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90위~8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90위~81위

토르난테 2024. 3. 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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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90위 후안 카를로스 오블리타스

 


생년월일: 1951년 2월 16일
국적: 페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우니베르시타리오 데 데포르테스

1970년대 남미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레프트윙으로 폭발적인 순간스피드와 유려한 연계플레이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유린해 엘 치아구, 즉 맹렬한 사람이라 불렸다.

페루의 양대명문 우니베르시타리오와 스포르팅 크리스탈에서 전성기를 누린 오블리타스는 개인 통산 정규리그 6회 우승을 이뤄냈고 스페인의 엘체와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 등 유럽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1970년대 페루 대표팀의 전성기를 함께한 오블리타스는 1975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큰 역할을 했는데 볼리비아아, 칠레, 콜롬비아를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8강행에 공헌했다.



89위 일리야 페트코비치

 


생년월일: 1945년 9월 22일
국적: 세르비아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OFK 베오그라드

드라간 자이치에 가려진 또 다른 유고슬라비아 정상급 윙어로 클럽에서는 레프트윙으로 활약했지만 대표팀에서는 자이치의 존재로 인해 라이트윙에서 활약했는데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괴롭혀 세간으로부터 카라부르메의 태풍이라 불렸다.

비교적 약체에 속했던 OFK 베오그라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페트코비치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며 1965-66 시즌 유고슬라비아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자이치 대신 라이트윙으로 출전해 UEFA 유로 1968 우승 및 1974 서독 월드컵 8강 2차 리그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88위 이반 페리시치

 


생년월일: 1989년 2월 2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10년대 크로아티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양발잡이 측면 플레이어로 크로스의 정확성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슈팅력이 뛰어나며 엄청난 활동량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며 주력이 뛰어나고 경기 초반부터 후반까지 스프린트의 편차가 거의 없어서 역습 상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윙어다.

클뤼프 브뤼헤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세리에와 분데스리가의 여러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페리시치는 도르트문트에서는 백업으로 도메스틱 더블을 경험했고 볼프스부르크에서는 2014-15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 및 DFB포칼 우승, 그리고 인테르에서도 암흑기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임대를 가서는 트레블에 공헌했고 다시 인테르로 돌아와서는 2020-2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고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페리시치는 UEFA 유로 2012에 데뷔해 UEFA 유로와 월드컵에 각각 3회 참가했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전에서 후반 22분 동점골과 연장전에서 만주키치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해 바르테니 군단의 월드컵 결승행을 이끌었는데 이 경기에서만 14.531km의 활동량을 기록했고 78회의 스프린트를 기록하며 철인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결승전에서도 득점을 기록했지만 아쉽게 프랑스에게 패했고 4년 뒤인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87위 에디 그레이

 


생년월일: 1948년 1월 17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스코틀랜드 출신 레프트윙으로 양발 모두를 활용한 드리블과 한혈마와 같은 스피드를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따돌렸는데 그를 지도했던 돈 레비 감독은 "그가 눈밭에서 경기할 때 그 어떠한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선수 생활 전부를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만 보낸 그레이는 우측의 로리머, 레프트백 테리 쿠퍼와의 콤비 플레이로 명성을 날렸는데 풋볼 리그와 인터시티 페어스컵 각각 2회 우승, 1967-68 시즌 리그컵 우승 및 1971-72 시즌 FA컵 우승을 포함해 7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구단의 진짜 리즈 시절을 이끌었다.

스코틀랜드 대표침 소속으로 오래 활약하지는 않았지만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우승했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는 소집되지 못했다.

 


86위 빅토르 에스파라고

 


생년월일: 1944년 10월 6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70년대 우루과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전술이해도가 높고 다재다능한 선수였는데 주 포지션인 양 측면 윙어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스트라이커까지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누린 에스파라고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1년과 1980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코파 아메리카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제패하며 두 번이나 남미 무대와 세계 무대를 제패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그리고 중간에 유럽 무대의 세비야로 이적해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한 에스파라고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였으나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로차의 부상으로 공격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소련과의 8강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85위 코허트 빌모스

 


생년월일: 1906년 7월 17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헝가리 대표팀의 약진을 이끌었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좌측면에서 빠르게 침투해 벼락같이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플레이에 능해 '헝가리산 대포', '번개' 등으로 불렸다.

헝가리 무대의 페렌츠바로시에서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코허트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1928년에는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 트레블을 이뤄냈고 1932년에는 리그 전승 우승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활약한 코허트는 그 당시에는 헝가리 리그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던 프랑스 리그의 마르세유로 떠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마르세유에서 아즈나, 다르와 함께 공격 편대를 이끌며 1936-37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쿠프 드 프랑스 2회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프랑스로 떠나면서 대표팀 소집이 끊겼었으나 1938 월드컵이 프랑스에서 열렸기에 대표팀에 소집될 수 있었다. 그러나 8강까지 출전했음에도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티트코시에게 밀려났다.



84위 티트코시 팔

 


생년월일: 1908년 1월 8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코허트 빌모스와 함께 1930년대 헝가리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정밀도 높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벗겨냈으며 완숙한 볼 컨트롤 능력을 바탕으로 원터치플레이에 강점을 보였음은 물론 주발은 왼발이었지만 오른발도 잘 사용했다.

MTK 헝가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린 티트코시는 1932 마자르 쿠파 우승 및 넴제티 버이녹샤그 2연패를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37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주전 경쟁자였던 코허트가 프랑스로 떠나며 소집되지 못하자 헝가리 대표팀 주전 아웃사이드 레프트를 꿰찬 티트코시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8강까지는 코후트 빌모시에 밀려 나오지 못했으나 4강 스웨덴전에서 전반 37분에 역전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전반 8분에 동점골을 넣는 등 분전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다.



83위 엔리케 코야르

 


생년월일: 1934년 11월 2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65cm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6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이자 원조 엘리뇨라 불렸던 선수로 빠른 순간 스피드와 파워풀한 드리블을 활용해 상대의 측면을 부쉈으며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와 공격진과의 찰떡같은 스위칭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능력에도 일품이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구단의 전설로 이름을 날린 코야르는 코파 델 레이 우승 3회와 1961-6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65-66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레알 마드리드의 헨토, 사라고사의 라페트라와 라이벌리를 구축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는 1962 칠레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헨토와 치열하게 주전 경쟁을 했는데 나올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82위 아우바누

 


생년월일: 1922년 12월 21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67cm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1940년대와 50년대 포르투갈 무대를 뒤흔들었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드리블을 겸비한 측면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유린했음은 물론 날카로운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도 가능했다.

스포르팅 리스본 소속으로 페이로테우, 코헤이아, 트라바수스, 마누에우 바스케스와 함께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라 불린 공격 편대를 이끌며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로 명성을 날렸는데 이때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정규리그 8회 우승 및 타사 드 포르투갈 4회 우승을 차지했다.



81위 안드레이 아르샤빈

 


생년월일: 1981년 5월 29일
국적: 러시아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

21세기 러시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2선의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지구력은 다소 부족했지만 상대 수비를 뒤흔드는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와 우수한 양발 사용을 활용한 날카로운 슈팅으로 팀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제니트와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르샤빈은 2006년 러시아 올해의 스포츠선수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제니트에서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과 2007-08 시즌 UEFA컵 우승 및 2008 UEFA 슈퍼컵 우승을 포함해 7개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냈고 아르샤빈 개인도 2007-08 UEFA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고 아스날에서는 우승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2008-09 시즌 리버풀을 상대로 4번의 슈팅에서 4득점을 기록하는 등 리버풀에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 대표팀에서도 2000년대 후반 대표팀의 약진을 이끌며 UEFA 유로 2008에서는 4강 신화를 이뤄내며 대회 팀 오브 토너먼트에 들었고 UEFA 유로 2012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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