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Top 10

포지션별 역대 TOP 100/Total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Top 10

토르난테 2024. 11. 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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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생년월일: 1985년 2월 5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득점왕'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성을 지난 스타이자 득점력만큼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불렸는데 양 발과 머리로 모두 득점하는 데 능했고 상대적으로 플레이메이커로서의 능력은 부족했지만 괴물 같은 득점력과 우수한 피지컬로 이 단점을 덮어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의 반열에 올랐다.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데뷔해 어린 나이에도 에이스로 활약했고 이를 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퍼거슨이 그를 영입했으며 지금은 맨유팬들과 사이가 틀어졌지만 2000년대 당시에는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3연패는 물론 2003-04 FA컵 우승, 리그컵 2회 우승, 그리고 2007-08 시즌에는 리그 우승에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하며 맨유를 2000년대 하반기 최강의 클럽으로 올렸고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4년 연속 선정되었으며 특히 2007-08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은 물론 유러피언 골든슈를 석권했으며 PF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했으며 챔피언스리그 득점왕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생애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2009년 당시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호날두는 9년간 팀에 머물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음은 물론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각각 2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6회와 라리가 득점왕 및 유러피언 골든슈 4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이뤄냈고 갈락티코스 소속으로 발롱도르 1위만 4회 수상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득점행진은 어디 안 가 A매치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했으며 유로 2016 우승과 2004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2018-19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자신이 중심이 된 이후로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극도록 부진했으며 이는 유로 토너먼트에서도 일부 이어져 토너먼트에 약하다는 부분으로 저평가를 받기도 했다.

 

 

9위 지쿠

 


생년월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리우 데 자네이루의 펠레'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묘한 드리블, 창의적인 패싱 스킬과 양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스트라이커들을 초월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해 프리킥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낸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지쿠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7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고 198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1차전에서 멀티골을 넣어 2-1 승리했는데 1승 1패 상황 최종전에서도 멀티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해 우승은 물론 대회 MVP를 수상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리버풀을 3-0으로 완파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하며 1983-84 시즌 올해의 선수에 올랐으나 향수병으로 다시 플라멩구로 돌아갔으며 말년에는 J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셀레상에서는 개인은 훌륭했지만 팀 성적은 아쉬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의혹으로 2차 조별리그 2위로 밀려나 3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고도 이탈리아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지쿠는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1977년, 1981년, 1982년, 총 3회 수상했으며 1983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위 호나우두

 


생년월일: 1976년 9월 22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페노메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최전성기 시절에는 엄청난 스피드와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뛰어난 슈팅 능력을 모두 겸비해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를 무릎 꿇리며 압도적인 득점력은 물론 플레이메이킹 마저 능했던 스트라이커였으며 잦은 부상과 갑상선 비대증으로 인해 살이 찐 이후에도 엄청난 골 감각과 축구 센스, 그리고 적절한 위치 선정을 활용해 세계 최고의 스코어러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태어났지만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명문 크루제이루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역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이 치르는 경기인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소속팀의 준우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호나우두 개인은 8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한 호나우두는 "어느 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등장해, 네덜란드와 카탈루냐에서 별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우상이 되었고 스페인에서 신이 되었다." 라는 에릭 칸토나의 발언처럼 네덜란드의 PSV에서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고 바르셀로나의 코파 델 레이와 컵 위너스컵 우승은 물론 라리가 득점왕과 컵 위너스컵 결승전 MOM까지 이뤄내며 펠레와 마라도나에 비견되기 시작했으며 인테르에서 UEFA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UEFA컵 결승전에도 MOM에 선정되었으며 1997-98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와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를 수상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로 돌아와서는 2002-03 시즌 라리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에서 그들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아쉬운 클럽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호나우두가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부분은 역시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이 크다. 특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대단했는데 백업 멤버였던 1994 미국 월드컵을 제외하더라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골든볼과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득점왕과 우승, 그리고 실버볼을 석권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한때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자를 기록했었다가 지금은 클로제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제의 월드컵 활약이 호나우두 이상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1997년과 1999년에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7 코파 아메리카 MVP를 수상했으며 1999 코파 아메라카에서도 팀 동료 히바우두와 공동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다.

호나우두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9회 선정되어 포디움에 4회 들었으며 1997년과 2002년에는 1위를 기록해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 3회 선정과 옹즈도르 2회 수상, 그리고 현역으로 활약하던 2006년에 이미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을 시작으로 은퇴한 뒤에는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및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에 모조리 헌액되었음은 물론 2007년 축구통계협회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선수 100인 중 펠레에 이어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7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생년월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데어 카이저'

부정할 수 없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수비 라인에서의 자유인을 넘어 전 경기장을 자유롭게 누비는 독일식 리베로의 시조로 서독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을 지워냈을 정도로 대인 마킹에도 능했다.

상술한 능력을 바탕으로 독일 내에서도 평범한 클럽이었던 바이에른 뮌헨이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크게 공헌하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각각 4회 우승을 달성했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컵 위너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2회 선정되었다.

베켄바우어의 맹활약은 디 만샤프트에서도 이어졌는데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야신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신인상에 올랐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 쇄골이 다치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마치며 철인의 풍모를 보여줬다.

1970년대에 들어서 리베로로 출전한 1972 유로에서는 독일식 리베로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유로 우승을 이끌어 트레블을 이룬 크루이프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나 크루이프에 밀려 월드컵 실버볼을 받았고 1976 유로에서는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단한 퍼포먼스로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27회는 덤.

 

 

6위 푸스카스 페렌츠

 


생년월일: 1927년 4월 1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질주하는 소령'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른발과 헤딩을 하지 못했음에도 오직 왼발로만 축구계를 평정했으며 뚱뚱한 체구와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테크닉, 그리고 공격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드래그 백을 실전에서 처음 상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매직 마자르 시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헝가리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린 푸스카스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5년간 진행된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은 물론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1954 서독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서독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고생했고 이 여파로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ESPN이 선정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헝가리 혁명을 외세인 소련군을 불러 진압한 헝가리 정부에게 실망해 스페인에 망명하면서 매직 마자르 시대를 끝내기도 했다.

클럽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의 혼베드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위대한 족적을 남긴 푸스카스는 헝가리 리그 득점왕 4회와 라리가 득점왕 4회, 그리고 유러피언 컵 득점왕 2회에 올랐으며 넴제티 비어녹샤그 5회 우승, 라리가 5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회 우승을 기록했으며 1960년에는 남미의 왕 페냐롤마저 물리치고 인터콘티넨탈컵을 우승했다. 심지어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만 4골을 기록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남미의 왕 페냐롤을 이긴 2차전에서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5-1 대승에 크게 공헌했다.



5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생년월일: 1926년 7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 콜롬비아 →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금빛 화살'

축구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60년대를 수놓은 명장 에레라의 말을 빌리면 "디 스테파노는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이며 훌륭한 수비수였다."라는 표현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아르헨티나 시절에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낸 디 스테파노는 대표팀에서도 194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FIFA의 갈등으로 콜롬비아 국적을 취득한 뒤 엘도라도라 불리던 콜롬비아 무대의 미요나리요스에서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나 콜롬비아 역시 FIFA로부터 징계를 받자 스페인으로 떠난다.

스페인 시절인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개인의 전성기는 물론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라리가 8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5연패를 포함해 총 18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라리가 득점왕 5회 수상과 라리가 올해의 선수에 4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를 2회 수상한 디 스테파노는 스페인에서도 월드컵 개막 직전에 부상당하며 월드컵과의 악연을 끝내지 못했다.

 


4위 요한 크루이프

 


생년월일: 1947년 4월 25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토털풋볼을 연주하는 모차르트'

토털풋볼을 추구하는 미헬스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그는 최전방 공격수의 위치에서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지휘하며 토털 풋볼을 구현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 특히 타고난 재능이 대단해 리누스 미헬스는 그를 두고 "크루이프 너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이 있어. 그러니 담배를 끊고 나를 따라라. 제대로 훈련을 해! 내가 널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마! 당대 최고가 아니라 그 이상, 펠레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라고 동기부여를 했다고 한다.

아약스에서 위대한 성공신화의 시작을 알린 크루이프는 미헬스와 함께 일명 '신의 아들들'을 이끌며 구단의 전성시대를 열었는데 1971-72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유러피언 컵 3연패와 에레데비시 8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크루이프 개인도 1971-72 시즌에는 에레데비시와 유러피언 컵, 그리고 KNVB컵 득점왕에 오르며 득점왕 트레블을 이뤄냈고 그의 아약스 시절 등번호 14번은 그가 은퇴하면서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FC 바르셀로나에서도 들어올린 우승컵은 리그 우승 한 번과 코파 델 레이 우승 한 번에 불과했지만 미헬스의 토털 풋볼을 처음 구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크루이프는 이후 바르샤는 토털 풋볼을 기초로 다시 성장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크루이프 개인도  돈 발롱이 선정한 라리가 올해의 선수에 두 번 선정되었다. 크루이프는 양 팀을 통틀어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12회 선정되었고 특히 1971년과 1973년, 그리고 1974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오랑예에서도 불후의 업적을 쌓은 크루이프는 1970년대 네덜란드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나 1974 서독 월드컵과 UEFA 유로 1976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서독 월드컵에서는 남미의 3대 강호인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모두 잡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대회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앞두고 가정사가 생겨 참가하지 못한 부분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3위 디에고 마라도나

 


생년월일: 1960년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魔神'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인물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넘어 스포츠 스타이며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을 정도로 자국에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를 증명하듯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리더십마저 겸비해 동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구단 보드진과 협상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선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오스의 1981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세리에 A 중하위권 나폴리에 가서는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북부의 전통 강호를 제치고 세리에 A 2회 우승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 더블을 달성했고 1988-89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으며 패배에 익숙하던 나폴리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다. 물론 마라도나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여섯번 수상했으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득점왕을 5회 수상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고 1986년과 1987년에는 옹즈도르를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클럽 활약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네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 유니폼을 입었으며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5골 5도움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단일 대회 역대 최고의 활약으로 평가받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무뎌진 대표팀을 이끌고도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공동 1위 리오넬 메시

 


생년월일: 1987년 6월 24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축구의 신'

펠레와 함께 축구사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로 축구 역사상 최고라 불리는 드리블 돌파와 한 시즌에 리그에서만 50골을 득점한 경력이 있는 득점력부터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스로 게임을 만들어가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자질 또한 일품이라 그의 동료 챠비 에르난데스는 "메시가 스타일리시한 개인기나 잔재주를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는 그런건 일체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축구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너무 좋은 축구를 하다보니 그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FC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메시는 구단 통산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 최다 도움을 모두 기록하고 있으며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한 구단에서 300골 300도움을 달성한 선수며 두 번의 트레블을 포함해 라리가 10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포함해 바르셀로나에서만 34개의 우승 트로피를 휩쓸었음은 물론 메시 개인도 발롱도르만 8회 수상했음은 물론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 14회 선정, ESM 올해의 팀 14회 선정, 라 리가 득점왕 8회 수상 및 라리가 베스트 플레이어 6회 수상, 유러피언 골든슈 6회 수상을 이뤄냈으며 라리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활약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이어졌는데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 메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다섯 번의 월드컵과 여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는데 비록 국제대회에서 준우승만 통산 4회 기록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골든볼과 2015 코파 아메리카 MVP를 수상했다. 실제로 디에고 마라도나는 이때의 메시를 두고 "나에겐 발다노와 부루차가가 있었지만 메시에게는 그런 도우미가 없다."라고 변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에 대표팀에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수혈되자 메시는 리더이자 에이스로 팀을 이끌며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4골 5도움을 기록하며 우승에 성공하며 국대 무관에서 탈출하며 득점왕과 MVP를 수상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7골 3도움을 기록했고 토너먼트 전 경기를 포함해 다섯 경기에서 맨 오브 더 매치를 따내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94년 브라질의 호마리우 이후로 28년 만에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을 동시에 석권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정점에 올랐음은 물론 2024 코파 아메리카까지 이뤄내며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공동 1위 펠레

 


생년월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축구의 신'

명실상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압도적인 운동신경과 훌륭한 축구 지능은 물론 공격수로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역대 최고의 스코어러이자 플레이메이커였다.

산투스를 구단 역사 최고의 황금기로 이끈 펠레는 팀의 에이스로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 10번이나 우승했으며 전국리그에서도 5연패를 포함한 6회 우승을 달성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1962년에는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고 신인상과 실버볼을 차지했다. 이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을 보내며 역대 최고의 대표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하며 대회 MVP를 수상하며 우월함이 무엇인지 만천하에 보여줬다.

펠레는 프랑스 풋볼이 추산한 명예 발롱도르를 7회 수상했으며 1959년에는 공식전과 비공식전을 합쳐 127골을 득점하며 FIFA 집계 한 해 최다 득점으로 기록되었으며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펠레와 메시 중 하나를 고르라면 필자는 펠레를 고를 가능성이 크다. 그는 굉장히 시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빛나는 커리어를 이뤄냈고 초인적인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메시 역시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차원에 있었고 명분상으로는 펠레 이상의 조건을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기에 공동 1위로 기록하겠다. 메시와 펠레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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