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40위~3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40위~31위

토르난테 2024. 2. 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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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위 헤나투 가우슈

 


생년월일: 1962년 9월 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2000년대 대한민국에는 이천수가 있었다면 1980년대 브라질에는 헤나투 가우초가 있었다. 무절제한 사생활과 폭력적인 성격을 겸비해 숱한 구설수에 올랐으나 상대 수비수 세네 명이 달려들어도 공을 뺏기지 않았을 정도로 우수한 전진드리블과 유려한 탈압박은 물론 다양한 패스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활용해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레미우에서 전성기를 누린 헤나투 가우슈는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과 1983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유럽 챔피언 함부르크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세계 클럽 챔피언에 올랐고 플라멩구에서는 브라질 전국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크루제이루에서는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캄페오나투 미네이루에서 우승했으며 플루미넨세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내며 3개 주립 리그를 석권했다. 가우슈 개인도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1987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MVP를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데뷔한 헤나투 가우슈는 198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해 준우승을 이뤄냈다.



39위 로베르토 도나도니

 


생년월일: 1963년 9월 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 초반 유럽 정상급 오른쪽 날개로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에서 나오는 넓은 활동반경을 겸비해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끌면서도 어느샌가 최후방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서 양 측면 윙어를 모두 볼 수 있었으며 높은 축구 지능과 경기 영향력을 앞세워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도 볼 수 있었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해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체제의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도나도니는 구단의 황금기인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5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이뤄내고 북미의 메트로스타스로 이적해 북미 리그 올스타 팀에 두 번 들었다가 다시 AC 밀란으로 돌아와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아주리 군단에는 유로 1988부터 대표팀에 뽑히기 시작해 1996년까지 아주리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8 준결승 진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3위, 그리고 1994 미국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호성적을 이루는데 기여했다.

 


38위 프랑코 카우시오

 


생년월일: 1949년 2월 1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중 한 명으로 오른쪽 측면을 가르는 기습적인 질주에 이은 우수한 오른발 크로스로 팀 공격을 지원했으며 화려한 움직임과 깨끗한 사생활을 겸해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트라파토니 시절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카우시오는 세리에 A 6회 우승과 1976-77 시즌 UEFA컵 우승과 1977-7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카우시오 개인도 1976년에는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2위에 올랐음은 물론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아주리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메이저 대회 데뷔를 했던 카우시오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서는 주전 선수로 이탈리아의 4강행을 이끌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백업 선수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결승전에 교체 출장하기도 했다.

 


37위 알렉시스 산체스

 


생년월일: 1988년 12월 19일
국적: 칠레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10년대 칠레 축구의 약진을 이끈 윙포워드로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벽을 벗겨내는데 능하며 오른발 킥도 출중해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직접 슈팅해 득점하는 부분도 뛰어났다.

2010-11 시즌 우디네세의 세리에 A 4위 진출을 이끌며 주목받은 산체스는 바르셀로나를 거쳐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뛰어난 활약을 펼쳐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14-15 시즌 PFA 올해의 팀 선정 및 PFA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폼이 떨어졌지만 인테르 밀란에서 슈퍼 서브로 활약하며 네라주리가 11년 만에 스쿠테토를 드는데 공헌했다.

칠레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득점에 오른 산체스는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냈고 코파 아메리카 2연패를 이뤄냈는데 특히 2016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대회 MVP를 수상했고 2017 컨페드컵에서도 대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실버볼을 수상했다.



36위 앙헬 디 마리아

 


생년월일: 1988년 2월 14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1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윙어로 기술적으로 우수했음은 물론 빠른 스피드와 명민한 축구 센스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와 우수한 킬패스를 활용한 찬스 메이킹에도 능했고 왕성한 활동량과 높은 전술 이해도를 활용해 메짤라 자리에서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를 아우르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벤피카에서 유럽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디마리아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첫 전성기를 누리며 2011-12 시즌에는 펩과 메시가 버티는 바르셀로나를 꺾고 라리가에서 우승하는데 일조했고 2013-1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내며 한 시즌만에 파리로 이적해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이후 리그 앙과 쿠프 드 프랑스를 각각 5회 우승했으며 2019-20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그 과정에서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과 리그앙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중용된 디 마리아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에 2014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과 2015년과 2016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거뒀지만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절치부심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지만 결승전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35위 레네 오우세만

 


생년월일: 1953년 7월 19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7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했던 측면 공격수로 민첩한 몸놀림과 우수한 드리블 돌파 실력은 물론 양발 모두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어느 상황에서든 크로스와 슈팅을 날릴 수 있었기에 대표팀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는 그를 두고 "마라도나와 가린샤의 혼합체"라고 평가했다.

우수한 미드필더 미겔 앙헬 브란디시와 함께 우라칸에서 전성기를 보낸 오우세만은 1973년 전기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오우세만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1974년과 1977년에 모두 10위 안에 들었고 특히 1974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8위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3골을 득점해 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체면치례를 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베르토니와 함께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며 우승에 기여했다.



34위 다니엘 베르토니

 


생년월일: 1955년 3월 14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측면 공격수로 우수한 잔발 테크닉 능력과 기민한 드리블 능력을 겸비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에 빈틈을 냈으며 라이벌 오우세만처럼 양발 능력이 뛰어나 적재적소에서 슈팅과 크로스를 올렸다.

베르토니는 인디펜디엔테에서 1977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후기리그를 우승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내며 1977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9위를 이뤄냈으며 유럽으로 간 뒤에도 세비야와 피오렌티나, 나폴리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큰 활약을 했던 베르토니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전자의 대회에서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33위 패치 갤러처

 


생년월일: 1891년 3월 16일
국적: 북아일랜드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셀틱 FC

1919년대와 20년대 정상급 선수로 체격은 작았지만 강인한 신체능력을 자랑하며 철완 아톰이라 불렸으며 화려한 드리블 실력과 정확한 패싱력으로 상대 수비진의 균열을 만들며 찬스를 만들며 탐의 공격을 진두지휘했고 축구지능도 높아 주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라이트는 물론 인사이드 라이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셀틱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 통산 득점 6위에 랭크된 아일랜드 자유주 출신의 다재다능한 공격수 갤러처는 정규리그 6회 우승과 스코티쉬 컵 4회 우승, 그리고 글래스고 컵 4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팬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당대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았다.

2019년에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갤러처를 두고 라이벌 구단의 전설적인 아웃사이드 레프트 앨런 모튼은 이렇게 말했다. "그와 같은 선수는 없었고 우리가 그와 같은 선수를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패처 갤러치 시대를 살았던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을 현재의 선수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됐으면 한다."



32위 크리스 와들

 


생년월일: 1960년 12월 14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마르세유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로 188cm에 달하는 큰 키를 가지고 있었으나 날렵했으며 교묘한 바디페인팅를 이용한 화려한 개인기로 당대 유럽을 풍미했다.

뉴캐슬에서는 1984-85 시즌에, 토트넘에서는 1988-89 시즌에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리그 최고의 윙어로 평가받았던 와들은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리그앙 3연패를 이뤄냈고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와들 개인도 1991년 옹즈도르 2위에 올랐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0위에 올랐고 마르세유에 머무는 동안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으로 활약한 워들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8강에 올랐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4강이라는 우수한 성적표를 받는데 큰 공을 세웠다.

 

 

31위 카를로스 페우셀레

 


생년월일: 1908년 9월 13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남미를 풍미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테크니컬한 드리블 실력과 대포 같은 중거리 슈팅을 겸비한 우수한 측면 공격수였다.

당대 남미 역대 최고 이적료인 1000만 페소에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며 최초의 백만장자라 불렸던 페우셀레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공식전에서만 총 11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돈값을 제대로 했는데 특히 1930년대 중후반에는 페데르네라, 모레노와 함께 공격 조합을 구성해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라 알비셀레스테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페우셀레는 1929년과 193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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