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100위~9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100위~91위

토르난테 2024. 2. 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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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0위 하산 살리하미지치

 


생년월일: 1977년 1월 1일
국적: 보스니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현세대에는 바이에른의 단장으로 유명했던 인물로 2000년대 유럽 축구계를 풍미했던 멀티플레이어였는데 높은 수준의 지구력과 전술안을 바탕으로 주 포지션인 레프트윙 이외에도 라이트윙,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및 양 사이드백을 모두 소화했는데 특히 왕성한 활동량과 양발로 날리는 양질의 크로스가 일품이었다.

함부르크에서 데뷔한 살리하미지치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뒤에 두각을 나타내며 분데스리가 6회 우승 및 DFB포칼 4회 우승, 그리고 200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주전으로 이뤄냈다. 바이에른에서 리베리에게 밀려 팀을 떠난 뒤에는 유벤투스에 입단해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보스니아 올해의 축구선수 4회 선정 및 2001년 보스니아 올해의 스포츠인에 선정된 살리하미지치는 보스니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팀 전력의 한계로 인해 본선에는 나서지 못했다.



99위 레오나르두

 


생년월일: 1969년 9월 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 브라질 축구계를 수놓은 멀티플레이어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해 주로 레프트윙이나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했지만 거기에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과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겸비해 수비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풀백으로도 활약했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한 직후 1987 시즌 세리 A 우승을 이뤄낸 레오나르두는 이후 상 파울루에서는 1991년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면서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구단의 황금기를 함께했고 AC 밀란에서는 1998-99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도 다재다능함으로 팀에 도움이 된 레오나르두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레프트백과 레프트윙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도왔으며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뤄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레프트윙을 맡아 팀의 결승 진출을 이뤄낸다.

 


98위 페니베시 마테

 


생년월일: 1933년 9월 20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못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1960년대 동유럽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본래 오른발잡이였지만 왼발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양발잡이였고 엄청난 스프린트를 바탕으로 많은 수비수들을 따돌렸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6년간 활약한 페니베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1957-58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득점하며 대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고 페니베시 개인도 1963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마자르 군단에서도 치보르의 후계자로 평가받아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로 소집되었던 마테는 헝가리 혁명으로 치보르가 스페인으로 망명하자 1958 스웨덴 월드컵 때부터 주전으로 도약해 1962 칠레 월드컵 8강 및 UEFA 유로 1964 3위에 올랐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소속팀 후배 라코시 줄러의 백업으로 대기했다.

 


97위 카를로스 보르헤스

 


생년월일: 1932년 1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6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50년대와 6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에서 명성을 떨친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팬들에게 루초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드리블 돌파와 택배와 같이 상대의 머리로 정확히 전달하는 왼발 얼리크로스로 이름을 날렸다.

페냐롤의 유스 팀을 거쳐 1949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보르헤스는 구단의 정규리그 7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 무대에서 크고 작은 대회에서 20회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고 1960년에는 초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하며 팀을 대회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렸다. 그리고 보르헤스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호 골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스코틀랜드전 해트트릭을 이뤄내며 7-0 대승을 이뤄낸 것을 포함해 총 4골을 득점해 조국의 4강 진출에 기여했고 1956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조국의 우승에 기여했다.

 


96위 바츨리 라츠

 


생년월일: 1961년 3월 25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1980년대 소련 축구를 빛낸 왼쪽 유틸리티 자원으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우수한 기동력을 활용해 왼쪽 측면에서 공수 양면으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레프트윙과 레프트백을 번갈아가며 소화했다.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체제의 디나모 키이우에서 왼쪽 측면 자원으로 활약하며 소련 탑 리그와 소련 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5-86 시즌에는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 시즌 소련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95위 킬리 곤살레스

 


생년월일: 1974년 8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앙헬 디 마리아가 직접 밝힌 우상으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클래식 윙어로 교묘한 드리블 돌파와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는 물론 활동량이 뛰어나 공수 양면에서 높은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레프트백도 소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 동료들과의 친화력이 뛰어나 팀워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킬리 곤살레스는 레알 사라고사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발렌시아로 이적해 전성기를 발휘하며 두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2001년에는 UEFA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2001-02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나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부진하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주로 비엘사 체제에서 중용된 킬리 곤살레스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참가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4 코파 아메리카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본인이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아드리아누에게 극적인 동점골을 허용한 뒤 승부차기에서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94위 피에리노 프라티

 


생년월일: 1946년 12월 13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하반기 AC 밀란의 공격을 이끌었던 공격수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소화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골문 앞으로 침투해 날리는 벼락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를 보고 팬들은 그를 두고 마치 중세 유럽 시절에 유행했던 흑사병처럼 단숨에 상대를 제압한다고 하여 흑사병 피에리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낸 프라티는 로쏘네리 군단에서 활약하는 동안 1967-68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크루이프의 아약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그 해에 투표한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기록했다.

1967-6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른 프라티는 아주리 군단에서 UEFA  유로 1968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었고 백업으로 나서며 유로 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93위 하네스 뢰어

 


생년월일: 1942년 7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쾰른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득점력이 뛰어났던 윙어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왼발 슈팅과 정교한 헤더로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며 윙어의 기본인 크로스와 드리블 돌파에도 능했다.

FC 쾰른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누리며 1977-7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DFB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DFB포칼 득점왕에 세 번 올랐으며 1967-68 시즌에는 포칼에 이어 분데스리가에서도 득점왕에 오르며 득점왕 더블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1969-70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와 UEFA 유로 1972 우승을 경험했고 훗날 1988년에는 서독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서울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낸 이력도 있다.



92위 게오르크 볼케르트

 


생년월일: 1945년 11월 28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30대 중반인 1970년대 하반기까지 전성기를 유지한 대기만성형 레프트윙으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적절한 타이밍에 재빠르게 침투해 위협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인버티드 윙어였으며 간혹 볼을 끌긴 했어도 드리블 실력도 수비수 한두명은 제칠 수 있었을 정도로 대체로 우수했다.

분데스리가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윙포워드 볼케르트는 뉘른베르크에서 1967-6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함부르크에서도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며 1975-76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오랫동안 소집되긴 했지만 백업 멤버로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한 볼케르트는 분데스리가에서의 훌륭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대회때는 외면당하기도 했다.



91위 아돌프 우르반

 


생년월일: 1914년 1월 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디 만샤프트와 샬케의 약진을 이끈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벼락같은 스피드로 왼쪽 측면을 가로지른 뒤 환상적인 크로스나 로켓과 같은 슈팅을 날렸으며 당대 독일 무대를 대표하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도 이름을 날렸다. 다소 인성에 문제가 있어 코칭스태프나 동료들과 잦은 갈등을 일으켜 오토 네르츠 체제의 대표팀에서 제외된 경험도 있었다.

1930년대 샬케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활약한 우르반은 가울리가 8회 연속 우승과 독일 챔피언쉽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6-37 시즌에는 DFB포칼도 제패하며 독일 무대 첫 더블 우승을 이뤄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디 만샤프트에서도 1936 베를린 올림픽의 실패로 네르츠가 경질된 뒤 제프 헤어베어거가 감독으로 올라서자 중용받기 시작해 1937년 한 해 동안 디 만샤프트의 11전 10승 1무,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거두는데 기여한 브레슬라우 엘프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울반은 샬케의 미래로 평가받으며 선수로서 탄탄대로를 걸을것으로 예상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그를 막았다. 그 시대 유럽 선수들 대부분 커리어의 손해를 봤지만 우르반은 커리어를 손해 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나치에 의해 징병되어 소련 전선으로 보내졌으며 전투 도중 소련군에게 유탄을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90위~8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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