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100위~9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감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100위~91위

토르난테 2024. 7. 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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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인물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0위 카를로스 빌라르도

 


생년월일: 1939년 3월 16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아르헨티나 실리 축구의 계보 빌라르도주의'

 

수벨디아의 제자들 중 가장 성공한 감독으로 철저한 실리축구의 신봉자였던 빌라르도는 두 명의 스토퍼가 상대 투톱을 밀착 마크하고 최후방의 리베로가 페널티 박스의 위험지역을 철저하게 봉쇄하는 수비방식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했고 공격 전술 부분에서는 팀의 에이스에게 전권을 맡겼다.

에스투디안테스의 선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한 뒤 스승 수벨디아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데뷔한 빌라르도는 초년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콜롬비아 무대의 데포르티보 칼리의 지휘봉을 잡아 리그 준우승 2회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뤄냈고 에스투디안테스 2기 시절에는 1982년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신과는 사상적으로 라이벌이었던 메노티에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빌라르도는 상술했던 시스템에 더해 마라도나에게 전권을 위임함은 물론 마라도나가 최대한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면서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1989 코파 아메리카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다.

 

 

99위 루이스 엔리케

 


생년월일: 1970년 5월 8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공격진에 MSN을 배치한 후에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외칩니다."

관리형 감독의 명암을 모두 보여주는 스타일의 감독으로 가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부분에 능했고 스쿼드에 불필요한 선수들을 정리하는 부분에도 능했지만 전술적인 수를 두는 부분에 약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던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지도자 생활 초년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FC 바르셀로나에서 데뷔 시즌인 2014-15 시즌에 트레블을 이뤄내며 FIFA 올해의 감독과 IFFHS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을 포함해 여섯 매체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2015-16 시즌에도 UEFA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 그리고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다소 기복있는 모습과 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선수기용으로 비판받기도 했는데 UEFA 유로 2020에서는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현재는 파리 생제르맹에서 리그앙과 쿠프 드 프랑스 더블을 이뤄내며 부활의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다.

 

 

98위 한지 플릭

 


생년월일: 1965년 2월 24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미라클 바이에른 2020'

FC 바이에른 뮌헨에 머물렀던 단 2년 동안은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던 명장으로 라인을 높게 올리며 상대를 압박한 뒤 빠르게 공격을 전개하는 스타일의 축구를 보였으며 특히 센터백의 발밑과 패싱력을 매우 중요시 여겼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1-0으로 리드하는 상황에서도 경기 종료 시점까지 라인을 내리지 않고 추가득점을 노렸을 정도로 자신의 신념이 강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뢰브의 수석코치로 2014 월드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단장으로 영전되자 뢰브의 디 만샤프트는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플릭은 호펜하임 단장직을 거쳐 바이에른 뮌헨의 수석 코치직을 역임하던 도중 코바치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그 자리를 물려받자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2019-20 시즌 바이에른의 트레블과 2020년 6관왕을 이뤄냈으며 이 시점에서 바이에른에서의 패배 횟수보다 트로피가 더 많았을 정도로 높은 고점을 보였다.

2020년 한 해 동안 독일 올해의 축구 감독을 포함해 VDV 올해의 감독, 키커 올해의 감독, 빌트 올해의 감독을 모두 석권했고 세계 무대에서도 UEFA, 월드 사커, 글로브 사커 어워즈 올해의 감독을 모두 석권했고 lFFHS 세계 최우수 클럽 감독마저 석권했지만 FIFA 올해의 감독에서는 2위에 그쳤는데 1위를 받은 클롭의 성과가 플릭보다 좋지 않았기에 축구팬들의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디 만샤프트 감독으로서는 좋지 못한 성과를 내며 경질당했기에 2024-25 시즌을 앞두고 지휘봉을 잡은 FC 바르셀로나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다.

 


97위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생년월일: 1965년 6월 11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SC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의 소박한 알렉스 퍼거슨'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가던 중소규모의 구단 프라이부르크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다양한 기조의 전술에 모두 능통해 보유한 선수단에게 맞는 최적화된 전술과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을 바탕으로 지원 대비 최적의 성적을 내는데 능했고 선수의 장단점을 보는 안목이 가히 천재적이라서 슈트라이히가 잘 쓰던 선수들을 다른 감독들이 쓰면 잘 쓰지 못하는 현상도 많았다.

지도자 생활을 모두 프라이부르크에서 보낸 슈트라이히는 U-19팀 감독과 수석코치를 거쳐 2011-12 시즌에 로빈 두트에 이어 감독직에 올라 팀의 잔류를 이뤄내며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에 올랐고 2012-13 시즌에는 강등권에 가깝다는 세간의 예측을 비웃으며 분데스리가 5위로 올려 유로파리그 진출을 이뤄내는 성과를 냈기에 트레블을 이뤄낸 하인케스와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낸 클롭을 제치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에 올랐다.

2014-15 시즌에 잠시 강등되었지만 2015-16 시즌에 2.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한 이래 꾸준히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주며 2021-2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6위와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내는 데 성공해 VDV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과 독일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3-24 시즌, 프라이부르크에서 은퇴하며 지도자 생활을 모두 프라이부르크에서 보낸 구단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남았다.

 


96위 아르투르 조르즈

 


생년월일: 1946년 2월 13일
국적: 포르투갈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Rei Artur'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선수 생활을 보내고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지도자 공부를 했고 포르투갈 무대와 프랑스 무대에서 전설적인 감독으로 통하는 인물로 팀이 밀리고 있을 때 두는 승부수로 역전하는데 능한 역전의 명수로 유명했다.

선수 시절에는 벤피카에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감독으로는 포르투에서 전성기를 누린 조르즈는 프리메이라 리가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6-8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결승전에서는 바이에른을 상대로 선제골을 내줬음에도 마제르의 동점골과 교체 투입한 주아리의 역전골로 2-1로 승리해 구단 역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레이 아르투르, 즉 아서왕이라고 불렸다.

라싱 파리에서는 돋보이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1992-93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과 1993-94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끌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그가 이뤄낸 유산을 바탕으로 후임 감독인 루이 페르낭데가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과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준 감독으로 평가받는데 실제로 2014년 PSG의 팬들에 의해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95위 레오 베인하커르

 


생년월일: 1942년 8월 2일
국적: 네덜란드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독수리 조련사'

시가와 술에 대한 무한한 열정으로 유명했고 기자회견장에서의 센스 넘치는 유머로 인기를 누리며 레오 경이라고 불렸던 인물로 프로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하부리그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메가 클럽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승부수에는 약해 토너먼트와 같은 단기전에는 약했지만 리그와 같은 장기전 운영에는 강점을 드러냈다.

1965년 하부리그 에페에서 데뷔한 베인하커르는 이후 여러 팀을 거쳐 1978=79 시즌, 자국 최고의 명문 아약스의 지휘봉을 잡아 1979-80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고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부트라게뇨를 주축으로 퀸타 델 부이트레라 불리던 시절에 스타들을 이끌며 라리가 3연패 및 1988-89 시즌 코파 델 레이와 라리가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는 1986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 탈락 및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탈락 등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가 페예노르트의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끌고 다시 반등한 베인하커르는 2005년에는 북중미의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감독을 맡아 첫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기도 했다.



94위 알베르토 오르마에체아

 


출생년도: 1939년 4월 7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레알 소시에다드

'에스타디오 아노에타를 지키는 수호신'

레알 소시에다드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추리 우르딘 군단의 전성기를 이끌며 견고한 수비와 중원에서 높은 점유율을 겸비했으며 공격진은 찬스를 잘 살리는 일명 삼박자가 잘 맞는 팀으로 성장시켰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7년의 황금기를 이끈 오르마에체아는 라리가 38경기 무패행진을 시작으로 라리가 2연패, 1982 수페르코파 에스파냐 우승 및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진출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38경기 무패 기록은 2017-18 시즌에 바르셀로나가 깨기 전까지 무려 38년간 지켜낸 기록이었다.

구단측은 선수 시절에는 레알 소시에다드 원 클럽맨이었고 은퇴 이후 4년간 수석코치로 두 명의 감독을 보좌한 것을 포함해 에스타디오 아노에타에서 26년간 머물며 헌신했던 오르마에체아의 위대한 업적과 열정적인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홈구장 에스타디오 아노에타 앞에 그의 흉상을 건립했다.



93위 하비에르 클레멘테

 


출생년도: 1950년 3월 12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아틀레틱 빌바오

'바스크의 독설가'

팬들에게 바라칼도의 금발이라 불렸던 1980년대 라리가 축구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젊은 독설가로 견고한 수비력과 탁월한 역습을 바탕으로 한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몸싸움과 거친 태클을 서슴지 않아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고 선수단과의 갈등은 잦았지만 효율적이며 투지 넘치는 축구로 항상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으며 자신과 빌바오를 거칠다고 비판했던 메노티에게 '노망난 히피', '오입쟁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맞받아치는 등 독설로도 유명세를 탔다.

초년에 맡았던 아틀레틱 빌바오의 전성기를 이끈 클레멘테는 지역 라이벌 소시에다드가 라리가 2연패를 이뤄내는 강세를 지켜보는 처지에 있었으나 클레멘테가 잡은 뒤 로스 레오네스의 감독직을 잡으며 팀을 재수습했고 이후 1982-83 시즌과 1983-84 시즌에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특히 1983-84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에서도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나 주축 선수들과의 갈등으로 물러나 에스파뇰로 떠났고 에스파뇰에서도 1986-87 시즌에서는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에스파뇰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음은 물론 1987-88 시즌에는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다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팀을 리그 2위에 올리며 우승 경쟁을 벌이던 도중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회장이었던 헤수스 길이 그의 수비적인 전술을 싫어해 "골은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며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그를 경질했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를 경질한 뒤 성적이 더 떨어져 4위에 머물렀던 일도 있었는데 실제로 라리가 올해의 감독상만 3회 수상했다. 그러나 이 시즌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92위 안토니오 콘테

 


생년월일: 1969년 7월 31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공격형 스리백 시스템의 부활을 이뤄낸 열정가'

세계적으로 4백 시스템에 밀려난 3백 시스템의 부활을 이끈 명장으로 기존의 수비적인 백 스리 시스템 대신 스토퍼도 전진하는 화끈한 공격형 3백 시스템과 절륜한 롱패스로 공중전을 유도한 뒤, 포스트플레이에 능한 공격수를 활용해 득점 찬스를 만드는 전술을 선호했고 이 전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하고 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는데 특히 토너먼트에서는 아쉬웠지만 장기적인 리그 운영에는 명수로 평가받는다.

AC 아레초에서 감독 데뷔를 이뤄냈고 바리와 아탈란타를 거쳐 시에나에서 만개한 콘테는 2011-12 시즌, 두 시즌 연속으로 7위를 하며 몰락한 유벤투스의 지휘봉을 잡아 2011-12 시즌 무패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3회 우승 및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아넬리 가문과의 갈등으로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떠났다가 첼시의 지휘봉을 잡아 3-4-3 시스템을 바탕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4백 시스템이 유행하던 PL에 3백 시스템의 바람을 불었고 인테르 밀란에서도 2019-20 시즌 유로파 리그 준우승 및 2020-2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개인 통산 도메스틱 1부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낸 콘테는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4회 수상 및 판키나도르 3회 연속 수상을 이뤄냈고 첼시 시절에는 2016-17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및 FIFA 올해의 감독 2위에 올랐다. 다만 더 높은 위상을 구축하려면 보드진과 장기적으로 협력해야 하며 토너먼트에서의 약세를 극복해야 한다.

 

 

91위 시모네 인자기

 


생년월일: 1976년 4월 5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로테이션의 명수'

축구 역사상 가진 능력과 보여준 역량에 비해 가장 저평가받는 감독 중 한 명으로 미드필더진의 중원 장악과 빌드업을 신경 쓰는 현대적인 3-5-2 시스템을 바탕으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보였으며 특히 선수층이 얇아도 적절한 로테이션으로 주전 선수단의 퀄리티 보존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함은 물론 가진 자원에 따라서 최적의 전술을 짜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라치오 유스팀을 6년간 지휘하다가 2015-16 시즌 도중에 스테파노 피올리의 경질로 감독직을 대행하다가 2016-17 시즌을 앞두고 정식으로 1군 감독을 맡아서 라치오를 상위권에 올려놓으며 주목받았음은 물론 2018-1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2019-20 시즌에는 리그 20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4위를 기록했고 2020-21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정말 오랜만에 16강에 진출했다.

라치오를 떠나 인테르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세계구급 감독으로 성장한 시모네 인자기는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및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는데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을 압도하고 올라온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으나 공격진의 결정력 부재로 아쉽게 패했지만 시모네 인자기 개인은 FIFA 올해의 감독 3위에 올랐다. 그리고 2023-24 시즌에는 승점 94점을 기록하며 2위 AC 밀란과 19점 차이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고 인자기 개인도 세리에 A 시즌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90위~8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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