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31~40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Total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31~40위

토르난테 2024. 11. 2. 15:51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40위 네이마르

 


생년월일: 1992년 2월 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1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당대 최고의 드리블 실력은 물론 볼 컨트롤 실력은 물론 득점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3선까지 내려가서 팀의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에 능통한 완벽한 2선 자원인데 특히 고난이도의 개인기인 사포를 구사하는 능력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산투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네이마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과 2011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팀 3회 선정과 2011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2014-15 시즌 트레블을 이뤄냈고 2015년과 2017년에 발롱도르 3위에 올라 포디움에 올랐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가 있었기에 발롱도르를 원했던 네이마르는 역대 이적료 1위에 해당하는 2억 2200만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기록하며 PSG로 이적하며 리그앙 4회 우승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으며 개인 통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도 전체적인 활약상은 훌륭했지만 정작 메이저 대회 활약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물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성적이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과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이라는 성적이다. 이 대회에서 모두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39위 앙투안 그리즈만

 


생년월일: 1991년 3월 21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0년대 프랑스의 아이콘으로 화려한 스타일의 포워드는 아니었지만 지능적인 공간 활용 능력 및 동료 활용 능력은 물론이고 왕성한 활동량을 활용해 헌신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며 강력한 킥력을 활용해 팀을 이끌었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데뷔해 주목받은 그리즈만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선,ㄴ 구단 역사상 최강의 선수로 평가받는데 비록 리그 우승은 없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과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개인의 퍼포먼스는 매우 대단해 호날두, 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 등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라 리가 MVP를 수상했으며 이외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2회 선정되었다. 이후 바르셀로나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코파, 플라티니, 지단에 이어 레 =블뢰의 제4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 그리즈만은 UEFA 유로 2016에서는 조국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개인의 퍼포먼스는 경쟁자들과는 다른 차원이었기에 MVP와 득점왕을 석권하며 2016 올해의 프랑스 선수상을 받았고 발롱도르 3위에 올라 처음으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들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우승에 큰 공을 세워 러시아 월드컵 실버 부츠와 브론즈볼, 그리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연말에 열린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그리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는 아쉬웠지만 결승전 직전까지는 조국을 결승에 올린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38위 앙헬 로마노

 


생년월일: 1893년 8월 2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10년대와 20년대 우루과이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드리블과 찬스 메이킹에 능했으며 주 포지션은 인사이드 레프트 및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지만 골키퍼를 포함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축구라는 스포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던 천재적인 토탈 플레이어였다.

클루브 나시오날 통산 득점 5위에 랭크된 로마노는 스카로네와 함께 트리콜로리스의 공격을 이끌며 1915년 5관왕을 포함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8회, 코파 데 아너 우승 3회, 그리고 코파 데 캄페텐시아 4회 우승, 그리고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 3회 우승을 포함해 도합 24회의 크고 작은 공식전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투어에서도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보이는 등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우루과이 대표팀의 황금기 초반부를 이끈 로마노는 코파 아메리카에서만 여섯 번 우승했으며 특히 1917년 대회와 1920년 대회에는 득점왕을 달성하기도 했고 올림픽에서도 1924 파리 올림픽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우승하며 한번 걸기도 힘들다는 금메달을 두번이나 걸었음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세계 최초로 A매치 70경기를 달성하며 당시 A매치 출전 횟수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었다.



37위 요제프 비칸

 


생년월일: 1913년 9월 25일
국적: 오스트리아 → 체코슬로바키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슬라비아 프라하

펠레, 게르트 뮐러, 호날두,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에서 가장 득점력이 좋은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100m를 10초 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해 뛰어난 결정력으로 마무리하던 공격수였는데 단순한 포처가 아니라 훈련 시간에 묘기를 부렸다는 점을 보면 탁월한 드리블러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라피트 빈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2회 준우승과 1933-34 시즌 리그 득점왕에 올라 처음 주목을 받았고 아드미라 빈으로 이적해서는 정규리그 2연패를 이뤄냈는데 이때의 활약으로 '분더 팀'이라고 불린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4위라는 성적을 냈다. 그러나 비찬의 아버지는 남부 체코 출신 이민자였고 어머니도 체코 쪽 혈통이었던 관계로 체코슬로바키아로 떠나고 싶어 했기에 비찬은 일방적으로 계약의 파기를 꺼내기에 이르렀고 아드미라는 비찬에게 4년의 출장 정지라는 초강수로 응수했기에 비찬을 영입하고 싶어 하던 슬라비아 프라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해서 출장 정지 징계를 깎으려 시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찬은 1937년 8월부터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활약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비찬은 전성기 궤도에 오르며 엄청난 골 폭풍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슬라비아 프라하의 1938 미트로파컵 우승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4연패를 포함한 5회 우승을 이뤄냈고 비찬 개인은 1938년 우승과 더불어서 미트로파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정규리그 득점왕을 무려 11회나 차지했다. 특히 1943–44 시즌에는 32경기에 출전해 76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14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했으나 세계대전 기간인지라 국제대회는 나서지 못했다.



36위 히바우두

 


생년월일: 1972년 4월 1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악마의 왼발이라 불렸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왼발 킥력과 뛰어난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공이 발에 붙어 다닌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드리블과 볼 컨트롤 능력이 발군이었는데 피지컬마저 강했다. 종합하자면 공격수로서의 기량과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량이 모두 뛰어난 완성형 선수였다.

파우메이라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낸 히바우두는 파우메이라스에서는 1994 시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데포르티보에서는 라리가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라리가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7-98 시즌 라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당대 라리가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고 AC 밀란에서는 개인의 활약은 아쉬웠지만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셀레상에서는 파트너 호나우두와 함께 더 화려한 활약을 펼쳤던 히바우두는 1997 컨페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고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해 득점왕과 MVP를 석권하며 우승에 크게 공헌해 트레블 팀 에이스인 베컴을 제치고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 그리고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했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 호나우지뉴와 삼각 편대를 구성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회 올스타 팀과 실버슈를 수상했다.

 

 

35위 마르코 반 바스텐

 


생년월일: 1964년 10월 31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C 밀란

198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유연한 발리슛과 타점 높은 헤더에서 나오는 득점력과 마치 백조와 같이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에서 나오는 퍼스트 터치는 가히 일품이었으며 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 불렸는데 파비오 카펠로는 그를 두고 "반 바스텐은 내가 훈련시킨 선수 중 최고의 센터포워드였다. 그는 백조였다. 호나우두는 절대적으로 월드클래스이지만, 그 역할에서 마르코가 가장 위대했다."라고 평가했다.

아약스에서 데뷔해 약관의 나이인 1983-84 시즌부터 26경기에 출전해 28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은 반 바스텐은 에레데비시와 KNVB컵에서 각각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반 바스텐 개인은 에레데비시 득점왕 4년 연속 수상 및 1985-86 시즌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그리고 1985년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우승을 이뤄냈고 옹즈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클럽팀 중 하나라는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반 바스텐은 그 시대의 슈퍼리그라 불렸던 세리에 A 3회 우승 및 유러피언컵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아올렸고 그 과정에서 세리에 A 득점왕 2회 수상, 1988-89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 수상, 발롱도르 3회 수상 및 옹즈도르 2회 수상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이뤄냈으나 1990년대에는 부상으로 고생하며 결국 31세의 이른 나이로 은퇴했다. 그럼에도 전성기 시절의 임팩트가 대단해 은퇴한 뒤에는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과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반 바스텐은 두 차례의 UEFA 유로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1988에서는 조국의 우승에 가장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득점왕 및 실질적인 MVP로 평가받았고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UEFA 유로 1992에서도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고 은퇴한 뒤인 2016년에는 UEFA 유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다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치긴 했다.

 

 

34위 뤼트 굴리트

 


생년월일: 1962년 9월 1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AC 밀란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자 EA 스포츠의 게임인 피파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실제로도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축구 지능이 모두 뛰어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패싱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그가 가진 다른 능력에 비해서지 전체적으로는 뛰어난 편이었다.

페예노르트에서 1983-84 시즌 에레데비시와 KNVB컵 더블 우승을 이끌며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낸 굴리트는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 뒤에는 에레데비시 2연패를 이뤄냈고 1986년에도 또다시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AC 밀란으로 이적해 발롱도르를 수상한 굴리트는 사키 체제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삼프도리아에서도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이 다재다능한 팀의 에이스는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도 두 차례의 유럽 선수권 대회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1988년에 열린 유로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 이후 1992년에 열린 유로에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지만 월드컵에서는 능력을 다 펼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33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생년월일: 1935년 5월 2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와 인테르에서 모두 전성기를 누린 수아레스는 바르셀로나에서는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에 대항하여 라리가 2연패와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내며 1960년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인테르 밀란에서는 그란데 인테르라 불리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에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냈고 수아레스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64년 발롱로드 2위와 1965년 발롱도르 3위에 올랐다. 말년에는 삼프도리아에서도 활약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며 UEFA 유로 1964에서는 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는데 이 대회 우승은 아르마다 군단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32위 바비 찰튼

 


생년월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60년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공격형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덕목인 드리블과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양발 사용 능력은 축구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며 당시에는 드물었던 플레이를 보여줬는데 공격형 미드필더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 가담했고 실제로도 슬라이딩 태클과 몸싸움을 아끼지 않았던 미래지향적이며 헌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뮌헨 비행기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버스비 감독을 도와 팀의 주장으로서 무너진 팀을 수습하며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FA컵 1회 우승, 그리고 1967-6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공헌했다. 찰튼 개인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9회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신화를 썼는데 1966년 조국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UEFA 유로 1968에서는 3위라는 호성적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에서 탈락했지만 브라질, 서독과의 경기에서 클래스를 보여줬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에 피파에서 공식적으로 선정한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31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생년월일: 1988년 8월 21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년대 하반기와 2020년대 상반기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강력한 피지컬을 활용해 수비수들과 경합에서 잘 이겨내며 백발백중의 우수한 골 결정력과 헤더는 물론 유려한 퍼스트 터치 능력과 동료들과의 깔끔한 연계 플레이를 모두 겸비한 완성형 공격수였다.

자국리그에서 활약하다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빅리그의 첫발을 들인 레반도프스키는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 더블과 2012-13 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하는 등의 활약상을 보여주며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레반도프스키 본인도 2011-12 시즌 포칼 득점왕과 2013-14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맹활약했으나 자유계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뒤에는 분데스리가 8연패와 포칼 3회 우승, 그리고 2019-20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마저 우승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운 레반도프스키는 특히 2019-20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챔피언스리그와 포칼에서도 모두 득점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레반도프스키 개인도 바이에른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영광을 누리며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7회 선정 및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 4회 선정을 이뤄냈고 분데스리가 득점왕 6회 선정과 유러피언 골든슈 2회 수상을 이뤄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 2회 연속 수상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2020-21 시즌에는 종전에 게르트 뮐러가 가지고 있던 기록인 분데스리가 시즌 최다골 기록인 40골을 넘어 41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바이에른 뮌헨과 분데스리가에서 역대 득점 2위를 기록하며 바이에른 뮌헨 팬들의 영웅으로 자리 잡는 듯했으나 2021-22 시즌이 종료되고 다소 좋지 못한 방식으로 FC 바르셀로나 이적을 행했다. 그곳에서도 데뷔 시즌에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 10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2회에 선정된 레반도프스키는 폴란드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예선과 친선 경기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탑 시드를 받는데 공헌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나 UEFA 유로 2020에서는 비록 팀은 탈락했지만 레반도프스키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사우디아라비아전과 16강전 프랑스전에서 득점하며 월드컵 무득점의 고리를 끊어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