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20

국가의 영웅들/잉글랜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20

토르난테 2024. 9. 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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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9월 16일 기준입니다.


20위 스탠 피어슨

 


생년월일: 1919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8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약했던 인사이드 레프트로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축구지능, 그리고 실속있는 원터치 플레이와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페널티 에어리어에서는 양발과 머리로 모두 정확한 슈팅을 날렸다.

1935-36 시즌에 아마추어로 입단한 뒤, 1937년에 프로로 전향한 피어슨은 뛰어난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복무로 경력이 단절되었고 종전 이후 1947-48 시즌에는 무료 26골을 득점하며 전성기를 누렸고 FA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1-52 시즌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이뤄냈다.

 

19위 해리 챔버스

 

 

생년월일: 1896년 11월 17일
A매치 기록: 8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20년대 잉글랜드 무대 정상급 인사이드 레프트로 대포알과 같은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우수한 바디밸런스로 몸싸움에서 쉽사리 지지 않았다.

1915년에 리버풀에 입단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919-20 시즌에서야 리버풀에서 데뷔한 챔버스는 리버풀 공격의 핵으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2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고 이 시기에 삼사자 군단에도 선발되었다.

그러나 리버풀을 떠난 이후에는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언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릴 뻔했다가 센터하프로 내려갔고 이후에는 하부리그를 떠돌다가 선수생활을 접었다.

 

 

18위 렌 셰클턴

 


생년월일: 1922년 5월 3일
A매치 기록: 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선덜랜드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초반에 잉글랜드 축구계에 명성을 날렸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화려한 플레이를 추구해 관중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고 과한 쇼맨십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저널리스트 맬컴 하틀리는 그에 대해  "끈적끈적한 볼 컨트롤과 숨 막힐 듯한 바디 스네처는 물론이고 볼을 다루는 능력도 훌륭했다. 그의 가는 다리로도 보포스건과 같이 공을 쪼개버릴 수 있는 킥력도 겸비했다."라고 평가했고 동세대에 활약하는 익명의 선수는 그를 두고 "일단 공을 차지하면, 공을 컨트롤하는 데 있어 그의 발재간에 필적한 만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은 그의 노예가 된다.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테크닉, 즉 드리블, 페인팅, 적절한 위치선정과 정밀도 높은 패스를 그는 컨트롤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브래드포드 파크에서 데뷔해 뉴캐슬에서 2부 리그를 평정해 1부 리그 수준의 선수로 성장했고 선덜랜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셰클턴은 특히 1949-50 시즌에는 42경기에 출전해 16골을 기록했고 1951-52 시즌에는 43경기에 출전해 22골을 기록했는데 1949-50 시즌에는 선덜랜드를 리그 3위로 올렸고 두 번의 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중용받지 못했음에도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와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7위 아이버 브로디스

 

 

생년월일: 1922년 12월 18일
A매치 기록: 14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선덜랜드

 

1950년대 상반기에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뛰어난 드리블과 패싱력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원래는 불성실하며 지각이 잦았지만 칼라일 유나이티드 시절 빌 샹클리의 지도를 받아 성실하면서도 우수한 선수로 성장했다.

칼라일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여러 팀에서 활약했는데 선덜랜드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고 맨체스터 시티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불행하게도 우승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잉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도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해 벨기에전 멀티골을 터트리며 조국의 8강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16위 데니스 윌쇼

 


생년월일: 1926년 3월 11일
A매치 기록: 12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

 

1950년대 잉글랜드 무대 정상급 인사이드 레프트로 우수한 왼발 전진 패스와 벼락같이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는데 능했으며 본 포지션인 인사이드 레프트는 물론 아웃사이드 레프트와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을정도로 다재다능했다.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전성기를 이끌며 1953-54 시즌 풋볼 리그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삼사자 군단에서도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서도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지션에 있었던 지미 뮬렌과 찰떡같은 콤비플레이로 유명했다.

 

15위 밥 켈리

 

 

생년월일: 1893년 11월 16일
A매치 기록: 14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0cm
주 소속팀: 번리 FC

 

192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명성을 떨쳤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양발을 모두 잘 썼기에 인사이드 라이트와 인사이드 레프트에서 모두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고 탄탄한 기본기와 정확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양발을 모두 활용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득점력도 뛰어났다.

번리에서 인상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며 1913-14 시즌 FA컵 우승을 이끌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경력이 중단되는 비극을 겪었는데 세계대전이 끝나고 복귀한 뒤에도 기량을 유지했고 1920-21 시즌, 센터 포워드 조 앤더슨, 인사이드 레프트 베니 크로스와 함께 강력한 중앙 공격 삼각편대를 구축해 구단은 풋볼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득점하게 지휘했음은 물론 켈리 개인도 공식전 26골을 득점했다.

1925년 12월 1일, 당대 세계 축구 최고 이적료인 6550 파운드에 선덜랜드로 이적해 찰리 버칸을 대체했고 1927년에는 당대 잘 나갔던 허더스필드 타운으로 이적해 명성을 날렸다.

 

 

14위 토니 우드콕

 

 

생년월일: 1955년 12월 6일
A매치 기록: 42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노팅엄 포레스트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걸쳐서 활약한 공격수로 날렵한 움직임과 양발을 모두 사용하는 정확한 슈팅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좌우측 윙어와 처진 공격수도 소화할 수 있었다.

클러프 체제의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우드콕은 1977-78 시즌 풋볼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리그컵 2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78-79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에 일조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5위에 올랐다. 이후 분데스리가의 쾰른과 아스날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0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했다.

 

 

13위 트레버 프랜시스

 


생년월일: 1954년 4월 19일
A매치 기록: 52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노팅엄 포레스트

 

영국인 최초로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이적했으며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활약한 잉글랜드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번개와 같은 스피드와 이를 활용한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는 물론 벼락과도 같은 오른발 슈팅을 앞세워 직접 찬스를 노리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연계에도 능해 본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는 물론 윙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버밍엄 시티에서 커리어의 첫 전성기를 누리며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낸 프랜시스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 우승을 이뤄낸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유러피언컵 2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1978-79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말뫼를 상대로 결승전 결승골을 득점하며 1979년 발롱도르 7위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는 1981-82 시즌 PFA 올해의 팀에 들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활약했으며 월드컵 이후 삼프도리아로 이적해 이탈리아 무대에 도전했는데 1984-85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다.

 

12위 피터 비어슬리

 


생년월일: 1961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59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3cm
주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못생기고 험악한 외모 때문에 <파리의 노트르담>에 등장하는 '콰지모도'라고 불렸던 선수로 빠른 속도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돌파하는 드리블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찬스 메이킹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 이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도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풋볼 리그 말기와 프리미어리그 초창기에 명성을 날린 비어슬리는 뉴캐슬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존 반스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풋볼 리그 2회 우승과 1988-89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PFA 올해의 팀에도 4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뉴캐슬로 돌아가 앤디 콜과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뒤흔들었던 막강한 공격 듀오를 결성해 활약하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비어슬리는 당대 최고의 골게터 중 하나인 게리 리네커와 함께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며 리네커도 비어즐리를 두고 최고의 파트너라 칭한 적이 있으며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1위 재키 밀번

 


생년월일: 1924년 5월 11일
A매치 기록: 13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1950년대 잉글랜드 무대를 풍미한 포워드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볼 컨트롤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며 득점에 성공했으며 다른 공격진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고 주 포지션인 센터 포워드 이외에도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소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 상대의 공을 기습적으로 빼앗는 놀라운 슬라이딩 태클도 겸비했다.

후배 앨런 시어러와 함께 뉴캐슬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밀번은 비록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타이틀은 시어러에게 내줬지만 FA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뉴캐슬 구단측에서도 이를 기려 홈구장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 외곽에 그의 동상을 조각했으며 경기장 내에도 그의 이름을 딴 밀번 스탠드를 만들었다.

 

10위 잭 데베이

 


생년월일: 1866년 12월 26일
A매치 기록: 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7cm
주 소속팀: 아스톤 빌라

198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잉글랜드 무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라이트 및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했으며 날카로운 슈팅으로 마무리하는데 능했다.

아스톤 빌라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공식잔 304경기 187골을 기록해 구단 통산 득점 랭킹 3위에 오른 데베이는 빌란스의 풋볼 리그 4회 우승 및 FA컵 3회 우승을 이뤄내며 골든 에라, 즉 황금시대라 불렸던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9위 레이 카터

 


생년월일: 1913년 12월 21일
A매치 기록: 13경기 7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선덜랜드

 

193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쳐 활약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탄탄한 기본기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특유의 리더십과 큰 목소리로 공격 진영의 선수들을 아울렀는데 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짧지만 명확한 지시를 내리며 선수들이 귀를 열고 플레이하기를 원했다.

선덜랜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930년대와 4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군림한 카터는 1935-36 시즌 풋볼 리그 우승과 1936-37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아스날의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걸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는 군대에 복무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더비 카운티에 입단해 활약하며 1945-46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카터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0년대 후반에 삼사자 군단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8위 스탠 모텐슨

 


생년월일: 1921년 5월 26일
A매치 기록: 25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블랙풀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약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슈팅 기술, 그리고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 능력을 겸비했으며 2선에서 빠르게 상대 수비의 배후로 침투해 득점 찬스를 잡는데 능했다.

블랙풀에서 매튜스와 함께 공격을 이끈 모텐슨은 1950-51 시즌 풋볼 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FA컵에서 두 번의 준우승을 이뤄냈다가 팀의 세 번째 결승전인 1952-53 시즌에 결승전에서 볼턴 원더러스를 4-3으로 꺾고 우승하는 과정에서 모텐슨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혁혁한 공을 새웠으며 사후에는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모텐슨은 40년대 하반기와 50년대 초반까지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미국과 스페인에게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40년대 후반의 그의 우수한 퍼포먼스를 기려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7위 데이비드 잭

 


생년월일: 1898년 4월 3일
A매치 기록: 9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볼턴 원더러스

 

축구 역사상 최초로 1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한 인물로 1920년대 잉글랜드 무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평가받았는데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적절한 원터치 플레이와 효율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켰으며 우수한 슈팅스킬을 겸비해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하부리그에 머물던 플리머스 아가일에서 데뷔해 1부 리그의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해 여덟 시즌을 보내며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두 대회 결승전에서 모두 선제골을 득점하며 자타공인 볼턴 원더러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남겼다.

1만 파운드라는 이적료로 이적한 아스날에서도 초창기 왕조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우며 1929-30 시즌 FA컵 우승 및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3회 우승을 포함해 총 여섯개의 대회에서 우승했고 사후에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6위 빌리 워커

 

 

생년월일: 1897년 10월 28일
A매치 기록: 18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아스톤 빌라

 

1920년대 잉글랜드 무대에서 명성을 떨쳤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압도적인 득점력과 유려한 공격 전개로 이름을 날렸는데 데뷔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선수 생활 전부를 아스톤 빌라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워커는 공식전 529경기에 출전해 245골을 득점했는데 1919-20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3-24 시즌에는 준우승을 이뤄냈고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도 준우승을 2회 이뤄냈다.

당시 팀 내에서 그의 지분은 압도적이었기에 팀 동료 토미 스마트는 그 시대의 아스톤 빌라를 두고'빌리 워커와 10명의 들러리들'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가치가 높은 선수였는데 삼사자 군단에서도 암흑기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5위 웨인 루니

 


생년월일: 1985년 10월 24일
A매치 기록: 120경기 5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1세기를 빛낸 잉글랜드의 천재로 절구통 드리블이라 불리는 막강한 전진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파괴했으며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슈팅 능력과 부드러운 볼 터치는 물론 2선으로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며 팀 공격을 주도하는 영리한 부분도 보여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최다 득점자로 등극한 루니는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리그컵 3회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3번 진출해서 2007-08 시즌에는 우승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우는 등 수많은 트로피를 수집했음은 물론 루니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도 2회 선정되었으며 2006-07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에 올랐고 2009-10 시즌에는 PFA와 FWA,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서 모두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한때는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유로 2004를 제외하면 본선 무대에서는 부진한 부분은 아쉬웠으나 유로 2004에서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국가대항전 본선에서는 다소 부진했어도 클럽에서의 위업으로 루니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으며 발롱도르 유효표를 6회 받아 201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올랐던 루니는 2022년에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찰리 버칸

 


생년월일: 1891년 9월 22일
A매치 기록: 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선덜랜드

 

1910년대와 2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약하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큰 키와 우아한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창의적인 패스로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으며 백힐과 같은 고난이도의 페인트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했고 허버트 채프먼 감독에게 오프사이드 룰이 바뀌었으니 센터하프를 후방으로 내려 수비 강화를 조언했을 만큼 전술안도 탁월했음은 물론 신체적인 능력도 대단해 탄탄한 밸런스와 한혈마를 연상시키는 지구력으로도 유명했다.

선덜랜드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버칸은 1912-13 시즌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 및 FA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순조롭게 활약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때는 군대에 복무했고 종전 이후에 다시 돌아와 1925년까지 선덜랜드에서 활약했는데 그 과정에서 1922-23 시즌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411경기에 출전해 222골을 기록했다. 말년에는 아스날에서 주전 공격수 겸 채프먼의 참모로 활약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1912-13 시즌 브라티시 홈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했다. 버칸은 사후인 2013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위 비비안 우드워드

 


생년월일: 1879년 6월 3일
A매치 기록: 23경기 29골
신체조건: 키 189m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20세기 초반 잉글랜드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겸 센터 포워드로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나오는 위협적인 헤더와 유려한 테크닉과 저돌적인 움직임을 겸비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완벽하게 부수었음은 물론 패싱력과 스피드마저 우수했다.

프로로 활약하기보다는 아마추어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선호했던 우드워드는 풋볼 리그 1부의 여러 팀의 오퍼에도 불구하고 지역리그 및 풋볼 리그 2부에서 주로 활약한 토트넘 핫스퍼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말년에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가는 첼시에 머물렀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1914-15 시즌 이후에 은퇴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블루머와 함께 주축으로 활약하며 아마추어 리그에서만 활약했음에도 그가 당대 잉글랜드 최고였다는 걸 증명한 우드워드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A매치 25경기에 출전해 29골을 득점했고 잉글랜드 아마추어에서는 30경기에 출전해 45골을 득점했는데 A 대표팀에서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5회 우승을 이뤄냈고 아마추어 팀에서는 1908 런던 올림픽과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2회 연속 우승하며 금메달을 두 번이나 목에 걸었다.

 

2위 스티브 블루머

 


생년월일: 1874년 1월 20일
A매치 기록: 23경기 28골
신체조건: 키 173cm
주 소속팀: 더비 카운티

 

190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신장은 크지 않았지만 영리했으며 굉장히 날렵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슈팅을 날렸으며 특히 그의 주특기는 데이지 커터라고도 불렸던 낮게 깔리면서도 매우 강력했던 슛이라고 전해지며 이 슈팅을 활용해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더비 카운티와 미들즈브러에서 이름을 날리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득점왕을 5회 수상한 블루머는 특히 더비 카운티에서는 경기장에 자신의 흉상이 제작되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응원가가 클럽 공식 응원가로 존재할 정도로 더비 카운티 팬들에게는 클럽의 올타임 레전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3경기에 나와 28골을 득점하는 경이로운 득점력을 보여줬다.

 

 

1위 케빈 키건

 


생년월일: 1951년 2월 14일
A매치 기록: 63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70년대 하반기 유럽 최고의 축구 선수로 체격은 작았으나 단단한 근육질 몸매로 몸싸움을 잘했으며 공격수로서 부족함이 없는 만능 공격수였으며 우수한 헤더와 득점력은 물론 천재적인 플레이메이킹 능력마저 겸비했다.

리버풀과 함부르크에서 전성기를 보낸 키건은 잉글랜드에 머무는 동안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1975-76 시즌에는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197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2위에 오르며 명실상부 당대 잉글랜드 프로축구무대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함부르크에서는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에 큰 역할을 했던 키건은 세 시즌 간 머물면서 세 시즌 모두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여섯 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네 번이나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고 발롱도르를 2회 수상하는 저력을 토했으며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간 뒤에도 사우스햄튼에서 마지막 불꽃을 불태워 1981-82 시즌 PFA 올해의 팀과 올해의 선수에 동시에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UEFA 유로 1980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키건이지만 상술했던 클럽에서의 엄청난 커리어로 인해 발롱도르를 2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는 4회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이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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