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만이 쏘아올린 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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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만이 쏘아올린 큰 공

토르난테 2020. 10. 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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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

 

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다. 뜻은 미세한 변화 또는 사소한 행위가 발단이 되어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 축구계의 생태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것도 이런 사소한 나비효과에서 나왔다.

1990년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RFC 리에주 소속의 장-마르크 보스만이 소속팀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새 팀인 프랑스의 됭케르크라는 구단으로 이적을 추진했다.

장-마르크 보스만의 사진

 

그러나 됭케르크 구단이 보스만에 대한 이적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였으며 추가적으로 외국인 보유 쿼터제에 걸려서 보스만의 이적은 실패한다.

이게 2020년에 벌어진 일이라면 보스만은 자유 계약 선수가 되어 다른 팀을 구해서 활약했을 테지만 이때는 그러지 못했다. 이때에는 계약이 만료되어도 선수의 소유권이 구단에 있었으며 이에 보스만은 리에주 2군 소속으로 강등되었으며 연봉도 대폭 삭감되었다.

이런 부당한 대우에 보스만은 유럽 사법재판소에 후술 할 두 가지의 사항을 근거로 자신이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소송을 걸었다.

1. 선수 계약이 만료된 구단은 선수에 대한 소유권이 소멸된다.

2. EU 회원국의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EU 영역 내 국가로 취업이 가능하다.

보스만과 RFC 리에주는 이 두 가지의 사항으로 5년간의 공방 끝에 원고인 보스만의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정작 소송을 건 보스만은 5년간의 공백 기간 끝에 이 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은퇴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축구계에 사키이즘, 크루이프즘이라는 전술적인 진보보다도 더 큰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대격변

 

상술했던 두 가지 사항이 개선되면서 축구계에 어떤 큰 변화가 왔길래 사키이즘이나 크루이프즘보다도 더 큰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냐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문단에서는 이 두 가지가 개선되면서 축구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해보려고 한다.

1. 선수 계약이 만료된 구단은 선수에 대한 소유권이 소멸된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겠다. 레알 마드리드가 킬리안 음바페의 영입을 계획하는 것은 축구 팬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바페의 현 소속팀 PSG는 음바페와는 계약 기간을 남겨두고 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이적료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보스만 판결에 의해 개정된 법에 의하면 계약이 만료가 된다면 PSG는 음바페가 레알 마드리드를 가든, 바이에른 뮌헨을 가든, 리그 내 라이벌 올림피크 마르세유를 가던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인 소유권이 상실한다. 게다가 계약 만료 6개월 이전부터는 미리 협상도 가능해진다.

레알 마드리드와 음바페의 이적설은 이적시장이 시작될때마다 연례 행사급으로 자주 보도된다.

이렇기에 기존에 자본력이 강하거나 명문 구단의 지위를 유지하던 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선수를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팀으로부터 쉽게 가져올 수 있게 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공짜로 영입할 수 있으며 자본력이 약하고 규모가 작은 팀들은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선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넘긴다. 보스만 판결 이전과는 다르게 계약이 만료되면 선수에 관한 소유권이 소멸되기 때문에 그 선수에 관해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명문 구단이나 자본력이 강한 구단은 구단 철학에 필요한 선수들을 예전보다 쉽게 구매했으며 심지어는 백업 자원으로도 수준급 선수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마침 소송이 진행 중이던 1993-94 시즌에 AC 밀란의 카펠로는 백업에도 사비세비치, 파팽, 렌티니, 갈리, 파누치 등 수준급의 선수들을 보유했으며 반 바스텐의 부상과 주전 멤버들의 체력 문제를 쉽게 극복했으며 바레시와 코스타쿠르타, 반 바스텐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각각 부상과 징계라는 이유로 빠진 상황에서도 백업 선수인 파누치, 사비세비치의 활약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

밀란의 화려한 백엄 벰버들, 이들은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잘 커버하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 EU 회원국의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EU 영역 내 국가로 취업이 가능하다.

필자는 전자의 항목보다 이 항목의 개선이 더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영입하고 싶은 선수가 있어도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외국인 용병이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소송이 진행 중이던 1993-94 시즌에는 요한 크루이프는 출중한 용병 네 명 중에 세 명 밖에 출전시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결국 호마리우, 쿠만, 스토이치코프가 선발 출전하고 미카엘 라우드롭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이 일로 인해 크루이프와 불화가 증폭되고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버린다.

크루이프는 이들 중 단 세 명만 기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5년 보스만이 승소한 이후로 EU에 소속된 국가 선수들은 자국 선수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는데 문제는 남미 국적을 가진 선수들 중에 이중국적자들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과거 남미로 이주한 이탈리아인의 후손들에게 속인주의라는 명목 하에 이중국적을 허용해 준 사례로 인해 이탈리아 이중국적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다. 이를 오리운디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리오넬 메시도 이탈리아 국적이 있으며 그 당시에 활약한 선수들 중에는 사네티나 바티스투타, 시메오네, 몬테로 같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국적의 선수들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이들은 남미 국적이었지만 이탈리아인의 후손이었기에 이탈리아 국적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EU 선수로 등록되었다.

 

이에 구단은 외국인 쿼터제에서 자유로워졌으며 구단과 감독이 원하는 선수 구성이 더욱 수월해졌으며 감독들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보스만 판결 이전보다 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며 자신의 축구 철학을 실현시키기 쉬워졌다. 특히 라치오에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아스널에는 프랑스 선수들이, 레버쿠젠에는 브라질 선수들이 많이 자리 잡았다.

 

메가 클럽



상술한 두 가지가 바뀌면서 선수 구성에서 예전보다 자유로워졌으며 이 시대에 이름을 날린 강호들이 높은 확률로 뒷 세대에도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자리 잡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3M이라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는데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챔피언스리그는 이 세 팀 중 한 팀이 우승했으며 우승하지 못했어도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마드리드, 뮌헨, 멘체스터의 3m 이라 불렸던 당대 최고의 메가클럽들

 

특히 레알 마드리드는 다보르 슈케르가 확고한 주전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으며 크로아티아의 4강을 이끈 레프트 윙백 야르니도 호베르투 카를루스에 밀려 서브 멤버에 불과했을 정도였으며 브라질 대표팀에 종종 소집되는 사비우도 서브 멤버였다. 바이에른 뮌헨도 독일 대표팀인 타르나트와 헬머를 로테이션 멤버로 두고 있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두터운 선수단을 유지했다.

그리고 저 3M에 못지않았던 강자가 세리에 7 공주라 불렸던 팀들이다. 세리에 A는 1990년대 당시 UEFA 계수 1위의 최강의 리그였으며 보스만 판결 이전에도 최고의 용병들이 활약했던 리그였다. 보스만 판결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는데 특히 인터 밀란은 비에리와 호나우두를 보유하고도 이들의 부상이 잦다는 이유로 바조와 사모라노를 영입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으며 AC 밀란 역시 말디니의 백업으로 독일 대표팀 레프트 백인 지게를 영입했으며 라치오는 당시 유럽의 다크호스였던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수비수 페르난두 쿠투를 서브 멤버로 두던 팀이었다.

일명 세리에 7공주

이렇게 보스만 판결에 탄력을 받고 성장시킨 팀이 세리에 7 공주라 불렸으나 라치오와 피오렌티나, 파르마가 무리한 투자로 인해 한 차례 몰락하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바르셀로나, 아스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어 레버쿠젠, PSG 등이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성장했으며 시장성이 큰 리그와 작은 리그의 격차는 커졌으며 리그 내에서도 명문 구단이나 부자 구단과 중소 구단과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진화와 도태

 

중견 규모의 리그와 클럽이 몰락하고 빅 리그의 메가 클럽들은 강한 전력을 보유하게 되자 UEFA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원래는 리그 챔피언과 유러피언 컵 챔피언만 참여하는 유러피언 컵에서 챔피언스리그로 이름이 바뀐 지 몇 년 이후인 1997-98 시즌부터 유럽의 8대 리그에 해당하는 클럽들은 예선 포함 두 팀이 참가하는 권한을 받았다. 분데스리가에서는 우승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리그 3위를 했으므로 바이에른 뮌헨, 레버쿠젠, 도르트문트 세 팀이 참가하는 진기록이 벌어졌다.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초로 같은 리그의 팀이 세 팀이 진출했는데 추가로 8강에도 세 팀이 진출했다. 출처: 위키백과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본선을 32강으로 확대했으며 UEFA 계수 상위 1~3위 리그에서는 4개의 클럽을, 상위 4~6위 리그에서는 3개의 클럽을 본선과 예선에 진출시켰다. 즉 오늘날 챔피언스리그의 방식에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다만 이 시즌부터 2002-03 시즌까지는 16 강도 조별 예선으로 치렀으므로 스쿼드가 두터운 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마르크 비비안 푀의 비후성심근증으로 인한 죽음으로 인해 2003-04 시즌부터는 16강은 조별 리그의 방식에서 토너먼트로 바뀌게 되었으며 2018/19 시즌부터는 UEFA 리그 랭킹 1~4위 리그의 4팀이 플레이오프 없이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진출권을 얻게 되는 등 작은 폭의 변경은 있었다.

자연스럽게 각 빅 리그의 강팀들의 올스타전인 챔피언스리그의 위상과 상업적인 가치는 급상승하게 된다. 예전에는 리그 우승팀 이외에는 UEFA컵에서만 봐야했으며 다양한 강팀을 챔피언스리그에서 즐길 수 없었으며 UEFA컵에서도 리그 최강팀을 볼 수는 없었기에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해결되면서 챔피언스리그의 위상과 인기가 급등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클럽 대항전 UEFA 챔피언스리그


이때부터 높게 오른 챔피언스리그의 위상은 각 리그의 위상을 뛰어넘었으며 이제는 세계 최고의 축구 대회인 월드컵의 위상을 추격하고 있다.

예전에는 유러피언 컵 또는 챔피언스리그가 월드컵과 겹치는 경우 발롱도르 위너는 월드컵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국적만 받을 수 있던 시절에는 유럽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하면 1978년을 제외하면 유럽 국적 선수들 중에 월드컵 활약이 가장 뛰어난 선수가 받았다. 심지어는 챔피언스리그가 상당한 위상을 보유한 2002년과 2006년에도 챔스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아닌 월드컵 우승팀의 선수인 호나우두와 칸나바로가 발롱도르를 받았다. 심지어는 월드컵이 아닌 유로나 UEFA컵 우승자에게 밀려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한 선수가 발롱도르를 받지 못한 사례도 빈번했다.

월드컵이 열린 해의 발롱도르 수상자들이다. 1978년과 1986년 같은 경우에는 후대에 와서는 논란이 많았던 선정이다.

하지만 2007-08 시즌부터 이러한 기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로 우승을 이끈 챠비를 제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호날두가 받았으며 2010년에는 트레블과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한 스네이더나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챠비, 이니에스타가 아닌 월드컵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쳤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왕을 이룬 메시가 받았다. 2014년에는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으며 리그에서는 3위에 불과했던 호날두가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앞세워 월드컵 골든볼 메시와 월드컵 위너인 노이어와 토마스 뮐러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모드리치 같은 경우에는 월드컵에서 활약도 훌륭했지만 그 이전에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 중원의 코어였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UEFA가 보스만 판결과 통신의 발달로 해외에서도 TV로 타 리그를 생중계로 볼 수 있던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오랬동안 유지하던 낡은 틀을 벗고 대회를 새롭게 개혁해서 결국 엄청난 수익을 얻었으며 대회의 위상도 높였던 이 신의 한 수는 물 들어올 때 노 젓기의 성공 사례이며 발 빠르게 움직이면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만약 구태의연하게 챔피언스리그는 챔피언들만의 리그라며 이 룰을 바꾸지 않았으면 UEFA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오늘날만 못했을 것이며 축구팬들도 즐길 콘텐츠가 줄었을 것이고 결국 클럽 축구는 오늘날의 위상을 얻지 못하고 도태되었거나 정체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를 운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움직여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며 진화하면 발전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모든 자연의 섭리이다.

이 시절의 UEFA처럼 진화하여 발전하며 부를 누릴 것인가? 아니면 도태될 것인가? 답은 뻔하지 않는가?

장 마르크 보스만

박수용의 토르난테 -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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