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40위~3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감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40위~31위

토르난테 2024. 7. 24. 14:39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인물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40위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생년월일: 1919년 12월 5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독일 감독들의 교과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김독 중 하나로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로 분데스리가에서 성공적인 역사를 써냈다.

쾰른에서 지도자를 시작해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레기오날레리가 우승을 이끌며 분데스리가로 승격시킨 헤네스바일러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포칼 1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열며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실패하고 쾰른으로 돌아와 1977-78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을 이뤄냈다.

2000년 독일스포츠기자협회 선정 독일 세기의 감독 2위를 차지한 바이스바일러가 작고한 뒤 독일의 축구지도자 지망생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인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는데 그곳에서 위르겐 클롭, 한지 플릭, 토마스 투헬, 율리안 나겔스만 등 수많은 독일 국적의 명장들을 양성했다.

 

 

39위 알베르 바튜

 


생년월일: 1919년 7월 2일
국적: 프랑스
주 소속팀: 스타드 드 랭스


'프랑스 축구의 중시조'

 

프랑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샴페인 축구라 불리던 매혹적인 전술 스타일로 유명했고 뛰어난 안목과 육성 능력을 바탕으로 레이몽 코파, 쥐스트 퐁텐, 베르나르드 보스키에르 등 수많은 프랑스 축구계의 스타를 육성해 유럽에서도 1류로 평가받지 못했던 프랑스 축구를 유럽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선수 시절에도 스타드 드 랭스의 원 클럽맨이었던 바튜는 스타드 드 랭스에서 지도자로 데뷔해 리그앙 5회 우승 및 1958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53년 라틴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러피언 컵 결승에도 2회 진출했으나 레알 마드리드를 넘지는 못했다. 그래도 레이몽 코파의 이탈을 로저 피앙토니의 영입으로 메우는 등 에이스들의 이탈에도 잘 대처했다.

1955년부터 1962년까지는 랭스 감독을 맡으면서도 프랑스 대표팀 감독도 겸직했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프랑스 역사상 첫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펠레를 앞세운 브라질에게 패했지만 3.4위전에서 서독을 6-3으로 대파하며 체면을 살렸고 1960년 UEFA 유로에서도 4위를 기록하며 프랑스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다.

스타드 드 랭스와 프랑스 대표팀 감독을 사임한 이후에는 그로노블을 거쳐 생테티엔의 지휘봉을 잡아 리그앙 3연패와 쿠프 드 프랑스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생테티엔의 황금기의 서막을 열었는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생테티엔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로베르 에르뱅이 그가 기틀을 세운 생테티엔의 왕조를 이어나갔다.

 

 

38위 기예르모 스타빌레

 


생년월일: 1905년 1월 17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코파 아메리카 마스터'

초대 월드컵 득점왕으로 유명했던 인물이지만 사실은 선수시절보다 감독시절에 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인물로 후보 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팀과 선수들을 분석하는데 재미를 붙였고 유럽에 건너간 이후 여러 팀에서 감독을 맡았으며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뒤에는 라 마니카의 스위칭 플레이를 빠르게 흡수해 1940년대를 아르헨티나의 시대로 만들었다.

1939년부터 1960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직만 21년을 수행한 스타빌레는 1940년대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우수하게 통솔하며 코파 아메리카 6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1940년대를 아르헨티나의 시대로 만들었고 판아메리카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으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와 FIFA의 갈등으로 월드컵에는 황금 세대가 물러난 1958 스웨덴 월드컵에만 참가했다.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도중에도 클럽팀 감독도 쭉 겸직해 온 스타빌레는 산 로렌소와 에스투디안테스를 1년씩 자휘했고 선수 시절 활약했던 우라칸에서 8년간 지휘했으며 리싱 클루브에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스타빌레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남미 무대를 정복한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독일의 라디오 방송사 베를린브리츠가 선정한 1940년대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37위 로베르토 스카로네

 


생년월일: 1917년 7월 16일
국적: 우루과이
주 소속팀: CA 페냐롤


'페냐롤 제국의 1세 황제'

남미 클럽축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이자 우루과이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평가받는 감독으로 빠른 전진 패스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쉴 새 없이 괴롭히는 공격 축구로 명성을 날렸다.

CA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린 스카로네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에 이어 1961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는데 스카로네가 이뤄낸 압도적인 성적 덕에 페냐롤은 1960년대 세계 최고의 클럽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페루에서도 수많은 업적을 남긴 스카로네는 1957년에는 센트로 이케뇨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우니베르시타리오에서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36위 우도 라테크

 


생년월일: 1935년 1월 16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황금기 바이에른의 수장'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토털 풋볼과 헬무트 쇤이 고안한 공격형 리베로 전술을 모두 받아들이며 1970년대 바이에른의 전성시대를 이끌었기에 현지에서는 독일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오트마어 히츠펠트나 2012-13 시즌 트레블을 이뤄낸 유프 하인케스를 제치고 라텍을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하는 올드팬들도 많다.

바이에른 뮌헨 1기 시절에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라텍은 분데스리가 3연패와 1970-71 시즌 DFB포칼 우승, 그리고 1973-7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1974-75 시즌, 리그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부진으로 겨울에 경질되었다. 결국 바이스바일러가 떠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78-79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전성기에 방점을 찍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무대에 도전한 라텍은 1981-82 시즌 컵 위너스컵을 우승하며 세계에서 최초로 3대 유럽 대항전을 석권한 감독이 되었으나 라리가 우승을 바스크 팀에게 내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바이에른 2기 시절에도 분데스리가 3연패 및 DFB포칼 2회 우승을 추가했기에 UEFA에서는 축구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명감독 10인에 우도 라텍을 선정하면서 '1970년대 바이에른의 수장'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35위 위르겐 클롭

 


생년월일: 1967년 6월 16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리버풀 FC

'게겐프레싱의 재창시'

사키이즘을 공격적으로 재해석해 상대 공격에 대항하는 압박이라는 뜻의 게겐프레싱 전술을 유행시킨 전술가이자 선수단을 가족처럼 품었던 2010년대 축구계를 대표하는 덕장으로 선수들에게 공을 뺏기는 즉시 그 자리에서 바로 상대를 다시 압박해 공을 탈환하는 플레이를 주문해 4면 압박을 통해 볼 소유권을 찾고 빠르게 역습을 가하는 플레이를 즐겼다.

자신이 착안한 게겐프레싱을 바탕으로 마인츠를 분데스리가 잔류권 클럽으로 성장시킨 클롭은 히츠펠트 시대의 영광을 잃어버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잡아 유망주들을 대거 키워냈고 알짜배기 자원들을 영입해 스쿼드를 꾸려 분데스리가 2연패와 2011-12 시즌 도메스틱 더블, 그리고 2012-13 시즌에는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조별 리그와 준결승전에서 모두 제압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활약을 선보였다.

도르트문트에서 7년을 보낸 뒤 역시 과거의 명성을 잃고 중위권 수준이라는 놀림을 받았던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은 클롭은 20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3번이나 결승전에 진출했고 자국 무대에서도 2019-20 시즌에는 리버풀의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첫 리그우승을 이뤄냈으며 2021-22 시즌에는 FA컵과 리그컵 우승, 그리고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다. 리버풀에서 참가해 본 일곱 대회에서 최소 한 번씩은 우승을 이뤄냈고 마지막 시즌에도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다.

FIFA 올해의 감독 2회 수상자인 위르겐 클롭은 독일 올해의 축구감독 3회 수상 및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2회 수상을 이뤄냈고 2019년에는 IFFHS 세계 최우수 클럽 감독을 포함해 7개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4위 거스 히딩크

 


생년월일: 1946년 11월 8일
국적: 네덜란드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언더독 스페셜리스트'

네덜란드 축구계의 실리 축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시켜 상대를 전방에서부터 압박하며 후방에서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물리치는 전술을 선호해 대중적으로 강팀으로 분류되지 않는 팀들을 이끌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중도 부임해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감독 경력 첫 해에 우승을 이뤄낸 히딩크는 PSV 1기 시절, 에레데비시 3회 연속 우승 및 1987-88 시즌에는 KNVB 베이커와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하며 감독직 2년 차에 트레블을 이뤄냈다. 그리고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하인케스를 대체하지 못해 라리가 7위로 떨어지며 경질당했고 레알 베티스에서는 강등을 막아내지 못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으나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아 2002 한일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꺾고  4강에 올리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변을 현실로 만들었고 그 공로로 2002년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을 수상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PSV 에인트호번으로 다시 돌아온 히딩크는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2004-05 시즌 도메스틱 더블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내 리누스 미헬스상을 2회 수상했고 호주 대표팀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음은 물론 16강에 올렸고 러시아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08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음은 물론 러시아 대표팀 감독과 겸직하면서 첼시의 소방수로 활약하며 2008-09 시즌 FA컵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렸고 차기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이뤄냈다.



33위 루이 반 할

 


생년월일: 1951년 8월 8일
국적: 네덜란드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육성의 달인'

199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주제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조차도 한 수 배웠다는 전술가로 4-3-3, 3-4-3, 4-4-2, 4-2-3-1 등 다양한 포메이션으로도 높은 점유율과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는 전술을 사용했고 팀 관리 측면에서는 유망주 육성의 대가로 데니스 베르캄프, 마르크 오베르마르스, 챠비 에르난데스, 카를레스 푸욜, 토마스 뮐러 등 수많은 스타를 육성했는데 이들을 중용하기 위해 미래가 불투명한 노장들을 과감히 내치는 세대교체와 리빌딩의 명수기도 했다.

아약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반 할은 1994-95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에레데비시 더블 무패 우승을 포함해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UEFA컵 우승 1회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에 오르는 등 6년간 11개의 우승을 이뤄내 아약스 제너레이션 2기를 이끌며 유럽 축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왔고 반할 개인도 1995년에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을 포함해 다섯 개의 매체에서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으며 FC 바르셀로나에서도 히바우두, 클라위베르트, 루이스 피구를 주축으로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비록 바르셀로나 2기 시절에는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언더독 알크마르의 지휘봉을 잡고 2008-09 시즌 에레데비시 챔피언으로 올렸고 리누스 미헬스상을 2회 수상하는 등 부활에 성공했고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던 시절에는 루카 토니, 루시우 등 노장들을 축출했고 로번, 토마스 뮐러 등을 중용하며 팀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면서도 2009-10 시즌 분데스리가와 포칼 더블 우승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며 향후 2010년대 바이에른의 큰 성공의 기반을 마련했고 반할 개인도 2009-10 시즌 독일 올해의 감독상을 포함해 3개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대체로 부진했지만 2015-16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1기 시절에는 본선 진출 실패라는 굴욕을 경험했지만 두 번째 맡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로 평가받지 못했음에도 3위라는 호성적을 거뒀으며 은퇴 이후에 복귀해서 맡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8강 진출에 성공했고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탈락하는 등 대표팀에서의 부진도 극복했다.



32위 비센테 델 보스케

 


생년월일: 1950년 12월 23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마드리드와 스페인의 소프트 파워'

클럽과 대표팀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명장으로 스타군단을 지휘하는데 특화되었으며 세부 전술은 선수들에게 맡기고 큰 틀의 전술만 짜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팀의 현 사정을 잘 읽고 거기에 최적화된 전술로 틀을 쌓은 뒤 세세한 부분은 스타플레이어에게 맡기는 전술로 강팀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레알 마드리드의 원 클럽맨이었던 델 보스케는 감독직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시작했는데 대행 신분으로 1999-200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을 포함해 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각각 2회 우승했고 2001-02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이어 2000년에는 우승하지 못했던 UEFA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UEFA 올해의 감독과 알프 햄지 어워드를 수상했다.

베식타스 시절에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후임으로 스페인 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전임자 아라고네스의 색채를 잘 유지함과 동시에 대표팀 선수 다수가 포함된 FC 바르셀로나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도 적절하게 수용해 팀을 꾸렸고 포르투갈과 파라과이, 독일을 연파했고 결승전에서도 연장 접전 끝에 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 스페인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UEFA 유로 2012에서는 주전 공격수 비야의 부상과 서브 공격수 토레스의 부진으로 인해 2011-12 시즌 펩 과르디올라가 선보였던 파브레가스 펄스 나인을 적극 활용하며 결승전에서 데 로시의 포어 리베로를 앞세운 이탈리아를 4-0으로 대파하며 세계 최초의 메이저 대회 3연패를 기록했고 델 보스케 개인도 FIFA 올해의 감독을 포함해 4개의 매체에서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31위 네레오 로코

 


생년월일: 1912년 5월 20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AC 밀란

'대가 (El Paron)'

카를 라판이 창시한 베로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서 이탈리아 축구계에 유행시킨 인물로 기존의 센터하프를 최후방의 리베로로 두고 하프백 한 명을 추가로 스토퍼로 배치하는 4백의 카테나치오 시스템을 처음 유행시켰다.

세리에 B에서조차 강등 위기를 겪던 파도바의 지휘봉을 받았던 로코는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해당 시즌에 잔류에 성공하고 다음 시즌에는 승격에 성공했으며 그다음 시즌인 1957-58 시즌엔 리그 3위에 올려놓았는데 당시 로코가 이끌던 파도바는 엄청난 근성과 강력한 피지컬을 선보였기에 세간에서는 그들을 기갑 군단이라고 불렀다.

AC 밀란에서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네레오 로코는 1961-62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연달아 이뤄내며 영광을 누렸으나 로코는 토리노와 계약하기로 약속했기에 자신의 말을 지킨다며 토리노로 떠났고 로코의 유산에 자신의 방식으로 더한 에레라의 인테르에게 이탈리아와 유럽의 패권을 빼았겼다.

토리노에서도 팀을 상위권으로 올린 로코는 AC 밀란으로 돌아온 뒤에도 위기에 빠진 팀을 재차 수습해 1967-68 시즌 세리에 A와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달성했고 1968-69 시즌에는 리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의 토털 풋볼을 완벽하게 봉쇄해 로쏘네리 군단에서 재차 빅이어를 들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50위~4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30위~21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