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리그의 전설들/이탈리아 세리에 A

194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토르난테 2024. 9. 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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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940-41 시즌부터 1949-50 시즌까지의 활약으로 베스트 일레븐 선정.

세리에 A 소속으로 활약한 국제 클럽 대항전 역시 가산점으로 포함해서 계산.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발레리오 바치갈루포
출생년도: 1924년 2월 12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무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으며 엄청난 반사신경과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지상과 공중으로 오는 슈팅들을 가리지 않고 잘 막아냈으며 특히 페널티 킥 선방에 강점을 보였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골문을 지킨 바치갈루포는 세리에 A 4연패의 전설적인 신화를 이뤄내며 명성을 떨쳤지만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구단과 팬들은 이 시절의 영웅들의 활약을 대대로 기억했고 사고 이후 65년 뒤인 2014년에 바치갈루포는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네 명의 선수 중 하나였다.

 

 

센터 하프

 

 

이름: 카를로 파롤라
출생년도: 1921년 9월 20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상반기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센터하프로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과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 인터셉트로 이름을 날렸으며 풀백과 하프백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유벤투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파롤라는 1941-4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수페르가의 참사로 토리노 FC가 몰락해 왕좌의 공백이 생긴 이탈리아 무대에서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앞서나갔다.

스트라이커 출신이었던 파롤라는 수비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버헤드킥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유명세를 떨쳤는데 그 당시 축구를 가볍게 접했던 사람들은 파롤라 하면 수비력이 아닌 오버헤드킥을 떠올렸을 정도로 그의 오버헤드킥은 유명세를 탔다.

 

 

라이트 풀백

 

 

이름: 알도 발라린
출생년도: 1922년 1월 10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40년대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정상급 풀백으로 WM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으로 활약했으며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을 활용한 우수한 대인 수비와 적절한 수비커버로 이름을 날렸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에서 리가몬티, 마로소와 함께 탄탄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세리에 A 4연패를 이뤄내며 위대한 토리노의 신화를 써냈지만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레프트 풀백

 

 

이름: 비르지니오 마로소
출생년도: 1925년 6월 26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40년대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정상급 풀백으로 WM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으로 활약했는데 비록 키는 작았지만 수비하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거나 영리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상대의 속임수를 간파하는 영리한 수비 지능으로 명성을 날렸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에서 리가몬티, 발라린과 손발을 맞춰 탄탄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세리에 A 4연패라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웠지만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구단과 팬들은 이 시절의 영웅들의 활약을 대대로 기억했고 사고 이후 65년 뒤인 2014년에 마로소는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 하프

 

 

이름: 알도 캄파텔리
출생년도: 1919년 4월 7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4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인사이드 포워드 겸 하프백으로 스피드와 드리블, 그리고 태클 실력이 모두 평범한 수준이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며 활동량이 많은 선수도 아니었지만 영리한 인터셉트로 볼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거나 자신에게 전달된 볼을 능숙하게 다루며 정확하게 전달했으며 전진된 위치에서 활약했을 땐 정확한 중거리 슈팅으로 분위기를 반전하기도 했다.

레오폴도 콘티와 주세페 메아차를 동경하던 인테르 유스 출신으로 인테르에서 데뷔해 14년간 활약한 캄파텔리는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 그리고 말년에는 풀백까지 뛰었을 정도로 멀티성이 대단했으며 1943-44 시즌부터 1949-50 시즌까지 일곱 시즌 동안 인테르의 주장직을 역임했다. 초년에는 세리에 A 2회 우승 및 1938-3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격해지면서 리그가 중단되었고 전후에는 '그란데 토리노'라고 불리던 토리노의 독주로 힘을 쓰지 못했다.

 

 

레프트 하프

 


이름: 쥐세페 그레자르
출생년도: 1918년 11월 25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40년대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하프백으로 지능적인 수비로 상대의 패스길을 정확하게 차단했으며 높은 수준의 기술과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상대로부터 볼을 잘 빼앗기지 않았으며 드넓은 시야와 높은 수준의 전술안, 그리고 정밀도 높으면서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팀의 빌드업을 설계하며 이탈리아의 레지스타 계보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이끌며 발렌티노 마촐라를 보좌했던 그레자르는 세리에 A 5연패의 대업을 이뤄냈고 1942-43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마저 우승하며 승승장구했으나 1949년에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구단과 팬들은 이 시절의 영웅들의 활약을 대대로 기억했고 그 시절에 활약했던 그레자르는 사고 이후 68년 후인 2017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인사이드 라이트

 

 

이름: 에지오 로이크
출생년도: 1919년 9월 26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40년대 유럽 정상급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을 모두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으며 양발 모두를 활용한 강력한 슈팅과 우수한 볼 컨트롤과 드넓은 시야를 활용한 우수한 볼 배급 능력은 물론 근육질의 몸을 활용한 몸싸움과 수비력을 겸비했다.

2선 라인에서 에이스 마촐라를 보좌하며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전성기를 이끌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으며 1942-43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석권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인사이드 레프트

 

 

이름: 발렌티노 마촐라
출생년도: 1919년 1월 26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주 소속팀: 토리노 FC

 

그의 아들 산드로 마촐라, 밀란의 전설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우수한 시야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경기를 조립하고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팀 동료 마리오 리가몬티로부터 "마촐라는 팀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남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경기 영향력이 컸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1940년대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전성시대를 이끈 마촐라는 엘 토로의 세리에 A 5연패와 1942-43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마촐라 개인도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과 1946-47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하며 당대 유럽 축구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인 주세페 메아차는 후배 발렌티노 마촐라를 매우 아꼈는데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산드로 마촐라를 후원하며 아버지 못지않은 축구선수를 만들었으며 페렌츠 푸스카스도 유러피언 컵 결승전이 끝나고 산드로 마촐라와 유니폼을 교환하면서 "난 네 아버지와 경기를 했었지. 너도 그 못지않구나."라고 산드로 마촐라를 칭찬함과 동시에 발렌티노 마촐라를 추억했으며 2015년에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웃사이드 라이트

 

 

이름: 아마데오 비아바티
출생년도: 1915년 4월 4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직후에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기술을 겸비했으며 평발이었음에도 훌륭한 드리블로 상대를 제압했으며 특히 스텝 오버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본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라이트는 물론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득점력도 준수했다.

당대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축구 강국인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 선수였던 비아바티는 1930년대 하반기 볼로냐의 전성시대를 이뤄내며 로쏘블루의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센터 포워드

 

 

이름: 구글리에모 가베토
출생년도: 1916년 2월 24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4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최고의 센터 포워드로 우수한 공간 지각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의 예측을 불허하는 공간 침투 이후 우수한 슈팅 스킬로 마무리를 이뤄냈는데 뛰어난 유연성으로 예술적인 바이시클 킥과 발리 슈팅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토리노의 두 구단 유벤투스와 토리노 FC에서 모두 활약한 이력이 있는 가베토는 유벤투스 소속이던 1937-38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토리노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는데 1941-42 시즌에는 토리노로 이적해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는 대업적을 세우며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시대를 열었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아웃사이드 레프트

 

 

이름: 프랑코 오솔라
출생년도: 1921년 8월 23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이름을 날렸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민첩한 몸놀림과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따돌리며 중앙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에 능했다.

토리노 구단 통산 득점 10위에 랭크된 오솔라는 멘티와 함께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측면 공격을 이끌며 엘 토로의 1942-43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며 위대한 업적을 쌓았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감독

 

 

이름: 루이지 페레로

출생년도: 1904년 12월 26일

주 소속팀: 토리노 FC, 피오렌티나

 

1940년대 이탈리아 및 유럽 축구계 최고의 클럽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시대를 열었던 명장으로 1939-40 시즌 토리노에서 은퇴한 뒤 바리와 페스카라를 거쳐 토리노에 입성해 뛰어난 전술 운용과 임기응변은 물론 선수단 관리에도 능숙했던 위대한 코치이자 매니저였던 페레로는 토리노에서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1947년에 엘 토로의 감독직을 내려놓고 피오렌티나로 떠났는데 이로 인해 1949년에 벌어진 수페르가의 참사를 피했다. 토리노 이후에는 피오렌티나의 50년대 전성기의 기틀을 잡기도 했다.

 

 

베스트 일레븐 라인업

 

 


서브 자원들 포함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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