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50위~4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50위~41위

토르난테 2024. 2. 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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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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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50위 브리안 라우드루프

 


생년월일: 1969년 2월 22일
국적: 덴마크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덴마크 축구를 대표하는 라이트윙으로 다소 기복이 심했지만 잘 풀리는 날에는 형 못지않게 우아하고 기술적인 선수이며 빠른 속도와 볼 컨트롤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데 능했으며 동료들을 활용한 연계 능력을 겸비했음은 물론 온몸을 이용해 득점하는 집념도 대단했다.

초년에는 브뢴비나 바이에른 소속으로 활약하다가 유로 1992에서  팀의 기적적인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 명성이 크게 오른 라우드루프는 세리에 A에서는 적응에 실패했지만 레인저스로 이적해 그곳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3연패와 1995-96 시즌에는 스코티쉬 컵을, 1996-97 시즌에는 리그컵을 우승하며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브리안 라우드루프 개인도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1989-90 시즌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4-95 시즌과 1995-96 시즌에는 SFWA 올해의 선수에 2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덴마크 올해의 선수에 4회 선정된 브리안 라우드루프는 덴마크 대표팀에서는 끝까지 불참한 형과 달리 UEFA 유로 1992에 극적으로 참가했는데 해당 대회에서 조국의 기적적인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1992년 피파 올해의 선수상 5위와 발롱도르 6위에 선정되었고 1995년에도 컨페드컵의 전신인 킹파드 컵을 우승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8강 진출을 이끌며 형과 함께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49위 도미니크 로슈토

 


생년월일: 1955년 1월 14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생테티엔

프랑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트윙으로 재빠른 스피드와 훌륭한 개인기를 활용한 우수한 일대 일 드리블 돌파를 보여줬으며 여기에 양발을 모두 잘 써 어느 상황에서나 직접 슈팅을 노려 무려 여덟 시즌이나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보여줬다.

생테티엔과 파리 생제르맹에서 전성기를 누린 로슈토는 생테티엔에서는 리그앙 3연패와 1975-76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그 해에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1985-86 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1980년대 프랑스 대표팀의 전성기에 활약한 로슈토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부터 1986 멕시코 월드컵까지 모든 대회에서 득점하기도 했다. 다만 UEFA 유로 1984에서는 전술상의 문제로 벤치를 지켰다.

 


48위 새미 크룩스

 


생년월일: 1908년 1월 1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1cm
주 소속팀: 더비 카운티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활약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본래 센터포워드였지만 작은 키 때문에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이동했는데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슈팅으로 잉글랜드 정상급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했다.

더비 카운티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크룻스는 스티븐 블루머와 함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데 더비 카운티 소속으로 공식전 445경기에 나서 111골을 기록했고 1929-30 시즌과 1935-36 시즌에 풋볼 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며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더비 카운티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내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매튜스가 대표팀에 뽑히기 이전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크룩스는 1930년 4월 5일에는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대표팀 데뷔전을 치르며 5-2 대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당대 최고의 클럽 아스날의 주전 윙어 조 험이 대표팀에서는 크룩스에 밀려 벤치를 달궜을 정도였다.

 


47위 훌리오 아바디에

 


생년월일: 1930년 9월 7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회갈색의 머리빛을 했기에 엘 파르도라 불린 아바디에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에스파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선수로 엄청난 가속력과 수준 높은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선수시절 초년에는 중앙으로 직접 침하며 날카로운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즐겼으나 베테랑 선수가 된 이후에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오른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을 더 선호했고 당대 남미 공격수로서는 드물게 불혹에 가까운 나이까지 롱런했다.

1950 시즌에 페냐롤에서 데뷔해 6년간 활약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름을 날리다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제노아로 이적해 4년간 활약했으며 이후 레코를 거쳐 다시 페냐롤로 돌아와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추가로 이뤄냈으며 196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하는 등 페냐롤에 머물면서 총 25개의 우승컵을 들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주전으로 출전해 보르헤스, 스키아피노, 미구에스, 호버그와 함께 공격라인을 이끌며 조국의 4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1955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46위 스야크 스바르트

 


생년월일: 1938년 7월 3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요한 크루이프, 피트 카이저와 함께 아약스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라이트윙으로 민첩한 움직임과 면도날 같은 오른발 크로스는 물론 강철체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필드의 오른쪽 측면을 지배하며 토털 풋볼의 모토인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을 실행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선수 생활 전부를 아약스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며 통산 득점 3위를 기록해 미스터 아약스라 불렸던 스바르트는 '신의 아들들'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에레디비시 7회 우승과 KNVB 컵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러피언컵 3연패에 공헌한 황금기의 주역으로 1972-73 시즌에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승리해 우승컵을 들며 은퇴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1960년대 네덜란드 무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네덜란드의 전성기 시절에는 이미 노쇠해 메이저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45위 요니 렙

 


생년월일: 1951년 11월 25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멋진 금발 헤어스타일을 자랑했던 1970년대 네덜란드를 대표했던 라이트 윙으로 일대 일 상황에서의 명민한 돌파를 활용해 크로스보다는 잦은 중앙 침투에 이은 직접 슈팅을 선호했다.

아약스에서 데뷔한 레프는 데뷔 시즌에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신의 아들들'의 일원으로 활약한 요니 렙은 1971-72 시즌에 이뤄낸 트레블을 포함해 에레데비시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2-73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유벤투스의 디노 조프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기도 했다. 아약스를 떠난 이후에도 발렌시아, 바스티아, 생테티엔에서도 활약했는데 당대 프랑스 무대 최고의 용병으로 평가받았다.

오랑예에서도 뛰어난 활약상으로 명성을 날린 렙은 1974 서독 월드컵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고 1976 UEFA 유로에서는 3위를 이뤄냈는데 특히 요니 레프는 월드컵 본선에서 7골을 넣으며 역대 네덜란드 선수 중 가장 월드컵에서 많은 득점을 이뤄냈다.



44위 자이르 다 코스타

 


생년월일: 1940년 7월 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유럽 축구 최초의 수비형 윙어로 평가받는 선수로 인테르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에레라 감독의 지시로 측면 공격수임에도 번번이 수비에 가담하며 팀의 공수 밸런스를 안정시켜 귀환자라는 뜻의 토르난테라 불렀으며 공격적인 재능도 빼어나 브라질 윙어 답게 드리블 돌파에 능했으며 날카로운 오른발 킥으로 여러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그란데 인테르 시절에 토르난테로 활약한 자이르 다 코스타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브라질로 돌아와서는 산투스에서 활약하며 1973년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공헌했다.

단 유럽과 남미를 오가기 어려운 시대 상황상 그는 셀레상에서 활약하지 못했는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가린샤의 백업으로 참가했으나 하필이면 핵심 선수 가린샤가 주전 경쟁자라 단 한 경기에도 나오지 못했으며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는 웨일스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한 게 그의 유일한 출전 기록이다.



43위 밀루스 밀루티노비치

 


생년월일: 1933년 2월 5일
국적: 세르비아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K 파르티잔

1950년대를 수놓은 라이트윙으로 전성기가 짧고 폐 질환으로 꾸준하게 출전할 수 없었지만 전성기 기간에는 민첩한 몸놀림과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와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가 그를 탐내기도 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밀루티노비치는 팀의 유고슬라비아 컵 2회 우승에 기여했고 1955-5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고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에는 바이에른 뮌헨과 라싱 파리 등 해외 구단에서도 활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밀루티노비치는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주전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42위 위르겐 그라보보스키

 


생년월일: 1944년 7월 7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0년대 상반기 유럽 최고의 라이트 윙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를 겸비했으며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드리블 돌파 능력은 물론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1977-78 시즌 전반기에는 해당 포지션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오르기도 했다.

클럽 커리어 전체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그라보브스키는 비록 리가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DFB 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1979-80 시즌에는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살인태클이라 불릴만한 거친 태클을 당해 은퇴했으나 잔여 시즌동안 그의 몫까지 활약해준 동료들 덕분에 UEFA컵 결승전에서 묀헨글라트바흐를 이기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은퇴할 수 있었다.

서독 대표팀에서도 팀 동료이자 측면 공격 콤비 횔첸바인과 함께 뛰어난 활약을 펼친 그라보브스키는 UEFA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을 연속으로 제패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해 우승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41위 고든 스트라칸

 


생년월일: 1957년 2월 9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1980년대 영국 축구를 빛냈던 라이트 윙으로 지치지 않는 체력과 정교한 크로스 능력과 패싱력으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능력도 대단했으며 여기에 우수한 축구지능까지 겸비하며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어난 역량을 선보였다.

에버딘에서 퍼거슨 감독의 휘하에서 성장해 레인저스와 셀틱이 양분하던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의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스트라칸은 에버딘에서 풋볼 리그 2회 우승 및 1982-8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및 1983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고 스트라칸 개인도 1979-80 SFWA 올해의 축구선수와 1983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고 이때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월드컵에 나섰다.

잉글랜드로 넘어간 뒤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도 활약했는데 맨유에서는 1984-85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이뤄내며 1989-90 시즌 풋볼 리그 2부 우승 및 1991-92 시즌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이뤄내며 리즈 유나이티드의 부활을 이끌었고 그 덕분에 1990-91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60위~51위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40위~3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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