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의 숨겨진 은인, 크로아티아의 축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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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의 숨겨진 은인, 크로아티아의 축구인들

토르난테 2020. 10. 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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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사주에서의 귀인이라는 용어가 있다. 사주에서의 귀인은 당사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줌으로써 안녕과 길함을 이끌어주는 인물을 뜻하는 단어이다.

축구계에서도 이러한 귀인과의 만남으로 구단의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는 각각 로만과 만수르라는 석유재벌을 만나 전통 명문인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과 경쟁할 수 있는 대형 클럽으로 성장했다.

 

맨체스터 시티 구단 역사상 최고의 귀인인 구단주 만수르 아부다비 왕자


산투스도 펠레가 1군에 콜업되고 클럽의 위상과 운명이 바뀌었으며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 입단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 빌바오를 끌어내리고 스페인을 넘어 세계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클럽이 되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이러한 귀인이 있다. 보통 베켄바우어나 우도 라텍을 꼽거나 클럽을 파산 위기에서 구한 레전드 출신 경영인 울리 회네스를 꼽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사람들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은 아니다. 다만 이들이 바이에른에 기여한 부분을 팬들이라도 확실히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쓴다.

 

바이에른 뮌헨의 역사를 시작한 크로아티아 남자들

 

바이에른 뮌헨은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가 개막했을 때 1860 뮌헨에 밀려 초대받지 못한 클럽이 되었다.

이때 쾰른의 감독에서 밀려난 유고슬라비아의 전설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크로아티아 사람인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가 바이에른 뮌헨에 부임한다.

 

선수들과 농담하는 차이코프스키 감독

 

그는 훗날 바이에른 뮌헨의 코어가 되어 팀을 유럽을 호령하는 강팀이 되게 하는데 초석을 다졌다.

차이코프스키의 첫 번째 공로는 훗날의 코어가 될 선수들을 선별해 그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는 것이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 있던 제프 마이어, 프란츠 베켄바우어, 게르트 뮐러, 프란츠 로트, 한스 게오르크 슈바르첸벡을 차례로 콜업했는데 이들은 훗날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베켄바우어와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의 두 번째 공로는 신식 전술의 유입과 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며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독일의 프로 축구팀은 당시 4백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WM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이러한 시스템을 탈피해 브라질과 벤피카의 4-2-4 시스템과 세리에 A 클럽들이 사용하던 리베로 시스템을 바이에른 뮌헨에 도입하였으며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후에는 성공을 거두며 팀을 분데스리가로 승격시킨다. 그리고 1964-65 시즌과 1965-66 시즌에 DFB-포칼을 두 번 연속 우승했으며 1965-66 시즌에는 레인저스를 꺾고 UEFA 컵 위너스 컵을 우승하며 최초의 유럽 대항전 우승을 이뤄냈다.

 

1966-67 바이에른 뮌헨의 4-2-4 시스템



이후 1968년 차이코프스키가 물러나고 후임자이자 차이코프스키의 친구인 브란코 제베츠가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브란코 제베츠는 크로아티아의 전설적인 선수였으며 선수 시절 빠른 발과 훌륭한 전술 이해도를 앞세웠으며 특히 탁월한 전술 이해도를 앞세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거나 수비수로 출전했음에도 임기응변식의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최초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힐 만큼 축구 센스가 좋았다.

브란초 제베츠의 자세한 내용은 dongneazesoccer.tistory.com/13 을 참조하는걸 권장한다.

 

스타플레이어 열전 75편: 왼쪽 그 자체 브란코 제베츠

1. 프로필 이름: 브란코 제베츠 (Branko Zebec) 생몰년: 1929년 5월 17일-1988년 9월 26일 (향년 59세) 국적: 유고슬라비아→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76cm 포지션: 레프트 백, 아웃사이드 ..

dongneazesoccer.tistory.com

브란코 제베츠는 차이코프스키가 만든 훌륭한 팀을 이어받았으며 노장 올크를 내리고 유망주 슈바르첸벡을 주전으로 올리며 베켄바우어와 슈바르첸벡의 수비 조합을 최초로 구성하며 1968-69 시즌에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했으며 같은 년도에 DFB-포칼도 우승하며 구단 최초로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제베츠와 마이스터 샬레의 주역들


하지만 제베츠는 첫 분데스리가 우승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차이코프스키와는 다르게 다소 아쉽게 해어졌다. 공격력을 포기하는 대신 수비력을 극대화하는 그의 스타일은 팀 수뇌부 및 선수단과 갈등을 일으켰고 1969-70 시즌에 성적마저도 부진하다 전격 경질되었다. 베켄바우어는 제베츠와 바이에른 뮌헨 구단 사이에 갈등이 있었음을 자서전에 적기도 했다.

하지만 좋지 않게 이별했다고 그가 바이에른의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베켄바우어와 슈바르첸벡 조합을 완성시킨 공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크로아티아의 분리 독립 이후

 

세월이 흘러 유고슬라비아는 내전 끝에 해체되고 크로아티아는 분리 독립을 이뤄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크로아티아와 바이에른은 인연이 없는듯했다.

코바치 형제를 선수로 영입했지만 이스마엘의 부상으로 뜻하지 않게 주전을 차지한 로베르트와 달리 니코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났으며 로베르트도 바이에른에 오래 머물진 못했다.

그러던 도중 2009-10 시즌을 앞두고 함부르크에서 활약했던 왼발잡이 전천후 공격수 이비차 올리치가 입단하게 된다.

올리치는 고메스, 토니, 클로제가 머물던 바이에른에 네 번째 옵션 겸 윙어들의 백업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하지만 올리치는 유소년 팀에서 콜업된 토마스 뮐러와 함께 저 세 선수를 모두 벤치에 앉히고 주전으로 출전했으며 중요한 고비였던 조별예선 마지막 유벤투스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홈에서는 추가 시간 결승골을, 원정에서도 3-0으로 지고 있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뛰며 만회골을 득점해 팀이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4강 리옹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바이에른 뮌헨이 다시 부활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맨유전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을 득점하고 세레머니를 하는 올리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과 리그와 포칼 더블 우승에 도움을 준 올리치는 비록 이후 시즌에는 부상과 고메스의 맹활약으로 벤치로도 밀려나고 2011-12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선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나 2009-10 시즌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로 바이에른의 에이스 리베리가 바이에른을 떠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바이에른에 잔류하며 훗날의 트레블을 이끌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올리치의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의 활약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2012-13 시즌에는 올리치의 후배 마리오 만주키치가 볼프스부르크를 떠나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

만주키치는 고메스의 백업이 될 전망이었지만 고메스의 부상을 틈타 헌신적인 전방 압박 능력과 강력한 제공권 능력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2012-13 시즌 트레블의 주전으로 기여했으며 2013-14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012-13 시즌의 마리오 만주키치


비록 레반도프스키의 영입과 펩과의 불화로 떠나긴 했지만 이때 만주키치의 활약은 바이에른 팬이라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했다.

2019-20 시즌에는 바이에른의 타깃이던 리로이 자네의 부상으로 쿠티뉴와 함께 긴급 임대된 페리시치가 의도치 않게 활약을 해줬다.

물론 올리치처럼 팀의 에이스에 준하는 활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리그에서도 백업 역할을 잘 수행하며 트레블에 기여해 임대 신화를 쓸 수 있었다.

 

미래에는 어떤 크로아티아 인이 바이에른의 귀인이 될까?

 

선수와 감독으로서의 코바치 형제와 같은 아쉬운 사례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바이에른과 크로아티아는 궁합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도움을 많이 받은 유벤투스, 포르투갈과 궁합이 좋았던 레알 마드리드, 독일과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인터 밀란, 스웨덴이나 브라질과 궁합이 좋았던 AC 밀란만큼은 아니라도 바이에른은 크로아티아와 궁합이 은근히 좋았다.

이번 시즌에 마르첼로 브로조비치의 이적설이 있을때도 이런 이유 때문에 기대했지만 인테르의 토날리 영입 실패와 바이에른의 자금 부족으로 불발되었다.

과연 미래의 바이에른에는 어떤 크로아티아인이 귀인이 되어 바이에른의 중흥기를 도울까 기대된다.

박수용의 토르난테-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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