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21~30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Total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21~30위

토르난테 2024. 11. 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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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30위 마티아스 진델라

 


생년월일: 1903년 2월 10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아우스트리아 빈

펄스 나인의 중시조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선수로 몸싸움을 제외하고는 공격수로서 못하는 게 없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창의적인 플레이와 드리블 스킬이 뛰어나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몸싸움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몸의 움직임이 빨라서 마치 바람에 날리는 종이같이 몸싸움을 피했기 때문에 종이 인간이라고도 불렸다.

당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불렸던 진델라는 선수 생활 대부분을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보냈으며 1926년에는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컵 대회 5회 우승과 미트로파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33년 대회 결승전에서는 주세페 메아차가 이끄는 인테르를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1차전에서는 패했지만 2차전에서는 해트르릭을 기록하며 역전 우승을 이뤄내는 괴력을 보였다. 진델라 개인도 1933년 대회를 포함해 미트로파컵 득점왕을 2회 수상했고 오스트리아 리그 득점왕은 3회 수상했기에 리그 우승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기량 자체가 워낙 훌륭해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오스트리아 표팀에서도 유럽 대륙 최강이라 불렸던 분더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펄스 나인 역할을 맡아 수비를 유인한 뒤 인사이드 포워드인 안톤 샬이나 요제프 비칸에게 득점 찬스를 내주는 획기적인 플레이로 당대 수비의 정석인 대인 방어 시스템을 완벽하게 붕괴시키며 1931-32 시즌 중유럽컵 우승 및 2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편파 판정 끝에 4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지만 진델라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29위 로베르토 바조

 


생년월일: 1967년 2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중 한 명이자 아주리의 판타지스타 계보를 이끈 장본인으로 현란한 발재간과 창의적인 패싱력과 뛰어난 슈팅 스킬을 보여주며 뛰어난 온 더 볼 능력을 보여준 1990년대를 대표하는 판타지스타였다.

피오렌티나에서 데뷔해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바조는 1992-93 시즌 UEFA컵 우승과 1994-95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UEFA컵과 세리에 A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인해 발롱도르와 옹즈도르,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음은 물론 기량이 쇠퇴했다고 비판받았던 1995-96 시즌에도 세리에 A 도움왕에 올랐다. AC 밀란, 인테르  밀란, 그리고 브레시아 칼초에서도 리그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경쟁자 만치니의 부진으로 주전으로 도약한 바조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거의 혼자의 힘으로 공격진을 이끌며 5골을 득점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지만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가 실축함으로써 팀은 패했고 월드컵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 받은 것과는 다르게 대중들에게 그간의 공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1994년에 그가 결승전 직전까지 보여줬던 활약상은 축구계로부터 인정받아 1994년 발롱도르와 옹즈도르에서 모두 2위를 차지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3위에 올랐다.



28위 호세 마누엘 모레노

 


생년월일: 1916년 8월 3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4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로 리버 플레이트의 공격 조합으로 남미를 떨게 했던 라 마키나의 핵심적인 선수였다. 공격수로서 필요한 모든 것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라도나 등장 이전까지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페데르네라, 라브루나와 함께 라 마키나의 시대를 이끈 모레노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14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냈으며 멕시코,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를 돌아다니면서도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모레노는 2차 세계 대전과 아르헨티나와 피파의 갈등으로 인해 월드컵에서 활약은 펼치지 못했지만 194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라 마키나 멤버들을 지휘하며 전승 우승을 달성했으며 1942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했고, 1947년에 국가대표에 복귀하여 디 스테파노와 함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고 MVP를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27위 칼하인츠 루메니게

 


생년월일: 1955년 9월 2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피지컬 활용 능력과 드리블, 슈팅, 헤더 모두 우수했으며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임과 동시에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겸비한 완성형 선수였으며 독일의 펠레라 불리며 80년대 유럽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74년에 데뷔해 1970년대 황금기 막바지부터 활약했던 루메니게는 암흑기를 거치며 다시 돌아온 브라이트너와 함께 브라이트니게 시대를 이끌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을 각각 두 번 우승했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80-8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도 올랐고 이후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무대를 호령했던 루메니게 개인도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었으며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 5회 선정 및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8회 선정 및 옹즈도르 2회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1978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 주전으로 출전했던 루메니게는 UEFA 유로 1980에서 차원이 다른 기량을 보여주며 핵심 선수로 우승해 발롱도르를 획득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부상을 달고 뛰었음에도 5골이나 기록하며 월드컵 준우승과 브론즈 볼을 수상했음은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26위 지지뉴

 

 

생년월일: 1921년 9월 14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가지고 있던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외에도 하프백이나 전방 공격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선수라 풋볼 마스터, 혹은 대가라는 뜻의 마에스트레라 불렸다.

플라멩구와 방구 AC에서 전성기를 누린 지지뉴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캄파오네투 카라오카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며 남미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한 바스쿠 다 가마 왕조를 잘 견제했다. 전성기 이후에 상파울루에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다. 지지뉴 개인도 방구에서 뛰던 1951년에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에도 오르며 아데미르와 함께 브라질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지지뉴의 위대한 활약은 셀레상에서도 이어졌는데 코파 아메리카에 여섯 번 출전해 1949년 대회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은 마라카냥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지지뉴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25위 프란체스코 토티

 


생년월일: 1976년 9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S 로마

200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트레콰르티스타이자 펄스 나인롤 공격수로 우수한 원터치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능력과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피지컬과 볼 컨트롤을 겸비한 탈압박 능력은 물론 득점력까지 공격형 미드필더에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2007-08 시즌에는 펄스 나인으로도 활약하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자타공인 AS 로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최강의 선수로 선수생활을 모두 AS 로마에서만 보냈으며 구단 역대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자를 랭크하고 있으며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5위에 랭크되었으며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다.

토티 개인도 수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1999년 세리에 A 영 플레이어를 시작으로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5회 수상,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 2회 수상, ESM 올해의 팀 3회 선정,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회 수상과 도움왕 2회 수상은 물론 2006-07 시즌에는 이브라히모비치, 카카, 아드리아누, 루카 토니 등 훌륭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빅리그의 다른 득점왕에 앞서며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기도 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는 UEFA 유로 2000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나 이후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도움왕에 오르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고 화려하게 은퇴했다.

 


24위 지네딘 지단

 


생년월일: 1972년 6월 23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90년대 후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호나우두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신속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장을 지배하는 마에스트로였는데 신체 능력도 우수해 탈압박에도 능했으며 특히 큰 경기에서의 클러치 능력이 빛나던 선수였다.

보르도와 유벤투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2연패와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세계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고 이적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2001-0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의 발리 슈팅을 활용한 결승골과 2002-03 시즌 라 리가 우승에 기여한 활약으로 다소 꾸준하게 활약하지 못하고 엘 클라시코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클럽에서의 개인 커리어도 대단한 지단은 1993-94 시즌 리그앙 영 플레이어상을 시작으로 1995-96 시즌에는 리그앙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3회나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5위 안에 6회 들었으며 1998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지단의 백미는 클럽 활약이 아닌 역시 레 블뢰의 최전성기를 이끈 활약상인데 UEFA 유로 1996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모든 대회를 참가했으며 유로 1996과 2002 한일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은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에는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는 맹활약을 앞세워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UEFA 유로 2000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23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생년월일: 1984년 5월 1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00년대 하반기와 2010년대 상반기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군림하던 선수로 부드러운 볼 터치 능력과 상대의 압박을 완벽하게 벗어나는 능력,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킬패스와 팬텀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며 환상술사 또는 두뇌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에서 챠비, 부스케츠와 함께 역대 최강급 미드필더진을 구성했으며 챠비가 은퇴한 이후에는 라키티치와 중원 조합을 구성하며 라리가 9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6회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펩 시절에는 2008-0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클럽 월드컵과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와 UEFA 슈퍼컵마저 모두 우승하며 6관왕을 이뤄냈으며 2014-15 시즌에도 트레블을 이뤄내며 바르셀로나 구단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니에스타의 대단한 활약은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이어졌는데 대표팀에서 이니에스타는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했으며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를 모두 우승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를 달성했으며 3개 대회 모두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유로 2012에서는 대회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개인 수상 이력도 화려한 이니에스타는 라리가 베스트 미드필더 5회 선정, UEFA 올해의 팀 6회 선정, 피파프로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9회 선정되었으며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8회 선정되어 2010년에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으며 2012년에도 3위에 오르며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들었다.



22위 챠비 에르난데스

 


생년월일: 1980년 1월 25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00년대 하반기와 2010년대 상반기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군림하던 선수로 빠른 두뇌회전과 컴퓨터라고 불릴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싱력을 앞세워 경기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였다. 물론 기술적인 몸놀림과 뛰어난 공간 이해도를 활용한 탈압박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해 경기장 전역에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바르셀로나의 유스팀 라 마시아에서 데뷔한 챠비는 바르셀로나에서 데쿠, 에드미우손, 코쿠, 루이스 엔리케 등 여러 선수들과 조합하며 활약하다가 펩 과르디올라의 부임 이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와 함께 역대 최정상급 미드필더진을 구성했으며 라리가 8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2008-0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클럽 월드컵과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와 UEFA 슈퍼컵마저 모두 우승하며 6관왕을 이뤄냈고 말년에도 로테이션 멤버로 2014-15 시즌에도 트레블에 기여하며 바르셀로나 구단의 역사를 새로 썼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챠비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는데 1998-99 시즌 라리가 최우수 신인상을 시작으로 2004-05 시즌 라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상, 라리가 미드필더 3회 수상을 이뤄냈으며 2009년에는 스페인 올해의 운동선수에 선정되었다. 세계 무대에서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UEFA 올해의 팀에 5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IFFHS 선정 세계 최우수 플레이메이커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8-09 시즌 UEFA 올해의 미드필더, 2010-11 시즌 UEFA 올해의 선수 2위,  2010년에는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챠비의 대단한 퍼포먼스는 아르마다 군단에서는 더욱 빛났는데 2002 한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스페인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아라고네스와 델 보스케 체제에서는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를 연달아 우승하며 메이저대회 3연패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유로 2008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에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1위 호베르투 파우캉

 


생년월일: 1953년 10월 1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S 로마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파우캉은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인테르나시오나우의 황금기를 이뤄내며 1979년 무패 우승을 포함해 주립리그 5회 우승 및 전국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파우캉 개인도 브라질 전국 리그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고 특히 1978년과 1979년에는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지쿠를 제치고 브라질 세리 A MVP를 수상했다.

AS 로마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간 파우캉은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및 1982-83 시즌에는 스쿠테토를 따냈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았는데 이때 파우캉의 활약이 대단해서 로마 팬들은 그를 두고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고 불렀다. 이때도 파우캉은 1982-83 시즌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1위에 올랐고 옹즈도르 투표에서도 1982년에는 3위, 1983년에는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셀레상에서도 파우캉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로 불리며 그들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2차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은퇴한 뒤에는 AS 로마 명예의 전당과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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