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공격수 Top 20

국가의 영웅들/네덜란드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공격수 Top 20

토르난테 2024. 9. 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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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4년 9월 30일 기준입니다.

 


20위 노우드 반 멜리스

 


생년월일: 1924년 2월 10일
A매치 기록: 13경기 15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네덜란드에서 활약했던 스트라이커로 기본적으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위치선정, 그리고 정밀도 높은 슈팅력으로 득점력을 뽐내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지만 전술안이 우수하고 동료들과 연계에도 뛰어나 더 현대적인 공격수의 자질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베 렌스트라와 함께 아마추어 시대에 스타로 군림했고 PSV 에인트호번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린 방 델리스는 특히 1951-52 시즌에는 26경기에 나와서 33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뽑냈으나 1953-54 시즌 이후로는 로다 JK에서 잠시 활약하다가 말년에는 PSV에서 서브 역할을 했다.

정규리그에서의 퍼포먼스는 후배 딜렌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연계능력이 우수했기에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더 중용되었는데 1952 헬싱키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다.

 


19위 베프 바크하위스

 


생년월일: 1909년 4월 16일
A매치 기록: 23경기 28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즈볼셔 AC


네덜란드령 동인도 출신의 1930년대 네덜란드 무대 정상급 포워드로 스피드는 느렸지만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슈팅을 바탕으로 중거리 슈팅과 문전 앞에서의 깔끔한 마무리에 모두 능했으며 섬세한 볼 컨트롤을 활용해 좁은 지역에서 드리블에도 능했다.

HBS에서 데뷔해 활약하다가 즈볼셔 AC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있는 THOR에서는 수라비아 지역 챔피언에 올랐으나 파산 선고를 받아 네덜란드로 복귀했고 1937년에는 프랑스의 스타드 드 랭스로 이적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메스로 이적해 활약하기도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징용되어 라이프치히에서 복무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클럽에서의 활약은 다소 보잘것 없었지만 그의 진가는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나왔는데 리그 톱클래스 공격수 피트 레넌이 감독과 불화를 빚자 그에게 기회가 왔는데 그는 경기 수 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했고 특히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는 아일랜드 자유주와 벨기에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했으며 이외에도 벨기에와 프랑스를 상대로 총 세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8위 피에르 반 후이동크

 


생년월일: 1969년 11월 29일
A매치 기록: 46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1990년대와 2000년대 네덜란드 국적 톱클래스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다재다능해 주 포지션인 스트라이커 이외에도 측면 미드필더와 처진 공격수도 소화할 수 있었고 장신이면서도 바디밸런스가 우수해 헤더로 많은 성과를 냈음은 물론 특히 강력하면서도 아름다운 궤적의 프리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섯 나라 여덟 클럽을 돌아다녔던 저니맨이었던 반 후이동크는 셀틱에서 1994-95 시즌 리그컵 우승으로 커리어의 첫 우승을 경험했고 1995-96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을 차지해 노팅엄 포레스트에서는 지금의 챔피언십인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이뤄내며 득점왕 및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전성기를 누린 페예노르트에서는 2001-02 시즌 UEFA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2001-02 시즌에는 에레데비시와 UEFA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라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전성기 막바지에는 터키의 페네르바체에서는 갈라타사라이를 제치고 쉬페르리그 2연패를 이뤄냈고 2004년에는 터키 쉬페르리가 MVP에 선정된 반 후이동크는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 그리고 UEFA 유로 2004에서 백업 멤버로 활약했는데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득점하기도 했다.

 


17위 헹크 흐루트

 


생년월일: 1938년 4월 22일
A매치 기록: 39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요한 크루이프 이전, 아약스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슈퍼스타로 톱클래스 인사이드 포워드로서 세련된 볼 컨트롤, 드넓은 시야와 완벽한 찬스를 만드는 날카로운 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고 전방에서의 지능적인 위치선정을 이용한 헤더로도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활약했고 그중에서 아약스에서 8년 머물며 전성기를 누린 그루트는 에레데비시 4회 우승 및 KNVB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1-62 시즌에는 인터내셔널 풋볼 컵 우승을 이뤄냈다. 흐루트 개인도 에레데비시 득점왕에 2회 올랐으며 중간에 이적한 페예노르트에서도 1964-65 시즌 에레디비시와 KNVB컵 더블을 이뤄냈다.



16위 케이스 키스트

 


생년월일: 1952년 8월 7일
A매치 기록: 2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Z 알크마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중반에 네덜란드에서 이름을 날린 스트라이커 겸 라이트윙으로 볼 터치와 드리블, 패스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평범했지만 문전에서의 날카로운 감각과 우수한 슈팅스킬을 활용한 득점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전해진다.

AZ 알크마르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441경기에 출전해 259골을 득점하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키스트는 1980-81 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의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고 KNVB컵에서도 3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키스트 개인도 1978-79 시즌과 1979-80 시즌에 에레데비시 득점왕을 차지했는데 특히 1978-79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34골을 기록하며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기도 했다.

역사가 짧았던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1982-83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에 공헌했을 정도로 클럽 커리어는 우수했지만 대표팀만 가면 작아졌는데 이는 미헬스식 토털 풋볼과 잘 맞지 않았고 그랬기에 UEFA 유로 1980에서는 주전으로 나섰음에도 최악의 폼을 보이며 조별리그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

 


15위 클라스 얀 훈텔라르

 


생년월일: 1983년 8월 12일
A매치 기록: 76경기 4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순도 높은 골 결정력을 주 무기로 하는 전형적인 9번 스트라이커 유형의 선수로 각도가 조금만 보인다 싶어도 강력한 킥으로 골문을 타격했으며 침착한 마무리로 득점하는데 능했으며 샬케 시절에는 연계 능력도 어느 정도는 갖추게 되었다.

유망주 시절부터 SC 헤렌벤과 AFC 아약스에서 에레데비시를 평정하며 에레데비시 득점왕 2회 수상 및 2005-06 시즌 네덜란드 올해의 재능에 선정된 훈텔라르는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에서는 실패했지만 독일의 샬케에서 재기에 성공하며 2010-11 시즌 DFB포칼 결승에서 멀티골을 득점해 우승에 큰 역할을 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강 진출을 도왔으며 2011년 DFL슈퍼컵에서도 우승했고 2011-12 시즌에는 절정의 골 감각을 가진 마리오 고메스를 꺾고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수상하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로얄 블루스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며 샬케 팬들의 사랑을 받은 훈텔라르는 대표팀에서도 백업 멤버로 UEFA 유로 2008 8강,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및 2014 브라질 월드컵 3위를 경험했다.

 


14위 피트 반 레넌

 


생년월일: 1909년 1월 17일
A매치 기록: 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30년대 네덜란드 무대가 아마추어였던 시절에 리그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으며 경기 당 1골 이상을 득점했던 엄청난 득점력으로 아약스의 팬들은 그에게 축구의 신 피트라 불렀다.

아약스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오른 피트 반 레넌은 아약스의 일원으로서 네덜란드 리그 5회 우승과 KNVB컵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9년 연속으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괴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해 대표팀 경력이 일천한데 이는 대표팀 감독인 밥 글렌테닝과의 불화 때문이었는데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전술과 경기 스타일에 대한 문제로 충돌했다고 전해진다.

 


13위 지미 플로이트 하셀바잉크

 


생년월일: 1972년 3월 27일
A매치 기록: 2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첼시 FC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네덜란드 톱클래스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흑인 특유의 운동능력과 거대한 피지컬, 그리고 폭발적인 드리블과 대포와 같은 강력한 슈팅으로 명성을 날렸는데 특히 파워풀한 중장거리 슈팅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어린 시절 방황했지만 축구에 전념해 성공을 거둔 하셀바잉크는 네덜란드의 여러 팀을 거쳐 리즈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첫 전성기를 누렸는데 팀을 4위로 올려 UEFA 컵에 진출시켰고 하셀바잉크 개인도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구단주가 급료를 체불해 선수단이 태업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음은 물론 첼시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2000-01 시즌 득점왕에 올랐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베르캄프와 클라위베르트에 밀려 백업 역할을 수행했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백업으로 4강 진출을 경험했다.

 


12위 빔 키프트

 



생년월일: 1962년 11월 12일
A매치 기록: 42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네덜란드 축구계를 풍미한 장신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 및 헤딩과 최전방에서 끊임없이 수비와 싸우고 버티는 몸싸움 능력 및 빼어난 연계 능력을 활용해 현세대의 올리비에 지루와 유사하게 포스트 플레이에 능했으며 골 결정력도 우수했으며 아약스 유스 출신답게 볼 터치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아약스 유스팀에서 데뷔한 키프트는 빠르게 주전으로 도약해 1982-83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에레데비시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특히 1981-82 시즌에는 에레데비시 득점왕 및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으나 이탈리아의 피사에서는 부진해 고국으로 돌아와 PSV 에인트호번에서는 전성기를 맞아 에레데비시와 KNVB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7-88 시즌에는 리그와 컵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하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키프트 본인도 1986-87 시즌 UEFA컵 득점왕 및 1987-88 시즌 에레데비시 득점왕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반 바스텐의 파트너 및 백업으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8 본선에서는 슈퍼서브로 활약하며 아일랜드전 헤더골 득점을 이뤄내는 등 우승에 공헌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오히려 반 바스텐보다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키며 16강 진출에 가장 큰 역할을 했으며 UEFA 유로 1992에서도 베르캄프와 반 바스텐의 백업으로 대기해 4강 진출을 지켜봤다.

 


11위 코엔 딜렌

 


생년월일: 1926년 10월 5일
A매치 기록: 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PSV


1950년대 네덜란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스피드가 느렸고 활동량도 적었지만 압도적인 슈팅파워와 정교한 슈팅기술을 겸비했음은 물론 위치선정도 우수해 득점력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대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공식전 483경기에 출전해 429골을 득점한 코엔 딜렌은 에레데비지 출범 초기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는데 1956-57 시즌 에레데비시 개막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43골을 기록하며 에레데비시 개인 통산 단일 시즌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플레이스타일이 다소 까다롭고 제한적이라 대표팀에서는 중용받지 못했다.

 


10위 로이 마카이

 


생년월일: 1975년 3월 9일
A매치 기록: 4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이름을 날렸던 네덜란드의 5대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경기장에서 잘 보이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신출귀몰한 라인브레이킹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해 유령이라 불렀으며 파워풀한 헤더를 바탕으로 헤더골은 물론 포스트플레이에도 능했던 특급 공격수였지만 당대 네덜란드 대표팀의 스트라이커풀 때문에 대표팀 활약은 일천했다.

비테세에서 데뷔해 테네리페에서 두각을 나타낸 마카이는 수페르 데포르 시절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1999-2000 시즌 구단 역사상 첫 라리가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2001-02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2002-03 시즌에는 마카이 개인도 호나우두를 제치고 라리가 득점왕 및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했고 ESM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구단 역대 이적료를 경신하고 합류해 에우베르의 대체자로 와서 피사로와 호흡을 맞추며 네 시즌 간 머물렀는데 네 시즌 모두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음은 물론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 두 시즌 연속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을 이뤄냈다. 특히 2004-05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도움왕과 득점 2위에 올랐고 공식전 46경기에 출전해 34골을 기록했다.

 


9위 뤼트 헤일스

 



생년월일: 1948년 7월 28일
A매치 기록: 20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70년대 네덜란드와 벨기에 무대에서 활약한 스트라이커로 발밑 기술이 우수하고 연계에도 능해 처진 공격수 역할도 수행했지만 기본적으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뒷공간으로 침투해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던 선수로 크루이프에 비해서는 고전적인 스트라이커 역할에 치중했다.

페예노르트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해리 빌트, 오베 킨드발 듀오의 백업으로 시작해 1968-69 시즌에는 20경기 10골을 기록해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1969-70 시즌 유러피언컵 4경기에서 6골을 터뜨리면서 팀이 유럽 정상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는 아약스를 꺾어내며 무패우승을 막았고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에서도 이적 첫 해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크루이프가 떠난 아약스에 합류한 헤일스는 구단에 네 시즌 머무는 동안 네 시즌 모두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5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올랐고 1975-76 시즌에는 UEFA컵 득점왕에 올랐으나 우승컵은 1976-77 시즌 에레데비시 하나였다. 말년에는 안더레흐트와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활약하며 네덜란드의 삼대 강호인 페예노르트,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 그리고 벨기에의 양대강호 안더레흐트와 클뤼프 브뤼허에서 모두 활약한 독특한 이력을 세웠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참가해 준우승을 경험했고 UEFA 유로 1976에서는 유고슬라비아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8위 아베 렌스트라

 


생년월일: 1920년 11월 27일
A매치 기록: 47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SC 헤렌벤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네덜란드 축구계를 이끌었던 거목으로 체구는 작았지만 경이로운 볼 컨트롤 능력과 기술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음은 물론 슈팅기술이 우수해 정밀도 높은 슈팅을 바탕으로 다양한 패턴으로 득점했음은 물론 작은 체구에도 큰 수비수들을 상대로 헤더를 성공시킬 정도로 헤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네덜란드 축구 리그의 아마추어 시대를 대표하던 아베 렌스트라는 리그 통산 680경기에 출전해 648골을 득점했는데 특히 헤렌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정규리그 9회 우승을 이뤄냈고 득점왕을 2회 수상하는 활약을 선보였는데 인테르 밀란, 피오렌티나 등 해외의 빅클럽들이 백지수표를 건네며 영입을 타진했지만 끝내 조국에 남았기에 팬들로부터 우리들의 아베라 불렸다.

헤렌벤은 그의 업적을 기려 경기장 이름을 아베 렌스트라 스타디온으로 바꾸며 경의를 표했는데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한동안 A매치 최다 득점자의 자리를 지켰다.

 


7위 파트리크 클라위베르트

 



생년월일: 1976년 7월 1일
A매치 기록: 79경기 40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90년대 중반, 한때 호나우두의 대항마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약관의 나이에 전성기를 누린 스트라이커로 탄탄한 피지컬과 이를 이용한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압했으며 우수한 헤더와 유려한 발밑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와 드리블에도 능했던 만능 스트라이커였다.

데뷔 시즌부터 엄청난 활약을 펼쳤던 네덜란드 역대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이었던 클라위베르트는 프로 데뷔 시즌에 36경기 21골을 폭격하며 에레데비시와 UEFA 챔피언스리그 무패 더블을 이끌었고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5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밀란에서는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주춤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부활해 히바우두, 피구와 함께 공격편대를 구축해 1998-99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다섯 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으나 그 뒤에 찾아온 두 번째 슬럼프를 이번에는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치열한 주전 경쟁을 이겨내며 베르캄프와 함께 투톱을 구성해 활약한 클라위베르트는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서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룩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UEFA 유로 2000에서는 5골을 득점하며 득점왕 및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6위 로빈 반 페르시

 


생년월일: 1983년 8월 6일
A매치 기록: 102경기 50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10년대 초반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베르캄프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볼터치와 뛰어난 왼발 슈팅 능력은 물론 축구지능도 높아 동료를 활용하는 연계 능력에도 능했고 드리블도 우수해 일대일 돌파에도 능했던 컴플리트 포워드였으나 부상이 잦아 그 기량을 온전히 펼친 시즌이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 외에는 없었다.

페예노르트에서 데뷔해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나 경기장 안팎으로 사고를 치는 악동이었던 반 페르시는 아스날로 이적한 뒤에도 첫 시즌에는 다소 시끄러웠지만 뱅거 감독과 베르캄프, 앙리와 같은 고참 선수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잦은 부상으로 고생하다 2011-12 시즌에 기량이 만개해 리그 30골을 넣으며 홀로 팀을 3위에 올려놓으며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리그 득점왕과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이적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서도 2012-13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잦은 부상에도 네덜란드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랐을 정도로 대표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반 페ꇸ시는 오렌지 군단의 저지를 입고 월드컵 3회, 유로 2회에 출전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팀을 결승 무대에 올려놓는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2014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을 상대로 그림과 같은 돌고레 헤더로 득점하며 5-1 대승을 거두는 데 공헌했고 팀을 3위에 올려놓았다. 참고로 그 헤딩으로 인해 2014년 푸스카스 상을 수상했다.

 


5위 파스 빌케스

 


생년월일: 1923년 10월 13일
A매치 기록: 38경기 3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50년대 유럽 정상급 인사이드 라이트로 상대 수비를 기만하는 화려한 바디페인팅과 정밀도 높은 슈팅 능력을 겸비했으며 주 포지션인 인사이드 라이트 외에도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서도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네덜란드 리그가 아마추어 리그였던 시절이라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보낸 빌케스는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인테르에 머물며 팀을 상위권에 올렸고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54년 스페인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암흑기라 큰 활약은 하지 못했지만 1959년부터 베르캄프가 경신하기 전인 1998년까지 네덜란드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를 지켰다.

 


4위 뤼트 반 니스텔로이

 


생년월일: 1976년 7월 1일
A매치 기록: 70경기 35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0년대 4대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공격수로 빠른 순간 스피드와 강력한 피지컬을 겸비했으며 우수한 위치선정과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우수한 퍼스트터치, 그리고 문전 앞에서의 정확한 슈팅과 헤더를 활용한 뛰어난 득점력으로 호평받는 클래식 스타일의 스트라이커였다.

PSV에서 데뷔해 커리어 초창기를 보냈던 반 니스텔로이는 1999-2000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및 에레데비시 득점왕을 각각 2회 연속으로 수상하는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2002-03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2003-04 시즌 FA컵, 그리고 2005-06 시즌 리그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에 반 니스텔로이 개인도  2001-02 시즌 챔피언스리그 득점왕과 도움왕 동시 수상과 ESM 올해의 팀과 PFA 올해의 팀, 그리고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2002-03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1-02 시즌을 포함해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3회 수상했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도 라리가 2연패 및 2006-07 시즌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2003년과 2007년에 6위에 올랐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같은 날에 태어난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에 밀려서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반 니스텔로이는 클라위베르트의 폼이 떨어짐과 동시에 반 니스텔로이의 폼이 오르며 네덜란드 대표팀에 소집되어 UEFA 유로 2004 4강 진출에 공헌했고 이후 2006 독일 월드컵 16강, UEFA 유로 2008 8강과 같은 성적을 냈다.

 


3위 데니스 베르캄프

 


생년월일: 1969년 5월 10일
A매치 기록: 79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90년대 네덜란드 대표팀의 에이스로 부드러운 볼 터치와 우수한 위치선정, 그리고 날카로운 슈팅력을 바탕으로 초년에는 포처로 이름을 날렸으나 인테르에서 실패를 겪은 뒤에 아스날에서는 한층 더 성장하며 탄탄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연계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변신에 성공했다.

네덜란드의 명문 아약스에서 데뷔해 제2의 반 바스텐이라 불린 베르캄프는 KNVB컵 2회 우승과 1989-90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86-8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과 1991-92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당대 최고의 무대 세리에 A의 인테르 밀란에서 클린스만의 대체자로 그를 영입했으나 부진한 활약을 펼쳐 비판을 받은 이후 아스날로 이적했으며 아스날에서 다시 전성기를 보내며 2003-04 시즌 무패 우승과 1997-9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4회를 이뤄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에 진출했다.

이뤄낸 팀 커리어 뿐만이 아니라 개인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린 베르캄프는 아약스에서는 1990년 네덜란드 올해의 신인상을 시작으로 에레데비시 득점왕 3회,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2회에 올랐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92년에 3위, 1993년에 2위를 기록하며 포디움에만 두 번 오르는 위용을 뽐냈고 부진했다는 인테르 밀란 시절에도 UEFA컵 득점왕에 올랐다. 전성기를 보낸 아스날에서는 1997년 피파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으며 1997-98 시즌 PFA 올해의 팀과 FWA 올해의 선수를 동시에 석권했다.

오렌지 군단의 에이스로 UEFA 유로 1992를 포함해 세 번의 유로와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한 베르캄프는 첫 대회인 UEFA 유로 1992에서 준결승 진출 및 대회 올스타 팀에 올랐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준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그리고 UEFA 유로 2000에서도 재차 준결승에 올랐다.

 


2위 마르코 반 바스텐

 


생년월일: 1964년 10월 31일
A매치 기록: 58경기 24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C 밀란


198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유연한 발리슛과 타점 높은 헤더에서 나오는 득점력과 마치 백조와 같이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에서 나오는 퍼스트 터치는 가히 일품이었으며 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 불렸는데 파비오 카펠로는 그를 두고 "반 바스텐은 내가 훈련시킨 선수 중 최고의 센터포워드였다. 그는 백조였다. 호나우두는 절대적으로 월드클래스이지만, 그 역할에서 마르코가 가장 위대했다."라고 평가했다.

아약스에서 데뷔해 약관의 나이인 1983-84 시즌부터 26경기에 출전해 28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은 반 바스텐은 에레데비시와 KNVB컵에서 각각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반 바스텐 개인은 에레데비시 득점왕 4년 연속 수상 및 1985-86 시즌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그리고 1985년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우승을 이뤄냈고 옹즈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클럽팀 중 하나라는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반 바스텐은 그 시대의 슈퍼리그라 불렸던 세리에 A 3회 우승 및 유러피언컵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아올렸고 그 과정에서 세리에 A 득점왕 2회 수상, 1988-89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 수상, 발롱도르 3회 수상 및 옹즈도르 2회 수상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이뤄냈으나 1990년대에는 부상으로 고생하며 결국 31세의 이른 나이로 은퇴했다. 그럼에도 전성기 시절의 임팩트가 대단해 은퇴한 뒤에는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과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반 바스텐은 두 차례의 UEFA 유로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1988에서는 조국의 우승에 가장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득점왕 및 실질적인 MVP로 평가받았고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UEFA 유로 1992에서도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고 은퇴한 뒤인 2016년에는 UEFA 유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다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치긴 했다.

 


1위 요한 크루이프

 


생년월일: 1947년 4월 25일
A매치 기록: 48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토털풋볼을 추구하는 미헬스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그는 최전방 공격수의 위치에서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지휘하며 토털 풋볼을 구현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 특히 타고난 재능이 대단해 리누스 미헬스는 그를 두고 "크루이프 너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이 있어. 그러니 담배를 끊고 나를 따라라. 제대로 훈련을 해! 내가 널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마! 당대 최고가 아니라 그 이상, 펠레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라고 동기부여를 했다고 한다.

아약스에서 위대한 성공신화의 시작을 알린 크루이프는 미헬스와 함께 일명 '신의 아들들'을 이끌며 구단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크루이프는 1971-72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유러피언 컵 3연패와 에레데비시 8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으로도 1971-72 시즌에는 에레데비시와 유러피언 컵, 그리고 KNVB컵 득점왕에 오르며 득점왕 트레블을 이뤄냈고 그의 아약스 시절 등번호 14번은 그가 은퇴하면서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FC 바르셀로나에서도 들어올린 우승컵은 리그 우승 한 번과 코파 델 레이 우승 한 번에 불과했지만 미헬스의 토털 풋볼을 처음 구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크루이프는 이후 바르샤는 토털 풋볼을 기초로 다시 성장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크루이프 개인도  돈 발롱이 선정한 라리가 올해의 선수에 두 번 선정되었다. 크루이프는 양 팀을 통틀어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12회 선정되었고 특히 1971년과 1973년, 그리고 1974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오랑예에서도 불후의 업적을 쌓은 크루이프는 1970년대 네덜란드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나 1974 서독 월드컵과 UEFA 유로 1976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서독 월드컵에서는 남미의 3대 강호인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모두 잡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대회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앞두고 가정사가 생겨 참가하지 못한 부분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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