈죄르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내며 내무부 산하의 우이페슈트 도사에 입단한 솔리모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3연패 및 마자르 쿠파 2연패를 이뤄냈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메스죌리와 함께 주축으로 나선 솔리모시는 1960 로마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1962 칠레 월드컵 8강, UEFA 유로 1964 3위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10위 럼볼드 줄러

 


생년월일: 1887년 12월 6일
A매치 기록: 33경기 0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헝가리 무대를 대표했던 수비수로 2-3-5 포메이션의 풀백과 센터하프에서 주로 활약했는데 우수한 축구지능과 적절한 리듬감과 포지셔닝, 그리고 날카로운 태클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는 자신이 얻은 공을 맹목적으로 앞으로 차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방향으로 패스해 역습으로 이어나가는 플레이를 선보였으며 실제로 양발을 모두 다 잘 썼고 패스에도 능숙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선수생활의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럼볼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7회 우승 및 1913년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끌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1908-09 시즌에는 럼볼드 개인도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를 이어나가던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소속으로 싸웠으나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그의 커리어가 끝났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그의 동료였던 전설적인 공격수 쉬로서 임레는 그를 두고 "나는 럼볼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여러 번 선보였으며 이상적인 수비수였습니다. 그는 오른발과 왼발을 모두 잘 썼으며 힘도 세고 기술도 뛰어났습니다."라고 술회했다.

 


9위 주치 러요시

 


생년월일: 1943년 12월 10일
A매치 기록: 3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걸쳐서 헝가리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센터백으로 다부진 피지컬과 강건한 어깨를 활용한 견고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우이페슈트 도사 유스팀에서 성장했으나 광부들의 클럽인 도로기에서 데뷔한 주치는 페레츠바로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8년과 1971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공군팀인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도 준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68년 도쿄 올림픽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활약으로 발롱도르 17위에 랭크되었음은 물론 동독 언론 FUWO가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1972년에도 UEFA 유로 4위와 뮌헨 올림픽 준우승을 이뤄냈다. 여담으로 주치 러요시는 성이 같은 대표팀 선배 주치 샨도르와는 다르게 사랑에도 성공했는데 헝가리의 유명 여배우 페치 일디코와 결혼에 성공하며 더욱 유명세를 얻었다.

 


8위 코라니 러요시

 


생년월일: 1907년 5월 15일
A매치 기록: 4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수비수로 2-3-5 포메이션의 레프트 풀백으로 주로 활약했는데 우수한 피지컬과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준수한 위치 선정과 헤더를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히던 수비수였다.

세게드 AK에서 데뷔해 페렌츠바로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코라니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31-32 시즌에는 정규리그 전승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데 공헌했고 국제대회에서도 1937년 미트로파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동생이 뛰던 프랑스로 이적을 추진하려 했고 거의 성사될 뻔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이적이 물 건너간 일도 있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2년간 대표팀에 소집된 코라니는 1929년 4월 14일 스위스와의 5-4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는데 부상으로 인해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지만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결승행을 이끌었지만 컨디션 난조로 결승전에 빠졌고 그가 빠진 헝가리는 이탈리아에게 패했다. 그리고 1936년에 시작된 중유럽컵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었지만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인해 대회가 중단되는 불운을 겪었다.

 

 

7위 주치 샨도르

 


생년월일: 1921년 11월 23일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40년대 정상급 센터하프로 센터 포워드를 상대하는 대인 수비 능력이 특히 뛰어났으나 세베슈 구스타브가 로란트 줄라를 더 중용한 사실을 가지고 추론했을 때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빌드업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지 않았던 걸로 추정된다.

솔로크에서 데뷔해 약체라 불리던 팀을 데리고 1940-41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에 큰 공을 새우며 주목받았고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스 3연패를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결국 1941년부터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1943년부터는 핵심 선수로 평가받아 1948년에는 중유럽컵 명단에 포함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주치 샨도르는 유명 가수 에르지 코바치와의 불륜으로 인해 헝가리를 탈출해 인근의 자유주의 국가인 오스트리아로 망명할 계획을 세웠으나 준비가 허술한 탓에 걸렸고 경찰 신분이었기에 국가와 당을 배신했다는 변절죄와 탈영죄를 동시에 적용받아 사형을 선고받았고 결국 1951년 6월 4일, 주치 산도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6위 만디 줄러

 


생년월일: 1899년 7월 14일
A매치 기록: 32경기 0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유대인 출신의 1920년대 유럽 무대 정상급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수비수들 사이에서 예술의 거장으로 불렸을 정도로 기술적인 축구를 추구했는데 세련된 태클과 적절한 위치 선정, 그리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바탕으로 활약했기에 '포지셔닝의 예술가', '타이밍의 세계 챔피언'이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 전부를 MTK 헝가리아에서 보낸 만디는 지미 호건 체제의 MTK에서 데뷔해 데뷔 시즌부터 7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MTK를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올리는데 공헌했고 이후에 황금기가 끝난 이후에도 3개의 우승 트로피를 추가했다. 그리고 마자르 쿠파에서도 3회 우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1937년에 은퇴하며 18년의 MTK 생활을 마무리했다.

1923년에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만디는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많은 경기에 나섰는데 1921년 6월 독일전에서 데뷔해 19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1934년까지 대표팀에 나섰다.

 


5위 비로 샨도르

 


생년월일: 1911년 8월 19일
A매치 기록: 5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30년대와 40년대 유럽 최정상급 레프트 풀백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강력한 완력과 우수한 수비기술, 그리고 빠른 스피드를 모두 갖춘 완벽한 수비수였다고 전해진다.

케륄레티 TVE에서 데뷔해 1930-31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끌며 세간의 주목을 받아 MTK 헝가리아에 입단해 전성기를 누린 비로는 MTK 헝가리아에서 만디 줄러와 함께 수비라인을 구성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MTK가 나치 독일의 세력을 등에 업은 호르티 미클로시에 의해 탄압받자 우이페슈트 도사로 자리를 옮겨 활약하며 1945년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끌었고 종전 이후에는 재창단된 MTK로 돌아와 활약하기도 했다.

1940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비로는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벤치에 머물렀지만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간판 수비수로 자리잡으며 코라니와 함께  3경기 동안 단 하나의 실점만 허용하는 짠물 수비를 펼쳤는데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4위 로란트 줄러

 


생년월일: 1923년 2월 6일
A매치 기록: 3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5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리베로의 프로토 타입으로 불리는 선수 중 한 명으로 큰 키와 견고한 피지컬, 그리고 훌륭한 수비 커버 능력과 수비라인 지휘 능력을 물론 하프백과의 스위칭까지 보여주며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초년에는 주목을 받지 못해 여러 팀을 떠돌았고 심지어는 헝가리를 탈출한 쿠발라를 따라가려고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수용소에 갇히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버셔시에 정착한 뒤에 주목받기 시작한 로란트는 공군팀인 부다페스트 혼베드에 입단해 푸스카스, 코치슈, 보직, 그로시치 등과 함께 활약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연패를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매직 마자르 시대의 센터 하프로 활약하며  수비 라인을 지휘했는데 그의 수비라인 지휘력 덕분에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1948~1953 중유럽컵에서도 연달아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에서 아쉽게 패하며 월드컵 우승에는 실패했다.

 


3위 휘글 요제프

 


생년월일: 1897년 8월 14일
A매치 기록: 3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20년대 유럽 최고의 레프트 풀백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이고 우수한 왼발 킥력도 겸비하며 데드볼을 전담하기도 했다.

헝가리 대표팀과 소속팀 우이페슈티에서도 형인 카로이와 함께 수비 조합을 맞추며 휘글 게이트로 불렸으며 이 수비라인은 미트로파 컵에서 우승하며 최초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은 수비라인으로 여겨졌는데 대표팀에서는 1924 파리 올림픽과 1927~1930 중유럽컵에 출전했다. 말년에 버셔시로 이적한 형과 달리 우이페슈티의 원 클럽 맨으로 남았다.

 


2위 휘글 카로이

 


생년월일: 1895년 1월 19일
A매치 기록: 51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20년대 유럽 최고의 라이트 풀백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을 지녔으며 수비 진영을 진두지휘하는 수비라인의 리더였음은 물론 터프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 부분에도 능숙했다.

 

대표팀은 물론이고 소속팀 우이페슈트에서도 동생인 요제프 휘글과 수비 조합을 맞추며 휘글 게이트로 불렸는데 이 수비라인은 미트로파컵에서 우승하며 최초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수비라인으로 여겨졌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많은 경기인 50경기에 출전한 핵심 수비수였던 휘글은 1924 파리 올림픽과 1927~1930 중유럽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월드컵 시대 이전의 헝가리 대표팀을 이끌었다.

 


1위 메스죌리 칼만

 


생년월일: 1941년 7월 16일
A매치 기록: 61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버셔시 SC


1960년대 유럽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로 금발머리의 선수가 견고한 수비력을 보여줬다고 해서 팬들은 그를 황금 바위라고 불렀으며 전술안이 우수하며 기본기가 탄탄해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되었다.

자국리그의 버셔시의 원 클럽 맨이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미트로파컵 3회 우승을 진두지휘한 메스죌리는 마자르 군단 소속으로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것을 시작으로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팀을 8강에 올렸으며 유로 1964에서는 3위라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메스죌리 개인의 명성도 헝가리 국내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인정받았는데 1962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동독 FUWO가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1967년에는 월드 사커가 선정한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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